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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함박눈 - 남진원 시 전집 9.
눈
남진원
눈이 내리면 때맞춰 장작을 태운다
마른 장작 더미에서
불꽃이 튀면
좀 더 부푼 눈이 내리고
길에선 나무들도 잠에 취한다
장작이 타면서 그 냄새에
눈도 취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꿈꾸게 하는
눈들의 축제
마을 길이 사라지면서
내 마음엔
하얀 새 길이 난다.
눈
남진원
눈이 내린다
들과 산
비워진 나무들 위로 …
내리는 눈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미련을
내려놓으니
내 마음도
눈처럼
하얀
멋이 난다
눈
남진원
산과
들,
온통
하얀
고요
눈
남진원
하늘엔 기쁨이
하도 많아서
땅까지 속속들이
흘러 넘치나
하늘엔 사랑이
하도 많아서
땅까지 속속들이
내려주시나
눈
남진원
한밤에 포실포실
눈이 내린다
누가 들을까 봐
조용히
조용히
누가 깰까 봐
가만히
가만히
나뭇가지마다
꽃망울 단다
하얀 꽃망울을
그리고는
온 산
온 마을
소롯이 안겨,
포근포근 아기처럼
눈은
꿈을 꾼다.
눈
남진원
줄이 끊어진 것이다.
아니
매듭이 한꺼번에 풀린 것이다.
세상만사 쯤 한번
마음 밖에다 훌쩍 던져놓고
푸짐하게 쌓이는
눈이나 보라 한다.
하기사
봄부터 가을까지
어디 넉살좋게 늘어진 잠이나
제대로 자 봤던가.
삶의 질긴 고삐를
오늘 만이라도 풀어 놓고
그저 푸근하게
잠자듯 눈이라 보라 한다.
꿈꾸듯 눈이라 보라 한다.
눈
남진원
야들아
하늘의
층계를
밟으며
천상의
주인이
오신다.
눈
남진원
눈이
내린다.
산과
들
마을
마을
일체 무소유
길마저 없애며
하얗게 어리석어진다
눈
남진원
전엔 눈이 오면
큰 선물처럼
반가웠다
왜
이다태졌나?
요즘은 폭설에
교통대란, 시설물 파괴, 농작물 피해 …
오염된 공기
오염된 바다처럼
방해꾼이 되곤 한다.
눈과 잉크 물
남진원
눈 오는 밤이면
꿈 하나에 말 하나 씩 매달고
눈을 맞았다. 사랑이었다.
그 날,
외투에 날아들던
회색빛 바람소리
그대 숨결.
내 사랑은
검정 잉크 물이다
이렇게 눈이 올 듯한 밤
이렇게 눈이 오는 밤
차창을 스치는 나무처럼
스며드는 기쁨
밤 12시
기적 소리 속에
눈물 이별 고독의
긴 입맞춤
눈 오는 밤이면
내 사랑은 지금도
진한 검정 잉크 물이다.
하얀 세상
남진원
간밤에 잠 안 자고
눈이 내려
은 세상이 되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엄마 따라
할머니댁에 가는 길
사푼사푼
눈을 밟고 가라고
지금도 눈이 내리고
우리 소라
눈길을 걸어가니
겨울 요정이네
털모자와 외투와 작은 구두가
눈속에 춤추듯
걸어가지
우리 대순이 밝은 웃음을
발자국에 찍으며
걸어가고
요만큼 엄마가 뒤따라 걷고
그 옆에 내가 걸어가고
우리 네 식구
눈사람 되어
하얀 세상에 나왔구나.
눈길
남진원
눈에 덮인 길을 걷는다
아스팔트 검은 길만 걷다가
하얀 눈길 위에 서니,
환해지는
마음
한 발 한 발
걸어가다가 보니
신선이 따로 없다,
내가 신선이 되는구나.
눈길
남진원
새하얀 눈길에 내 맘도 눈부셔라
세상이 너무 고와 걷기가 미안하다
동생과 손잡고 걷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눈 꽃잎
남진원
아침부터 눈이 날린다
생일을 축복하기 위해 아내가 눈으로 꽃잎을 날린다
전 같으면 미역국 끓여 같이 아침을 먹었을 텐데
미안한 가 보다 2009년 11월 2일 아침, 병원에서 전화로 눈 소식 전할 때와는 달리
오늘은 직접 손에 눈꽃잎 들고 흩뿌린다
하얀 눈꽃잎으로 축하의 메세지를 보낸다
신혼 때처럼 개굿하다
( *개굿하다:개구장이같다 )
( 2013. 05.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눈 날리는 날
남진원
산간에서라도 제멋에 겨워 흩날리는 눈 보기가 쉽던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정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외로움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하염없이…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2023. 5 )
눈 내리는 나라에서
남진원
차가울수록
빛나는
백금 갑옷
어디에서고
당신의 영혼은
희다
그대 꿈꾸는
여기
雪國의 땅
하고 싶은 말을
겨울나무에
꾹꾹 눌러 붙이는
이
쓸쓸한 악수
( 1991. 10. 30. 아라리문학 10집)
눈 내리는 날
남진원
방터골 방안에서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오는 게 아니다
이리저리 천천히 …
멋대로라는 말이 실감나듯
내린다
눈이 참 평화롭다
눈이 평화로운데, 내가 한없이 평화로운 것도 평생 처음이다
( 2024. 3. 7.)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
눈 내리는 날
남진원
오랜만에
철없이 눈이 내린다
멋대로 날리니
싫지 않다
마음에 설렘이 식었는데도
조금은 들뜬다
겨울 지붕이 하얀 젓가락 같은
고드름을 만들 즈음
방안에 데워놓은
찻물처럼
고요함이
따뜻해졌다.
