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0월 13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거룩한 산 제물.
본문: 로마서 12장 1절~8절
롬 12: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3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4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7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8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 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神の憐れ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に勧めます。自分の体を神に喜ばれる聖なる生けるいけにえとして献げなさい。これこそ、あなたがたのなすべき礼拝です。2. あなたがたはこの世に倣ってはなりません。むしろ、心を新たにして自分を変えていただき、何が神の御心であるか、何が善いことで、神に喜ばれ、また完全なことであるかをわきまえるようになりなさい。3. わたしに与えられた恵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一人一人に言います。自分を過大に評価してはなりません。むしろ、神が各自に分け与えてくださった信仰の度合いに応じて慎み深く評価すべきです。4. というのは、わたしたちの一つの体は多くの部分から成り立っていても、すべての部分が同じ働きをしていないように、5. わたしたちも数は多いが、キリストに結ばれて一つの体を形づくっており、各自は互いに部分なのです。6. わたしたちは、与えられた恵みによって、それぞれ異なった賜物を持っていますから、預言の賜物を受けていれば、信仰に応じて預言し、7. 奉仕の賜物を受けていれば、奉仕に専念しなさい。また、教える人は教えに、8. 勧める人は勧めに精を出しなさい。施しをする人は惜しまず施し、指導する人は熱心に指導し、慈善を行う人は快く行いなさい。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시려고 선한 일도 이루어 가시고, 그렇지 않은 일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오로지 거룩한 삶에 대한 소명으로 각자의 사명에 순종해야 하는 것을 믿습니다.
일상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연습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지혜를 구합니다. 그 중에 실제로 실천하는 것 중 하나가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걸어다니는 거리마다 “주님... 이곳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나치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주님...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시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세워 주세요... 거듭난 이들을 세워주세요...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고 영생을 살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주님, 이들에게 영생의 자긍심을 주셔서 거룩한 삶의 소명을 알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 합당한 거룩한 삶의 소명은 영생을 이미 얻은 성도들에게도 필수불가결한 기도의 제목이 되는 것을 깨우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사상과 시대정신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성도인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선과 영역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그리고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데요. 이런 저의 마음을 주님께서 위로하시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기도할 제목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먼저 1절의 내용을 주목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목할 단어는 바로 자비하심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긍정적인 일도, 부정적인 일도 모두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허락되는 것을 깨우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지요. 성도에게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선포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의 단점도 강점도 모두 받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자비하심으로 힘을 얻어 사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명은 거룩한 삶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레위기에서 제사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가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성도가 품어야 할 소명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오늘 로마서 12장 1절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구체적인 실천과제로 자신의 몸을 거룩하고 살아 있는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완벽히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자유가 있는 한 보편적으로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몸도 따라갑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혹은 어쩌다 한 두 번은 마음이나 생각과 다른 곳에 몸을 두는 경우도 있지만, 삶의 보편적인 패턴은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을 두게 되어 있지요. 아마 부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린다는 것의 의미는 먼저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영원히 유효한 단 한 번의 제사를 완성하셨음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에 의지하여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 얼토당토않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인 인간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제사와 피흘림의 법칙을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이스라엘이 각종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이스라엘마저도 불순종하여 오염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구약의 희생제사, 짐승의 피를 흘리는 제사행위는 지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성전과 제사를 지키려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복음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들을 단지 문자적인 의미로만 지키려고 하는 것(유월절, 토요일 안식)은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복음을 믿고 찬양과 경배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받으며 예수님의 영원한 단 한 번의 제사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복제사를 지키거나, 복을 구하는 이벤트를 반복하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 마음에 함께 살아계신 주님과 행복하게 동행하는 사람들이지요. 따라서 우리의 몸을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는 것을 영적 예배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공식적으로는 주일예배와 새벽예배, 그리고 각종 비정기적인 예배가 있습니다. 모든 예배의 공통점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행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신 은혜와 사랑과 자비에 응답하는 것이 영적인 예배입니다.
형식이 있는 예배를 포함하여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모든 삶의 영역과 언행이 전부 예배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1절의 말씀을 간략히 정리하면 “복음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예배로 사는 사람이 되자!”
2절에서는 이 시대의 풍조라는 말이 나오지요. 여기서 풍조는 시대정신의 흐름과 유행을 뜻합니다. 각 시대마다 유행하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핵인싸라는 말이 유행하고, SNS를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싸이월드라는 포털이 유행을 했었습니다. 미니홈피와 그 안에 꾸밀 각종 캐릭터를 사고 파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블로그라는 것이 유행을 하다가, 다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바람이 몰려 왔지요. 그 사이 싸이월드는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이란 것을 해야 하고, 유튜버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겼습니다. 매우 간략하고 간단하게 정리하였지만, 이러한 흐름은 20여년 안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의 모습입니다.
