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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년 흥덕왕의 사망으로 왕위가 비게 되자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고 있던 왕족들은 드디어 왕권다툼을 벌이기에 이른다. 흥덕왕의 당제 김균정과 인척 김제륭이 서로 자기가 왕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상대등 김제륭의 세력에 붙은 이들을 열거하면, 시중 김명, 아찬 이홍, 배훤백 등이었다. 반면 김균정을 지지하는 인물들은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 같은 친척 김양, 김예징이었다. 즉, 김제륭파는 고급관리 세력이 주류였고, 김균청파는 왕족이 주류였다. 두 파는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에서 피튀기는 혈투를 벌였다. 흥덕왕의 시신이 차가워지지도 않을 때의 일이었다. 한참동안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김균정이 화살에 맞아 사망해버린다. 결국 김제륭은 승리하고 그토록 소원하던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한다. 837년, 희강왕은 자신을 지지해준 인물들에게 보답을 한다. 상대등에 김명을, 시중에 이홍을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김우징이 원한을 품어 한탄을 하자, 그마저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러자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도망쳐 장보고의 밑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김양 등 김우징 지지 세력도 대거 청해진으로 모이게 된다. 청해진은 정부 반대파가 득실거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안좋던 때에 838년 뜻밖에 사태가 벌어진다. 희강왕이 그토록 믿었던 상대등 김명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홍과 손을 잡고 일어난 김명의 군사들에 의해 궁궐이 장악당하자, 희강왕은 한탄속에서 궁궐 안에서 밧줄로 목을 메어 자살한다. 김명은 왜 갑자기 희강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을까? 실은 그를 지지했던 것도 다 왕위를 갖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선 김우징과 청해진 일부터 처리했어야 했다. 이렇게 서두른 덕분에, 청해진의 정부 반대파의 세력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김우징은 김명이 왕을 시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장보고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장보고에게 이렇게 설득한다. "김명은 임금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이홍은 임금과 아버지를 그릇되이 죽였으니 그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습니다. 원컨대 장군의 군사를 빌려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장보고는 이렇게 답했다. 드디어 장보고는 그의 벗 정년에게 5천을 주어 김양과 더불어 금성을 치도록 명했다. 명목상 총대장은 김양이었지만 실질적인 지휘관은 정년이었다. 839년1월, 청해군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19일에는 달벌의 언덕에 도착하였다. 민애왕은 반란군이 금성 가까이 까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이찬 대흔과 대아찬 윤린 및 억훈 등에게 명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청해군과 정부군은 또다시 대전을 벌였다. 전투결과는 반란군의 대승이었으니, 민애왕의 군사 가운데 죽은 이가 절반이 넘었다. 이때 민애왕은 서쪽 교외의 큰 나무 밑에 있었는데 신하들은 모두 도망쳐버렸다. 그러자 그는 혼자 서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다가 월유택으로 도망해 들어갔다, 그러나 금성에 진입한 청해진 군사들에 의해 발각되어 처참하게 도륙당하고 만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간교한 계략으로 김균정을 죽이고 희강왕마저 자살하게 만들었던 희대의 간교한 자 김명... 그러나 그의 치세는 고작 2년만에 무너졌다. 새로 왕이 된 김우징은 신무왕으로 등극한다. 그리고 장보고에게 식읍을 내려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보답을 한다. 식읍은 공이 큰 신하들에게 왕이 내리는 것인데, 평생 소유할 수 있으며, 식읍 내의 농민들을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었던, 그 지역의 왕이나 다름없게 만드는 특혜였다. 이러한 것은 김유신이 일찍이 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 장보고는 이점에서 김유신과 동등해진 것이다. 한낱 평민이었던 장보고에게 이것은 엄청난 성공이었다. 하지만 신무왕은 너무 허무하게도 등극한 해에 사망하고 만다. 희강왕을 지지하다가 그를 배신하고 민애왕을 지지했던 이홍을 잡지 못하자 전국을 수색케 하여 마침내 죽였는데 그후 잠을 잘대마다 이홍의 원귀가 나타나 그를 괴롭혀서 마침내 등창으로 죽고 만 것이다. 이로서 신라는 이 혼란스러운 4년동안 무려 3명의 왕을 맞이했다. |
신라왕계보도
신라 : 56대, 991년 (BC57∼AD935) 성(性) : 박(朴), 석(昔), 김(金)
대(代) |
왕호 |
성 |
재위기간 |
서기 |
휘 |
참고 |
1대 |
혁거세(赫居世)거세간 |
박(朴) |
61년 |
BC57~AD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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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7 고구려. BC18백제 |
2대 |
남해(南解)차차웅 |
박(朴) |
19년 |
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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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
유리(儒理)이사금 |
박(朴) |
33년 |
2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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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금관가야건국 |
4대 |
탈해(脫解)이사금 |
석(昔) |
23년 |
5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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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
파사(婆娑)이사금 |
박(朴) |
32년 |
8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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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
지마(祇摩)이사금 |
박(朴) |
22년 |
112~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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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
일성(逸聖)이사금 |
박(朴) |
20년 |
134~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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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
아달라(阿達羅)이사금 |
박(朴) |
30년 |
154~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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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
벌휴(伐休)이사금 |
석(昔) |
12년 |
184~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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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
나해(奈解)이사금 |
석(昔) |
34년 |