눈 내리는 날
남진원
흩날리는 흰 눈발은 그리움의 하늘 음악
누가 듣는 가락인가 휘몰이로 내려온다
볼수록 아득해지니 석 잔 술에 취했네
둥기둥 거문고 소리 마음으로 듣는 오후
어질도록 맑은 음표 세상 고뇌 다 덮어라
그리고 우리네 옹이, 희디희게 감싸게나
( 2019. 12. 31. 남진원 산문집 ,
『달빛에 싼 청산 한 채』‘아내의 긴 여행’ 중에서. )
눈내린 마을을 지날 때면
남진원
승용차 안에서
눈 내린 마을을 지날 때면
그냥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원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비올 때나 바람 불 때면
못 느끼던 감정이다
비올때나 바람 불 때엔
전혀
궁금하지 않던 집들이,
눈을 이쁘게 이고 ㅇᄂᆞᆽ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불현듯
찾아가서 보고 깊다
어단 이들이 살고 있을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모든 게 궁금해진다
눈 내린 마을을 지날 때면
무작정
눈 덮인 집들을 방문해 보고 싶다
( 2025년 2월 초, 국립번역문학원 탐방 차, 서을을 갈 때, 평창 눈 온 마을을 지나며..... )
첫눈 내리는 날
남진원
함박눈 나풀나풀 첫 눈 날리는 날은
마냥 마냥 즐거움에 길을 걸어요
살며시 팔을 끼고 함께 걷던 사람
꿈꾸듯 꿈을 꾸듯 행복했던 날
좋아라 그날 다시 생각하면서
추억의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함박눈 나풀나풀 내리는 날은
마냥 마냥 기쁨에 길을 걸어요
마주 보며 팔을 끼고 함께 걷던 사람
발자국 세며 세며 행복했던 날
촣아라 그 날 다시 떠올리면서
그리운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 2021. 5. 16. 강원문협 카페 ‘가요방’ )
눈 내리는 밤
남진원
눈 내린 밤은 하얗다.
흙이 추울까 봐
하늘이 눈 이불 덮어주었다.
나무도 하얗고
집도 하얗고
흙의 마음도 하얄 것 같았다.
눈을 보다가보다가 …
잠들면 내 꿈도
새하얄 것 같았다.
흙이 이제야 포근한 잠이 든 것 같았다.
(강원아동문학43집. 2018년)
눈 내리는 밤
남진원
일찍이 혼돈의 춤 저렇게 신명났나
거문고 음률 같은 눈발이 내리는데
덩달아 가벼워진다 그늘지던 내 아픔
오늘은 이별마저 맛들어 그리워지니
벗이여 한 시진만 망연자실 몰입해 보세
슬픔도 함께 앉으니 풍요로운 賓客이네
아득히 휘날리며 길을 모두 지워라
하늘 속내 몰라도 눈이 내려 좋은 이 밤
따끈한 술 한 잔으로 삶은 이리 데워지니…
(2020. 전자책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 시집『무소유의 냄새』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2016.)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별전시], 태원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눈 내리는 밤
남진원
눈이 내립니다
이런 밤은
밤이 아름답습니다‘
눈이 내립니다
이런 밤은
밤이 평화롭습니다
고요하
나도 아름다워집니다
기상이변으로 눈 오자 않는 밤에도
나는 눈내리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면 한없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밤 깊도록
소리 없이 눈이 내립니다
조용히 눈 내리는 이 모습보다
더 신비로운 시는 없습니다
이런 밤엔
눈을 맞으며 그리운 사람이
올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하니까요
그렇기에, 나는
가장 큰 하늘의 선물을 받는 밤입니다
눈내리는 밤
눈내리는 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너무 좋아서
속수무책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너무 그윽해서 독한 약에 취한 듯
은밀히 들떠 있습니다.
(2022. 1. 9)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2023. 5 )
눈 내리는 밤
남진원
방터골에 눈이 오면 고향집이 다가온다
하얀 나무 하얀 집들 모두가 순백의 나라
이런 날 잠들 수 없어 꿈만 꿨지, 하얀 꿈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눈 내리는 밤
남진원
눈 내리는 밤은 하얗다
나무도 하얗고
집도 하얗고
잠 못드는 내 마음도 하얗고
눈을 보다가 보다가
잠들면 내 꿈도
새하얄 것 같다.
( 시집, 『할머니의 등잔불』<2009>, , 남진원문학전집 6권<2025.5.> 수록 )
눈 내리는 산골의 밤
남진원
1.
부엉이 소리가 멀어지더니
하얀
눈이 옵니다.
살그머니 옵니다.
산속이라 살그머니 살그머니 옵니다.
눈오는 마을은
얌전합니다.
모두 다 눈이와서
얌전합니다.
