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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라8장1~20절
제목 : 에스라와 함께한 사람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정착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에 동참하려고 모여듭니다.
1.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1~14절)
1) 계보의 서론(1절)
“[1]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본장 1절에서 14절까지는 아닥사스다 왕 때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제2차 귀환민의 수효입니다.
이 수효는 제1차 귀환민의 그것과(2:3-63) 비교하면 불과 1/3 가량에 불과합니다(본서 서론,'포로 및 포로 귀환의 역사' 참조).
4-14절에 나오는 가족명들은 '요압 자손'을 제외하고는 2:3-15에 모두 나옵니다.
단, 본문의 명단은 두 명의 제사장 명단과 다윗의 후손 이름으로 시작하는 특징을 보여줍니다(2절).
반면에 2장에서는 제사장 가계가 나중에 언급됩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로 1) 제사장(2a절), 2) 왕족(2b절) 그리고 3) 일반 백성들(3~14절)입니다.
2) 제사장과 다윗 왕조의 계보(2절)
“[2]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비느하스는 – 아론의 손자요(대상 6:3, 4), 엘르아살의 아들(대상 6:4)로서,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아비 엘르아살을 거쳐서 인계받았던 인물입니다(7:5).
따라서 이 사람의 자손은 보다 정통성있는 제사장 가문으로 자처할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혈통에 속한 제사장으로는 게르솜과 다니엘이 있습니다.
게르솜 - '피난처'의 뜻입니다.
이 사람은 한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였던 것같습니다.
이다말. – 아론의 말째 아들입니다(대상 6:3).
그의 후손은 정통성에 있어서 '비느하스' 가문보다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말'의 후손인 '엘리'는 대제사장 및 사사로서 그 명성을 날렸습니다(삼상 1:3).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윗과 솔로몬 초기의 아비아달을 끝으로 그 가문에서는 더 이상 대제사장이 나오지 못했습니다(왕상2:26,27, 35).
다니엘 - '하나님의 재판관'의 뜻입니다. 다니엘서의 저자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윗 자손 – 유다 왕가를 형성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중 제1차로 귀환했던 사람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는 스룹바벨이었습니다(1:8 ; 2:2).
핫두스 – 이 사람은 대상 3:19-22에 따르면 스룹바벨의 4대 손입니다.
만일 스룹바벨이 B.C. 560년 경에 태어났다고 하고 한 세대를 약 25년으로 잡는다면, 핫두스는 스룹바벨로부터 4대째이므로 그가 B.C. 458년에 에스라와 함께 왔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Fensham).
3) 일반 백성들의 계보(3~14절)
족장을 비롯한 일반 백성들의 계보가 제시됩니다.
(1) 바르스 자손 150명(3절)
“[3]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백오십 명이요 ”
바로스 자손 중 바벨론 생활을 청산하고 유다로 귀환하려고 자청한 자의 숫자입니다.
(2) 바핫모합 자손 200명(4절)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 2:6 주석을 참조하라.
스라히야 - '여호와는 뛰어나시다'의 뜻입니다.
엘여호에내 - '내 눈이 여호와를 향한다'의 뜻입니다.
(3) 스가냐 자손 300명(5절)
“[5] 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삼백 명이요 ”
야하시엘 - '하나님께서 보신다'라는 뜻입니다.
(4) 아딘 자손 50명 (6절)
“[6]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오십 명이요 ”
에벳 - '종'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를 갖는 '아브디엘'의 약칭인 듯합니다.
(5) 엘람 자손 70명(7절).
“[7]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요”
아달리야 - '여호와는 존귀하시다'의 뜻입니다.
여사야 -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의 의미입니다.
(6) 스바댜 자손 80명(8절)
“ [8]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팔십 명이요”
미가엘 -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입니다.
(7) 요압 자손 218명 (9절).
“[9]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십팔 명이요”
이들은 제1차 귀환에는 참여치 않은 듯합니다.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의 뜻입니다.
여히엘 - '하나님이여 영원 무궁하옵소서'의 뜻입니다.
