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역시 잡초다
김 금 례
하늘에선 태양이 대지를 태울 듯이 내리쬐고, 산과 들에는 푸른 녹음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 여름이다. 지금쯤 푸르름 속에 탁구공만 한 열매를 품고 있어야 할 감나무는 잎사귀와 열매를 떨어뜨린 채 겨울나무처럼 앙상하게 서 있다. 애처롭다. 나는 봄이 오자 감나무 옆에 무공해 식품을 먹고자 상추(모종판)를 심었다. 상추는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집 밥상에 올랐다. 내가 심어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풍성한 상추를 먹는 재미에 푹 빠져 행복했다. 헌데 아침에 일어나면 잡초를 뽑아 주어야 했다. 어느 농부의 말이 생각났다. 농사의 시작은 잡초 제거부터 시작된다. 제초제까지 뿌리며 잡초를 제거하지만 잡초는 틈만 있으면 땅을 비집고 나온다. 보도블록이 깔린 틈새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얼굴을 내민다. 끈질긴 잡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잡초도 한세상 살기 위해 나왔으니 상추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라!” 잡초도 어릴 때는 예쁘다. 키 작은 풀들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잡초는 어느 사이 터전을 이루며 상추를 뒤덮어 버렸다. 잡초를 뽑으려 하니 상추 옆에 얼씬도 못하게 모기가 벌떼처럼 쏘아댔다. 예쁘다고 보아주었더니 이럴 수가 있을까, 원망했지만 때는 늦었다. 나는 상추를 포기했다. 잡초는 봄이면 꽃밭에서 꽃을 피운 나무들도 점령했다. 잡초가 꽃을 피워도 아무도 눈길도 주지 않는데도 쑥쑥 자란다. 그래서 농부들은 농작물을 보호하려고 봄부터 어린 잡초를 뽑으면서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말했던가? 어느 날 감나무 잎이 시들시들했다. 사람도 앗아가는 폭염 날씨(37.7℃)를 이기지 못해서 그럴까. 호수로 물을 주다 살펴보니 잡초는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또 터전을 이루었다. 나는 잡초의 정글을 헤치며 들어가려니 잡초가 기상나팔을 불었는지 모기가 또 몰려왔다. 나는 살충제를 뿌리며 들어가 잡초 밑줄기를 자르고 감나무에 붙어있는 잡초를 갈고리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감나무는 봄부터 품었던 나뭇잎과 열매를 우수수 땅에 떨어트렸다. 마음이 저렸다. 감나무도 목을 칭칭 감아 올라 영양분과 수분을 빨아먹는 악성 잡초(기생식물)를 이기지 못했다 ‘잡초야, 나와 28년 동안 함께 하며 여름이면 매미가 우렁차게 노래 부르고 가을이면 붉은 감이 옹기종기 매달려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커다란 대나무 장대 끝에 양파 망을 잠자리채처럼 매달아 하나둘씩 따서 지인들과 나누었던 기쁨을 준 감나무를 너의 터전을 위해 죽일 수 있더냐?’ 어릴 때 뽑아주지 못한 게 후회스럽구나. 잡초는 역시 잡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를 보면 뽑아버리는가 보구나. 사람과 나무와 무엇이 다를까? 벌거숭이가 되어 축 늘어진 감나무를 보니 옛 친구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친구는 건강하고 마음씨도 고우며 명랑했고 정이 많았다. 내가 입원하고 있을 때 매일 찾아와 위로하며 기도해 주던 친구다. 그 친구는 건강 검진결과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고 머리가 빠지는 항암 주사를 맞으며 암과 싸웠지만, 그 지독한 암이 온몸에 퍼져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얼굴을 가리며 손사래 쳤던 모습이 떠오른다. 조기 진단으로 암을 제거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감나무는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고 있다. 잡초로부터 너를 보호해주지 못했구나! 감나무야, 너는 긴 수명을 가졌다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당당했던 그 멋진 모습이 보고 싶구나. 당나라 학자 단성식段成式은 ‘감나무는 수명이 길고, 녹음이 짙으며 아름다운 단풍과 맛있는 열매, 훌륭한 거름이 되는 낙엽 그리고 새가 둥지를 틀지 않으며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일곱 가지 덕이 있는 나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너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너는 옆집 담장을 훌쩍 넘었을 때 가지를 잘라 주었어도 다시 새움을 키웠지. 나는 너의 끈질긴 생명력을 믿는다. 그러니 새봄이 오면 가지에 다시 감꽃을 달고 열매를 맺기 바란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고운밤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