하얀 나라 만드는
함박눈이 고마워서
산골의 밤은 산골의 밤은
동화속처럼
예쁜 잠이 듭니다.
2.
부엉이 소리가 멀어지더니
하얀
눈이 옵니다.
사쁜이 사쁜이 옵니다.
산속이라 사쁜이 사쁜이 옵니다.
눈오는 마을은
꿈을 꿉니다.
모두 다 눈이와서
꿈을 꿉니다.
하얀 나라 만드는
함박눈이 예뻐서
산골의 밤은 산골의 밤은
동화 속처럼
깊은 꿈을 꿉니다.
(2018. 2. 18.)
눈 내리던 날
남진원
파견 대장 따님들은 모두가 빼어났지
그 중에 셋째 딸은 이름도 고운 영희
하이얀 칼라의 소녀, 눈을 함께 맞았지.
눈 내린 아침
남진원
간밤에 눈 내린 위로 해가 비치니
천지가 순간에 밝아졌다.
소나무와 숲들이 청정하고
산이 禪定에 들었다.
물소리는 하얀 목탁이다.
눈 내린 후
남진원
오랜만에
눈 내린 후 거리를 걷는 젊은이들
발걸음에
기쁨이 묻어난다
봄의 문턱에서, 모두 들
하늘로부터 선물 받은 눈, 눈, 눈 …
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보기만 해도
이렇게 즐겁다
저 젊은이들은 자신의 발걸음이
축복받은 걸음인 줄을
알고 있을까.
( 2025. 3. 3 )
**
2월 28일 시내로 짐을 옮겼다. 강릉 시내는 오랫동안 비도 눈도 오지 않았는데, 지난밤에 눈이 내렸다. 瑞雪이다. 젊은이들이 눈길을 걸어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눈 녹는 초가집의 낙숫물 소리
남진원
초가집 낙숫물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봄이 오는 낭랑한 음악 같아서
꿈꾸듯 마냥 행복해지는 마음
꺼칠한 세상살이에서
따뜻이 만나는
오래도록 사귄 친구의 목소리 같은
늦은 겨울 듣던,
눈 녹는 초가집의
낙숫물 소리
어느새 이 시대는
우주의 땅으로 떠나버린
친구의 적막한 소식처럼
아득한 전설이 되었지만
아름다운 낙숫물 소리
잠들었던 작은 우주를 깨우는 낙숫물 소리
오래된 녹음기를 찾아 다시 틀 듯이
고독한 산업화 시대의 한쪽을 열고
추억의 물방울 노래인 너를 찾아내어
고요히 고요히 마음의 귀를 기울인다
( 2025. 12. 11.)
눈사람
남진원
누가
만들었나
하얀 눈사람
눈을 굴리던 아이들
동그란 웃음
하얀 눈 속에
쏘옥 쏙 박혀
길가에 싱글벙글
눈사람
하나
겉과 속
똑같이
한 빛깔이라서
발가벗었지만
부끄러움이
없대
배가 뚱뚱하여
걸어 다니면
참 웃길 거다.
그렇지만
너랑
친구가 되고 싶은 걸.
( 「아름아리」6학년용. 어린이잡지, 1998. 1. )
눈사람
남진원
눈사람도
아기 배었다.
엄마처럼
뚱뚱하다.
너도 엄마처럼
걸어 다닐 수 있니?
너도 엄마처럼
아기가 움직이는 걸
들을 수 있니!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눈사람
남진원
내 친구
눈사람
하얀
내 친구
밤에도 밖에서
나를 지켜줬어!
친구가 옆에 있으면 기뻐요, 신나기도 해요. 놀 친구가 없으면 외로워요. 눈사람처럼 우리를 지켜 주는 친구가 있다면 참 좋겠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고 하네요. 마음을 이해해주는 친구를 사귀어 보세요.
눈사람
남진원
친구, 친구
눈사람 친구
눈사람도 동생을 갖은 우리 엄마 닮았어.
엄마가 나를 지켜주었듯이
밤에도
꼼짝 않고 밖에서 나를 지켜줬어!
추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밤새도록 우리를 지키고 있었어.
♣ 친구가 옆에 있으면 기뻐요, 신나기도 해요. 놀 친구가 없으면 외로워요. 눈사람처럼 우리를 지켜 주는 친구가 있다면 참 좋겠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고 하네요. 마음을 이해해주는 친구를 사귀어 보세요.
눈썰매
남진원
함지를 들고 눈 덮인 밭 언덕을 올랐다
함지 안에 들어앉아 내리달렸지
스르르르 내려가는 재미
뒹굴며 자빠지는 재미
눈 벌에 저만큼 뒹구는
함지 썰매 따라
웃음도 대굴대굴 구르며 따라갔지.
