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 초창기 제주방송국의 모습으로 3개의 나무를 연결해 만든 안테나가 특이하다. 당시 제주방송국 방송과장 김두규 등 3명은 1952년 제주4·3사건으로 한라산에 입산했던 무장대에 의해 희생됐다. 순직한 3명의 사원들에 대한 추모비는 41년이 지난 1993년에야 KBS제주방송총국에 세워지게 됐다. 출처=제주특별자치도 刊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1952년 9월 16일 새벽 2시쯤 숫자 미상의 남로당 반란군 무장대가 경찰관 복장으로 위장하여 KBS 제주방송국에 침입하여 개국행사 경비결산 업무처리로 사무처리로 사무실에서 김두규 과장은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이때 숙직담당이던 장병량은 내일 업무를 위하여 일찍 잠을 청하였다. 이때 숙직실에는 아나운서와 급사와 5~6명이 있었다.
장병량은 새벽 1시쯤 대나무 칼쿠리 같은 것이 등을 찌르는 느낌이 들어, 김두규 과장이 장난하는 줄만 알고 소리 쳤는데, 이때 발을 툭툭 치려 일어나라는 정체 불명의 경찰복을 입고 밑에는 고무신을 괴청년들이 있어 폭도임을 알고 잡혀가도 죽을일이고 도망가서 죽는게 났다고 하여 이때 숙직실에는 7-8명의 남로당반란군의 졸개들인 괴청년들이 총과 죽창을 들고 견습 기술공인 채종기 기사와 급사 등을 재촉하여 끌고 가려하자 마침 채종기는 폭도와 격투를 벌이는 순간 장병량씨는 재빨리 방송국을 나와 소나무 숲으로 숨어서 남문파출소에 신고하여 경찰들이 방송국에 급습하였다.
다행히 숨어있던 현승국, 김종훈, 아나운서 정모는 무사했고, 폭도들은 전화기, 방송용 시계를 약탈하고 방송국시설들을 어지럽혔다. 이 사건 이후 2~3일후 경찰과 반공우익 청년대원 200명들은 관음사 500m 지점 숲속에서 방송과장 김두규, 방송기술요원, 남자급사 등 3명의 시체를 소나무를 덮은채 위장 된것을 발견하였다.
후에 이 3사람을 죽인 남로당 반란군의 졸개들이 경찰에 잡혀 진술한 내용이 김두규, 채종기, 김석규 3분은 죽어가면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고 진술하였다고 전해진다.
** 남로당 반란군들에 의해 납치된 3사람은 며칠 후 남로당반란군의 아지트 부근에서 무참히 살해되어 땅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 기록. -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343쪽과 평화신문 1952.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