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조각 전시회 마스크 전 참관기
제34회 소조각(小彫刻) 전시회가 2022년 8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무이예술관(운영대표 金權鍾)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들로 구성된 소조각회가 주관하며 이 회가 창립되던 1987년에 제1회 전시회를 개최한 후 올해로 34회를 맞이했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마스크 전(Mask 展)이다. 2년 넘게 활개 치는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되어 버린 마스크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놈 때문에 지금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마스크에 패션이 담기니까 색깔도, 모양도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코로나 이전 획일적이던 마스크에 비하면 일대 변혁이다. 이제 마스크는 언제 어디서나 착용해도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은 의상이 되었다. 소조각회는 마스크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여러 사색(思索)을 작품에 담아서 삶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마스크전’을 기획했다. 개막식은 관장의 인사말과 소조각회 회장(차유미 작가)이 전시회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예술관에서 마련한 다과를 나누며 모두는 전시회 발전을 기원하는 덕담으로 분위기는 화기애애(和氣靄靄)했다. 이 개막식의 백미는 작가들이 직접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설이다. 작가의 해설은 문외한들에게 그저 잘 만들어진 조각품이 품고 있는 메시지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작품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가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설명 들은 후 관람객들은 보는 눈이 그러했다. 작품들은 작가들의 입을 통하여 마스크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외치고 있었다.
차유미 작가의 ‘그림자’는 30개의 입방체를 설치하여 빛을 비추면서 생기는 그림자를 연출한 작품이다. 명암(明暗)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빛이 비치면 드러나는 실체(明) 그 이면에는 그림자(暗)가 존재한다. 그림자는 사물을 그대로 형상화하지만 진짜는 아니다. 거짓이 진짜를 흉내 내지만 진짜가 아니듯이. 마스크 시대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산다. 이제 그 감춰진 그림자가 진리인 줄로 착각한다. 은익(隱匿)의 삶이 일상화된 마스크 시대라도 그림자를 진짜로 여기지 않고 밝은 빛 앞에서 진리를 당당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원경 작가의 ‘술래’는 눈을 가리는 왼손바닥에 두 눈이 조각되어 있다. 술래는 두 눈을 가린 사람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 술래의 임무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두 눈을 가린 손은 타인들에게는 못 보게 하는 손 등이지만 술래의 손바닥에는 눈이 있어야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감추어도 모든 것을 보는 손바닥의 두 눈처럼 마스크는 모든 것을 가려도 못 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결국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모든 범죄자는 완전범죄의 망상을 버려야 한다.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이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역대하 16:9).
박성철 작가의 ‘Style-加加’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알루미늄과 레진(resin)으로 작품화하였다. 알루미늄을 머리털처럼 가늘고 길게 엮어서 큰 트레머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멋진 머릿결 미인의 얼굴은 민 판이다. 큰 트레머리에 비해 형상 없는 미인의 얼굴이다. 부풀려진 욕망과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외적 미에 대한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황혜신 작가의 ‘I will protect you’(내가 너를 지켜줄 거야)는 누군가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주는 모습을 조각했다. 그 얼굴을 감싸 보호하는 두 손은 동시에 나를 억압하는 손이다. 이 작품은 보호의 미명 하에 억압하는 권력자의 손이기도 하다. 보호용 마스크가 진정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역설이다. 얼굴 인식을 어렵게 하는 마스크 때문에 사회성은 물론 지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개인 격리 보호라는 미명 하에 착용한 마스크는 또 다른 폭력성을 담고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러스로부터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착용한 마스크가 쓰레기를 생산하여 더럽혀지고 있는 마스크 시대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이원석 작가의 ‘TARGET’는 한 사람이 손수건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목표물(타깃)을 향하여 새총 고무줄을 힘껏 당기는 모양이다. 손수건 마스크는 분쟁의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권력 투쟁, 계급투쟁, 바이러스와의 전쟁의 현장에서 사용한다.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고 새총 고무줄을 힘차게 당기는 그가 결국 또 누군가의 타깃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마스크는 단절을 의미한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단절의 수단은 코로나 시대에 코로나와의 단절을 위하여 재활용되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다. 마스크를 착용한 즉시 자기 보호를 위하여 이웃과의 단절이 자연스러워졌다. 한동안 그 누구와도 연결을 끊고 살았다. 제대로 단절된 세상이 된 듯하다. 그런데 코로나의 장기간 거주로 인해 단절의 마스크는 연결의 도구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제 마스크 없이는 누구와도 연결하기 꺼리는 시대로의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만나야 안전하고 편해졌다. 마스크 없이 그 누구와 만나는 일은 자기를 온갖 질병에 노출하는 자해 행위가 되었다. 단절의 도구가 마음 편히 이웃과의 소통할 수 있는 연결의 고리로 되살아났다. 대신 불필요한 말이 정리되었고 헤픈 언어가 정돈되었다. 말로 인해 받아야 할 상처와 아픔은 최소화되었고 시의적절하게 해야 할 말들이 예쁘게 재탄생되었다. 코로나가 상존하는 한 마스크는 필수적인 생활 품목이고, 마스크를 놓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명랑한 천국을 꿈꿔도 될 듯하다. 마스크의 역설이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야고보서 1:19).
Mask 전 팜플렛
황혜신 작가의 I'll protect you
양형규 작가의 꿈꾸는 사람들3
박성철 작가의 Style - 加加
소조각전 출품한 작가들
개막식 마치고
양형규의 꿈꾸는 사람들3
박성철 작가의 Style - 加加
조윤환 작가의 수박?
황혜신 작가의 I'll protect you
차유미 작가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