손이 발갛게 언 후에야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바지에 묻은 눈을 털며
야단치는 대신
감기 들까 걱정이 더 크셨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눈 오는 밤
남진원
눈이 내린다
함박, 함박
,
함박눈이다
눈을
보고 있으니
그때 안 사람 무릎 베고 누웠을 때처럼
좋다
눈 오는 밤
남진원
일찍이 혼돈의 춤 저렇게 신명났나
거문고 음률 같은 눈발이 날리는데
덩덜아 가벼워진다 그늘지던 내 아픔
오늘은 이별마저 맛들어 그리워지니
벗이여 한 시진만 망연자실 몰입해보세
슬픔도 함께 앉으니 풍요로운 賓客이네
눈 오는 밤
남진원
1.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밤은
멀리 떠난 동무 얼굴 자꾸 생각나지요
정다워라 정다워 보고 싶은 친구야
속삭이듯 하얀 눈이 송이송이 오는 밤
2. 배꽃 같은 눈송이가 날리는 밤은
멀리 떠난 동무들이 다시 올 것 같아요
그리워라 그리워 보고 싶은 친구야
내 맘에도 하얀 눈이 송이송이 앉는 밤
( 『감자』3집 1988. 6.)
눈 오는 밤
남진원
[1]
눈 오는 밤
고운 임 고운 임
오시는 밤
그리움이 예뻐라
그리움이 예뻐라
이 밤은 이 밤은 멋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남몰래 고요해져요
고요해져요
[2]
눈 오는 밤
하얀 설레임 설레임
다가앉는 밤
기다림이 예뻐라
기다림이 예뻐라
이 밤은 이 밤은 멋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남몰래 두근거려요
두근거려요
(2022. 1. 31.)
눈온 아침
남진원
날마다 늦잠 자던
잠꾸러기인 내가
눈 내린 아침
살짝 눈 떴다
눈이 내리면서
나를 깨웠구나
마음을 이쁘게 단장했다고
뽐내려고
나를 깨웠구나
( 2022. 서울문학 봄호)
( 2025. 4. 5. * 나의 삶 나의 문학, 남진원문학전집 1권 수록 ])
눈 온 아침
남진원
눈 온 아침 마을은 신비의 나라
마을이 모두모두 동화의 나라이다
하늘나라에 누가 누가 있기에
나무마다 눈꽃을 피웠을까
하늘나라에 누가 누가 있길래
가지 마다 흰등을 달았을가
하늘 나라에 누가 누가 있길래
가지 마다 기쁨을 뿌렸어라
하늘 나라에 누가 누가 있길래
곳곳마다 축복을 주셨어라
눈 온 아침 마을은 신비의 나라
마을이 모두모두 꿈의 나라이다
( 「솔바람」 55호. 1990. 2. - 2021년 7월 29일 수정 )
눈 온 아침
남진원
눈 온 아침 마을은 신비의 나라
마을이 모두 모두 동화 속 세상이다
하늘나라에 누가 누가 있기에
나무마다 눈꽃을 피웠어라
하늘나라에 누가누가 있길래
가지마다 흰 등을 달았어라
하늘나라에 누가누가 있길래
거리마다 기쁨을 뿌렸어라
하늘나라에 누가누가 있길래
곳곳마다 축복을 주셨어라.
눈 온 아침 마을은 신비의 나라
마을이 모두 모두 꿈 속 세상이다
( 1990. 2. 솔바람. 2021. 7. 29. 수정 )
눈 온 아침
남진원
헛된 울음과 웃음
욕지거리들이
함몰된 채
나무여
저 순교자의 손처럼
아침이 빛나고 있다.
하늘은 보고 있는가
꿈꾸고 싶은
허전한 얼굴을
성냥팔이 소녀가
땅의 아침을
손시린 채 받들고 선
이 空腹의 城에
누가
성을 지키는 빛을 뿌리는가
햇살이 무너지도록 쏟아지는가.
(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
눈 온 아침
남진원
천지가 순간에 밝아졌다
소나무와 숲들이 청정하고
모두
禪定에 들었다
물소리는
하얀 목탁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2023. 5 )
눈 온 우리 마을
남진원
하얀 눈이 마을을
신비스러움에 빠지게 만들었네
나뭇가지마다
휘어지도록
흰옷을 두툼히 입고 섰구나
기분이 좋은가 봐
환하게 웃는 해님
우리 마을이
오늘처럼
뽐내고 선 모습이 있었나
하얀 옷 입은 내 동생이
사박사박 걸어 다니니
오매!
움직이는 눈사람이네
어제 종일 눈 내리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아름답고 눈부신
선물을 안겨주려고 그랬구나.
(2024. 1, 21)
2024년 1월 21일이다. 엊그제 밤부터 눈이 내렸다. 어젯밤까지 눈이 내린 모양이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선물을 내려준 같았다. 시를 쓰지 않으면 문인이 아니지.
동시 한 편을 내놓았다.
눈 온 후의 아침
남진원
헛된 울음과 웃음
욕지거리들이
함몰된 채
나무여
저 순교자의 손처럼
아침이 빛나고 있다
하늘은 보고 있는가
꿈꾸고 싶은
허전한 얼굴을
성냥팔이 소녀가
땅의 아침을
손 시린 채 받들고 선
이 공복의 성(城)에
누가
성을 지키는 빛을 뿌리는가
햇살이 무너지도록 쏟아지는가
* 2000년 『해안문학』 13집(당시 제목은 ‘눈오는 아침’인데 잘못 표기된 제목임에 바르게 고침)
눈이 내리네
남진원
눈이 내리네. 눈이 내리네
첫정 같은 부신 부신 눈이 내리네
하얀 교복 칼라의 그 소녀가
다가오며 손 흔들던 하얀 그 미소가
추억의 송이 송이 눈물 되어 흐르는가
팔을 끼고 함께 걷던 그 날의 눈이 내리네.