오바댜 -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8) 슬로밋 자손 160명(10절)
“[10]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육십 명이요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니의 자손 슬로밋'으로 봅니다. 그 근거는
① 칠십인역이 이 같은 견해를 지지하며,
② 최초 귀환자들 중에 '바니 자손'이 있으며(2:10),
③ 4-12절의 귀환자 명단이 모두 조상의 이름, 가족의 대표 이름, 그
대표의 아버지 이름 등 세 요소가 함께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슬로밋'은 '평화로움'의 뜻입니다.
요시뱌 - '여호와께서 더하심'의 뜻입니다.
(9) 베배 자손 28명(11절)
“[11]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십팔 명이요”
2:11의 브배 자손과 동일합니다.
(10) 아스갓자손 110명 (12절).
“[12]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십 명이요”
학가단 - '작은'이란 뜻입니다.
요하난 -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이란 뜻입니다.
(11) 아도니감 자손 60명(13절)
“[13]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육십 명이요”
아도니감 - '나의 주께서 일어나셨다'의 의미입니다(2:13).
나중 된 자('아하로님') - 이것은 '오래 머물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아하르'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뒤에 처져 남아 있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여기의 '나중 된 자'는 아도니감 자손에 속한 가족들 중 마지막으로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가족의 우두머리를 가리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아도니감 자손은 한 가족도 빠짐없이 전체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셈입니다(Fensham).
엘리벨렛 - '구원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여우엘 -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이란 뜻입니다.
스마야 -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뜻입니다.
(12) 비그왜 자손 70명 (14절)
“[14]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
우대 - '돕는'의 뜻입니다.
사붓 - '주어진'의 뜻입니다.
2. 에스라가 찾는 레위 사람들(15~20절)
1)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 무리를 모음(15절)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 – 이것은 동쪽으로부터 흘러와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던 지류(支流)입니다.
이 지류가 유프라테스 강과 만나는 곳에 '아하와'란 마을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그 강이 '이스 강'이란 명칭으로 불리워집니다(Rawlinson).
아무튼 이 '강가'는 유대인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던 '닙불'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 이같은 모습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던 사람들이 광야 여행길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한편,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사흘'이 지난 후에 성벽 시찰에 나섰습니다(느 2:11).
레위 자손이...없는지라. – 레위 자손들의 업무가 너무도 고통스러우리만큼 과중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국행을 포기했을 것입니다(Edwin Yamauchi).
제1차 귀환 때의 귀환자 명단에는 상당수의 레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2:40-42).
그렇다면 여기서 에스라가 레위인들을 급히 데려오도록 한 것은 효율적인 성전 봉사에 대한 고려와 아울러 귀환 대열에 레위인들을 소수이나마 참여시킴으로써 어떤 상징적 의의를 부여하고자 함이었다고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2) 성전 수종자를 불러 모음(16~17절)
(1) 가시뱌로 떠난 족장들입니다16절)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가시바로 떠난 족장들은 엘리에셀, 아리엘, 스마야, 엘라단, 야립, 엘라단, 나단, 스가랴, 므술람 요야립, 엘라단 입니다.
특별히 에스라가 열한 명의 지도자를 보낸 것은 레위 지파가 없는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의 '족장'은 다만 레위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들, 즉 '지도자'로 보아야 합니다(Fensham).
엘리에셀 - '도움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아리엘 - '하나님의 사자(獅子)'의 뜻입니다.
스마야 –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엘라단 -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야립 - '그가 다툴 것이다'의 뜻입니다.
나단 - '주어진'이란 뜻입니다.
스가랴 -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뜻입니다.
므술람 - '동행한'의 뜻입니다.
명철한 사람(메비님) - '분별하다' 혹은 '이해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빈'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분별력' 및 '이해력'을 소유한 '율법 교사'를 가리킬 것입니다(느 8:8, 9).
요야립 - '여호와께서 아심'이란 뜻입니다.
(2) 에스라는 학식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가시뱌 지방의 족장 잇도에게 보냅니다(17a절).
“[17a]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가시뱌 지방 – 여기의 '가시뱌'는 혹자에 의해서 티그리스 강 유역의 '크테시폰'(Ktesiphon)으로 주장됩니다(Brockington).
그런데 이 '가시뱌'는 '은장색'(銀匠色)의 뜻을 갖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Kraeling).
