이수명 시인
196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우리
는 이제 충분히」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
다』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등이 있다.
이수명 시인. 그녀는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후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를 내면서 개성적인 시세계를 확보한 신세대 시인이다. 그동안 그가 추구한 세계는 전통적인 시쓰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미학을 보여주고, 이런 미학이 박인환의 문학 정신과 통한다.
박인환 문학이 지금도 문제인 것은 그녀가 1950년대 시인으로 새로운 시쓰기를 모색한 점 때문이다. 그녀가 추구한 현대성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전통성, 도시성, 서구 모더니즘 기법의 수용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문학적 태도는 충분히 새롭고 우리 문학사에 이른바 전후 모더니즘의 확립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물론 문학은 전통을 계승하지만 이 계승은 답습이 아니고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 계승이고 좀더 과격하게 말하면 전통을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다. 박인환은 6·25를 매개로 하는 황폐한 도시, 흘러가는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이런 그의 문학정신은 지금도 창조적으로 계승된다.
박인환의 새로운 시쓰기가 1950년대 우리 현실을 전제로 한다면 이수명의 그것은 1990년대, 2000년대 우리 현실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박인환의 모더니즘과 이수명의 모더니즘은 새로운 시쓰기라는 점에서 같지만 그 형식이나 내용이 다르고, 이 다름이 중요하다. 박인환이 도시의 외면을 노래한다면 이수명은 실존의 불안을 노래한다. 박인환이 도시의 그림자를 노래한다면 이수명은 무수한 인상으로 얼룩지는 흘러가는 삶, 이방인으로서의 군중, 군중 속의 고독을 말하고, 도시의 그림자의 그림자는 이 고독, 불안의 내면을 말한다. 그것은 악몽 같은 내면이고 억압된 무의식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수명은 1930년대 이상의 흐름 속에도 있지만 이상이나 박인환이나 중요한 것은 새롭다는 것, 낯설다는 것이고 이 흐름 속에 이수명이 있고,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악몽과의 싸움이고, 그것은 빛, 태양, 둥근 과일, 망고, 태양의 나무를 갈망한다. 그러나 이런 나무는 존재하지 않고 '망고는 홀로 땅에 떨어진다'([망고]). 존재의 토대는 없고 존재만 홀로 떨어진다. 그는 토대 없는 삶의 내면을 노래하고, 심사위원들은 이런 개성을 높이 산다.
좌절을 넘어서는 초현실과 환상, 그리고 이미 끝난 꿈이 아니라 꾸어야 할 꿈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는 시인 이수명의 네번째 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가 출간되었다.
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에는 벌집처럼 수많은 방들이 있다. 그 방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우화들이 반사하는 세계는 현실의 바깥들이기도 하고 시인의 내면이기도 하고 어떤 형이상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우화적인 시들은 잠언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일거에 바닥을 허물어뜨리거나 섬뜩하게 독자들의 굳어가는 뇌리를 파고드는 면도날 구실을 한다.
두번째 시집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1998)와 세번째 시집 『붉은 담장의 커브』(2001)에서, 자신이 꾸었거나 꾸고 있는 꿈에 관해서가 아니라 꾸어야 할 꿈에 대해서 내내 말하고 있었던 시인은 ‘꿈의 시나리오 쓰기와 그에 대한 검열’을 이번 시집에서도 계속하고 있다. 시인이 쓰는 꿈의 시나리오는 삶의 고통과 문명의 폐허들을 드러내는 악몽들이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계단을 오르지 못했습니다.
계단 위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밀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얼음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습니다.
톱질했습니다.
부서진 얼음을 밟고 올라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갇혔습니다.
-「어느 날의 귀가」전문
「어느 날의 귀가」에서는 얼음을 깨고 집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집이라는 또다른 얼음에 갇히게 된다. 어떤 방법으로도 탈출할 수 없는 일상의 삶이 얼음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나쁜 꿈과도 같다고 할 이러한 상징들은 시집 전체를 통틀어 꿈과 현실을 복잡하게 대응시키고 있다.
「벌레의 그림」에서의 꿈과 현실은 감춰진 방식으로 대응한다. 벌레 한 마리가 뒤집혀져 “바닥을 기던 여섯 개의 다리”가 “낯선 허공을”휘저으며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린다.” 시인은 이에 대해 “그는 허공의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는 허공의 만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쓴다. 뒤집혀 그림 그리기는 시인의 악몽이다. 그림 그리기에 성공하는 벌레의 뒤에는 언어를 내던지는데 실패하는 시인이 있다. 따라서 벌레와 시인이 그리는 성공과 실패는 각자의 그것과 맞물려 있다.
황현산은 해설에서 “그러나 이 악몽의 풍경들은 그 자체로 파편화되고 고립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악몽이 그려 보여주는 현실들이 통합될 전망은 멀기면 하며 이수명의 시가 각기 지니고 있는 문들은 그 사이에 통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조작하는 꿈에 대해 비판하는 시 역시 잊지 않았다.
그의 꿈과 꿈 사이에 나는 나의 꿈을 놓았다. 나의 꿈과 꿈 사이에 그는 그의 꿈을 놓았다. 꿈과 꿈 사이를 꿈으로 채웠다. 푸른 새벽이면 그 나란히 놓여진 꿈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꿈으로 꿈을 붙잡았다. 꿈으로 꿈을 밀어냈다. 밀다가 밀리다가 그의 꿈과 나의 꿈이 겹쳐지면서 꿈은 지워졌다. 나는 비로소 잠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잠 속에서 꿈은 파도가 밀려간 뒤의 조개껍질처럼 드문드문 흉터가 되어 박혀 있었다.
-「꿈」전문
이 꿈들은 그 사이들이 채워지고 또 각자 겹쳐지지만 결코 합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재난의 꿈’을 그린 「너의 얼굴」에서 이 재난의 꿈은 현실에서 일어날 어떤 재난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재난임으로서 꿈을 현실과 연결시키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꿈과 현실의 드문 결합은 시인의 시가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자기검열’에 의해 다시 부정된다. 그러나 시인이 이루려는 꿈을 검열이 저지하고 파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인은 늘 자신의 실패를 고백하지만 그 고백의 말이 실패를 전하는 일에 성공하는 것은 그녀의 검열이 벌써 형식과 깊이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검열하는 자가 자기 성취의 진실을 의심할 때 그녀가 성실하게 다시 짜내는 검열의 그물은 마침내 그 그물을 빠져나가는 꿈과 같은 형태를 얻고 같은 자유를 누린다. 마지막 시 「얼룩말 현상학」은 바로 검열과 그 대상의 현상학이다.
너는 얼룩말을 내리쳤다.
얼룩말의 목을 내리쳤다.
너는 이제 없다.
얼굴 없는 얼룩말들이
날마다 속삭이며
떼지어 네게 엉켜들었다.
핑핑 돌아가는 바람개비같이
얼룩말
얼룩무늬들이 빙글빙글
너를 태우고 다녔다.
너를 태운 얼룩말은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얼룩말 위에서 너는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하나의 얼룩말이
네게 갇힌 후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든
얼룩말들에게
너는 갇혀버렸다.
-「얼룩말 현상학」전문
이수명은 자주 자신의 성실함과 정직함의 희생자인 것처럼 보였다. 검열은 그녀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 운명을 자각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이 검열을 진실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해방의 도구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꿈꾸기 위해 꿈의 시나리오를 반드시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꿈의 자유가 부자유한 현실 속에 어떻게 조밀하게 박혀 있는지 그녀의 시는 벌써 짚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