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입동이 날아왔군요
팔랑팔랑 낙엽과 함께
동장군이 올 거라는 알림장이요
따뜻한 경고장이네요
집 없는 사람 서둘러 집을 마련하고
겨울 양식 김장은 담갔는가
고춧가루 미리 빻아오고 식구들을 다 동원하여
무 배추 뽑고 파 마늘 다듬어서
김장준비 빠짐없이 하고
춘추복 벗어 두고 두툼한 동복을 점검하라
찬바람 들어올 틈은 없는가
틈새를 살펴 봉해 두고
난방용 연료를 충분히 하라
따뜻한 겨울을 위해
참고하라며 궁서체로 옛글* 한 장 올렸군요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깍짓동 묶어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정학유의 농가월령가에서
20191115
아내방 문고리
아내 몸에 써걱써걱
칼날 같은 서릿발이 서있어
가까이 가기만 해도 쌩쌩 찬바람이 인다
커다란 링귀고리 같은 문고리 앞에서
난 바짝 긴장한다 잡을까말까
잡었다하면 살점이 쩍쩍 묻어나
말문을 어떻게 열까 열 수도 없어
몸 한껏 낮추어 설설 기어서라도
따뜻한 방에 들고 싶은데
누가 문고리를 지키는 걸까
엄동설한도 아닌 저 변덕
어떻게 녹여낼 수는 없을까
황소고집의 먹통 같은 문고리의 불통
문고리는 둥글고 둥근데
20191110
우리 마을 기러기
계절 냄새의 민감한 기러기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부터
두 마리 세 마리 초계기처럼 몰래몰래 하늘을 다녀가더니
들녘을 엿보고 날아가더니
추수 끝나자마자 그 빈 자리에
초병 한두 마리 세워놓고
멍석을 피듯 새카맣게 내려와 앉아
눈에 불을 켜고 낙수낱알을 찾는데
아장아장 뒤뚱뒤뚱 서로 사이좋게 걸으며
하루에도 수십 차례 샅샅이 논바닥을 뒤지고 또 뒤지다가
멀리 인기척만 느껴도 사람이 깜짝 놀라게
일시에 푸드덕 푸드덕 요란하게 날아올라
장관을 이루네
수백 수천마리가 편대를 이루어
기럭기럭 기러기 잠시 마을 안을 낮게 휘돌다가
멀리는 가지 않고 빙그르르 어느 결에 조용히 원대복귀
논바닥을 또 가득 메우네! 20191118
가을여행은 완행열차로 하자
눈부시게 하늘 푸르른 가을날
내 방 창문 안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저 흰 구름 한 마리
네가 천고마비의 바로 그 백마로구나
네 발을 구르며 꼬리도 마구 휘저으며
나를 불러내는 소리
흥흥 어서 나와 여행길에 오르자고
오오 그래그래, 하지만
너무 서둘지 말자
우선 나 완행열차표 한 장 사갖고
너도 보이는 창가에 앉아
느릿느릿 뒷걸음쳐 뒤로 물러가는
저 지순한 풍경부터 즐겨야겠다
천천히 그리운 얼굴도 유리창에 떠올리며 20191121퇴고(2016년 10월 21일)
송산초교 100주년에 붙여
구봉산과 놀다 / 정대구*
여기는 칠봉, 팔봉 나와라
유이사장*은 칠봉이라 하고
노교장*은 팔봉이라 우겨
오르는가 하면 내리막길
내려가다 보면 또다시 오르막길
이박사*는 육봉이라 하고
노회장*은 구봉이라
여기 모여라 애들아 기차놀이하자
기차가 일렬로 이어 달려가듯
칙칙폭폭 칙칙폭폭 힘차게 힘차게
앞 친구어깨에 손을 걸고 손을 걸고
고만고만한 머리통이 무궁한 아홉 봉우리
구봉산 정기로 100년을 달려온
우리고장 교육의 선두주자 송산초등학교
아홉수의 힘으로 끝없이 이어져
백년에서 이백년 이백에서 삼백 사백
세계로 우주로 벋어나가리
송산초교출신 청정한 인물들이
푸른 솔의 기백으로 큰 일꾼 되어
씩씩하게 모교를 빛내고 세상을 빛내리
*유재흔; 새마을금고 이사장(송산초등학교 27회)
*노원호; 송산중학교 교장(송산초등학교 28회)
*이만종; 의학박사(송산초등학교 26회)
*노승환; 주식회사 새한산업 회장(송산초등학교 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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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구
송산 토박이(병자호란 이전부터 500여년 세거)
송산중학교(1회) 문학박사(숭실대)
신춘문예 시부 당선시인(1972년 대한일보)
송산중•송산고 교사(20초부터 30중반까지 청춘을 바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