100년전 미국의 매출 상위 10대 기업 중에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50년 전과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향후 2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들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또 20년 전에 인기가 있었던 직업 중에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직업들도 있습니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광풍처럼 몰아치다가도 때가 되면 사소한 흔적만을 남기고 아무런 능력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는 것은 마치 바람을 쫓아가는 것과 같이 허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 받는다’는 것은 틀에 갇히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붕어빵 틀에 반죽을 넣고 구우면 늘 같은 모양의 붕어빵이 나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가르쳐 주시는 지혜로 자기존재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관으로 살아갈 때 성경은 우리가 매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매사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분별의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선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방향이 어디인지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좋은 설교를 많이 들어야 하지요. 또한 좋은 가르침을 많이 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천적으로는 말씀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성경을 늘 가까이 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배우고 또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여러가지 양육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영적인 대화를 하려고 해도 말씀을 또렷하게 알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어려운 말씀을 만나면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선 어려운 것을 지나고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배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어려운 말씀이 이해가 되고 마음에 뿌리가 내리기까지 다시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것입니다.
더불어 여러분의 영혼을 지켜야 할 책임감을 가진 목사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해석을 배워야 합니다. 목사는 분명 성도들을 자기의 뜻에 맞게 복종시키거나 굴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목사인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지켜야 할 사명과 사역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바로 여러분들의 영혼을 어떻게 지켰는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7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매일 저와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주님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3절 이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영적 예배로 사는 삶과 분별력을 가진 삶의 방식이지요.
첫째 생각의 범위를 정하라 하십니다.
본문은 마땅히 생각할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표현되어 있는데요. 소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자기 일이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대로 성경을 배우고 끊임없이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영혼을 살찌워야 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아무리 살찌워도 영의 건강을 해치는 비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혼은 살찌우면 살찌울수록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도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 영적인 적정선은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성도들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공동체에 덕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은사와 능력과 실력을 사용하는 것이 곧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분수에 맞는다는 말씀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어울리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을 크기와 규모로 규정하여 낙심하거나, 반대로 교만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분수대로 산다는 것이 아무런 꿈도 갖지 말고, 운명이나 숙명에 맡겨서 살라는 것으로 알면, 너무나 큰 오해입니다.
이 가르침은 앞서 말씀드린 선을 지키는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데요. 그것은 사명과 사역에 맡겨진 영역에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4절부터 8절까지 그 사역과 사명, 그리고 은사에 관한 권면입니다. 기록된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핵심은 한 몸인 그리스도께 유익을 끼칠만한 선택과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사역과 사명에 대하여 함부로 평가하거나 진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명과 사역 중에는 평가하고 진단해야 할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는 사명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자리가 바로 대표적인 사명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건강하고 거룩한 삶의 소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신 자리입니다.
목사가 태생적으로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그 타고난 운명이 거룩해서 그 자리를 맡기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성도들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대로 맡기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가 목사가 되고 싶어하는 갈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주시고 목사로 만들어 가고 계신 것이지요. 그리고 목사의 가장 핵심 사명은 성도의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목사 이외의 여러 사명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이 고린도전서 12장 12절부터 27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댁에 가시면 꼭 정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소유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인기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영생을 얻은 자(천국 시민)의 자긍심으로 거룩한 행실로 사는 소명입니다. 그 거룩한 소명을 지키는 과정에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소유도 있고, 빈궁도 있습니다. 인기도 있고, 버림받음도 있습니다. 명예도 있고, 오해도 있는 것이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불순종의 상태에서 순종의 삶으로 부름 받은 저와 여러분의 영혼과 내면세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의 불순종이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거룩한 영생의 삶이 살아났습니다. 각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있을 때 오직 복음과 거룩한 삶에 대한 갈망을 붙드십시오. 각자의 생각을 헷갈리게 하는 일이 있을 때 오로지 말씀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각자의 행실을 미혹하는 일이 있을 때 기도의 자리에 나아와 겸손을 연습하십시오. 세속의 눈이 평가하는 나의 가치는 잊어버립시다. 덕을 세우는 일을 생각하고, 사명의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기억합시다. 오로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거룩한 생활습관의 소명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팔자나 운명에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 주신 소명을 따라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으로 겸손하게 사는 성도인 것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