외로움도 함께 내리네.
눈이 내리네 눈이 내리네
사랑 같은 하얀 하얀 눈이 내리네
머리카락 흩날리던 그 소녀가
멀어지며 손 흔들던 하얀 그 미소가
추억의 송이 송이 눈물 되어 날리는가
마주 보며 함께 걷던 그 날의 눈이 내리네.
그리움도 함께 내리네.
( 2016. 12. 27.화 )
눈이 내리다
남진원
한동안 계속되던 섭섭한 마음이 낮이 되자 말끔히 가셨다.
몇 군데 흰 콩알 같은 것이 여기 저기 날렸다. 자세히 보니 눈이었다.
“오, 눈이구나!” 확신에 외쳤다.
11시 무렵 마구 쏟아지며 눈은 날렸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어도 나는 열심히 내다보았다.
눈을 받아들이는 산천초목이 성스럽게 보였다.
세상에게 하얀 옷을 입히고 있는 눈이 신기했다.
눈이 자꾸 내릴수록 난로에 장작을 더 넣었다.
오랜만에 차를 아주 천천히 마셨다.
한동안 길이 막혀도 그저 좋았다.
눈이 내리면
남진원
눈 함께 그리움 함께 외로운 채 스며드는
그대, 발목 시린 흰 눈이 오고
흰 눈이 오고
가난한 사랑의 잠을 이리 섧게 깨우시나
정작, 눈물처럼 맑은 눈이 내리는 날은
끝도 모를 출렁임만
어둠 보다 깊어가고
멀어서
아득한 이여
살찐 반달로 떠라
반달로
( 1989년 1월호, 『현대시학』)
눈이 내리면
남진원
눈이 내리면 반달이 뜰 거다
뿌연 반달로 가슴 젖는 나뭇가지에
닿을 듯 말 듯
쌓였던 외로움이
눈과 함께 외로운 채로 기대오는 걸
보고 싶다
하늘에 뜬 허공인냥
옆구리 한쪽이 비어
이 자욱한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어깨가 시린 어둠이 몰려오면
이별에 익숙한
우리들의 눈
그 숨죽이며 쌓이는
허전한 자리
꿈도 깊어진 불빛 아래
눈이 내리고
목이 아프게 흔들리는
안갯빛 자욱한 그리움만
끝도 모를 출렁임으로 깊어가는데.
눈이 내리면
정작, 눈물보다 맑은 눈이내리면
서글픈 별빛인냥
겨울을 사랑하는 나무는
얼마나 더
아득하게 멀어져 있어야 하는가
눈이 내리면
저 어둠보다 고요한 눈이 내리면
그리움만 한 백년
반달로 떠라
살찐 반달로 떠라.
( 1989. 4. 25. 『관동문학』 2집)
눈이 내리면
남진원
눈이 내리면
때맞춰 장작을 태운다
마른 장작 더미에서
불꽃이 튀면
좀 더 부푼 눈이 내리고
길에 선 나무들은 잠에 취한다
장작이 타면서 그 냄새에
눈도 취한다
소용없는 일들을 꿈꾸게 하여
더욱 들뜬 눈들의 축제
마을 길이 무너지면서
내 마음에
하얀 새길이 난다
하얀 길에
꽃사슴 발자국이 나고 있었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눈이 내린다
남진원
고향집,
고향집에
눈이 내린다
싸리울, 울타리를 쓰다듬는
어머니 손길 같은
눈이 내린다
장독대 위에도
소복소복
멍멍이
내달리던 길 위에도
함박함박
평화로운 잠이 드는
노오란
초가
할머니 옛 이야기
깊어가던
밤처럼
고향집,
고향집에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남진원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은 기쁨
하얀 눈 속엔 웃음이 있나 봐
아이 좋아라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니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절로절로 웃음이 흐른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은 사랑
하얀 눈 속엔 노래가 있나 봐
아이 좋아라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니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절로절로 노래가 나온다.
(2021. 7. 27.)
눈이 내린다
남진원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니
풍금소리가 들린다
눈이 내리니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온다
하얀 눈 하얀 눈 하얀 눈 …
하얀 눈은 내리면서 마음속에다 음악을 선물해 준다.
난로속의 장작長斫 나무가
조용히 타들어가고
나는 동생과 함께
털모자를 쓰고 은그릇에 눈을 담았다.
(2019. 11. 20. 아동문예 2020. 1,2월호 발표)
눈이 내린다
남진원
집에서 떨어진 월대산을 오른다. 눈이 내리니 제주 견(犬)의 털처럼 풍성하다.
녹슨 쇠꼬챙이 같은 마른 풀과 거친 나뭇가지들이 눈을 맞으며 둥글어지고 두툼해진다.
절망과 고뇌도 잠시 침묵으로 덮이는 시간이다.
그저 할 일 없는 듯이 걷는 나처럼 풀풀 눈이 내리니 좋다.
산을 오르는 길들은 눈을 쓰고 와불(臥佛)이 되었다.
