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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통치와 하나님의 사전 준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 3:20)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을 엄히 경계하고 그들이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삼 8:9)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눅 3:31)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운 사사가 통치를 했습니다(삿 2:16). 하나님은 독립한 이스라엘에서 자신이 군주(왕)인 신정정치, 행정은 지파별 사사가 관할하는 자방자치제도를 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군주제도가 가진 폐단을 미리 알고 있어서 왕정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군주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왕들이 통치할 시대를 대비하여 몇 가지 준비를 하십니다.
첫째, 백성들이 군주제도를 하려고 하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왕의 제도를 알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왕들이 백성들을 섬기기보다 백성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제도라고 말합니다(삼상 8:10~22). 군주제도는 왕이 백성들의 자녀를 불러 군병으로 삼고, 자기들의 추수를 하게 하며, 딸들은 요리하는 자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왕들은 밭의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주며, 백성들을 노예로 삼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왕을 원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날에 너희가 택한 왕으로 인하여 부르짖되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리라(삼상 8:18)”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군주제도가 가지는 폐단을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렸습니다.
하나님은 왕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억압과 수탈로 나쁜 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며, 군주제도가 가지는 정치적 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정시대는 왕과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겨서 (왕정이) 실패했다”라고 종교적 이유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왕들이 왜 이방 신을 섬기는지, 군주제도가 가지는 폐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사무엘상서를 보면, 8장 전체가 사사를 대신하여 도입될 군주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왕들이 백성을 섬기기보다 군림하고, 수탈하는 것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경고한 바와 같이 왕들이 백성들을 섬기기지 않고 자기들의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경우, 백성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군주제도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이 지키라고 했던 여호와의 계명을 따를 수 있었는지, 희년법은 왜 지키지 않았는지 살펴 가며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왕정시대는 왕과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겨서 실패했다는 생각만으로 성경을 접해 오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활 문제를 신앙 문제로만 축소하거나 편향적으로 보아 왔다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왕정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둘로 나눕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조가 들어서자 왕위를 물려받을 솔로몬 계보와는 별개로 나단 계보를 세웁니다. 그래서 솔로몬 계보는 왕들의 계보인 마태복음 족보를 잇게 하고, 나단 계보는 사가의 계보인 누가복음 족보를 잇게 했습니다. 구약시대는 족보가 분리되어 복수의 계보로 이어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누가복음 족보를 통하여 비로소 왕이 아닌 사가의 계보가 별개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왕이 되어 나라를 통일한 다윗의 혈통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족장시대는 족장들, 왕조시대는 왕들의 계보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왕정시대는 왕들의 역사를 중시하고, 그들의 행적을 통해서만 시대를 읽고 생각하려고 하는 관점을 가집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식이 되게 할 수 있다(눅 3: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일을 행하라"라고 합니다(요 8:39). 이것은 성경의 구속사는 역사의 중심축이 겉으로 드러나는 족장들, 왕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었다는 뜻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왕정시대에 앞서 사무엘을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군주제도보다 먼저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삼상 3:19,20). 사무엘은 신분이 특이합니다. 사무엘은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 지파의 출신으로, 일찍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제사 업무를 배웠고, 엘리가 죽은 후 제사장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는 다스리는 사사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사무엘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고, 전해주는 선견자를 말합니다(삼상 9:9).
선지자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백성들이 군주제도를 원하자, 사무엘은 하나님께 물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지자가 하는 주요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군주제도가 들어서기 전에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선지자를 먼저 세웁니다. 선지자는 정치를 하는 왕도 아니고, 종교 업무를 맡은 제사장도 아닌 백성들의 지도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왕도 아닌, 제사장도 아닌 선지자를 먼저 세운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선지자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이처럼 왕정시대는 왕과 선지자, 그리고 족보에서 솔로몬 계보와 나단 계보를 나누어서 나라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왕정시대는 여호와와 이방 신,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오므리)의 율례, 그리고 생활 실무에서 희년법과 바알의 법을 대비시켜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고, 누가 계명을 어겨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지를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솔로몬의 어리석음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 11:11)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는 시조인 라합과 살몬(살마) 이후 300년간 약 5대의 족보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의 장자권자로 족보를 이어가야 할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이주하였다가 두 아들까지 모두 잃고 멸문을 당했습니다. 이 계보를 이방 여성, 기생 신분인 라합의 직계 후손, 보아스가 룻에게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로 족보를 회복합니다. 이렇게 회복한 족보를 따라서 다윗이 왕이 되어 나라를 통일하고, 다윗 왕국이 탄생합니다.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짓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통일 왕국과 아들 솔로몬의 성전 완공으로 전성기를 맞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솔로몬의 지혜는 천하의 열왕보다 컸었고, 세계 열방들이 이스라엘을 부러워했습니다(왕상 10:23,24).
