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유혹
수행 중의 태자를 악마가 유혹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거니와 석가 자신이 자기의 회상으로써 술회하였다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네란자라 강가에서 안온(安穩)을 얻기 위해 노력정진에 전심하고 명상하고 있던 나에게 악마 '나무치'는 위로의 말을 던지며 가까이 와서 말했다. '당신은 여위고 안색도 나쁘오. 죽을 날이 가까워 오고 있오.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이란 천의 하나의 예요. 살아야 하오. 사는 편이 낫고 목숨이 있고서야 모든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이오. 당신이 <베다>를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깨끗한 행위, 즉 성화(聖火)에 물건을 바치고서야 많은 공덕도 쌓을 수가 있는 것이오. (고행만) 열심히 해서 무엇이 된단 말일까? 노력정진의 길은 가기 어렵고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오.'"
이런 말을 시구로 엮어 외우고 나서 악마는 석가의 옆에 섰다. 그 악마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석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태만한 자들, 악한 자여, 너는 (속세의) 선업을 구해서 여기 왔지만 나는 그 (속세의) 선업을 구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악마는 선업의 공덕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만 말하는 것이 좋다.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또 지혜가 있다. 이와 같이 전심(專心)하고 있는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속세의) 생명을 말하는가? (노력정진에서 생기는) 이 바람은 강물의 흐름도 고갈시킬 것이다. 일심으로 전념하는 내 몸의 피가 어째서 고갈하지 않을까? (몸의) 피가 말라버리면 담즙도 담(痰)도 마르리라. 육신이 없어지면 마음은 더욱 맑아 온다. 내 념(念)하는 바와 지혜와 선정은 더욱 안립(安立)하기에 이르른다.
나는 이와 같이 안주하여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므로 내 마음은 모든 욕망을 돌보는 일이 없다. 보라, 몸과 마음이 깨끗한 것을. 악마의 첫째 군사는 욕망이며, 둘째 군사는 혐오며, 셋째 군사는 기갈(飢渴)이며, 넷째 군사는 애집(愛執)이라고 부른다. 악마의 다섯 번째 군사는 태만, 수면이고, 여섯 번째 군사는 공포라고 부른다. 네 일곱 번째 군사는 의혹이며, 네 여덟 번째 군사는 허세와 억지다. 잘못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과 명예와 그리고 자기를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 이것들은 악마의 군세(軍勢)다. 시커먼 마귀의 공격군이나,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그것에 견디지 못한다. (용감한 사람은) 능히 승리를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내가 그 원수들에게 항복하고 만단 말일까? 이 속세의 생은 부질없는 것이로다. 나는 져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것을 더 마땅하다고 여긴다. 어떤 도인(道人)들, 바라문들은 이 (악마의 군대) 속에 빠져버려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덕행(德行)있는 사람들이 가야할 길도 알지 못하고 있다. (악마의) 군세가 사방을 포위하고 악마가 코끼리에 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서서 그들과 싸울 것이다.
나를 여기서 물러나게 하지 말라. 신들도 속세의 사람들도 그 악마의 군세를 격파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군세를 지혜로써 파한다. 마치 아직 굽지 않은 흙바리를 돌로 깨뜨려버리는 것과 같이 나 자신 생각을 잘 가다듬고, 염하는 바를 굳건히 하여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편력하리라. 널리 제자들을 인도하면서. 제자들은 내 가르침을 실행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근심 없고, 욕심 없는 경지에 들어가리라."
(악마는 말하였다) "나는 7년 동안이나 세존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해 가서 성화를 먹였다. 그러나 조심성 있는 정각자에게서는 공격해 들어갈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까마귀가 기름진 살빛을 한 바위를 돌면서 '여기에 부드러운 것이 있을까? 맛있는 것이 있을까?'하고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 까마귀는 거기에서 맛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버렸다. 바위 돌에 접근해 갔던 그 까마귀와 같이 우리들은 싫증이 나서 고타마를 버리고 달아났다."
기(氣)가 꺾인 악마의 겨드랑이에서 비파(琵琶)가 철썩하고 떨어졌다. 그러자 그 야차(夜叉)는 의기소침해서 거기서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석가에 대한 악마의 유혹을 말하는 최고(最古)의 문장이다.
