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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과 연제부인
황원갑 <역사소설가>
얼레리 꼴레리!
임금님 거시기는 말만하다네!
너무 커서 짝도 없다네!
얼레리 꼴레리!
임금님은 거시기가 너무 커서요,
바짓가라리 세 개나 된다네!
얼레리 꼴레리!
임금님 거시기가 너무 커서요,
밤마다 대궐에서 곡소리가 난다네!
이것이 근래 서라벌 거리마다 골목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즐겨 부르는 최고의 유행가였다. 이젠 낮이건 밤이건 아무나 마구 불러대는 바람에 황궁의 담장 안까지 노랫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올 정도였다.
“어허, 무엄한지고! 요즘 귀신들은 뭐 잡아 묵고 사노? 저런 고얀 눔들은 안 잡아 묵고?”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은 임금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는 바람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품격도 없이 ‘왕 노릇 못해 먹겠다’느니, ‘쪽 팔려 미치겠다’느니 하는 따위의 임금이 쓰기에는 거시기한 천박한 말은 입 밖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속으로만 화를 삭이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죽어나는 것은 신하들, 특히 임금의 비밀을 속속들이 죄다 알고 있는 최측근들이었다. 이래서 예나 이제나 정계와 관계, 재계를 막론하고 높은 사람의 비밀을 많이 아는 측근은 여러 모로 매우 피곤한 법이다.
그러면 지증마립간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물건’이 비정상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사실이었다. 커도 보통 사내들보다 한두 배 정도나 크다면 비밀도 아니겠으나, 대왕의 그것은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만큼이나 웅장 무비했던 것이다.
언젠가 비서실장이 대왕의 고민을 듣고 나서 죽기를 각오하고 도대체 거시기의 길이가 얼마나 되기에 그렇게 고민하시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왕이 근시들을 물리치고 아랫도리를 벗는데 보니 바짓가랑이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다. 아니, 도대체 무슨 옷이 저 모양인가 하고 자세히 보다가 비서실장은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가운뎃다리가 들어가는 가랑이가 하나 더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왕이 바지를 내려서 자신의 것을 보여주었는데, 너무나 민망스러워서 차마 재보자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얼핏 보기에도 한 자 다섯 치, 즉 45센티미터는 되어보였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으랴.
참으로 고금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귀하게 장대한 ‘물건’이었다. 이처럼 돌연변이라고나 할 만큼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물건- 거시기를 달고 있으니 사이즈가 맞는 배필을 구할 수가 없었다.
대왕이 육촌형이던 전 임금 소지마립간이 죽어 그 뒤를 이어 즉위, 마침내 고대하고 고대하던 대궐의 주인이 된 뒤에 혹시 치수가 맞는 궁녀라도 있을까 하여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얼굴이 잘 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가리지 않고 밤마다 차례로 침전으로 불러들였지만 하나같이 아이고 나 죽네! 하는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엉금엉금 기어서 달아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궁녀들마다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두 다리 사이에 선혈이 낭자하여 나가자빠지니 결국 대왕의 거시기 문제가 동트는 나라 대신라왕국의 국가적 당면과제로 대두되었다.
모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은 대왕의 신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까지 어전회의의 정식 안건으로 올리기는 뭐하고 해서 지증마립간은 어느 날 신임하는 근신들만 내전으로 불러들여 이렇게 의논을 했다.
“느그들, 아니 경들은 무신 좋은 생각이 없노? 짐이 다소(?) 불편하게 큰 것을 달고 있는 까닭에 고민이 많지만, 이런 짐을 모시고 있는 경들의 마음도 그리 편치는 않을 끼구마? 다들 그렇제?”
의제가 비록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사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대하다면 중대하다고 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측근들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대왕이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하마(벌써) 신하들은 죄다 알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점점 퍼져나가니 하루 빨리 황후감을 찾아야 하지 않겠노? 느그들, 아니 경들은 당장 내일부터 두 명씩 조를 짜서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내 물건에 맞는 여자를 찾아보거fp이, 알겠노?”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네~이! 하는 대답을 남기고 퇴궐하려는데 대왕이 다시 부르더니 이런 지시를 덧붙였다.