그러나 그토록 전성기를 맞은 다읫의 통일 왕국과 솔로몬의 치적도 여기서 그칩니다. 솔로몬이 왕궁을 짓고 성전을 완성하자 이방 여인을 축첩으로 들이기 시작합니다(왕상 11:1). 솔로몬은 후궁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이었습니다. 이 후궁과 첩들을 따라서 이방 신들이 들어옵니다. 이때 이방 신들이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 암몬의 밀곰, 모압의 그모스 신 등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과 같지 않고, 후궁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을 좇았습니다(왕상 11:4~8). 여기에 솔로몬은 성전과 왕궁을 짓느라고 백성들에게 노역을 시키고, 세금을 거두어서(대하 9:13) 민심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솔로몬 통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이 솔로몬의 신복이었던 에브라임 지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입니다(왕상 1:26). 솔로몬이 이를 알고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으나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솔로몬이 죽은 후 돌아와서 북쪽의 열 지파와 규합하여 북이스라엘을 세웁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되기 전에 먼저 르호보암에게 노역과 멍에(세금)를 가볍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라나 르호보암은 거절합니다. 그만큼 솔로몬의 통치는 왕궁과 성전 건축으로 백성들의 부담이 무거웠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윗의 통일 왕국은 2대에서 끝이 나고 북쪽은 여로보암이 왕이 된 이스라엘, 남쪽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된 유다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이방 신을 섬기고, 여호와의 율례를 어겼으므로 이에 대한 징계로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게 했습니다(왕상 11:9~13, 31~33). 이처럼 솔로몬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며, 성전을 짓고, 지혜도 출중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지를 못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방 신과 제도를 받아드렸고, 백성들을 노역자로 삼아서 원성을 듣고, 다윗 왕가의 족보를 더럽히기 시작합니다.
남쪽 유다 지파와 북쪽 요셉 지파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수 18:5)
솔로몬이 보인 약점으로 나라가 나뉘어져서 이스라엘 북쪽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도 왕이 되어서는 바로 약점을 보입니다.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요셉의 차남이었던 에브라임은 할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직접 장자권을 물려받은 자입니다(창 48:20, 호 13:1).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토지를 분배한 지도자,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의 10대손입니다(대상 7:27). 그러므로 이스라엘 전체에서 왕이 난 여로보암이 소속된 에브라임 지파와 그 아버지 요셉 족속에 대한 족보와 기업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형 므낫세 지파 포함)는 토지분배에서 장자권자인 유대 지파와 함께 다른 일곱 지파보다 토지를 먼저 분배받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토지분배에 우선권이 있었습니다(수 16:4). 위치도 이스라엘 중심부인 요충지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원래 요셉의 아들이므로 다른 지파와 동급으로 보려면, 야곱의 12 형제와 동급인 하나의 요셉 지파 또는 요셉 족속으로 묶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기업을 합치면, 요셉 지파의 영토는 북쪽의 다른 5개 지파(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아셀, 단)보다도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합니다. 가나안 진입 당시 20세 이상 장정들만 계수한 인구수는 에브라임 지파가 3만 2천 500명, 므낫세 지파가 5만 2천 700명이었습니다(민 26:34,37).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하나의 지파인 요셉 족속이므로, 요셉 지파의 총 인구수는 8만 5천 200명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총 인구수는 60만 천 730명이므로 인구 비례로 에브라임 지파는 5.4%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8.7%이므로 두 지파를 합한 요셉 지파의 총 인구 비율은 14.1%입니다. 두 지파는 인구 비례로 보면 15% 미만이지만, 분배받은 토지 면적은 북쪽의 다른 5개 지파보다 넓습니다. 북쪽 5개 지파 인구수는 28만 8천 명, 비율로는 47.9%입니다
한편, 야곱의 장자권 계승자 유다 지파의 인구수는 7만 4천 600명, 비율은 12.7%입니다. 유다 지파는 토지분배에서 우선권이 있었고, 남쪽 지역 요충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지역을 차지합니다.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면적은 너무 넓어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지역 안에 재분배를 받게 됩니다(수 19:9).
