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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원한을 풀어 주소서 ~ 불의한 재판장 비유 / 큰 부자. 맹인(소경) 아이
26.02.16(월)
오늘은 누가복음 18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누가복음 18장은 기도에 대해서 아주 유명한 본문입니다. 바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인데요. 여러분들이 아마 주로 기도원에서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또는 교회에서 주로 금요기도회나 심야기도회 시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구하면 하나님을 응답하신다라고 하는 주제로 들으셨던 말씀이 아마 이 말씀일 겁니다.
이런 이야기인데요. 바로 한 마을의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었는데, 그 도시에 과부가 있었다는 거죠. 과부가 있어서 자주 그에게 가서 말을 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좀 풀어주소서 얘기를 했더니, 그러니까 계속 듣지 않다가 아 나중에는 너무 번거롭게 하니까 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라고 했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테니까. 내가 들어주고 말겠다.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면서 야 봐라 하나님이 이렇게 밤낮 부르짖는 자들을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 라고 하셨다는 거죠.
너에게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그러한 본문이죠. 그래서 이 본문을 많은 분들이 강청 기도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본문을 들어서 설교를 하거나 설명을 합니다. 간절하게 구하면 된다.
이 과부도 봐라 귀찮을 정도로 쫓아가서 계속 얘기하니까 이 재판장이 들어주지 않느냐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도 이렇게 구해야 된다라고 많이들 이야기를 하잖아요. 하거든요.
그런데 과연 그러한 이야기일까? 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조금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과연 오늘의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려는 건가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고 귀찮게 하면 하나님 들어준다는 건가 그럼 내가 돈 벌고 싶으면 하나님께 돈 달라고 기도하면 됩니까?
내가 그러면 성공하고 싶으면 하나님 저 좀 성공시켜 주세요. 저 좋은 학교 보내주세요. 저 시집 장가 잘 가게 도와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귀찮도록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세상에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죠. 왜냐하면 하나님께 귀찮게만 구하면 하나님 들어주실 텐데 뭐하러 세상에서 열심히 살겠습니까?
뭐하러 남들 잘 때 공부하고 남들 놀 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나 하나님 나라의 원칙은 이 세상 나라의 진리나 원칙을 뛰어넘는 초월하는 것이지. 이 땅의 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만 하면 된다. 기도만 하면 전교 1등 할 수 있다. 기도만 하면 부자 될 수 있다. 기도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우리가 기도만 하면 무조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도만 해라 하나님이 귀찮다 할 정도로 계속 떼를 쓰고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실 거다 라고 하는 본문은 일단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이 본문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중요한 말이 1절과 그리고 마지막 8절에 나오거든요.
1절과 8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가운데 나오는 비유는 엉뚱하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어요.
먼저 1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그러니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날이 찾아온다는 겁니까?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낙심하는 날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낙심하는 날 낙심하게 되기 때문에 그 낙심을 이겨내는 것이 뭐예요? 기도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낙심하는 날이 찾아올 텐데 그 낙심하는 날 우리는 기도함으로 그것을 이겨내야 된다는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강조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이렇게 말을 해요.
이 재판장 곧 판사는 당시에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죠. 자 그런데 이 판사를 가리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하죠.
이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이 판사가 이방인이었다는 뜻입니다. 아마 로마에서 파송한 고위 관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을 무시한다라고 하는 말은 뭘까요? 정의가 굽은 사람이란 말이죠.
뇌물을 받거나 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법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라는 뜻이죠. 자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을 합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3절이죠.
한 과부가 나와요. 동그라미 보세요. 이 과부와 재판장이 등장인물이잖아요.
자 과부가 있다. 근데 과부란 사람은 누굽니까?
이 당시에 이 판사와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에요.
판사는 가장 명예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라면 과부는요 그 당시 고아와 과부가 가장 사회에서 밑바닥 인생이었어요.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이에요. 남편이 있어서 남편이 돈을 벌어와야 되는데 남편이 없는 과부는 일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이 과부는 아주 모든 면에서 재판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자 그런데 이 과부가 있어서 뭘 했냐하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했어요.