위의 문장 가운데에 있는 네란자라강은 산스크리트어로는 나이란자나강이라고 하고 한역 불전(佛典)에서는 '니련선하(尼連禪河)' 등으로 음사(音寫)되어 있는 강인데, 지금은 파루구강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 강은 붓다가야 근처를 흐르고 있어 우기(雨期)에는 다소 물이 흐리지만 강가의 모래는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태자는 그 옆의 우루벨라촌에서 고행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악마는 7년 동안 수행 중의 태자를 쫓아다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후세의 불전(佛傳)에서는 악마의 유혹과 그것의 극복이 성도 직전의 일인 것처럼 쓰고 있는 것이 많으나 그것은 후세의 불전작자(佛傳作者)가 성도의 극적 효과를 인상적으로 강하게 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묘사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에서 먼 일일 것이다. 적어도 초기의 불교도들은 후세의 불전작자와는 달리 부단한 정진, 유혹에 대한 7년 간의 부단한 투쟁이 석가의 수행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앞서 인용한 유혹의 이야기는 팔리어 <숫타니파타>의 구절이지만 그것을 범본 <아가마>(잡아함 39·12)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한역으로 소개해 두기로 한다.
(악마의 게)
獨入一空處 禪思靜思惟 홀로 빈곳에 들어가 생각에 잠겨
已捨國財寶 於此復何求 이미 나라와 재보를 버렸으니 이제 또 무엇을 구할 것인가.
若求聚落利 何不習近人 사람 많은 곳의 리(利)를 구한다면 어찌 사람을 가까이 안하는가.
旣不習近人 終竟何所得 이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필경 얻는 바가 무엇일까.
(세존)
已得大財利 志足志寂滅 이미 큰 재리(財利)를 얻었으니 뜻이 족하고 또 뜻이 없도다.
摧伏諸魔軍 不著於色欲 마군을 무너뜨려 색욕에 착하지 않으며
獨一而禪思 服食禪妙藥 홀로 명상에 잠겨 선의 묘약을 먹으니
是故不與人 周旋相習近 이로 말미암아 수선을 떨며 사람에 접근하는 일이 없도다.
(악마)
瞿曇若自知 安穩涅槃道 고따마야, 너 안온열반의 길이
獨善無爲樂 何爲强化人 獨善無爲의 약인데 왜 굳이 사람을 가르치려드는가.
(세존)
非魔所制處 來問度彼岸 마(魔)의 지배를 받음이 없이 와서 피안 가는 길을 물으면
我則以正答 令彼得涅槃 내 바른 대답으로 그에게 열반을 얻게 하는도다.
時得不放逸 不隨魔自在 그때 그는 방일하지 않고 또 마(魔)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악마)
有石似凝膏 飛鳥欲來食 기름덩이같은 돌이 있어 날아가던 새 와서 먹으려 하다가
竟不得其味 損?還歸空 결국 그 맛을 볼 수 없어 주둥이만 버리고 돌아가듯이
我今亦如彼 徒勞歸天空 나도 그와 같이 헛수고를 하고 허공으로 돌아가네.
경전은 계속해서 갈애(渴愛), 불만, 탐욕 등 악마의 세 딸이 나타나 기운 없이 돌아온 애비 마왕을 위로하고, 성장(盛裝)을 하여 태자를 유혹하려 했으나, 모두다 실패하고만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연꽃 줄기로 산을 부수려는 것이나 다름없고, 손톱으로 바위산을 파내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며, 또 이빨로 쇠를 씹는 것이나 다름이 없이' 석가에 대한 유혹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돌아왔다고 경전은 적고 있다. 후세의 불전이 악마의 금강좌(金剛座) 습격과 그 실패를 적은 것은 모두 이와 같은 경전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앞서 인용한 <숫타니파나>에 나오는 악마의 10군(軍)은 후대에 이르러, <본행집경(本行集經)>,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에도 그대로 쓰여지고 있고, 용수보살(나가르주나)도 그 <지도론(智度論)> 가운데서 인용하고 있다.
