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자희향>
인사동 맛집은 이원화되어 있는 거 같다. 털털하고 편안하게 맛을 추구하는 집, 깔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집, 물론 그 사이 무수한 편차가 있다. 이 집은 전자다. 집밥보다 더 야무지게 맛을 내며 편안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상을 차린다. 분위기는 편안 토속, 맛은 일류 집밥, 그것도 토속 전라도 집밥 맛이다.
1. 식당얼개
상호 : 풍류 자희향
주소 :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25
전화 : 02) 723-0166
주요음식 : 보리굴비, 우렁쌈밥, 돌게장
2. 먹은 날 : 2021.4.23.저녁
먹은음식 : 보리굴비 20,000원, 우렁쌈밥 10,000원
3. 맛보기
단촐하지만 풋풋한 음식이 한상 차려진다. 양념 한올 한올, 맛을 어쩌면 그리도 잘 물고 있는지. 시레기 장아찌 한 젓갈에 남모르는 셈이 다 끝나버렸다. 아, 음식 제대로 하는 집이구나. 다른 반찬들은 확인 수순, 주요리 보리굴비와 돼지불고기는 주인공다운 품위까지 맛에 담고 있다.
보리굴비를 시키고 나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주메뉴인데 굴비 자체가 맛있기가 쉽지 않개 때문.
굴비 살이 탐스럽고, 딱딱하지 않고, 질기지 않아 식감이 좋다. 짜지 않고 적당한 간에 감칠맛이 난다. 색상마저 검지도 희지도 않아 입맛을 돋군다. 보리굴비 전문점도 아닌데, 이 정도 찬으로 내다니, 전라도 풍류 내걸 만하다.
방풍나물무침, 궁채무침, 양파지, 파지 모두 맛있다 마늘쫑은 약간 더 무른 것이 작은 흠, 하지만 맛은 있다. 특히 시래기장아찌는 압권. 약간 달큰하지만 별로 짜지 않은 오동통 신김치 육질 식감 최고의 장아찌. 이거 먹고 손 들었다.
또 양파김치, 우선 흔하지 않은 김치인 데다 새콤 사근하면서 양파의 달근한 맛을 얹은 음식 상태가 압권이다. 거의 구멍가게라 할만큼 좁은 가게 터에 이런 음식들이 깃들어 있다. 놀라운 일이다. 전라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비싸지 않은 서민 음식이라 더 제대로 전라도 맛을 품은 듯하다.
당귀, 명이, 방풍, 배추, 적배추, 상추 등등, 흔한 채소 귀한 채소 등 한 바구니 채소가 입맛을 확 돌게 한다.
이중 명이가 눈에 띈다. 명이는 울릉도 산이지만 요즘은 강원도, 경상도 등 여러 곳에서 재배하여 흔하게 먹을 수 있다. 울릉도 산보다 향은 어림없지만, 제법 비슷한 맛이 난다. 가운데 가려진 파초잎처럼 넙죽한 것이 명이, 잎이 넓어 싸먹기도 좋다.
쫄깃하고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다. 질기지 않고 쫀득거리는 식감이 아주 좋다. 양질의 고기임이 분명하다. 적당한 간을 높이 친다.
요즘 짠 맛을 경계하면서 오히려 너무 싱겁게 해 제맛을 찾지 못하게 하는 음식이 많아졌다. 간이 임계점에는 도달해야 음식이 맛을 낸다. 이 음식이 딱 그렇다.
밥이 맛있다 갓지은 하얀 쌀밥. 윤기 찰기가 흐르는 밥. 식감 엄청 좋다. 찹찹하게 내려 않은 김 나는 밥, 금방 솥에서 퍼낸 밥이다. 돌솥밥은 아니어도 아쉽지 않게 그 맛이 난다. 오히려 그보다 더 찰진 맛이 나서, 솥밥의 제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된장국은 맛있는 집밥 기운이 담겼다. 어릴 때 먹던 맛에 가깝다. 유난스레 육수 신경쓰지 않고 된장에 배춧잎 몇 가닥에도 솔솔 풍기는 부담스럽지 않고 시원한 된장맛, 요새는 이런 맛이 사실 어려운 맛이다.
4. 먹은 후
1) 명이나물
울릉도 사람이 객지에 나가면 가장 생각나는 게 명이라고 한다. 한 잎만 상에 올라와도 향이 코를 찌른다. 장아찌를 담궈도 향이 도망가지 않는다. 울릉도에서 사온 장아찌 한 박스를 아껴가며 먹은 기억이 새롭다. 장아찌 국물에도 향이 짙게 배여, 다른 조리할 때 넣어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먹었다.
귀물처럼 왕비처럼 빛나는 명이를 채취하기 위해 울릉도 사람들은 목숨을 건다. 값도 비싸고 채취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절 식량 대신 명을 이어줬다 해서 산마늘을 '명이'라 했다는데, 요즘은 명이 채취로 죽는 사람이 자주 나와 명을 뺏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맛있어도 값이 비싸도 목숨 걸 일은 아니다. 내륙산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울릉도 명이나물 채취의 위험을 반감시켜주는 걸까. 하여튼 목숨 달릴 만큼 맛있고, 실속 있는 명이나물, 육지산이어도 반갑다.
조리 아닌 식재료 준비에서도 성의를 보여주는 식당, 그 음식에도 더 신뢰가 간다.
2) 인사동 식당
인사동 식당(이집은 경운동이지만 인사동 블럭에 있어 인사동으로 잡는다)은 몇 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다. 분위기파와 맛파, 둘이 합쳐진 경우도 있고, 중간적 존재도 많지만, 대체로 그렇다. 분위기파는 양은 적고 값은 비싼 경우가 많다. 맛 파는 양도 많고, 값도 싸지만 당연히 가게는 허름하다. 식사 상황에 따라 식당의 특성을 알고 골라가면 된다. 이집은 당연히 후자다. 식당은 허름하다. 그래도 인사동이어서 나름의 분위기는 갖고 있다.
또 하나의 구분은 서울음식 혹은 개발음식과 지방음식의 구분, 지방음식은 당연히 전라도 음식이 많다. 이 집도 그렇다. 전라도 음식도 여러가지 변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집은 맛을 쫓으면서 전라도 맛을 잘 품고 있다. 남도 냄새보다 북도 전주쪽 냄새가 난다.
이런 지방 음식이 모여서 한식을 이룬다. 지방색을 잘 갖고 있을수록 그 총체인 한식이 더 풍성해진다. 인사동에서 맛보는 전라도 음식은 한식 광고이자 전라도 음식 광고 구실을 톡톡하게 한다. 하지만 아직 여기까지 맛을 찾아오는 외국인은 많지 않을 거 같다. 이런 음식 즐기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인 다된 거다.
3)운현궁 구경
인사동 거리이지만 바로 큰길 건너가 운현궁이다. 입장료도 무료인 데다 역사적 함의가 특별한 곳이니 돌아보면 좋을 듯하다. 볼 만한 것도 실하게 많다. 시간 있으면 식사 전후 구경하면 좋을 듯하다. 운현궁은 따로 항목을 달리해 <서울 가볼만한곳>에서 소개한다. 여기서는 눈요기를 우선 한다.
운현궁, 노안당과 노락당 앞 풍광. 느티나무가 대원군 기개만큼이나 당당하고 기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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