그렇다면 이 고장은 원래 은세공(銀細工)이 발달했던 곳으로 추측될 만합니다.
그곳 족장 잇도. – 여기의 '잇도'는 학개의 조상 '잇도'와는 뜻이 전혀 다른 이름입니다.
그 의미는 '고상한' 혹은 '강력한'입니다.
이 사람은 '가시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3) 에스라는 잇도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봉사할 성전 종사자들을 불러 모으려 한 것입니다(17b절)
“[17b]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할 말을 일러주고–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입에 할 말을 두었다'의 뜻입니다.
섬길 자(메솨르팀) -성전 제사와 관련된 직무의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대상 16:4 ; 27:1).
3)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합류시킴(18~20절)
(1)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과 세레바 가문에 속한 레위인 18명(18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 – 여기서 에스라가 특별히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한 까닭은
① 본서와 함께 에스라가 기록한 역대상의 족보와 조화를 이루며(대상 2:1),
② 그 이름이 갖는 특별한 의미(창 32:24-29)를 상기케 함으로 본절에서의 성과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축복임을 강조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말리의 자손 중. - '말리'는 레위의 아들 중 셋째(말째)였던 '므라리'의 장자로서 성전의 기구를 책임지던 가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민 4:31-33).
(2)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20명(19절).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
므라리 자손 - '므라리'의 전체 후손 중 '므라리'의 장자인 '말리'의 후손을 뺀 나머지를 가리킵니다.
즉, '말리'의 동생 '무시'의 후손들을 말합니다(대상 6:19).
한편, '므라리'는 레위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대상 6:16).
(3) 성전 일꾼으로 지명 받은 이들 220명(20절)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다윗은 레위인들의 반차를 정하면서(대상 23-26장), 그때 그 레위인들에게 느디님 사람들을 배정해줬던 것 같습니다(Fensham).
한편, '방백'(사림)은 군사 혹은 정치 분야 등에 있어서의 책임자를 가리킬 때 사용 되는 단어로서 특별히 여기서는 '군사 지도자'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즉, 이들은 전쟁을 통해 이방인들을 포로로 데려와서 그들을 '느디님 사람'들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느디님 사람 중 이백 이십 명 – 이같이 많은 숫자는 바벨론 땅에 계속 잔류를 고집 해왔던 레위인들을 팔레스틴으로 귀환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Myers).
레위인들이 귀환을 거부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과중한 고역(苦役)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결과는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 이름이 다 기록되었느니라. - 이것은 여기의 느디님 사람들이 성전 봉사에 참여할 수 있을만한 자격자들임을 시사해주는 말입니다.
이들이 성전 종사자들을 모집한 일은 3일 만에 이루어졌는데(15절), 저자는 이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밝힙니다(18절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선한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늘 도우십니다(17,18절).
레위인들을 데려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에스라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게으른 눈은 불신과 불평을 만들지만, 순종하는 손발은 신뢰하는 마음은 만듭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옳은 일이라면 먼저 실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립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1~14절).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지만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먼 여행길은 위험천만했고, 고향 땅에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온 삶을 던지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이방 땅에서의 안락한 삶보다 예루살렘에서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더 가치 있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삶을 바랍니까?
하나님 백성의 삶이 아니라 편안한 자기만족의 삶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2) 에스라는 출발 전 인원 점검을 하다가 레위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15~17절).
레위인은 성전에 드릴 거룩한 기명을 운반하고, 성전 제사를 돕는 일을 수행해야 했기에 귀환 공동체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지체될 것이고 레위인들이 흔쾌히 오리란 보장도 없었지만 에스라는 족장들을 급파합니다.
빠르고 쉬운 길이 아닌 느리지만 바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을 다지느라, 장작 중요한 것들을 놓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봅시다.
3) 레위인 38명과 성전 일꾼 220명이 귀환 행렬에 동참합니다(18~20절).
예루살렘에 귀환에서 그들이 말을 역할을 제사장들을 수종하고, 성전의 허드렛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영화를 얻거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귀환을 결정한 것은 더욱 의미 있는 결단입니다.
아들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이들이 있기에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나도 가장 작은 일이라도 주님이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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