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뇨?
2025. 9. 21(주일낮예배) 창세기 4:5-6
여러분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였다. 그런데 웨이터가 20분이 지난 후에 스파게티 접시를 테이블에 가져다 놓으면서 그 동안 먹어본 스파게티 중에 최고일 겁니다 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웨이터가 스파게티를 셋팅해 주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하겠는가? 1994년 프란시스 챈 목사님(Francis Chan)은 26살의 나이에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 코너스톤교회(Conerstone Community Church)를 개척하였다. 30명의 사람과 함께 코너스톤 교회를 개척할 때 챈 목사님은 ❶모두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교회. ❷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하는 교회. ❸모든 성도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교회라는 3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였다. 그리고 개척 2개월 만에 교회는 100명이 출석하였고, 교회는 계속 성장하여서 15년 만에 5천명이 넘는 대형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첸 목사님은 주님께서 처음 세우셨던 그 교회의 모습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2010년 코너스톤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믿음 때문에 박해받는 성도들이 있는 전 세계선교지를 돌면서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교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폈다. 그리고 프란시스 챈 목사님은 We Are Church(우리가 교회다)라는 기독교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챈 목사님은 대형교회에서 화려한 예배를 통하여 감동 한 번 받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각자의 자리에서 펼쳐가는 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진정으로 알아가고, 서로의 짐을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새로운 교회 운동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프란시스 챈 목사님이 왜 대형교회를 버리고 우리가 교회다라는 기독교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겠는가? 오늘 본문은 가인과 아벨 이야기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는 첫 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때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가슴이 설레였는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고 외친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얻다, 소유하다는 뜻의 가인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둘째를 낳았는데, 둘째는 숨, 호흡, 허무라는 뜻의 아벨이라고 지었다.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아담과 하와는 그 이름을 아벨이라 지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농사를 짓는 가인이 곡식으로 드리는 예물은 받지 않고, 아벨이 드리는 첫새끼와 기름은 예물로 받으셨다.
왜 하나님은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겠는가? 히브리서 11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영웅들을 기록하면서 아벨에 대하여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4절)고 기록한다. 그리고 요한 1서 3장에서 요한은 하나님께 난 자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가르치면서 가인과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다(12절)고 말씀한다.
무슨 말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가인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고,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가인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창세기 4장 6절을 읽기 바란다.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예물을 받지 않았음에 대하여 분하여 하고, 또 안색이 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찌하여 네가 분하여 하느냐? 왜 얼굴이 변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이다.
왜 가인은 분하여 하고, 안색이 변하였겠는가? 88고속도로 가조IC 진입로는 평면교차로 였다고 한다. 그래서 2001년에 입체교차로로 교체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조IC 진입로 교체공사를 하기 전에 제가 아는 목사님이 학생들을 태우고 가조IC를 진입한 적이 있다고 한다. 1종 대형 면허증을 가진 목사님은 대형버스에 학생들을 태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조IC를 진입하였는데, 갑자기 앞에서 오는 차가 쌍라이트를 번쩍거렸다. 그때 목사님도 똑같이 쌍라이트를 켰는데, 그 순간 목사님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중앙선이 오른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운전을 할 때 중앙선은 항상 왼쪽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앙선이 오른쪽에 있다는 말은 목사님이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급하게 핸들을 돌려 자기차선으로 들어가는 순간 앞차가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목사님이 핸들을 조금만 늦게 꺾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1종 대형 면허증이 있고, 내가 더 큰 차를 몰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역주행하고 있는 내가 빨리 핸들을 돌려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아벨과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는데, 나와 나의 제물을 받지 않으면 내 제사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을 바꾸지 않고, 분하여 안색이 변한 것이다.
그런데 혹시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유진 H. 피터슨이 쓴 다윗,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유진 피터슨은 다윗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을 상상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윗의 실존에서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 것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유진 피터슨은 다윗의 삶의 특징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을 상상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삶을 한번 보기 바란다. 다윗은 엔게디 광야로 도망한다. 그런데 다윗을 잡기 위하여 엔게디 광야로 온 사울이 다윗이 숨어 있는 그 굴에 들어온 것이다. 광야의 뜨거운 태양빛 아래 있었던 사울은 엔게디 굴에 들어오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희미하게 보이는 굴 안으로 들어간 사울은 허리띠를 푼 채 무기도 없이 쪼그리고 앉았다. 이제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자르고 그를 살려준다.
