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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게 참신한 구상 하에 만들어진 영화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오락실 비디오게임의 주요캐릭터들을 영화세계로 불러들여 구현해낸 영화의 이야기는 통상적인 상상의 틀을 깬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텅 빈 오락실 내 게임 속 캐릭터들이 전선을 타고 다른 게임의 영역을 넘나드는 여행을 한다는 설정에 따라 이야기는 전개된다. 영화의 제목에 나타나는 것처럼 이야기를 발진하는 주체는 왠지 어설퍼 보이는 랄프라는 이름의 캐릭터다.
'다고쳐 펠릭스'라는 게임에서 애당초 엄청난 주먹으로 때려 부수는 일이 직업인 악당으로 설정돼 아이들에게 미움을 사야만 했던 그가 나쁜 놈 캐릭터에 염증을 느끼고 영웅적 캐릭터로 거듭나기 위해 다른 게임들로 도피하면서 초래되는 사건들이 관전 포인트. 이제는 완전히 한물 간 게임 속 캐릭터들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에서 사고를 치는 통속극으로 보일 소지도 있다.
하지만 최신의 입체영상기술로 재탄생한 각각의 게임캐릭터들을 보면서 기성세대는 오래전 유년시절을 추억하고 스마트한 시대를 사는 현재의 청소년들은 비록 구리지만 색다른 게임의 세계를 대신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가족용 만화영화로 그만이다. 랄프 캐릭터에 빙의된 연기파배우 존 씨. 라일리(John C. Reilley)의 천생찰떡궁합 목소리연기를 필두로 후두부를 강타하는 발상의 전환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데서는 <슈렉>(Shrek)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될지도 모를 일. 뮤지컬영화 <시카고>(Chicago)에서 존재감 없는 자신을 우울한 노래로 피력한 셀로판 맨 라일리의 개성에 사실 꼭 맞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맹위를 떨쳤던 아케이드게임 속 캐릭터들을 위한 한마당 큰잔치의 성격을 가진 영화인만큼 <주먹왕 랄프>의 성공여부는 실제 당대에 대한 충실도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 이 사실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헨리 잭먼(Henry Jackman)에게도 물론 예외일 수 없는 해당사항이다. 2000년 말에 한스 짐머(Hans Zimmer)의 프로덕션을 통해 알려진 보조 작곡가로서 클래식, 고전음악에 대한 재능이 출중한 잭먼은 그의 초기 과업 중 청소년들을 위한 모험영화들과 당대의 신나는 성인영화들 간에서 대개 액션을 강조하는 음악을 썼다.
2009년 <몬스터 대 에일리언>(Monster vs. Alien)부터 2011년 <장화신은 고양이>(Puss in Boots)까지 현대 청소년들을 위한 크로스오버 영화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해내는 그의 재능은 간과되지 않았다. <주먹왕 랄프>가 최근까지 잭먼의 과업들 중 가장 도전적인 단독작품 중 하나이자 1980년대 아케이드게임의 음악적 개성을 오케스트라와 합창에 의해 재구성해낸 모험적 출품작이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잭먼은 <주먹왕 랄프>의 스코어를 작곡함에 있어 빈티지 아케이드게임에 적합한 사운드질료들을 확실히 적용했다. 또한 그가 이전 아이들을 위한 가족영화에 주로 쓴 아주 신나고 활기 넘치며 향수를 불러내는 사운드들을 다방면에 가미했고, 때론 리모트 컨트롤에서 함께 한 동료작곡가들이 다른 모험영화들에 쓴 사운드방식을 유사하게 변용했다.
이런 절차상의 접근법을 감안하고 잭먼의 이번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 오케스트라에 수반된 1980년대 아케이드 사운드샘플들을 기능적으로 혼합하는 사이에 주제적 악상을 관통해내는 작업이 쉽지 않은 것도 기정사실. 이 스코어에서 순수한 열정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작곡가는 자신의 경쾌하게 낙관적인 영웅주의를 상당한 풍자적 재미에 결합해 균형을 유지하도록 했다.
동시에 <주먹왕 랄프>는 광적인 질주의 쾌감을 주는 부류의 스코어이기도 하다. 특히 1980년대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개성이 현저한 사운드질료들로 인해 유발된다. 양식적으로 음악은 매우 폭넓고 동시에 패러디적인 영역을 가로지른다. 스코어는 맹렬히 돌진하는 의식의 흐름과도 같이 이동한다. 잭먼은 차분하면서도 경쾌한 록의 테마로 시작해 바실 폴두리스(Basil Poledouris)의 1992년 작 <바람과 야망>(Wind)과 2006년 <올웨이즈-3번가의 석양>로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음악상을 수상한 작곡가 겸 편곡가 사토 나오키(Sato Naoki)의 드라마작품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Life in the arcade'에서 1980년대를 소급하는 가장 오락실적인 사운드를 재현한 작곡가는 'Rocket fiasco'를 필두로 한스 짐머(Hans Zimmer)의 <더 록>(The Rock)과 유사한 액션사운드의 고풍스러운 음감을 재생한다. 이 사운드질료는 'Royal raceway'에서 대단히 자극적인 패러디를 따르면서 고리타분한 왕실 톤과 다소 과장된 오락실 전자사운드를 교차해 들려준다. 테마들이 기억 속에 확립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고, 악행을 반영하듯 강하하는 주요 멜로디는 'Cupcake breakout'의 초반에 오르간반주로 고착된다.
