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비용 / 김도선미
장바구니를 또 깜빡했다. 마트 계산대 앞, 봉투 하시겠냐는 사장님의 물음과 동시에 현관 신발장 앞에 걸어둔 에코백이 떠올랐다. '저는 환경을 생각하는 수준 높은 사람이지만, 기억력이 나빠 슬퍼요.'라고 말하는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자책하는 말까지 덧붙이고 나서야 종량제 봉투를 달라고 했다. 대답 한 번 참 길다. 멍청비용! 조금만 주의했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인데,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우유를 마실 때 컵을 씻기 싫어서 입 안 대고 마시다가 얼굴에 들이 붓고, 공중 화장실에서 문 닫다가 손톱에 멍이 들고, 일기예보 안 보고 세차했다가 눈비 와서 다시 했던 일 등 사연이 풍년이다. 매일 반드시 채워야 할 정량이라도 있는 걸까? 어떻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지 놀랍다.
그동안 이 비용을 얼마나 많이 치렀는지 모른다. 적은 액수에서 많게는 큰 거(?) 한 장을 겁없이 써 버리기도 했다.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깝지 않은데, 마음을 내고 쏟아 부은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문득 생각나서 냅다 이불을 찬 적이 수십 번이다. 어떻게 하면 고통을 피할 수 있을까, 다른 지름길이 어디 없을까 하며 머리를 굴린 탓이다. 튀는 똥 피하려다가 똥통에 빠진 꼴이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서문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뜨기인 나는 곱게 말하면 몽상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돌아이'다. 사회에 나가 보니 친구들은 시행착오 없이 야무지게 잘 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나만 방향을 못 잡고 이쪽저쪽 기웃거렸다. 어릴 때부터 이상적인 구도자를 동경하고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삶의 정답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종교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믿음 좀 달라고 새벽기도에 나가고, 성당과 절에도 가고, 무속인 친구와도 한동안 어울렸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자기 확신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런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다. 그러기를 여러 해, 어느새 믿음은커녕 나만의 논리로 중무장한 탕아가 되어 있었다. 종교는 내가 도저히 입을 수 없는 맞지 않은 옷이었다. 정신이 맑지 않아서인지 몸도 탁하게 느껴졌다. 일단 운동을 해서 몸이라도 건강해지자고 마음먹었다.
그 운동 센터는 평소에 지나다니면서 뭐 하는 데인가 호기심을 자극한 곳이었다.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다. 단전호흡과 기체조, 브레인명상을 하는 곳이란다. 며칠 다녀보고 결정해도 된다고 했다. 오전에 시간도 있고 집도 가깝고, 무엇보다 궁금해서 일단 가보았다. 첫날 그곳에 들어섰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한약방과 절간에서 맡아 본 냄새가 뒤섞인 향이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입구 바로 앞에는 길쭉한 나무로 된 좌식 탁자가 있었고,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노란 장판이 넓게 깔려 있는 곳이 나왔다. 넓은 양쪽 벽면은 온통 거울로 되어 있었고, 문 옆에 낡은 탈의실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안내에 따라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매트 위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왔다. 점잖게 인사를 하고 각자 준비 운동을 했다. 지도자(센터장)가 근사한 개량 한복을 입고 들어 왔다. 한 명 한 명 친절하게 몸 상태에 맞춰 지도해 주었다. 몸풀기-본 운동-마무리 순으로 진행되었고, 서 있는 상태로 시작해서 누워 있는 동작으로 끝이 났다. 마지막엔 거의 잠들 뻔 했다. 그간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운동을 마친 후엔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족스러웠다. 그날 바로 한 달 치 수련비를 냈다.
기체조의 종류는 다양했다.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단전을 두 손바닥으로 두드리기, 바디 스캔을 하면서 스트레칭하기, 반가부좌를 틀고 ‘뇌파진동’이라고 읊조리며 도리도리 머리 흔들기, 신나는 음악에 맞춰 미친 듯이 춤추며 소리 지르기, 무용하듯 양팔을 나풀거리며 기 느끼기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플랭크 자세, 기마 자세, 하늘 보고 누워서 양다리를 올린 후 덜덜 털기, 눕거나 앉아서 발날 부딪치기 등도 했다. 처음엔 낯설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몸에 좋은 수련이라고 하니 의심 없이 따라 했다. 시작한 지 며칠이 안 됐을 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죽을 맛이었다. 끙끙 앓는 소리만 내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만 두고 싶었지만 도우(회원)들이 옆에서 그동안 몸이 안 좋아 기가 막혀있고 근육도 굳어서 그런 거라며, 한 달만 빠지지 말고 다녀보라고 했다. 또 소질이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하는 편이라 온 정신을 거기에 쏟았다.