이렇게 인구수로 두 지파를 비교하는 것은 요셉 후손이 북쪽 지역을, 유다 지파는 남쪽 지역을 분배를 받아서 분배의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수 18:5). 그리고 두 지파는 분배받은 기업이 다른 지파에 비교하여 유난히 많다는 것입니다.
토지를 분배하는 방법은 제비뽑기이었습니다(민 26:54,55, 수 18:8). 제비뽑기는 사람이 결정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안은 그 선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경우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비를 뽑아서 분배받은 기업의 면적이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가 다른 지파에 비하여 유달리 넓습니다. 아마도 토지분배에서 지파별 분배와 지파 내에서의 가족별 분배는 그 분배 방식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지파 내에서의 가족별 분배는 가족수에 비례하거나 아파트 분양권처럼 제비뽑기로 했을 것입니다(미 26:54,55).
註)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형제이므로 요셉 지파의 이름으로 한 제비뽑기로 먼저 공동분배를 받고, 분배 받은 토지를 다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나누어 분배되었다(수 16:1~4, 17:14,17). 그리고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가 분배를 마친 후에 일곱 지파가 후순위로 분배되었다(수 18:2).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분배는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가 정복한 토지를 먼저 남쪽과 북쪽으로 양분하여 제비뽑기로 분배를 한 다음, 일곱 지파는 그 나머지 미정복 지역을 분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파별 분배된 토지의 면적 비교는 12 지파 중에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게 분배된 토지가 월등하게 많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불공평한 분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토지분배에서 그렇게 주권적으로 역사를 하셨습니다. 이들 두 지파는 가나안 땅 진입 당시부터 다른 지파들과는 달랐습니다. 유다 지파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는 다른 지파 대표들이 반대해도 이에 동요되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민 14:38). 또 가나안 땅 진입에도 갈렙과 여호수아는 앞장을 서서 정복을 했습니다(신 1:36,37). 그래서 두 지파는 분배받은 기업이 인구수에 비례하여 유달리 많습니다. 하나님이 제비뽑기에서 이들 두 지파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내린 축복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합니다(창 49:8, 24~26).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 그 기업은 상급으로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같은 믿음으로 생활하고 있고, 함께 움직이고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되면 그에 합당한 상급을 주시되, 그 상급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정도를 따라 각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상급은 사람의 노력이나 업적에 비례한 것이 아니고, 믿음과 순종에 따른(비례한) 보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예수님이 보여준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각자의 달란트만큼 일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맡기신 일의 결과를 따라 그에 합당한 상급으로 돌려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 달란트를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서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에 게으르면 있는 것마저 빼앗길 수가 있습니다(마 25:28~30).
