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소 돌보는 목동 시절 마을 뒷산에 소를 올리고는 연못에 멱감기가 바빴다. 무더위 피하는 방법은 멱감기 놀이가 제일이었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아 수초도 없었다. 수초가 자라지 않아서 물도 맑지 않고 뿌연 흙빛 모양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앞 강물은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물이나 연못 물은 반대로 불투명하다. 그래도 소는 오전 내내 물을 못 먹어서 그런지 연못물을 잘 먹는다. 아무리 목마른 갈증에도 맑게 보이는 강물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우리는 소가 맑은 물을 몰라본다고 바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 강물은 오염되어 소가 먹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연못에는 그때 물고기가 살지 않았으나 지금은 붕어 물고기가 살고 있다. 해마다 가뭄이 오면 못 바닥이 드러나도 물고기가 없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안다. 어느 날 이웃 동네 낚시를 즐기는 노인이 재 너머 가다가 힘이 들었는지 낚싯대를 펼치고 낚시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여기는 물고기가 없어요. 재 너머 큰못에 가시라고 알린 일도 있었다. 그때 물고기는 없어도 새우가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 물가 모래흙 놀이로 물길 운하를 만들고 물을 퍼 올려 만든 운하로 보내면 새우가 새로운 빗물인 줄 알고 헤엄쳐 올라와서 새우가 저절로 생겨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이던가 사람들이 물고기를 넣어주고 연못도 크게 보수하여 물이 마르지 않아 붕어 물고기가 지금은 많다.
새우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물만 먹어도 사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아낸 사실로 플랑크톤을 새우가 먹이로 살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가 새우의 먹이고 작은 벌레는 플랑크톤을 양식으로 살아온 듯하다. 나중에 사람들이 넣어준 물고기가 잘 자라는 것도 새우가 많아 물고기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붕어가 즐겨 먹는 주식은 새우가 주종이다. 마을 뒤 연못 붕어의 서식 환경 역사는 70년도 채 되지 않아 내 나이보다 적다.
생물학의 먹이사슬 용어가 바로 이런 자연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자랄 때 마을 뒤 연못에는 먹이사슬 연결이 시작하는 중이고 붕어가 나타나기 직전이었나 보다. 마치 원시 시절 상태로 되돌아 새우 먹이에서 물고기가 이어지는 먹이사슬 생태계에 연결 현상 마디처럼 생각된다. 내 나이 팔순이니 오랜 시간을 거슬러 생태계 반복 현상 실습장을 보여 드리는 느낌이다. 소가 아는 오염되지 않은 물을 사람만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리석다고 생각한 소가 강물은 오염투성이로 못 먹는 물이라고 알고 있었던 일이 현명했다. 연못물은 보기는 뿌옇게 흙색 물이라도 연못에 사는 플랑크톤이 자라는 사실을 소가 확인한 셈이다. 여기에 사는 새우는 청정환경의 전혀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물고기다. 70년 전 이야기로 마을 뒤 산야는 자연 그대로 청정지역 살기 좋은 낙원이다. 비록 가난하게 생활하는 환경이었지만 좋은 환경에 자라난 덕택으로 지금까지 고맙게 살고 있는 셈이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 심성을 배운 탓도 소처럼 우직한 자연환경 습성 때문이다. (글 : 박용 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