196~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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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
조분(助賁)이사금 |
석(昔) |
17년 |
230~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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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
첨해(沾解)이사금 |
석(昔) |
15년 |
247~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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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
미추(味鄒)이사금 |
김(金) |
21년 |
262~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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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
유례(儒禮)이사금 |
석(昔) |
15년 |
283~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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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
기림(基臨)이사금 |
석(昔) |
12년 |
298~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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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
흘해(訖解)이사금 |
석(昔) |
46년 |
31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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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멸망 |
17대 |
내물(奈勿)이사금 |
김(金) |
46년 |
356~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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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
실성(實聖)이사금 |
김(金) |
15년 |
402~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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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
눌지(訥祗)마립간 |
김(金) |
41년 |
417~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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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
자비(慈悲)마립간 |
김(金) |
21년 |
458~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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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
소지(炤知)마립간 |
김(金) |
21년 |
479~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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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멸망 |
22대 |
지증왕(智證王) |
김(金) |
14년 |
500~514 |
지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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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
법흥왕(法興王) |
김(金) |
26년 |
514~540 |
원종 |
금관가야멸망 |
24대 |
진흥왕(眞興王) |
김(金) |
36년 |
540~576 |
삼맥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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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
진지왕(眞智王) |
김(金) |
3년 |
576~579 |
사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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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
진평왕(眞平王) |
김(金) |
53년 |
579~632 |
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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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
선덕왕(善德王) |
김(金) |
15년 |
632~647 |
덕만 |
|
28대 |
진덕왕(眞德王) |
김(金) |
7년 |
647~654 |
승만 |
|
29대 |
무열왕(武烈王) |
김(金) |
7년 |
654~661 |
춘추 |
백제멸망 |
30대 |
문무왕(文武王) |
김(金) |
20년 |
661~681 |
법민 |
고구려멸망 |
31대 |
신문왕(神文王) |
김(金) |
11년 |
681~692 |
정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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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
효소왕(孝昭王) |
김(金) |
10년 |
692~702 |
이홍 |
발해건국 |
33대 |
성덕왕(聖德王) |
김(金) |
35년 |
702~737 |
흥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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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
효성왕(孝成王) |
김(金) |
5년 |
737~742 |
승경 |
|
35대 |
경덕왕(景德王) |
김(金) |
23년 |
742~765 |
헌영 |
|
36대 |
혜공왕(惠恭王) |
김(金) |
15년 |
765~780 |
건운 |
|
37대 |
선덕왕(善德王) |
김(金) |
5년 |
780~785 |
양상 |
|
38대 |
원성왕(元聖王) |
김(金) |
14년 |
785~799 |
경신 |
|
39대 |
소성왕(昭聖王) |
김(金) |
1년 |
799~800 |
준옹 |
|
40대 |
애장왕(哀莊王) |
김(金) |
9년 |
800~809 |
청명 |
|
41대 |
헌덕왕(憲德王) |
김(金) |
17년 |
809~826 |
언승 |
|
42대 |
흥덕왕(興德王) |
김(金) |
10년 |
826~836 |
수종 |
|
43대 |
희강왕(僖康王) |
김(金) |
2년 |
836~838 |
재륭 |
|
44대 |
민애왕(閔哀王) |
김(金) |
1년 |
838~839 |
명 |
|
45대 |
신무왕(神武王) |
김(金) |
0년 |
839~839 |
우징 |
|
46대 |
문성왕(文聖王) |
김(金) |
18년 |
839~857 |
경응 |
|
47대 |
헌안왕(憲安王) |
김(金) |
4년 |
857~861 |
의정 |
|
48대 |
경문왕(景文王) |
김(金) |
14년 |
861~875 |
응렴 |
|
49대 |
헌강왕(憲康王) |
김(金) |
11년 |
875~886 |
정 |
|
50대 |
정강왕(定康王) |
김(金) |
1년 |
886~887 |
황 |
|
51대 |
진성왕(眞聖王) |
김(金) |
10년 |
887~897 |
만 |
후삼국시대 |
52대 |
효공왕(孝恭王) |
김(金) |
15년 |
897~912 |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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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대 |
신덕왕(神德王) |
박(朴) |
5년 |
912~917 |
경휘 |
|
54대 |
경명왕(景明王) |
박(朴) |
7년 |
917~924 |
승영 |
왕건고려건국 |
55대 |
경애왕(景哀王) |
박(朴) |
3년 |
924~927 |
위응 |
발해멸망 |
56대 |
경순왕(敬順王) |
김(金) |
8년 |
927~935 |
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