역대기 족보로 보는 에브라임 지파와 북이스라엘
에브라임의 아들은 수델라요 그의 아들은 베렛이요...(대상 7:20)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대상 7:20)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족속의 장자권자로 요셉 족속을 대표합니다. 유다 지파와 요셉 족속은 가나안 토지분배에서 우선권이 있었고, 이스라엘 영토 전체에서 중심 지역 요충지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했습니다. 유다는 시므온 지파를 제외하면 남쪽 지역을 모두 차지합니다. 유다 지파는 12 지파 중 장자권의 계보를을 잇는 가계이고, 요셉 족속은 두 몫의 상속권을 가져서 경제적 장자권자의 가계입니다(대상 5:1,2). 곧 이스라엘 사회에서 유다 지파와 요셉 족속은 그만큼 다른 지파와 달리 영향력이 크다는 뜻입니다. 이런 혈통적, 지리적 여건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세속화될 경우 나라가 분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북쪽 지역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 7년 6개월을 다스렸습니다. 북쪽 11 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했습니다(삼하 2:10). 그러다 다윗의 뛰어난 지도력으로 통일 왕국의 대업을 이룹니다. 그러나 나라는 아들 솔로몬에서 이방 신을 섬기고, 민심을 잃어서 흔들렸습니다. 손자 르호보암은 이러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왕권만을 강화하려고 들다가 나라는 남북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애굽 종살이 시기에는 장자권자인 유다 지파보다 요셉 지파가 한 시대를 주도했습니다. 횃불언약 4대 400년 역사에서 유다 지파는 유다가 아들 둘은 후손도 없이 죽어서 족보가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고, 종살이 시대는 5대 이상 족보가 끊겨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기근에 처한 유다 지파와 야곱의 일 가족 모두를 구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 종살이에도 에브라임 지파는 한 대도 끊어지지 않고 10대가 이어옵니다(대상 7:20~27). 요셉의 10대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기업을 분배합니다. 이처럼 애굽 종살이 400년 기간의 역사,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그 중심축은 요셉과 그 지파의 족속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만큼 요셉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큰 쓰임을 받았고, 그에 따른 상급으로 자손과 기업도 후하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이토록 큰 쓰임과 복을 받은 요셉 족속들도 여호수아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먼저 역대기 족보를 보면 유다 지파는 애굽 종살이 시대와 사사시대에 장기간 족보가 끊어지는 수모를 당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멸족하지는 않고 어렵게 어렵게 계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에서 유다 지파의 계보는 포로기 초기의 스룹바벨과 그 후손이 6대손까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족보에서 요셉 족속의 대표인 에브라임 지파는 계보가 여호수아에서 끝이 납니다. 400년 역사를 이어온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를 마지막으로 계보가 그칩니다. 유다 지파는 사사시대, 왕조시대, 포로기 시대를 이어오고 있지만, 요셉 족속 에브라임 지파는 사사시대 초기, 여호수아에서 그칩니다.
여호수아의 후손은? 여로보암의 아버지 느밧은 누구?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왕상 11:26)
북이스라엘에서 왕이 된 사람은 느밧의 아들인 여로보암입니다. 그는 요셉과 여호수아가 직계 조상으로 있는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과 여호수아에서 여로보암으로 이지어지는 족보의 계보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상합니다.
족보로 보면 애굽 종살이 400년간 전성기를 이룬 요셉 족속이 역대기 족보에서 사사시대부터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후손이 없었을까요? 후손이 있음에도 기록을 하지 않았나요? 하나님은 그토록 충성을 다 한 여호수아에게 자녀를 주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여호수아가 독신으로 살았을까요? 이에 대해 성경은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에 언급이 없으므로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상징성 때문에 자녀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요셉, 보아스, 사무엘 등을 보면, 모두 자녀들이 있었으므로 여호수아만 자녀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독신으로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기 위해 나실인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후손들은 특별하게 간주하여 그 이름을 감추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셉의 장자권 계승자인 에브라임 지파가 살아온 왕정시대의 삶에서 이런 추정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들의 선조인 요셉이나 여호수아에 비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그 이후 너무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후에 살펴보게 될 에브라임 지파와 북이스라엘의 왕조가 이어가는 비극의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처럼 왕정의 초기부터 부끄러운 역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부끄러운 북이스라엘의 역사와 직접 관련되고 있는 요셉과 여호수아의 후손들을 미리 계보에서 제외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판단이 될지는 몰라도 역대기 족보에서 요셉과 여호수아의 후손은 소개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느밧의 아들과 여로보암과 에브라임 지파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왕상 12:25~28)...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왕상 13:34)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에 의해서 나라가 분열되어도 제사는 남과 북이 합쳐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왕이 되어 25년을 다스리고, 그 아들 나답에서 그칩니다. 후손들이 바아사의 모반으로 인하여 모두 죽어서 멸족하고 말았습니다(왕상 15:28,29).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에서 왕이었지만, 백성들이 남쪽 유다로 기울어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북쪽에 산당을 짓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서 자기들이 세운 제단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장도 레위인 아닌 사적인 제사장을 임명하고, 7월 절기도 8월 절기를 바꾸어 지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제사법과 계명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의 왕조를 아들 나답 대에서 완전히 끊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약점으로 인하여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세운 것은 인정을 했습니다(왕상 12:15).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율례를 어기는 통치를 했다가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그 뒤를 잇는 왕들이 연이어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왕들에게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언급하며, 그 죄의 대가를 감당하게 하십니다.
