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잘 쓰는 16가지 방법
- 송수권, 『시창작 실기론』 중에서
① 사물을 깊이 보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른다. 지식이나 관찰이 아닌 지혜(지식+경험)의 눈으로 보고 통찰하는 직관력이 필요하다.
②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대한 ‘의미부여’가 있을 때 소재를 붙잡아야 한다.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 사랑 등 퇴행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③ 머릿속에 떠오른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이미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이것이 종자받기다. 〔이미지+이미지=이미저리→주제(가치와 정신)확정〕
④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정서의 구조화가 필요하다. 추상적 관념을 이미지로 만들고 정서를 체계화하기 위하여 ‘객관적 상관물’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1차적 정서를 2차적 정서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하여 ‘객관적 상관물’을 쓴다. 이것을‘정서적 객관화’‘감수성의 통일’ 등으로 부른다.
⑤ 현대시는 ‘노래의 단절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와 있다는 파스의 말을 상기하라. ‘-네’‘-오리다’‘-구나’등의 봉건적 리듬을 탈피하라.
⑥ 초월적이고 달관적인 시는 깊이는 있어도 새로움이 약화되기 쉬우니 프로근성을 버리고 아마추어의 패기와 도전적인 시의 정신을 붙잡아라. 이는 ‘시쓰기’를 익히기 위한 방법이며, 늙은 시가 아니라 젊은 시를 쓰는 방법이다.
⑦ 지금까지 전통적 상징이나 기법이 아닌 개인 상징이 나오지 않으면 신인의 자격이 없다. 완숙한 노련미보다는 젊은 패기의 표현 기법이 필요하다. 실험정신이 없는 시는 죄악에 가깝다.
⑧ 좋은 시(언어+정신+리듬=3합의 정신)보다는 서툴고 거친 문제시(현대의 삶)에 먼저 눈을 돌려라.
⑨ 현대시는 낭송을 하거나 읽기위한 시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만드는 시이니 엉뚱한 제목(진술적 제목), 엉뚱한 발상, 내용 시상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제를 깊이 감추고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말고 절반은 비워둬라. 나머지 상상력은 독자와 평론가의 몫이다.
⑩ 일상적인 친근어법을 쓰된 가끔은 상투어로 박력있는 호홉을 유지하라.
⑪ 리듬을 감추고 시어의 의미가 위로 뜨지 않게 의미망 안에서 느끼도록 하라. 이는 행간을 읽어가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애매 모호성이 전체 의미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심충심리의 복합현상(원형상징)과 교묘한 시어들의 울림에 의한 콘텍스트를 적용하라.
⑫ 시의 주제는 겉뜻(문맥)이 아니라 읽고 나서 독자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감추어라(주제). 아니마를 읽고 그 반대항인 아니무스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라.
⑬ 현대가 희극성/비국성의 세계로 해석될 때 비극성의 긴장미(슬픔, 우울, 고독, 권태, 무기력, 복수, 비애 등의 정서)를 표출하라. 이것이 독자를 붙잡는 구원의식이다. 이는 치유능력, 즉 주술성에 헌신한다.
⑭ 유형화된 기성품이나 유통언어를 철저히 배격하라. 개성이 살아 남는 일 – 이것이 시의 세계이다.
⑮ ‘정서의 구조화’가 되어 있지 못한 시는 실패작이다. 왜냐하면 ‘감수성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에 의한 의미구조의 통일만이라도 꿈꾸어라.
≪ 퇴고작품 ≫
독도 탐방기
박 헌 오
눈썹에 맺힌 이슬 외로움이 천근(千斤)인데
울지 않는 섬이 있다 잠 안자는 섬이 있다
태양을 건져 올리랴
물질 어찌 멈추랴.
삼 태극 휘장을 단 살아있는 화랑이다
호시탐탐 자맥질하는 왜구해적 쫒으랴
언제나 뜬눈으로 사는
문무대왕 현신이다.
독도와의 짧은 만남 긴 여운을 끌고 간다
스크루는 동아줄 틀어 울릉까지 이어 매면
남사당 줄타기 명인
부채 펴고 펄펄 뛴다
2.
임의 나이 4백만 년 한결같은 청춘이니
망망대해 한가운데 금슬 좋은 남 섬 북 섬
단군(檀君)이 임명해 주신
불사불멸 성체인걸.
일월(日月)의 열병식에 파도는 무릎 꿇고
구름 화관 변신술로 하늘 밭 가꾸느니
만만세 대한(大韓) 대해를
융성하게 경작한다.
흙 한 줌 돌 한 덩이도 보석같이 귀하시다
새 한 마리 나무 하나도 신과같이 거룩하다
독도는 바다의 성문(城門)
국호(國號) 새긴 문패 보라.
3.
오늘도 깊은 밤에 성좌(星座)를 거느리고
끝없이 둥근 해원 억만 단의 해류 엮어
하나로 평화로운 세상
영롱하게 매어놓다.
해동조선 시점(始點)으로 띄워놓은 부표는
국운(國運)의 발원지요 하늘의 둥지 되니
여기서 새날의 빛을
땅 끝까지 보낸다.
푸른 옷 치렁대는 바다를 몸에 입고
길게 뻗은 팔 끝에 돌주먹 내보이니
보아라 저 수평선 너머
일본열도 포복한다.
뽑아내기 1
박 헌 오
이마에 골진 세월 두둑 넘어 올라가면
몰라보게 늘어난 하얀 잡초 낯설다
하나씩 뽑는걸 보고 세월이 웃고 있다.
칠월의 산밭처럼 무성하던 사랑의 숲
둥지에서 깨어난 새 뿔뿔이 날아가니
뽑을 것 그조차 없어 소갈머리 훤하다.
뽑는 것, 뽑히는 것 쳇바퀴 돌리는 일
보내놓고 기다리다 가물가물 꺼지는 정
모두 다 있어라 할 걸 홀로일 줄 몰랐네.
뽑아내기 2
얄 굿은 사람의 능청스런 허위백서
잡스런 글 다발을 엮어놓은 호화양장
역겨움 빽빽한 서재 등이 휘는 업보이다
영혼 없는 글줄을 쓰다가 또 지우고
깨닫지 못하면서 눈물만 속절없는데
참회는 나를 뽑아내고 낯선 꿈을 심는 거다.
불 꺼진 심지 하나 진언(眞言)을 품에 안다
성냥골 내긋듯이 유성(流星)이 와 불 밝힐까
아침엔 뽑혀갈 별들 몽당붓으로 쓸고 있다.
뽑아내기 3
말복 지나 처서 무렵 김장 채소 심는 계절
현기증이 나는 더위 견디며 심고 가꾸다
뽑는다 벌레 먹은 채소 사정없이 내친다.
탐스레 자란채소 윤기 줄줄 흐르는데
풍년을 이룬 농부 뱃가죽까지 웃는데
어쩌나 과잉 생산이라 운반비도 못 추리는-
병들어 뽑혀가고 맥 못 추다 고사하고
철지나 쓸모없다 눈물겹게 갈아엎는-
운명은 제 뜻 아니니 순명하라 열녀처럼
뽑아내기 4
십자가 지고 오른 골고다 언덕위에
핏빛노을 지고나면 눈물 젖은 별이 뜬다
날마다 별자리마다 십자가가 타고 있다.
방울방울 맺혔다가 떨어지는 이슬방울
어머니의 어머니 메아리 울려오면
돌아온 가여운 탕자 하늘 문을 열어요.
죄인의 어깨위에 날개가 된 십자나무
참회하고 기도하여 매달려 펴는 날개
영원한 사랑이시여 미움하나 안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