곧 효과가 나타났다. 본전이 아깝지 않게 다닌 덕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1등으로 출석 도장을 찍었다. 주말에도 나갔다. 기치료를 해준다고 했다. 바닥에 누워서 긴장을 풀고 몸에 집중했다. 기를 모아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주었다. 특히 배 위에 떠 있는 손을 따라 에너지가 움직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신기했다. 나도 열심히 배워서 아픈 아빠에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열정이 지나쳤는지, 갓 한 달이 되었을 때 지도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평생 수련을 하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했다. 도시 속에서 사람들을 치유하고 치유 받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는 비전 있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한테서 밝은 오라(아우라)가 강하게 느껴진다며, 순수한 영혼이라고 했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었다. 평소에도 귀가 얇은 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학원 일을 그만두었다.
곧이어 지도자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일단 평생회원이 돼야 했다. 할인 받으려고 400여만 원을 일시불로 냈다. 뒤이어 1박 2일 20만 원 캠프를 시작으로 광주, 대구, 천안, 서울, 강원도 등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프로그램과 행사에 참가했다. 강사로는 유명한 대학의 교수, 개천절 축제에는 미모의 아나운서, 가수 등 빛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처럼 지도자를 꿈꾸는 청춘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다. 따로 또 같이 한마음으로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자고 다짐했다. 단식 체험, 정신 개조 캠프 덕분에 몸과 마음이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땅 위를 걷는 게 아니라 에너지 가득한 공 속에 들어가 떠다니는 느낌으로, 거의 날아 다녔다.
석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300만 원이 드는 3박 4일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은 그동안의 것들과 좀 달랐다. 마지막 날 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이 운동법의 창시자 일명 스승님,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잠시 후 다들 울부짖으며 스승님을 불러댔다. 통성기도, 황홀 상태에서 성령에 의해 뱉어내 진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인 방언 등이 떠올랐다. 이상해 보였지만 많이 존경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이후로 예비 지도자 필수 훈련에 깊이 들어 가게 되면서 더이상 내가 생각하던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실상을 보니 무슨 비밀이 많은지 입조심을 시키며, 억지 믿음을 강요하고 엉터리 다단계로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게다가 사람을 우상화까지 했다. 충격이었다. 종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사이비(似而非) 교주가 이끄는 단체였다.
‘그들은 꼬집어 비난할 구석이 없으며 언뜻 보기에는 청렴결백한 군자(君子)와 같으나, 실인즉 오직 세속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감복케 하고, 칭찬을 받으며, 자신도 만족한 삶을 누리는 것 뿐 결코 성인(聖人)의 도를 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가 제자들에게 공자 왈 하며 사이비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내가 나 이외의 것과 어떤 상황과 관계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운동만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처럼 불안정하고 나약해 그럴싸한 사상에 굶주린 사람이라면, 그런 개미지옥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든 흑역사 중 제일 창피한 사건이다. 더욱이 내가 갑자기 똑똑해져서 발을 뺀 게 아니었다. 언니가 그럴 줄 몰랐다며 실망스럽다고 화를 내는 동생, 할 말을 잃은 채 떠나간 남자친구, 비전은 무슨 얼어 죽을 비전이냐며 비웃는 친구, 네가 얼마나 힘들면 그런 데 빠지냐며 울먹이는 친구, 나도 힘든데 너까지 정신 못 차리고 뭐 하는 짓이냐며 호통치는 친구들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함께 아파한 그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맙다. 행복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보통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 뒤로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또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더라도 절망을 맛볼 수도 있다는 것, 절망이라고 여긴 그 순간이 다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겪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들을 안심시켜 주고 싶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진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살아 내야 할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만이 눈앞에 있었다. 사는 게 거기서 거기고, 돌고 돌아도 제자리라면 신명나게 돌아 볼 생각이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08배와 명상을 한다. 7개월에 접어들었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다.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늘 깨어있어야 한다. 깜빡 잠이라도 들면 나와 내 주변이 피곤해진다. 또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비전 보드’를 만들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선명한 사진으로 꾸며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두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하루에 적어도 1,000번 이상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을 때도 있지만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문제 없다.
청소를 하다가 식탁 밑에서 신랑의 새 명함을 주웠다. 해남군 마스코트인 ‘땅끝이와 희망이'가 빙그레 웃고 있다.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때마침 우리 가족의 앞날을 의미하는 것 같아 설렌다. 3월부터 땅끝에서 아이들을 만나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짜릿함을 맛볼 생각을 하니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린다. 물론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또 멍청비용 내러 가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도 된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해보았다.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은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르고 척박한 곳이 아니다. 더는 끝이 아닌 큰 바다의 기운을 담은 처음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가볍지 않은 내 인생도 그렇게 뒤집어 다시 희망을 시작해야겠다. 가장 젊은 오늘,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매 순간을 즐겨야지!
첫댓글 멍청비용을 저도 많이 지불하기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가장 젊은 오늘,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매 순간을 즐길테다"
저 역시 주문을 걸어봅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도 어여 올려 주셔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흑역사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멍청비용 많이 안들게 도와준 지인들이 많았네요.
하하.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의 이번 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