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력 / 최종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시골 큰형님 댁에서 명절을 쇴다. 오랜 기간 큰형수가 주도적으로 준비를 했지만, 세상을 떠난 후엔 아내 몫이었다. 작은형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기에 비켜나 있다. 장 보는 데 따라가서 짐 들어 주고, 오갈 때 운전하는 것은 내 몫이다. 명절을 앞두고 부산하게 차례 음식 장만하는 것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놀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설거지라도 해주고 싶으나 마음뿐이다. 아들이나 조카들이 있으나 시키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내가 나서기에도 내키지 않는다. 명절이 지나면 어려운 숙제를 해낸 듯이 안도감이 든다.
문제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간편하게 준비하면 좋으련만 너무 복잡하다. 특히, 생선과 전 그리고 떡이 그렇다. 생선은 큰형님이 서대와 덕자(큰 병어), 죽상어를 빼놓지 않는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가장 큰 것을 사 온다. 솥에 넣고 찔 때 모양이 흐트러지지 말라고 긴 대꼬챙이를 위와 아래로 끼운다. 서대는 너무 길어 넣기도 힘들다. 조심스럽게 욱여넣어야 겨우 들어간다. 명절 때마다 좀 작은 것을 사라고 해도 그저 웃고 만다. 제사상에는 무조건 큰 것을 올려야 한단다. 상차림을 보면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맛이 없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것인데 차라리 맛있는 굴비로 준비하면 어떠냐고 몇 번이고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명태, 고기, 소시지전 등도 문제다. 종류도 여러 가지이지만 너무 많이 부친다. 널따란 채반에 수북하다. 기름 냄새 맡으며 긴 시간 동안 수고하는 것을 보면서 좀 적게 준비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아내에게 말해도 큰형님과 마찬가지다. 8남매에다 딸린 식구까지 올 것으로 예상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매번 많이 남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다. 먹을 게 귀하여 명절에나 잘 먹어 보자는 옛날도 아니고, 맛있고 입에 단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차례 음식은 한 끼면 족하지 않는가! 떡은 집에 갈 때 싸줄 것까지 계산해서 한다. 하지만 이런 음식은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맛이 덜할뿐더러 공간만 차지한다. 가지고 와 봤자 잘 먹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주는 대로 가지고 왔으나 언제부터인가 거절했다.
음식 준비도 그렇지만 대식구가 머무는 데도 비좁기 그지없다. 삼 형제가 낳은 자녀 일곱에, 큰 조카가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까지 한데 뒤섞여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다른 형제간은 다 객지에 나가 있어 큰형님 집의 방 세 칸이 전부다. 남자, 여자, 아이들이 각각 한 칸씩 차지하여 우글우글 옹색하게 잔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누나와 여동생 가족, 조카사위까지 들이닥친다. 한쪽에서는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고, 다른 쪽에서는 술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안방에서는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열중한다. 이곳저곳 사람이 많아서 엉덩이 붙이기도 힘들다. 술을 좋아하면 주거니 받거니 목소리 높여가며 한데 어울릴 수도 있으련만 이도 아니어서 그럴 땐 어서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라도 빠져나오면 좀 낫겠다 싶어 처가에 간다는 핑계로 서둘러 나오면 속이 후련해진다.
조카들이 결혼하고 아이가 늘어가자 큰형님이 이제는 명절을 각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대식구 음식 준비도 힘들고, 장소도 비좁아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적절한 제안이다 싶었다. 묵묵히 대가족 수발을 해내던 큰형수가 안 계신 것도 큰 요인 중의 하나다.
이제는 서울에서 조카가 내려오지 않고 큰형님이 올라가신다. 아이들이 아직 결혼 전인 나는 간단하게 지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내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아서 좋다. 누나들도 모두 손주가 있고, 일흔이 넘거나 가까운 나이라서 굳이 부모 안 계시는 친정까지 이동할 이유는 없으리라. 성묘는 아들 삼 형제를 주축으로 사전에 날을 잡아 간단하게 하면 그만이다.
이번 추석은 그 어느 때보다 단출하게 지냈다. 아내는 명절 분위기를 내려는지 나물류 세 가지는 꼭 해야 한다며 준비했다. 전도 몇 가지 부쳤다. 차례상 구색을 갖추려는지 배와 감을 기어이 사서 상을 차린다. 차례상을 보니 초라하지는 않았다. “차례는 설이나 추석 명절 낮에 간단하게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데, 우리 집은 지내야 할 제사가 없지만 이만큼 사는 것도 조상의 은덕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자.”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장장 5일이나 되는 긴 연휴지만 코로나19로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곳도 마땅치 않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 복잡하고 정신없던 예전의 명절이 그립기까지 했다. 그때는 아득했다. 두 아들 녀석이 장가들어 손주라도 생기면 그때나 벗어나려나 싶었다. 생각보다 그 시간은 빨리 왔다. 이제는 다 지나간 옛일이다. 추억은 이처럼 복잡한 것도 단순화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마력이 있나 보다.
첫댓글 사모님 고생 많으셨네요. 어머님 살아계셔서 별 어려움 없이 명절을 보내고 있으나 나중에 제 일이 될 것이라 여기면 미리 겁이 납니다.
대가족 챙기느라 큰형수님이 고생하셨겠네요.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시끌벅적하던 옛 명절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큰형수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여러 사람이 행복하려면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가 있어야겠지요.
묵묵히 그 일을 해 낸 큰형수님, 그리고 이어 받아서 한 사모님이 대단하시네요.
우리 세대가 끝나면 이런 시끌벅적한 명절도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