“앞으로는 우리 신라도 임금을 국제규격에 맞게 대왕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거다. 옛날 박혁거세(朴赫居世) 시조 할아버지 때부터 불러오던 거서간이니 이사금이니 마립간이니 하는 칭호는 시대에 뒤떨어진 북방 유목민시대의 촌시러운 칭호 아니가 그 말이데이. 지금은 국제화시대, 세계화시대란 말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하마부터 성왕이니 명왕이니 대왕이니 안 카드나? 우리 신라도 이젠 세계화시대에 맞춰 힘차게, 멋지게 도약하고 웅비해야 하지 않겠나? 느그들 마카 잘 알아 들었제? 그럼 나가들 봐라, 내 치수에 맞는 신부감 구해오는 거 잊지 말고!”
그렇게 해서 이튿날 아침부터 대왕의 측근들은 팀을 짜서 서라벌 6부를 하나하나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대왕의 거대한 거시기에 꼭 들어맞을 거대한 ‘머시기’를 달고 있는 여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서라벌 주변을 샅샅이 뒤져나가던 특수임무대의 한 팀이 모량부에 이르렀을 때였다.
두 사람은 날씨도 후텁지근해서 좀 쉬었다 가기로 하고 마을 앞 냇가 나무그늘에 앉았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자니 근처에서 갑자기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게 갑자기 웬 개소리여?”
“개들이 싸우는 소리 아이가?”
“삼복이 가까워오니 촌눔들이 벌써부터 개를 잡는공?”
그래서 혹시 개를 잡으면 개장국이라도 한 그릇씩 얻어먹을까 하여 두 사람은 개 짖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개 두 마리가 뻥을 조금 보태서 북만큼 커다란 똥덩어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촌치의 양보도 없이 사납게 짖어대며 맹렬히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주변에는 모량부에 사는 마을아이 대여섯 명도 구경하고 있었다.
“히야! 자네 여태껏 살면서 저렇게 큰 똥덩거리 본 적 있노?”
“어데! 털 나고 오늘 처음이구마!”
두 사람이 마을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느그들 저 똥의 정체와 유래에 대해 아는 대로 진술해 보레이!”
“이히히히! 저 똥은예, 우리 마을 칸의 따님이 빨래하다가 숲속에 들어가서 몰래 싼 똥이라예! 히히히…”
“으흐흐! 세상에 저렇게 큰 똥덩거리 본 적이 있능교? 에헤헤헤…”
“히야, 이놈 시키들 거짓말 하는 것 좀 보소! 가시나가 숲속에 들어가서 몰래 똥 싼 걸 우찌 알았노? 느그들이 다 큰 가시나 궁디 훔쳐볼라꼬 몰래 따라가서 보지 않구서야….”
“몰래 봤건 말건 우리가 상관할 기 뭐고? 어쨌거나 인제서야 임금님 거시기 임자를 찾은 것 같으니 한 번 가서 실물을 보세나.”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즉시 그 마을 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문제의 그 똥 주인공을 불러보니 제발 다들 놀라서 기절하지 마시라! 키가 일곱 자 다섯 치, 2미터 25센티미터나 되는 거녀였다.
척 보기에 시집갈 적령기인 열다섯 살은 훨씬 넘고 스무 살도 조금 더 넘어보였는데, 아무래도 체구가 워낙 커서 여태까지 시집을 못 간 듯했다.
처녀의 성은 박씨라고 했다. 부모를 만나보니 딸자식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체격이 보통사람들보다는 훨씬 큰 편이었다.
모량부는 원래 손씨네 마을인데, 현재 그 마을의 칸, 즉 우두머리로 있는 처녀의 아비는 자신이 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의 후손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시조 임금의 후손이거나 말거나, 체구가 장대하거나 말거나 임금과 거시기 사이즈만 맞으면 그만이지! 두 사람은 바람같이 쏜살같이 대궐로 달려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신나게 대왕에게 보고했다.