자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 과부는 아마 유대인이었겠죠. 다른 뭐 언급이 없으니까요? 가난한 유대인 과부였는데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 과부가 이 송사의 문제를 들고 왜 이방인 판사에 갔을까? 하는 거예요.
왜 이방인 재판장에 갔을까? 먼저 유대 랍비나 원로들에게 가야만 하는 거거든요. 무슨 얘기냐하면 이미 이 과부는 허탕을 친 것입니다.
이 과부의 편에 서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이 유대인 과부가 오죽했으면 이방인이고 평판도 좋지 못한 뇌물이나 받는 판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겠느냐 하는 것이죠.
여러분 이 본문에 나오는 과부 이 과부는요 바로 가장 불쌍하고 가장 불쌍하고 무력한 우리의 모습 우리 인간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과부에게는요 어떠한 사회적 보장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사회적인 냉대만 있었죠. 차디찬 시선과 대접만 있었어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연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 과부가 재판장을 찾아가서 그것도 자주 원한을 풀어달라고 했을 때는 그 문제가 단순히 해결되면 좋고 아니면 많은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반드시 해결돼야 되는 문제였어요.
자 그런데 그렇게 뭐 찾아가서 부탁을 하니까 이 사람이 생각을 하는 거죠.
4절입니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냐
자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죠.
자 내가 아무리 아무리 정말 이방인이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계속 번거롭게 하니까 이 원한을 풀어줘야지 라고 생각했다는 거잖아요.
자 이 판사는 처음에는 이 과부 요청받았을 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뭐 당연하죠. 뭐 그런 청을 들어주면 끝도 없구요. 뭐 그 과부가 돈을 줄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많이 바빴겠죠.
그러니까 이렇게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이 재판관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 이 과부와 같은 이들의 요구를 못 들은 체하는 우리를 보여주는 모습이죠.
자 그런데 여기서 과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뭐였냐하면 재판장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밖에 없었어요. 사람을 무시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자 그렇게 계속 찾아가니까 재판장은 더 이상은 이 감당할 수가 없어서 야 내가 너무 번거롭다 그래서 그 청원을 들어줬다라는 얘기죠
자 그러면 이제부터 이제 우리가 이 이야기를 좀 풀어보길 원하는데 과연 그러면 이 이야기가 무조건 기도만 하면 다 들어준다.
그러니까 기도만 하면 너희 다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냐 일단 아니다 라고 했죠. 왜 아닌가 먼저 여러분 과부라고 하는 주인공에 주목해 봅시다
과부는 누굽니까? 남편을 잃은 사람이에요.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잃었는데 그냥 잃은 게 아니죠. 원수가 또 나와요.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이 있어요.
뭐냐 하면 내 남편을 이 원수가 죽였든지 빼앗아 간 거죠. 이 원수 때문에 내 남편을 잃어버린 거죠. 그래서 나의 원한이 있잖아요. 지금 과부의 소원이 뭐냐하면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성공도 아닙니다.
내 바램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원한을 풀어 달라는 게 이 과부의 소원이에요.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그래서 이 핵심은 소원 성취가 아니라 원한을 풀어주는 것 이것이 핵심인 거죠.
여러분 노란색으로 한번 표시해 보세요.
3절 마지막에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자 그런데 과부가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이건 뭐냐하면 남편을 잃어버린 거죠.
이게 뭘까요? 바로 1절에 나오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즉 낙심하는 때가 언제냐하면 바로 우리가 신랑 대신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라는 거예요.
신랑 대신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교회가 과부가 되는 때 그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실 때죠 자 그때의 내 원수 내 원수가 누굽니까 나의 죄악이 될 것이고. 나의 대적인 사단 마귀가 되겠죠.
이 사단 마귀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즉 이 땅에서 내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내 신랑 대신 예수님을 잃은 채로 이 땅에서 겪는 이 땅에서 시련과 아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재림의 날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이 땅에서 겪어야 될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바로 나의 원한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비유는 바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우리의 마지막 때에 당할 환란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자 그래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는 말이 3절에 1번 나오고 5절에 또 1번 나오죠.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즉 소원 성취가 아니라 원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라는 걸 다시 한번 알 수 있구요.