오므리와 아합의 집으로 바알 신이 들어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왕상 16:30,31)
<북이스라엘의 왕> : 여로보암(22년) --> 나답(2년) --> 바아사(24년) --> 엘라(2년) --> 시므리(7일) --> 오므리(12년) --> 아합(22년)
북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지파인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그 아들 나답을 이어서 이어 바아사가 모반으로 왕이 되어 24년을 통치합니다. 바아사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노엽게 했습니다(왕상 16:2).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2년을 통치하고 시므리가 모반으로 7일 동안 왕이 되었습니다. 시므리는 바아사의 집과 부하들을 모두 죽일 만큼 잔인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둘로 나뉘어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르고 절반은 오므리를 따르다가 오므리가 승리하여 12년 동안 집권합니다.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건축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오므리는 더욱 악을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행하여 여호와를 노엽게 했습니다(왕상 16:26,33).
그다음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왕이 되었습니다. 아합은 시돈 사람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습니다. 아합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 당시 도시국가이자, 경제 부국이었던 페니키아의 왕녀와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여기서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갖고 들어온 신이 그 악명 높은 바알 신입니다.
바알 신의 정체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왕상 16:32)
성경이 알려주는 바알 신의 정체는 먼저 가나안 주민들이 즐겨 섬기던 농경 신입니다(삿 2:10, 10:6). 바알(Baal)은 “소유자”,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농사에 필요한 비를 주어 풍년을 기약하며,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며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신입니다.
제사 방식이 음란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아이까지 불에 태워 제사하는 잔인한 신입니다(시 106:38).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면, 이런 신들을 섬기는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신 7:24, 20:1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들을 진멸하거나 쫓아내지 못하고 오리려 그들과 함께 살고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타락하고 사회는 부패하여 사사시대는 실패했습니다.
여기에 아합왕이 이세벨을 통하여 들어온 페니키아의 바알 신은 원래 가나안 족속들이 섬긴 농경 신 바알과는 계보가 좀 다릅니다. 페니키아 바알 신은 그 계보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바알 신의 아류로는 엘(El) 신과 그의 아내인 아세라가 있고(신 7:5, 12:3), 어머니 격인 아스다롯도 있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농경 신은 남신이고, 아세라와 아스다롯은 여신이었습니다. 페니키아의 바알 신은 여성인 이세벨을 통하여 들어왔습니다.
바알은 원래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이 가진 육적인 탐욕이 사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섬기게 되는 신으로 우상입니다. 더구나 가나안 토속 신 바알과 페니키아의 바알은 다산과 쾌락과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신이기 때문에 우상이 가진 역할이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신의 이름도 같고, 신이 가진 속성이 같습니다.
여기에 페니키아인들이 섬기는 바알은 항구 도시 시돈과 두로에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바알은 농경 신으로 농업에서 비를 주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페니키아인들이 섬기는 바알은 이런 풍요의 농경 신에서 그 역할이 상업적인 부도 추구하는 신으로 발전했습니다.