알맞은 신부감을 발견했다는 근래 드물게, 아니 임금 자리를 차지한 뒤 처음으로 반가운 보고를 받은 지증왕은 즉각 자신의 전용 리무진인 황실 마차를 보내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자기만을 위한 천생연분인 박씨 처녀를 모시고 오게 하여 혼인식을 올리니 이 거녀가 바로 나중에 법흥왕(法興王)의 어머니가 되는 연제부인(延帝夫人:迎帝夫人)이다.
연제부인의 아비 모량부의 칸 박씨는 딸자식이 오로지 체구가 장대한 탓에 보통사람에게도 시집을 못가 비탄의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졸지에 국구, 즉 임금의 장인이 된 데다 각간이란 최고위 벼슬까지 얻게 되었으니, 참으로 사람 팔자 알 수 없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경우는 없다. 딸자식 체구가 장대한 덕분에 말단 지방자치단체의 일개 동장이나 이장에서 일약 중앙정부의 총리나 장관급으로 벼락출세한 사람을 봤는가?
그런데,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삼국유사>의 이 설화에서 한 가지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깨끗한 마무리를 위해 반드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증왕은 나이 64세에 즉위한 것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증왕이 나이 예순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지증왕이 즉위한 때는 서기 500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 500년 전에 환갑이 넘도록 살았으면 매우 장수한 편인데 장가도 들지 않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먼저 임금 소지마립간은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친척 가운데 가장 학식과 덕망과 인품이 빼어난 육촌아우 김지도로(金智度路)를 부군(副君), 또는 갈문왕(葛文王), 즉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책봉했던 것이다.
지도로는 지도로(至都盧), 지대로(智大路), 지철로(智哲路)라고도 나오는데, 이는 신라 말 이름을 한문으로 기록하다 보니 여러 가지 표기로 나뉜 것이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서는 지정마립간(智訂麻立干)이라고도 했다. 지증왕은 이 지도로왕 사후에 바쳐진 시호이다.
신라에서 사후에 존호를 바치는 것은 지증왕에서 비롯되었고, 그때까지 거서간이니 이사금이니 마립간이니 하던 왕호를 고구려나 백제 등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지증왕 때부터였다.
그리고, 지증왕이 즉위하기 전에 이미 장성한 아들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둔 유부남이란 사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유심히 분석해보면 알 수 있고, 또 <화랑세기>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소지왕 재위 시에 지도로의 장성한 아들 원종(原宗), 즉 뒷날의 법흥왕이 국공(國公)이란 이름을 내걸고 신라 중앙정계의 실력자로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둘째 아들 입종(立宗)은 비록 작은 아들로 태어나서 임금 자리에는 오르지 못 했지만, 형인 법흥왕의 딸 지소(智昭), 즉 친조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삼맥종(彡麥宗)이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곧 신라 최고의 영주로 꼽히는 진흥태왕(眞興太王)이다.
신라 황실은 근친혼이 매우 빈번한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황족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여 박․석․김가가 아닌 타성받이에게 대권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근친혼은 제17내 임금인 내물왕의 즉위를 계기로 석씨 왕조가 몰락하고,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김씨 왕조 설립 이후 더욱 두드러졌던 것이다.
그러면 지증왕의 장대한 거시기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마도 정통성이 다소 결여된 즉위에 대한 보완작업(?)으로 보인다. 즉, 적자도 서자도 아니고, 사촌도 아닌, 멀다면 먼 육촌형제로서 왕위를 이었기 때문에 새 임금은 ‘거시기’도 이렇게 크기 때문에 임금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후 장치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강한 놈이 왕 노릇을 하던 고대사회가 아닌가. 먼저 왕이 후사도 없이 죽었겠다, 그러지 않아도 후계자 자리를 굳혀놓았던 지증왕이 ‘물건’도 크고, 머리까지 금상첨화로 빼어나니 다른 놈들은 찍소리도 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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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18년 12월 6일 목요일
사랑은 보이지 않으나 그 힘은
태산을 움직이고 바닷물을 말린다.
사랑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고
사랑이 있으면 좌절도 없다.
사랑은 구원을 낳고
사랑은 희망을 낳고
사랑은 영원한 생명을 낳는다.
회원님들!
어젯밤에 몰래 눈이 왔엇네요
사방이 하얗습니다
눈이 와서 그런지 쌀쌀하지만
아침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오늘도 감기조심 하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