<본행집경>, <방광대장엄경>, <지도론>
①欲貪軍 貪欲軍 欲軍
②不歡喜軍 憂愁軍 憂愁軍
③飢渴寒熱軍 飢渴軍 飢渴軍
④愛著軍 愛染軍 愛軍
⑤睡眠軍 昏眠軍 眠睡軍
⑥驚怖恐畏軍 恐怖軍 怖畏軍
⑦孤疑軍 疑悔軍 疑軍
⑧忿覆軍 含毒軍
⑨競利爭名軍 稱供養軍 利養著宜妄名聞
⑩邪
⑪自譽矜高恒常毁他人軍 自讚毁他 自高輕慢於他人軍 瞋恚忿怒軍 愚痴無知軍
여기서 말하는 악마란 요컨대 여러 가지로 변현(變現)하는 애욕의 별명이다. 집요하게 밀어닥치는 이 모든 애욕의 변화를 격퇴하면 자연히 지견(知見)이 맑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서 불교에 있어서 생각된 악마의 종류에 어떤 것이 있었던가에 관해 몇 마디 적어 두고자 한다. 보통 불교에서는 네 가지 종류의 악마를 든다. 즉 천마(天魔), 사마(死魔), 5온마(五蘊魔), 번뇌마(煩惱魔)의 넷이다. 이 악마들은 모두다 마라파순(魔羅波旬)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그것은 마라 파피마(Māra Pāpimā)란 범어에서 나온 말이다. 마라(魔羅)란 죽이는 것, 죽게끔 하는 자란 뜻이며 파순(波旬)이란 악한 자란 뜻이다.
또 악마를 '죽음(Macca)'이니, '껌정(Kaaba)'이니, 혹은 '해탈하지 못하게 하는 자'(不令解脫, Namuci) 등으로 부르는 수도 있다. 사마라고 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무섭고 싫은 것이니까 그렇게 부른 것이다. 번뇌마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의 역적이란 의미이며, 5온마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심신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색(色, 형태), 수(受, 감수작용), 상(想, 상상행위), 행(行, 행동의지, 행위), 식(識, 분별작용) 즉 감관작용과 심리작용을 말한 것이다. 천마라고 하는 것은 제6천의 마왕이라고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소위 3계설(三界說)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간이 그 윤회의 과정에 들게 될 세 가지 세계를 생각하고 있다. 그 3계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셋이다. 욕계란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다. 거기에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른바 신들의 세계가 또한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신들을 흔히 한역 경전에서 천(天)이라고 했고 또 그 천들이 사는 세계도 또 천이라고 했는데, 그 천에 여섯 가지가 있고 또 그것이 그냥 욕망의 세계이므로 이 세계를 6천(六天)이니 또는 6욕천(六欲天)이라고도 한 것이다.
그 6욕천의 제1위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이를테면 제6천(第六天)의 마왕인 것이다. 타화자재(他化自在)란 말은 남이 화작(化作)한 것을 마음대로 자기의 것으로 향수(享受)한다는 뜻인데, 그 천이 마왕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것이 욕계의 왕자(王者),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근본으로 하고 욕망으로 된 인간'이 욕의 지배 하에 있을 동안은 욕계왕(欲界王)과 그 배하의 충신이지만 한번 도(道)를 닦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욕심에 반성을 가하고 욕심의 무서운 기반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하면, 그 욕계의 왕과 그 배하(配下)는 그것을 막으려고 달려든다. 이것이 곧 악마의 유혹, 습격으로 석가나 그 제자들에게 항상 닥쳐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계왕의 지배 밑에 있다는 것은 그 제6천마왕(第六天魔王)의 배하로서 사마, 5온마, 번뇌마의 무서운 지배속에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수도(修道)의 마음이 생기면 자연히 우리는 그러한 악마들과의 투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지면 그냥 그대로 죄수인 것이며, 이기면 세간을 초월한 출세간의 새 세계가 열려 천마도 도리어 귀화하여 수호를 맹세하고 사마(死魔)도 자취를 감추고 5온마인 처자권속은 같은 믿음의 길에 들어선 동포가 되고, 육체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그릇이 되고, 번뇌마는 일전(一轉)해서 보리(菩提)가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악마는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어 설명되고 있기는 하나 결국 세간적인 것을 일괄해서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후세의 대승불교철학자 용수(龍樹) 보살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제외하고 그 외의 일체법을 모조리 마(魔)라고 한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석가모니/ 이기영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