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ambavnw(파랄람바노)
데리고 오다, 받아들이다, 영접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파랄람바노(Eur., Hdt. 이래)는 파라(parav)와 람바노(lambavnw: 취하다, 가지다, 받다)에서 유래한 합성어이다.
(a) 파랄람바노는 '자기에게로 데리고 오다(취하다), 인계하다, 이어받다', 인격 목적과 함께, 특별히 '동료로 받아들이다', 물질적 목적과 함께, '직책을 인계하거나 이어받다' 또는 통치자로서의 '지위를 인계하거나 이어 받다'를 의미한다.
(b) 파랄람바노는 더욱 특별히 '상속하다'를 의미하며, 지적인 것들, 역사적, 과학적, 자료를 상속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c) 파랄람바노는 신비 종교들에서 특별한 의식이나 비밀 등을 전수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이 경우 그 강조점은 초자연적인 계시보다는 구전을 통한 전달이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파랄람바노는 70인역본에서 약 4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라카흐(3947: 취하다, 데려오다, 인도하다, 창 22:3; 창 31:23; 창 45:18; 창 47:2; 민 23:14, 20, 27, 28; 삼상 17:31, 57; 대상 25:11)와 그리고 야라쉬(3423: 상속하다, 렘 49:1, 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파랄람바노는 신약성경에서 4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파랄람바노는 사람을 목적어로 취할 때(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만), '자신에게로(혹은 함께) 데려오다'(예컨대 친밀한 교제를 위해)를 의미한다.
신학적으로 중요한 구절들은 이 동사가 그리스도를 세상이 영접하는 것(요 1:11), 그리스도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것(요 14:3; 마 24:40 이하; 눅 17:34 이하)에 대해 사용된 경우이다.
(b) 사물을 목적어로 취할 때, 능동태는 직무를 '맡다'(골 4:17); '유업으로 받다'(바실레이안, 히 12:28)를 뜻한다.
① '토라에 대한 랍비의 해석의 유산을 종교적 율법의 규범으로 받아들이다', 막 7:4(정결에 대한 규율과 특별히 관련되어 나타난다).
② (바울에게서만 나타나는 용법으로) 한편으로 킵벨(받다)에 보다 가까이 부합하는 의미로서, 주의 만찬 제정과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한 기사같은 '일련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고정된 형태로 받다'(고전 11:23; 고전 15:1; 고전 15:3) 혹은 '그리스도교의 도덕률로 자리잡은 법률(즉 그리스도교의 Halakha)을 물려받다'(살전 4:1)를 나타내며, 다른 한편으로 원래의 헬라어 파랄람바노에 보다 더 근접한 의미로서, '종교적 삶의 지적·윤리적 내용을 받다', 계시를 받은 자로서의 바울의 개인적인 종교적 삶에(혹은 이런 삶의 창시자에, 갈 1:12) '애착을 가지고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서 그러한 삶을 물려받다'를 뜻한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이 삶이 어떤 의미에서 계시를 받은 인간으로서의 그가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이런 방식으로 그 자신이 깨달은 것이 아니라는 것과 다메섹 도상에서 이 계시를 주신 자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강조한다. 당연히 이 파랄람바네인의 내용은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전승에서 나온 규범일 수가 없다. 그것은 모든 의문을 완전히 면제받지 못한 어떤 역사적인 이야기에 종교적 확실성을 부여하는 내적이고 살아있는 믿음임이 틀림없다.
이런 이유에서 파랄람바노는 순전히 지적인 자료들을 받아들이는 것일리가 없다. 그것은 지적인 것 이상의 인간 존재의 핵심 부분 속으로 받아들임이다.
이 용어의 이와 같은 의미는 그 밖의 다른 곳에서도 그 배후에 깔려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만이, 갈라디아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받은 것에 관하여 제기되는 정당성에 대한 엄청난 주장, 즉 어떠한 가능한 실수도 완전히 배제된다고 한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갈 1:9; 참조: 살전 2:13), 또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한 회중들도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통하여 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타오르는 믿음 안에서 동일한 그리스도를 나누어가진다(골 2:6)는 확신을 이해할 수 있다.
이 파랄람바네인은 분명히 하나님 자신에 의한 것이다. 로고스 아크네스는 로고스 데우(살전 2:13)이다. 마지막으로 포스 데이 페리파테인("마땅히 어떻게 행할 것", 참조: 살전 4:1)도 파랄람바네인의 내용에 속하며, 그것은 순전히 전승에 의한 윤리적 가르침의 형식적 수용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와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파랄람바네인은 모범의 감화력으로 인해 자라나는 삶의 본질과 정신을 내적으로 이해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낸다(살후 3:6과 빌 4:9). 이러한 이해는 피스티스(믿음)에서,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연합에서 나오며, 따라서 그것을 얻는 것은 파랄람바네인 톤 크리스톤("그리스도를 받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골 2:6).
(참조: Delling; Walter Bauer; J. H. Thayer).
- 바이블 렉스 에서 인용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