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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탁구 역사상 남녀를 합쳐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봅니다. 커리어가 정점에 이른 이후에 단식에서 패배한 것이 중국 출신의 귀화선수들인 진준홍과 고야마 지레 정도 밖에 생각이 안날 정도로 무적이었습니다
빠른 템포의 속도전으로 누구를 만나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고, 싸다귀를 때리듯 갈기는 강력한 포핸드 스매싱, 역대 최강의 멘탈게임, 엄청난 집중력과 수비능력 등으로 도무지 질 것 같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커리어가 비교되는 장이닝의 경우 커리어 초반 왕난에게 세계 선수권에서 3번 연속 패배를 당한 게 흠인지라 ...
은퇴직전에도 당시 중국의 차세대인 왕난 리주 양잉 등에게 한번도 지질 않았던 걸로 기억하니까 몇년간 선수생활을 더 했어도 올림픽 3연패는 가능했을 거라 봅니다
혹자들은 지금 보면 너무나 가벼워보이는 볼구질과 당시의 게임이 좀 엉성해 보일 정도로 랠리가 빈틈이 많아 현대에 오면 덩야핑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하지만 덩야핑이 커리어 말년 상대했던 중국 차세대인 왕난 리주 등의 볼구질과 스타일은 현대 탁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감안할때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봅니다
핌플전형인 이토미마와 비교가 많지만 이토미마는 예측하지 못한 샷들로 상대를 괴롭히고 백핸드가 주무기 이고, 구질이 다양한 대신 샷들이 다소 도박성이 있는 데 비해 덩야핑은 포핸드 스매싱을 위주로 득점을 하는 스타일에 다가 미마가 가진 리스키함보다는 안정감이 훨씬 앞서는 선수였습니다.디펜스 능력도 장이닝이 비견될 정도로 쉽게 먹는 공이 없었습니다.
2. 현정화는 덩야핑에게 매우 약했고 1993년 세계선수권에서 단식우승을 차지했지만 당시 덩야핑이 귀화선수인 징준홍에게 패하는 바람에 둘은 그 대회에서 만나질 못했었습니다. 현정화의 결승 상대는 88 올림픽 단식 우승자이자 96년 올림픽 은, 2000년 올림픽 동메달을 딴 중국출신의 첸징이었습니다
현정화가 덩야핑보다 먼저 국제대회에 등장하긴 했지만 둘의 전성기는 어느정도는 겹칩니다. 덩야핑은 90년부터 97년까지 세계 1위 자리를 한번도 놓지 않았으며 이 시기에 현정화가 한번도 세계 1인자자였던 적은 없습니다. 덩야핑이 세선 단식 첫 우승을 차지한 91년 이전에 열린 세선(89년)에서 현정화는 치아홍에게 패배했었습니다(치아홍은 덩야핑과는 다르게 멘탈이 약한 선수였죠)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현정화가 덩야핑보다 빨리 은퇴했었습니다
3. 현정화의 펜홀더 전형은 이후 후배들에게 좀 이어지긴 했지만 덩야핑 이후의 후배들인 왕난 리주 장이닝 시절부터 사실상 경쟁력이 사라졌습니다. 남자부의 경우 김택수 류승민이나 치앙펭룽(지금은 린윤루의 코치) 같은 중펜이 아닌 전통적인 펜홀더 그립은 그 이후에도 어느정도 연명했지만 여자부는....남자부처럼 포핸드 어택보다는 백핸드를 중심으로 하는 빠른 랠리가 게임의 대세가 되면서 백쪽이 심각하게 약점을 가진 펜홀더로는 더 버티기 어려웠었죠
현정화도 덩야핑을 만나면 약했던 것이 덩야핑이 현의 백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밀려버리니 현정화의 날카로운 포핸드 스매싱이 좀처럼 살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93년도에 현정화가 첸징(역시나 빠른 템포에서 공을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을 만나 이긴 건 첸징이 왼손잡이라는 점이 크긴 했었습니다
첸징은 왼손이다 보니 오른손잡이랑 백핸드 백핸드 랠리를 할 수가 없었고 첸징이 백핸드 공격을 하면 코스상으로 현정화의 날카로운 포핸드 스매싱에 걸리면서 게임 주도권을 현정화가 계속 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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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옛날에 탁구계에는 완죤 덩야핑시대였었는데요,,,,
정말 넘 잘했던 선수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