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탐사는 제10차에 걸친 탐사 중 일종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2년 전, 즉 2022년 토레 펠리체의 왈도파 역사현장을 탐사하면서 아쉬운 카스텔리오루조(Castellio Luzo)를 뒤로하고 이탈리아 탐사를 마무리한 것이 내 마음에 늘 숙제로 남겨뒀다. 이번엔 왈도파 수천 명이 떨어져 죽은 무시무시한 언덕에 오를 것이라는 각오가 대단했고 그곳에 이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물론 상상하긴 했어도 이렇게 힘든 여정일런지는 몰랐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고 가파른 산을 여러 차례 오르긴 했어도 이렇게 힘든 심정을 무겁게 오른 것은 큰 경험이었다.
또 2023년 스코틀랜드 언약도에 관한 사적과 현장을 찾는 것이 에든버러에 그쳤거나 존 낙스의 스승 조지 위셔트의 화형 지를 탐사팀에게 보이지 못한 아쉬움도 떨치는 기회가 됐다. 이어서 글라스고 지역에서 급진파 언약도이지만 목숨 바쳐 믿음을 고수하려는 분들의 사적지만 아니라 제1차 장로교회 총회가 개최된 글라스고 대성전을 방문한 것은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9월 9일 탐사팀은 방콕과 스톡홀름을 거쳐 약 30시간에 걸친 비행기를 타거나 공항에서 기다렸다. 에든버러의 첫날은 탐사팀에 이미 가담한 이기정과 김소윤에게 익숙했지만 송주연과 이 나라에겐 색다르고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먼저 저녁식사를 먹으려고 에든버러 옛 도시를 방문했는데 세인트 자일스 대성전에서 역사 촬영이 있었다. 혹시나 하여 성전을 방문하였는데 다음 날부터 계속 촬영이 있는 바람에 어제 방문한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무튼 첫날 저녁은 에든버러를 시작으로 언약도 사적지를 찾는데 집중했다. 특히 우리가 묵었던 아파트에서 마주 보이는 레스(Leith) 항구가 수많은 언약도가 노예로 끌러 간 곳이었다. 또 언약도가 1638년 서명했던 언약 문서만 아니라 그들이 50여 곳으로 보낸 서명된 복사본을 봤다는 것도 기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립 박물관에서 존 낙스가 제1차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통해 작성한 <제1 기도서> 원본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기쁜 일이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고수하려고 했던 언약도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난 속으로 다짐하고 결의했다.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사라지면서 이 날의 감동과 깨달음도 희미해져 가겠지만 퇴색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볼 것이다. 그때에 이르면 다시금 현장의 감동을 잇기 위해 재방문을 결의한다.
에든버러에서의 이틀을 보내고 세인트 앤드루스로 향했다. 2년 전에 못다 한 사적지 탐사를 이번엔 확신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존 낙스의 스승 조지 위셔트의 화형지와 스코틀랜드 언약도의 최고의 지도자인 새무얼 루터퍼드의 묘비이다. 공동묘지인 옛 세인트 앤드루스의 수도원 자리에서 수 백개의 묘비 중 어떻게 찾아야 할지 걱정이었지만 친절하게 안내원을 만나 찾을 수 있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앞으로도 존 낙스 이후, 최고의 지도자인 앤드루 멜빈과 새무얼 루터퍼더의 사적지는 길이 기억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탐사지 방문은 그야말로 기억과 전수를 위함이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을 해결하려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진실은 그들의 시각으로 믿음과 세상을 바라보려는 실제 경험이다. 그들이 걸었고, 살았고, 보았던 곳에서 조금이나마 감동을 받아 개혁신앙 정신을 연장하거나 보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길고 긴 여정에 큰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세인트 앤드루스 재방문을 약속하고 순교자비를 끝으로 숙소로 향했고 그다음 날 글로스고로 향했다. 이번 탐사의 주목적 중 하나인 그곳에서 유난히 언약도의 사적지가 많은 이유를 알고 싶었는데 그중에 여러 곳을 방문하고 3일을 거하면서 스코틀랜드인에게 특히 강력한 개혁신앙이 꽃 핀 것인지 충분히 알게 됐도 이들의 보수성은 언약신앙의 보존을 분명하게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