그런 다음에 7절에도 나오죠.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자 그런데 7절에 보시면 중요한 단어가 나와요.
하물며라는 단어여요. 하물며 이 단어가 중요하죠. 여러분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왜 드러냈느냐하면 불의한 재판장도 이렇게 찾아가면 어떻게 한다고요. 원한을 풀어준다는 거잖아요. 원한을 풀어준다.
그 말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왜 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이렇게 반문하기 위해서 지금 이 불의한 재판장을 등장시킨 것이죠.
불의한 재판장이라도 원한을 풀어줄 텐데 하나님이 왜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나님은 당연히 너희의 원한을 풀어주신다는 거죠.
그러면서 8절에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또 나오죠. 노란색으로 쳐보세요.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이번엔 속히지죠 그래서 원한을 풀어준다는 이야기가 3번 3절에 나오고 5절에 나오고 8절에 나옵니다.
즉 이 이야기는 소원 성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다 이걸 분명하게 할 수 있죠. 4번이나 반복되니까요?
자 그런데 그 원한을 풀어주는데 언제 풀어줍니까
바로 8절 마지막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즉 인자가 올 때에 마지막 때죠 재림의 날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바로 세상에서 끝까지 이 원한을 풀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끝까지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겠느냐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구해야 될 마지막 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의 모습은 불의한 재판장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에요. 불의한 재판관은 왜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줍니까 귀찮아서 번거로워서
그러나 그렇다면 하나님은요, 의롭고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구에 단지 귀찮아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신음에조차 귀를 기울이시는 분 우리의 작은 고통이라도 함께 짊어지기를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궁극적이고 가장 좋은 것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만나 그분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는가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주님을 믿고 이 땅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 주님의 통치 아래 살면서 또 그 통치가 완성되는 그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라도 이 세상의 가치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이미 붙든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계속 의지하면서 끝까지 붙들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가운데 우리 믿음을 보시고 반드시 이 땅 가운데서 참 연약해 보이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써 내려가실 거라는 것입니다.
누가가 이 복음서를 썼던 당시에도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당장 재림이 찾아올 것만 같았는데 점점 재림이 늦어지고 있었구요.
사람들은 그래서 혼란을 맞이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이 비유의 말씀은 정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립이 늦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 바로 신랑을 빼앗긴 과부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그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풀어주실 것이다. 나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위로의 말씀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도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이 시대에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속삭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가 믿음의 본질을 지키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끝까지 우리의 믿음에 충실하게 살아갈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과연 세상에서 믿음을 보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어려워도 낙담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주님이 오실 그날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 그 사람들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이렇게 코로나19로 어려울 때 힘들 때 그러나 낙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항상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주님께 우리의 삶을 붙들어 매는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 성민 가족들을 하나님은 바라보시면서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은혜와 은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바로 남편을 잃은 예수님을 잃어버린 교회에 그 원한을 풀어주시는 마지막 재림의 날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는 그날을 우리에게 반드시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는 이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과부처럼 열심히 기도하면 매달려 기도하고 무조건 기도만 오래 하면 이 불의한 재판장이 귀찮아 들어준 것처럼 하나님도 들어준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기도 만능주의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이 땅 가운데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많은 박해를 당하고 많은 신앙의 위기를 맞이하겠지만,
그러나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결국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우리의 믿음이 빛을 발하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맞이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의 이야기임을 소망의 메시지임을 다시 저희는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예수님을 잃어버린 과부와 같은 마음으로 저에게 가슴을 치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실 그날을 기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돈과 명예와 성공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예수님의 오심 예수님의 공의와 사랑 그분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는 것 하나님 나라가 정말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 저희들이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릴 때에 오직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서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그날이 속히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지금 많이 어렵고 여러모로 힘들고 낙담되는 이때에 저희들 다시 한번 하나님 붙잡고 일어나 소망을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지켜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그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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