註) 시돈(Sidon)은 현재 사이다(Saida)로 불리며, 남레바논의 주요 도시이다. 성경에서는 베니게(페니키아)라고 한다(왕상 5:6). 두로(Tyre)는 지금의 수르(Sur)이며, 시돈에서 40km 떨어진 곳으로 고대에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토속 신인 농경 신에서 이제 탐심을 더 부추기고, 부를 쉽게 키우는 페니키아의 상업 신, 바알까지 들어와서 이를 동시에 섬기게 됩니다. 원래 농경 신은 생산활동으로 부를 채워주는 신이었지만, 상업 신은 생산활동이 없는 부까지 추구하는 상술을 가진 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런 페니키아의 바알 신을 도입했을 때 가장 격노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왕상 14:20, 15:30, 16:2,7,13,26,33). 오늘날 유대인들이 금융과 상업에서 세계에 뛰어난 상술을 가진 것은, 페니키아의 바알 신이 지향하는 생활 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도 계시록 18장이 말하는 사악한 상인들은 이러한 상업 신에 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계 18:3,11,15). 이들은 이윤이 생기면 사람들의 영혼까지 팔고 사는 신입니다.
註) 생산활동 : 농업, 공업, 서비스업은 업종 자체가 모두 생산활동에 속한다. 상업에서는 생산 제품의 가공, 보관, 운송, 판매를 위한 진열, 상업 종사자의 노동은 모두 생산활동이다. 그러나 사람, 토지, 주식, 금융증서(실물 교환 없는 금융증서) 등의 거래로 발생하는 매매차익은 생산활동이 없는 부를 추구하는 물질이다.
다시 말하지만, 바알 신은 소유자, 주인의 뜻을 가집니다. 음란하고, 탐욕적이며, 쾌락을 즐기고,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신입니다. 이 바알 신은 신앙 공동체보다 생활 공동체에서 사람의 탐욕을 부추겨서 눈을 멀게 하는 신입니다. 그러므로 바알 신은 여호와를 믿는 신앙 공동체 내에서는 내가 탐심을 회개하면, 일시적으로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알 신은 신앙 공동체 바깥에서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생활 공동체에서는 생활 양식을 통하여 그대로 섬기게 되는 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알 신은 하나님이 경계 대상 1호로 볼 수 있고, 사악하고, 간교한 우상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바알 신은 사람을 이렇게 유혹합니다.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씨를 빌려주려고 형수에게 들어갔으나 기업 상속권에 대한 탐심이 생겨서 설정을 하는 것이 그 대표적입니다. 오난이 설정을 하게 되는 심성에는 이미 탐욕을 부추기는 바알 신의 속성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보고, 그 포도원을 갖고 싶은 탐심이 지은 죄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 가정과 일터, 사회적 경제생활에서 삶을 통하여 바알 신이 추구하는 생활 양식과 문화가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공의를 중시하여 제사법부터 엄격한 질서와 규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알 신은 그 신봉자들이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유를 제약하는 규제가 없거나 있어도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여 편협하고, 저급한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바알 신은 추종자들이 부와 권력을 채워주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여,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종교입니다.
여기에 구약시대는 우상을 만들어서 섬겼으므로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보이는 우상이 없습니다. 신약시대는 사람이 가진 탐욕, 곧 마음으로 섬기는 신이 우상이므로 겉으로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바알은 없애버리기도 쉽지 않은 신입니다. 구약시대에 바알 우상처럼 불에 태워 없애지를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는데(엡 5:5, 골 3:5), 바로 그 우상이 바알 신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재물(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경고한 그 맘몬 신이 바알 신에 해당합니다(마 6:24). 그래서 탐심이 추종하는 바알 신과 맘몬 신에 대한 우상숭배는 옛 뱀의 신분을 가진 사단이 결박을 당할 때까지(계 20:2)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북이스라엘을 패망하게 한 바알 신과 바알 신이 들여온 오므리의 율례가 무엇인지, 이 바알 신이 추구한 경제나 생활제도가 무엇인지를 그 실체를 알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가나안 땅 진입 당시에도 농경 신 바알을 진멸하라고 했었고, 여기에 페니키아의 상업 신 바알이 들어올 때, 그토록 격노하셨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새겨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이 생활에서 우리의 삶을 더럽히고 있는 바알 신과 바알 제도를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