다윗이 왜 사울을 살려주었는가? 또 보시기 바란다. 사무엘하 16장은 시므이의 저주가 나온다. 압살롬의 반란에 다윗은 망명하고 있을 때 시므이는 다윗 일행을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여호와께서 갚아 주셨다고 하면서 저주한다. 지금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시므이는 다윗의 염장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때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시므이의 머리를 베게 하여 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다윗은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새에게 한 말이 12절이다. 사무엘하 16장 12절을 함께 읽기 바란다.
(삼하 16: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은 자기 손으로 시므이를 죽인다고 자신의 원통함이 해결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므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다윗의 원통함을 보시고, 선으로 갚아주시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다윗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내 고통과 억울함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 하는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러면 가인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가? 가인은 내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왜 하나님은 나의 예물을 받지 않는지 그것이 화가 났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기뻐하는 아벨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이렇게 가인이 분을 내는 것은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내가 어떻게 수고하였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는 생각이 가득해서 섭섭함과 억울함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의 분냄을 기뻐하시겠는가? 중세 기독교는 엄청난 힘과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큰 힘과 권세로 그들은 로마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만족이라 불리는 고트족에 의하여 그들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로마의 그 큰 힘이 야만족이라 무시한 그 고트족에게서 로마를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 할 때에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었다. 그래서 그 큰 힘과 문화로 인도를 기독교화하려 하였다. 그런데 인도가 기독교 국가화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세계최고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인도는 80%가 힌두교이고, 15%가 이슬람교도이다. 그 큰 힘과 문화로 인도를 복음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힘과 자기의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싶었지만, 사람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청운교회 이필산 목사, 25.6.22 설교 중>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 다윗이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다윗왕국이 세워진 것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였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처럼 결국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가는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쳇봇에게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은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쳇봇은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은 사람들은 부요해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화려한 조명과 음향으로 춤을 추며 노래하고, 기도시간이 되면 사업 성공, 건강회복을 위하여 뜨겁게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강단에선 목사님은 여러분은 이미 승리자입니다. 더 큰 집, 더 나은 직장, 더 건강한 삶을 받을 것입니다 하고 성공과 축복과 풍요를 외친다. 그렇게 목사님이 설교할 때 온 성도들은 박수를 치며 아멘을 외친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가 어릴 때 뜨거운 밥에 버터를 넣어서 간장과 비벼서 종종 먹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맛이 일품인데, 커서는 한 번도 먹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물성 기름으로 제조된 버터는 몸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필버트 컴퍼니에서 식물성 버터를 개발하여서 대용품으로 만들었는데, 회사 간부 부인이 그 버터 맛을 보고 소비자용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하여서 1981년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 라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지금은 전세계에 수출되는 제품이 되었다.
그런데 버터만 그런가?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까이 가 보았는데, 꽃향기가 나지 않았다. 정말 생화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정교한 인조꽃들이 많이 있다.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천연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고온,고압으로 만들어진 랩다이아몬드(lad-grown diamonds)를 사용한다. 다이아몬드와 강도가 똑같아서 광택도 같은 랩다이아몬드는 천연다이아몬드와 똑같다.
무슨 말인가? 산업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체용품, 모조품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도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안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다. 그래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아멘하면서 말씀을 듣는다. 아니 열정적인 봉사와 섬김도 한다. 그런데 가짜이다.
왜 가짜인가?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여서 나와 교제하고 싶어하는 하나님이 없는 예배는 가짜이고, 하나님이 없는 봉사와 헌신은 가짜인 것이다. 그 가짜는 예배를 드리고, 봉사와 헌신은 하지만, 내 마음에 억울함과 분함은 씻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가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저와 여러분의 신앙에 하나님이 있는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되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상상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문에 합당한 자여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