아내가 누워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에, 이런 날 눈도, 나도 편안함에 빠져 있는 걸 아내는 안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펄펄펄, 눈이 내린다
남진원
기쁜 일이 없어
심심했는데, 야! 펄펄펄 눈이내린다
함박눈이야함박눈이야 ……
두 손에 눈을 받다가
서로 머주보며 소리 지르고 까불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우리 맘 알고 있었어!
암, 암!
우리를 마구 마구 기쁘게 하는 눈들아!
오늘만큼은
멋진 엄마보다 더 멋진
너희들이
최고의 기쁨조야!
기쁨조!
아이들의 웃음이
펄펄 날아다닌다
, 눈보다 더 하얗게 날아다닌다.
( 2025. 12. 13. )
눈이 오던 밤
남진원
일찍이 혼돈의 춤 저렇게 신명났나
거문고 음률 같은 눈발이 날리는데
덩달아 가벼워진다 그늘지던 내 아픔
오늘은 이별마저 맛들어 그리워지니
벗이여 한 시진만 망연자실 몰입해 보세
슬픔도 함께 앉으니 풍요로운 빈객이네
아득히 휘날리며 길을 모두 지워라
하늘 속내 몰라도 눈인 ofu 좋은 이 밤
따끈한 술 한잔으로 삶은 이리 데워지니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2023. 5 )
눈이 오셨어
남진원
기침도 없이 오셨구먼
밤 사이 부지런히
默言 하나를
서로 사이에 두고
왼종일
그대와 내가
마주 앉았네 그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늦겨울 아침
남진원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아침
지붕엔 토독토독 겨울이 헐리는데
볕 묻은 흙담 밑에서 봄은 자리 트는가
( 1976. 3. 1976년12월 <샘터시조상> 수상작)
( 1982. 12. 10 동시집 『싸리울』)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 남진원문단 51년사. 제1권. p. 31.)
늦겨울 아침
남진원
아지랑이 다문다문 볕이 소복 쌓이는 곳
거기 내 살 네 살 왁살스레 심어놓고
파릇한 봄꿈만 꿀래 새로 돋는 움을 볼래.
( 1990. 11. 30. 『아라리문학』 9집 )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산촌에 눈이 오니
남진원
눈이 자부룩하니 길이 묻힌다.
사립문 없고 보니 문 닫을 일도 없다
애초에 없던 길인데 지워진 듯 어떠리.
눈 오면 반가운 이에게 전화하자 약속했는데
정작 마구 눈이 오니 입과 손 다 묶였다
행여나 이 즐거움이 새어날까 봐 서지.
산촌에 눈이 오니 신흠의 詩句 떠오른다
‘柴扉를 여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이시리.’
이 寂寂 백설의 그윽함 밤 깊도록 함께 하네.
거문고 한 두 줄은 눈(雪) 속에서 虛로 듣고
佳女는 마음 밭에 情으로 律 띄우니
내 곁에 정겨운 친구는 薄酒 한잔 최고다.
겨울꽃
남진원
봄엔 봄의 꽃이 피고
여름엔 여름 꽃이 피고
가을엔 가을꽃이
철마다
고웁게
피어나지만
겨울엔 겨울대로
하얀 눈꽃이 핀다
진달래보다도 더 고운
백합보다도 더 흰
코스보스보다 더 청순한
눈꽃이
나무에 내려와
꽃나무 되고
꽃밭에 내려와
꽃잎이 되고
우리들 마음 속에
마음 꽃 심는
겨울엔 겨울대로
하얀 눈꽃이 핀다
( 1975. 화전 국교 5학년 동시 문집, [꽃밭] )
江雪
남진원
하늘길 산길 모두 자취가 끊어지고
눈 내리는 배 위에는 삿갓 쓴 도롱이 옹
낚싯대 드리워놓고 홀로 寂이 되었다
( 유종원의 한시 ‘강설’을 시조로 재창작한 작품 )
( 남진원 산문집,『달빛에 싼 청산 한 채』‘고독이 남긴 시인들’ 중에
겨울, 난설헌 고택
남진원
솟을 대문 열려 있어 조심스레 들어서니
고택의 겨울 바람 시린 채 다가선다
눈발도 내력 알았나 절름대며 쌓이고
백 매화 숨은 향기 혹독하여 맑던 시혼
한 시대 정제한 언어 이국까지 밝혔어도
어여쁜 스물일곱 살 꺾어지던 아픔이야 …
녹차 물 앞에 두니 가야금 뉘 데불었나
切腸의 恨을 풀어 가락가락 눕는구나
애절해 빛나던 슬픔 찻물 속에 휘어진다
(2020. 전자책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 2015. 제 22회 현대시조문학상 수상작)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겨울날
남진원
보리밥 시래기국 앞에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가난한
살림에도
웃음이 솟고
숭늉그릇
모락모락
깊어가는 정
질화로에선
잉걸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싸락눈
사락사락
깊어가는 밤
호롱불 밝혀놓고
글을 읽다가
할머니 무릎 베고
잠이 들었지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겨울 대관령 골짜기
남진원
눈 쌓인 대관령 골짜기
자부룩이 안개가 떠돈다
흰 애벌레 같은 자동차들이 기어 다닌다
학교 다닐 때 잘못을 저질러서
반성하며 복도를 걷는 아이들 같았다
어질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겨울밤과 할머니
남진원
눈이
소복이 쌓이는 밤입니다.
