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피어난 화려한 봄꽃들과 거리를 알록달록 수놓는 화사한 여인네들의 옷차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완연한 봄 4월이다.
우리 선조들의 봄은 어디에서 시작 되었을까?
예로부터 아낙네들의 봄은 장 담그는 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메주 만들기, 메주 띄우기, 된장 담그기, 고추장 담그기 등 장 담그기는 집집마다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장맛은 그 집안의 음식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감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인스턴트식품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진 사람들은 빠름과 간편함을 추구하게 되면서 우리 고유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전통음식문화를 점점 외면하게 되었다. 이에 건강 먹거리에 대한 걱정과 관심이 날로 증가하는 요즘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민이 주인인 마을기업 ‘서로살림 언니네 반찬’에서는 지난 1일 ‘녹색대학 열두 달 밥상공동체’강좌로 ‘장 담그기’를 열어 친환경 안심 먹거리를 주제로 매월 주부들과 만나고 있다.
메주를 쑤어서 만드는 ‘장 담그기’는 간장에서부터 넓게는 된장과 고추장, 청국장 등을 포함하는 말이다.
첫 강좌인 ‘장 담그기, 된장덮밥’에 이어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두 번째 강좌는 ‘고추장 담그기’였다.
지리산 뱀사골에 거주하는 고은정 강사(57, 약선 식생활연구센터 소장)는 “주부님들이 우리의 장도 직접 담아 보면서 가족의 건강도 지키고 조상들의 지혜도 배우기 위해 이렇게 모이니까 보람 있고 기분 좋습니다. 이런 기회를 계기로 전통 장을 지키고 보존할 수 있어서 찾아오신 분들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곳까지 먼 길이지만 마다하지 않고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집집마다 장을 담그고 아파트 베란다에 장독대를 놓는 게 제 바램입니다.”라고 말했다.
강의는 고추장의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만초장’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제조법이 최초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농가월령가’의 3월령에 고추장 제조가 쓰여 있을 정도로 우리 선조들은 모든 반찬과 조화를 이루는 장 담그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로 해서 우리나라에 들어 왔으며, 그 이전에는 산초를 넣어 매운 맛을 만들어 먹었단다.
연암 박지원은 고추장을 직접 담가서 아들에게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참가자들의 눈빛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초롱초롱 반짝인다.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려는 마음으로 모인 주부들은 강사의 열띤 강의에 눈과 귀를 모으며 열심히 메모를 한다.
콩이 변신한 메주가루와 곱게 빻은 고춧가루, 찹쌀가루, 싹튼 보리인 엿기름, 조청, 소금 등 고추장이 되기 위한 재료들은 앞치마를 두른 참가자들 앞에서 다소곳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누런 조청을 넣고 끓는 물을 부어가며 녹인 후 메주가루를 넣고 다시 나머지 재료들을 분량에 맞게 넣어가며 고루 섞어서 잘 저어 준다.
김윤정씨(46, 연수구 송도동)는 “장 담그기에 관심이 많아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잘 메모하면서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고 있어요. 집에 가면 직접 담가서 이웃들과도 나눠먹고 나중에 딸에게도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라며 재료를 열심히 주걱으로 섞는다.
참가자들은 꼼꼼하게 메모하며 순간을 놓칠세라 사진까지 찍느라 눈과 손이 분주하다.
마지막으로 서로 잘 어우러진 재료에 주인공인 고춧가루를 넣자 정열적인 색감의 빨갛고 끈적끈적한 고운 빛깔의 고추장이 탄생되었다.
“와~! 진짜 고추장이 되었네...너무 신기해요!”
열심히 고춧가루를 섞던 참가자들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장맛이 궁금해진다.
“고추장 색깔 좀 보세요. 너무 곱고 예뻐요! 살짝 한 번 맛볼까요?”
조심스럽게 새끼손가락으로 고추장을 살짝 찍어 맛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대박이에요! 이렇게 맛있는 고추장은 처음 먹어보네요. 정말 맛있어요! 베리베리 굿~!”
자신이 함께 만든 고추장을 맛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감동과 행복감에 젖는다.
이성희씨(40, 남동구 간석동)는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장 담그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거든요. 늘 어른들이 해주시는 것만 먹다가 이렇게 직접해보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앞으로 내가 담가서 먹을 생각입니다. 지금 임신9개월인데 아기에게도 제가 담근 장만 먹이고 가르쳐줘야죠!”라며 수줍게 웃으며 고추장을 맛본다.
알뜰주걱으로 완성된 고추장을 작은 통에 담는 주부들은 커다란 양푼에 묻은 고추장의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야무지게 싹싹 긁어 담는다.
안미숙씨(44, 인천여성회연수구지회장)는 “안전먹거리운동이 확산되는 요즘 이런 자리를 통해서 이웃 간의 정도 나누고 전통 먹거리 문화도 살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계속 주부들이 관심을 갖고 우리의 소중한 장 담그기 문화를 이어가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장 담그기 프로그램>
5월 6일 : 된장 가르기, 간장소스 만들기
6월 3일 : 메밀간장, 막 간장
8월 19일 : GMO와 종자주권
9월 2일 : 떡 만들고 나누기
10월 7일 : 장아찌 담그기
11월 4일 : 막장 만들기
12월 16일 : 메주 만들기
참가비 : 1회 1만원(점심제공) / 재료비 별도
문의 : 032)822-1874 , 010-2318-6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