풍자적 모방의 사운드질료는 'Laffy taffies'에서 회귀한다. 이 곡조는 존 파웰과 대니 엘프먼의 기법을 공히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에 'la-la' 보컬은 윌리 웡카와 연관해 큐를 마무리한다. 잭먼의 이전 가족영화들에서처럼 파웰의 관현악작법을 준용한 스타일도 발견된다.
리아나(Rihanna)의 히트송 'Shut up and drive'의 곡 구조에 맞춰 스코어에 결합해낸 'One minute to win it'에서는 아케이드 풍의 사운드가 가미된 편곡에 재즈적인 게임 쇼 곡조의 빈티지함이 두드러진다. 스코어의 초반에 현저히 나타난 부드러운 테마는 'Vanellope's hideout'의 도입부와 사이토의 극적인 성향이 감지되는 'Out of the penthouse, off to the race'의 초반에 재연된다. 'Messing with the program'의 종반부엔 오케스트라, 합창, 그리고 아케이드 사운드질료들을 균형감 있게 처리한 원숙미가 돋보인다. 'King candy'의 중반에는 바이올린으로 더 길고 점점 더 강하게 연주되면서 강하하는 악구와 대조를 이룬다. 정말 멋진 솜씨다. 이 테마는 'Broken-Karted'에서 회한에 빠져있긴 하지만 더욱 확연히 나타난다.
리아나의 일렉트로닉 댄스 힙합과 함께 희비극적인 활기충전 행복감을 주는 아울 시티의(Owl City) 신곡 'When can I see you again', 일본의 카트레이싱게임 취향을 반영한 AKB48의 'Sugar rush', 스퀼렉스의 게임플레이뮤직 'Bug hunt', 그리고 1980년대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Wreck it, wreck it Ralph'와 1981년 빌보드차트 싱글차트 정상에 오른 쿨 앤 갱의 영원한 축가 'Celebration'까지, 영화의 전개에 음악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혼란의 소지가 될 수 있지만 원조 게임을 기발한 착상의 만화영화로 부활시킨 개념적 접근법에 부응하는 기폭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스코어의 대단원은 'Shut up and drive'를 다시금 깔끔하게 재연하면서 마무리되는, 위풍당당 아케이드사운드로 복귀한다. 잭먼은 오케스트라에 의한 최후의 두 큐에서 최상의 액션사운드를 들려준다. 'Sugar rush showdown'은 특히 아케이드의 리듬적인 루프를 관현악협주에 전체적으로 잘 조화시켜냈고, 메인테마도 끝에 선명하게 재연된다. 'You're my hero'는 오르간에 의한 거대한 악당의 테마에서 영웅적인 브라스로 이동하면서 장면을 마감하는 곡으로 합창이 결합되어 나타나면서 폭발적인 경외심을 주는 한편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코믹감정을 동시에 불러낸다.
소프트 록적인 특징적 사운드로 시작해 명랑 쾌활한 아케이드 분위기로 웅비하는 'Arcade finale'에서 잭먼은 적어도 오케스트라를 통해 서서히 침잠하는 차분한 분위기를 최후의 순간에 감성적으로 조성해준다. 상투적이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마무리로 괜찮다. 전반적으로 엄청난 광기의 질주라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주먹왕 랄프>의 스코어는 요소요소에서 익살스럽게 터져 나오는 악기들의 오락적인 재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잭먼의 선명한 주제적 음상이 귀를 잡아챈다. 페이스가 너무 빠르고 기악편성에 있어 부산스러운 면을 반면교사라 할 수 있을까.
-수록곡-
1. When Can I See You Again? - 아울 시티(Owl City)
2. Wreck-It, Wreck-It Ralph – 버크너와 가르시아(Buckner & Garcia)
3. Celebration –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4. Sugar Rush – 에이케이비 48(AKB48)
5. Bug Hunt (Noisa Remix) - 스퀼렉스(Skrillex)
6. Shut Up and Drive – 리아나(Rihanna)
7. Wreck-It Ralph 부셔 랄프
8. Life in the Arcade 아케이드에서의 삶
9. Jumping Ship 배에 올라타다
10. Rocket Fiasco 로켓 피아스코
11. Vanellope Von Schweetz 파넬로페 폰 슈비츠
12. Royal Raceway 성대한 경주로
13. Cupcake Breakout 컵케이크 탈옥
14. Candy Vandals 캔디 파괴자들
15. Turbo Flashback 터보 플래시백
16. Laffy Taffies 레피 테피스
17. One Minute to Win It 이기는데 1분
18. Vanellope's Hideout 파넬로페의 아지트
19. Messing with the Program 프로그램으로 망치다
20. King Candy 왕사탕
21. Broken-Karted 고장난 카티드
22. Out of the Penthouse, Off to the Race 펜트하우스를 나와서 레이스로 출발
23. Sugar Rush Showdown 슈거 러시 결전
24. You're My Hero 넌 나의 영웅이야
25. Arcade Finale 아케이드 대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