담요 속에 묻었던 손으로
온갖 따스함을 다 집어넣을 듯
나를 쓰다듬으시는 할머니
여름밤을 몇 개나 이어도 모자랄
얘기 주머니를 열어 놓습니다.
옛날에 옛날에 ….
이야기 소리 듣다가
문풍지를 울리던 바람도
스르르 잠이 들면
화롯가엔
이야기가 익어가고
톡톡 군밤이 익어가고
밖에는 연실
할머니 얘기 같은
포근한 눈이 내리는데
나는 어느새
양지쪽 같은 할머니 무릎에서
봄 꿈을 꿉니다.
(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 난 양말』, 계몽사. 1992. )
겨울 산
남진원
가끔은 일없어서 南窓에 눈이 간다
건너편 누운 殘雪 겨울 산은 安穩하고
나 또한 타산 없으니 보는 눈이 싱겁다
겨울 산집
남진원
눈을 뜨니
문 밖이 하얗다
자는 동안
눈이 찾아왔구나
방에까지 들어오지는 못한고
밖에서 기다렸구나
난롯불 피워놓고
라디오를 켠다
좀 차가워서
더 고요한 아침
추위가
신선한 벗이다
커피 향에
녹아드는
산뜻한 기운
담백한 시 같이
깃드는 평온
겨울이 아름답다
( 2022. 1. 24. 방터골에서)
겨울 산집
남진원
올 사람 없는 데도 문틈으로 내다본다.
폭설에 발 묶이니 적막한 산중 살이
그래도 귀 대고 듣지, 소식 같은 무소식
몇 며칠 퍼붓는 눈발 술 익고 밤 깊으니
꽃물 들어 아려오던 그날 情分 같았어라
흩날린 표음문자가 혼절한 채, 얼마였나.
이제는 난롯불 앞에 깨다가 졸다가 …
고요는 舊友인 냥 커피 향에 녹아드네.
무심히 깃드는 평화 이 담백한 집 한 채
( 2020 한국시조대사전 수록용 원고)
겨울 숲
남진원
Ⅰ
바람이 도끼처럼
날을 세워 패는 숲속
앙상한 나무들의
울음소리만 터뜨려놓고
살점도 다 뜯긴 달을
서천으로 몰고 간다.
Ⅱ
어둠은 빛난 상처
믿음은 굳은 약속
머리도 맞대인 채
마음도 껴안고서
해 하나 안으로 품고
온몸으로 견딘다.
Ⅲ
하늘의 뜻으로
눈은 내려 쌓인다.
보내고 맞는 이치
겨울은 아는지
눈 덮인 겨울 숲속에
하얗게 언 기도 소리.
( 「시조문학」, 1978. 여름,가을 합병호 )
(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삼환인쇄사. 1991.)
겨울 스케치
남진원
눈이
내린다
간간이
바람의 작은
기침 소리
산에서 내려오고
뿌연
낮달이
눈내리는 저 너머
생각 속에 잠겨 있다.
( 1985. 11. 7. 제2시집,『나비, 청산의 나비』)
겨울 아침
남진원
영하 이십도 꽁꽁 언 겨울 아침
이 추위 이기는 법 어머님은 아셨구나
된장국 보글보글 끓여 언 마음도 녹였다
(2020.12.31.)
겨울 아침
남진원
내 잠을 깨우느라고
새벽녘 할머니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먼지를 털어내었다.
그러면 살찐 송아지 울음이 문 안으로 들어오고
시린 발가락이 고운
새소리까지 들어왔다.
어머니가 끓이는 여물 냄새는
하얀 김과 함께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잉걸불에 담긴 화로가
방안에 놓일 즈음
문을 닫으시는 할머니
짚자리 깔아놓은 방안은
화로의 더운 불빛에 알맞게 데워진
산 공기 냄새가 났다.
너무 좋았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겨울 아침 새소리
남진원
추울수록
더
눈부시다
추울수록 더
해맑다
사는 일도
이렇다면야 ….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겨울 월대산에서
남진원
마른 나뭇가지 위로 눈이 내리더니
四圍가 고요하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로 소스라칠 일이
한두 번이었던가
눈 덮인 월대산에 오르니
담백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 문학세계, 2015. 11 )
( 2023. 1. 1.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겨울 유리창
남진원
희영이네 검정색 굴뚝이 안 보인다.
뒷산 밤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까치 소리도 얼어버린 가부다.
대신
유리창에
요술 궁전 한 채가 지어졌다.
