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can laugh at the days to come
이은영
망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나의 첫 요식업은 14개월을 조금 못 채우고 폐업을 했다.
무슨 생각으로 하필이면 식당을 하겠다고 했을까? 자책부터 서글픈 생각들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씨드머니 모으겠다고 아이들이 먹고 싶고 갖고 싶다는 것도 잘 안 사주었다. 나 또한 구제 옷가게를 전전하며 옷을 사 입었고 싸구려 가방으로 구색을 맞추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돈이 모이는 게 더 좋았을 뿐이었다. 또한 직장에 가기 전 두 시간 전에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독서를 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정비했다. 나름 꽤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했고 책을 읽는 교양인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아마 이래서 실패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말씀을 통해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지 ‘성공’에 관한 말씀은 하신 적이 없었는데도 나는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함께 = 성공 이라고.
요식업 즉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철저히 깨져나갔다. 육체, 정신, 믿음이 너덜너덜 해졌다. 손가락에는 관절염이 오고 난생처음 해 본 고된 노동에 온 몸에는 향수대신 파스 향으로 뒤덮였다. 몸이 힘든 만큼 아무 것도, 생각하기도 싫었다. 단지 생존만 남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온실에서만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고난이 없었던 삶은 아니었음에도 그러한 것들이 작아 보일 정도로 리얼 야생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계약 전엔 자신 있게 비전을 말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던 프랜차이즈 관련 사람들은 계약이후 현실에 등판되자 모든 가게 영업의 실패가 업주의 경영이 잘 못됐다는 듯 떠넘기고
심지어 매출이 적어지자 다른 지점과 차별을 하며 마땅히 제공해줘야 할 것까지 누락되는 일들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온갖 감언이설로 하게 만들고 호언장담하던 그들은 마치 개미떼처럼 다가와 다 뜯어먹고 흩어지는 형국이었다. 순진무구하게도 나는 그들의 감언이설과 상냥한 얼굴 때문에 정말 나를 위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뿐만 아니라 그렇게 잘 대해주었던 주방 아줌마의 배신, 가게에 연관된 사람들의 주문량에 따른 태도변화 등 그들이 원하는 것은 친절도 인간적 대우도 아닌 그냥 돈이었던 것이었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소를 만들어 얼굴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니 나도 점점 그들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진심보다는 가식이 늘었다. 손님이 와도 반갑다기보다는 돈으로 보였다. 적게 시키고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났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은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매일 매출을 확인하고 천국과 지옥에 오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말씀에 눈물짓고 깨달은 묵상에 감동하며 읽은 책이 쌓여가는 것을 보며 뿌듯해했던 내 고상한 믿음은 그렇게 책상 앞에서만 현란한 믿음이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폐업을 결정하고 문을 닫았다.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잠만 잤다. 그간 쌓인 피로도 있었지만 역시나 자괴감으로 아무것도 생각하고도 하고도 싶지 않았다. 아무도 집에 없을 시간에 안방에서 나와 거실에 앉았다. 나의 사업실패도 한 몫 하고 남편 사업의 경영악화로 좁은 집으로 이사해 거실은 정리 되지 못한 짐들로 가득 쌓여있었다. 마치 내 마음속에 짐을 그대로 거실에 쏟아놓은 듯했다. 눈물이 와르륵 쏟아졌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될 걸 다 아시면서 왜 하게 하셨냐’고 애먼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냈다. 다 서글펐다. 나의 우울한 성장기부터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결혼 생활... 그리고 이번 사업이 망할 때까지 하나님은 그냥 방관자였을 뿐 나는 늘 이렇게 살다 죽는 걸 원하시는 거냐고...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행복했던 적을 물어본다면 대답할게 별로 없는 삶을 살았는데 돈 벌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좀 돕겠다고 시작한 사업마저 이렇게 되면 대체 내게 원하시는 게 뭐냐고? ... ... .
죽고 싶었다.
구제 옷이나 싸구려나 입고 값나가는 가방 하나 없고 돈 아낀다고 애들 뭐하나 제대로 된 것 안 사주고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고 꾹꾹 참아왔던 게 다 거지같고 어리석었고 무능력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냥 다 놓고 싶었다. 이럴 때 더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은 내가 그토록 추구했다고 여겼던 믿음, 하나님의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믿음이라고 여겼던 것이 단지 정신승리에 지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드니 더 더 비참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감사였다. 내가 실패했던 부족하던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고생했다고 안아주는 자녀들... 좁은 집으로 이사해서 불편할 텐데도 재잘재잘 웃고 떠들며 나의 존재만으로 반겨주는 자녀들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니 숨이 쉬어졌다. 서글픈 눈물이 아니라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 10년이상 사업을 해나가는 남편의 마음도 헤아려지면서 긍휼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힘들었을까... 이런 마음이 전해졌는지
남편의 태도도 달라졌다. 남편도 나도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그런지 지난날 보다 관계가 좋아졌다. 그러면서 성공의 정의, 믿음의 정의, 행복의 정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성공은 승승장구, 부와 명예라면 천국에서 성공은 성패와 빈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믿음의 정의는 기도제목의 응답을 믿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아닌 하나님이 행복해 하시는 것을 행복해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1일 1장 성경통독, 1감사, 1만원을 드리기로 작정했었고 마침내 다 모았지만 돈이 없는 상황에서 모아진 돈을 보니 갈등이 되었다. 그러나 내 상황에 따라 드리고자한 것을 드리지 못한다면 평생 드리지 못 할 것 같아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탈북민 구출 후원에 365만원을 드렸다. 때로 하나님은 나의 상황과 필요보다 영혼구원과 생명을 위해 마음을, 전부를 드릴 수 있는지 시험하여 보시는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소망을 붙잡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는 자이기에 두려울 것이 없는 자가 되었다.
“She is clothed with strength and dignity; she can laugh at the days to come.”NIV
“능력과 존귀함이 그녀의 옷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잠언 31장 25절 우리말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