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생을 살린 형수의 재치
옛날 이야기로도 전해오고, 일제 시대 이야기로도 전해온다.
전남 강진군 선정면 태동이라고 하는데, 형제가 살았다.
성은 강(姜)씨다.
하루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들 며느리를 앉혀놓고 당부하기를,
"그저 우애있게 지내라.
형제간에 화목하는 것 이상 저 세상에서 내가 기뻐할 것이 어디 있겠느냐?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던 너희 형제들, 그저 집이 화목하려면 남의 집 식구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두 며느리가 의좋게 살아라. 그런다면 내가 마음놓고 죽겠다." 고 하였다.
물론 형제와 동서는 그러마고 하였다.
동생은 이제 분가를 했다.
부자였던가, 논 열일곱 마지기하고 밭 사천 평하고 집하고 사서 분가를 해 준 것이다.
그만하면 살 만한데 문제가 생겼으니 동생되는 사람은 안사람이 죽을병이 들어서 여기저기 의원을 찾아다니고 병원을 찾아다닌 바람에 목숨은 가까스로 건졌으나 재산을 다 탕진하였다.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기 위해 뭐든 하고 살아야하건만, 동생은 학자라 고된 일을 못하는 체질인데, 그래도 어디 가서 품을 팔아 산다고 사는데 비가 온다치면 일거리가 없어서 그만 굶고, 그러다보니 처자식 굶는 일이 부잣집 밥 세끼 먹듯이 하였다.
그래도 형에게 손을 벌리지는 못하였다.
분가나올 때 재산을 딱 반으로 나누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수는 달랐다.
형님 모르게 쌀도 주고 찬도 주고 옷도 주었다.
그런 형수는 얼마나 인정이 많은가?
언제까지 그런 도움을 줄 수는 없었기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그러다 하루는 형수가 찾아와서,
"아무 날이 무슨 날인 줄 아시오?"
"아, 형님 생일이 아니오? 왜 내가 모르겠소? 내가 형님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가 나온
사람인데 어찌 형님 생일을 모르겠소?"라고 하였다.
앉은 자리는 어머니 뱃속, 바로 태(胎)도 같고 포(胞)도 같다는 말이니 문자 그대로 동포(同胞)라는 말이다.
형님이 열 달 있었던 그 어머니 뱃속에서 동생이 또 열 달 있다 나왔다는 실로 아름다운 말이다.
"그 아무 날이 장날이니까 지게를 짊어지고 장에 간다고 하고 장에 오시면 내가 장을 보아드리리다.
쌀하고 누룩 석 짝하고 뭐 고기하고 여러 가지 장을 보아줄 테니까 집에 지고 가서 술을 내리시오.
쌀하고 누룩하고 술을 해서 대승(大升) 두 되 가량 독하게 술을 내려 옹기병에 담아가지고 그 아무 날 형님 생일이라고 대접을 하시오."
며칠이 지나 그 아무 날이 되자 형님 내외가 저녁을 먹고 나니까 동생 내외가 조카들하고 들어와서는 형님께 생일축하한다고 하니까 형님이 놀래서는,
"아, 무엇을 이리 장만해 가지고 왔는가?
간구한 살림인 줄 내가 다 아는데. 하여간 고맙네. 어서들어오게."
이리하여 푸짐한 생일 잔치가 벌어졌다.
다들 우애있는 형제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형님은 기분이 참으로 좋았다.
형수는 얼른 부엌에 가 저녁상을 보았다.
술이 오가며 취해서는 방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웃도 다 가고 시동생네 식구도 다 갔다.
형은 코를 골며 깊은 잠이 들었다.
그러기를 기다리던 형수는 장문을 열고는 논문서며 밭문서며 다 꺼내서는 방바닥에다 여기저기 헤쳐놓았다
그리고는 형이 잠이 깨기를 기다렸다.
깨어보니 도둑이 왔나싶었다.
아내의 말로는, 이 형이 취중에 여러 사람 앞에서 논밭 문서를 꺼내 흔들면서 자기만 잘 살면 뭐하냐, 동생도 잘 살아야 우애가 있고, 지하에 계신 부모님도 기뻐하신다며 재산을 뚝 반으로 잘라 동생을 주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요. 어떻게 늘리고 모은 재산인데.. 막 이웃 앞에서 호기당당하게 형제간 우애를 말하던데,
누구 속이 뒤집히는 줄은 모르고. 아이구, 제가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잠 안자고 쭈그리고 앉아서 당신이 잠 깨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웃에게 물어봐요. 그랬는가 안 그랬는가?"
형은 기억엔 없으나 취중에라도 잘했다며 부인에게 이해를 구하며 동생네에 재산을 주기로 했다.
며칠 후 동생이 또 술을 해와서 형님에게 올리면서 큰절을 하누나.
형수에게도 올리누나.
형수는 뽀로통하게 톡 쏘았다.
"뭐 나한테는 절을 말아요.
형제간 우애가 제일이라고 하고 나하고 상의도 없이 객기를 부린 형님에게나 골백번 절을 하구려, 흥!"
그러자 형은 이왕 그리 된 것인데 무엇을 그리 노염을 타느냐고 형수를 타일렀다.
형수는 그제서야 노여운 얼굴을 풀면서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이만한 형제간 우애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