궁전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
( 2025. 5. 남진원문학전집 6권, 시집, <할머니의 등잔불. 2009.> 수록)
이 겨울의 老木
남진원
동물이 썩으면 더러운 냄새가 나지만 노목은 오래되어도 악취가 없다
그래도 누가 기억이나 해 줄 것인가 마는, 저 혁혁한 회색빛은 푸르던 젊음의 전신이었던 것을
누군가의 톱날에 베어 던져진 채로 누웠는가 하면 구렁텅이에 처박힌 것, 어느 것은 흙에 묻혀 삐죽이 낡은 눈빛 같은 옹이를 내보이기도 하고
풍화된 몸뚱이들은 그늘진 모습으로 그렇게 아름다움이 쓸려나간 곳에 머물고 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무관심 속에 버려진 채, 나뒹구는 나무들이었지만
뉘 알았으랴
火木만큼이나 뜨거움으로 활활 번지는 노목의 불길,
냉기 도는 세상을 향해 뿜어내고 있었다
- 남진원 시집 [무소유의 냄새 ] -
겨울 잠
남진원
씨앗으로 꿈꾸고 있을 그대 언 땅속의 잠
가을이여, 햇빛도 추운
땅의 둘레 하늘의 둘레
끝 모를 외로움 구렁
또 몇 구빌 도는가
볼 것이다 깨어나라
잠만큼 수북한 꿈
떠도는 바람 재우고
봄을 틀어 앉히면
새잎 든 자리에 피는
은실 금실 아지랑이
(영동시조시문학회보 제7호, 1991.11.2.)
겨울 절집
남진원
눈 푹푹 내린
골짜기 기슭
절간
자북룩이
자부룩이
안개가 떠돈다
눈을 뒤집어 쓴
한 물건이 구물구물 들어온다
흰 애벌레다
( 2023. 1. 1.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겨울 지내기
남진원
산막에서
겨울을 지낸다
눈 치울 때를
빼놓고는
방구들에
누웠다
새소리
드문드문…
저들도 나처럼
할 일 없는 친구들이다.
겨울 창가에서
남진원
아직 추녀 끝엔
고드름이
달렸는데
눈을 감으면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고향의 봄 뒷동산
고요로이 일어서는
초록빛 산과 산
그 속에
어머니의 모습처럼
순하게 피는 진달래
한 줄기 두 줄기
녹색으로 번지는
새 울음소리 바람소리
아
고향의 버들피리 소리는
어디쯤에서 들려오는가
아직 추녀 끝엔
하얀 고드름이 달렸는데
고향을 찾는 내 마음엔
벌써 졸졸졸 졸졸졸
봄이 흐르네.
( 「아동문예」특선시, ‘책속의 시집’, 1982. 5.)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겨울 초입에서
남진원
가을이 지난 월대산
마른 입술처럼 꺼칠하다
흰 눈이 덮인다
- 생사를 다투는 일도 많았구나 …
그때마다 허둥대고 서두르기만 했었지 -
이제, 담백하게 사는 맛을 알았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겨울 한나절
남진원
햇빛이
종일
푸르니,
숲 사이 드문드문
쌓인 눈
내 눈을 맑게 한다
간간이 듣는
낙숫물 소리
은은한
보배로움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날이다
고요한 평화
남진원
제주 견(犬)의 풍성한 털처럼 눈이 내린다
가까운 산을 오르는 중이다
구부러진 쇠꼬챙이 같은 마른 풀과
거끌거끌한 나뭇가지들이
눈을 맞으며 둥글어지고 두툼해진다
절망과 고뇌도 여기에 오니 침묵할 수밖에 없나 보다
산을 오르는 길들은 눈에 덮여
편안한 臥佛이 되었다
그저 할 일 없는 듯이 걷는 나처럼
눈도 할 일 없는 듯
내 곁을 내린다 풀풀 내린다
天地가 고요한 평화에 빠졌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2025. 1. 11. 수정)
고요한 평화
남진원
아침에 눈 뜨면
커튼을 연다
어둠으로 덮인 사물들이
보인다, 아니 눈을 뜬다
멀리 건너편
소나무 아래에 쌓인
눈(雪)을 보는 게
나를 새롭게 한다
쌓인 눈과 들판을 보는
이
즐거움
요즘은
그저 신기하지 않은 평범한 날이
귀한 벗처럼
이리 좋다..
(2024. 2.4)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고향집
남진원
보리밥 시래기국 앞에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가난한
살림에도
웃음이 솟고
숭늉 그릇
모락모락
깊어가는 정
질화로에선
잉걸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사락눈
사락사락
깊어가는 밤
호롱불 밝혀놓고
글을 읽다가
할머니 무릎 베고
잠이 들던 집
( 1982. 5. 『아동문예』)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그때, 시골의 고향집에서
남진원
깨꽃 같은 눈 잎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포옥 마을을 감싼다
나는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빼꼼이 밖을 내다본다.
한 겹 한 겹 부침개를 부쳐놓듯이
눈이 자꾸 쌓인다
풍년 들라나?
윗방에서 할아버지 고드랫돌 넘기시는 소리 옆에
할머니 목소리도
눈발에 쌓여갔다
그때, 시골의 고향집에서….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공기 냄새
남진원
잠을 깨우느라고
새벽녘 할머니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먼지를 털어내었다.
살찐 송아지 울음이 문 안으로 들어오고
발가락이 고운
새소리까지 들어왔다.
어머니가 끓이는 여물 냄새는
하얀 김과 함께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잉걸불에 담긴 화로가
방안에 놓일 즈음
문을 닫으시는 할머니
짚자리 깔아놓은 방안은
화로의 더운 불빛에 알맞게 데워지고
방에는
새 공기 냄새가 났다.
너무 좋았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그 밤, 함박눈
남진원
그 밤
함박눈 맞으며 걷던 길
왼쪽 팔에다
마음 끼어넣던 그대 오른쪽 팔
다소곳이
눈길에 마음 길 까지 하나로 이어지던 길….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