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병이 무덤을 지키다
마태복음 27장 62-66절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완전히 죽은 사실을 확인했다. 요한복음 19장 32-35절에서,『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에 달린 두 죄수와는 달리 그 다리가 꺾이지 아니하셨고 창으로 옆구리가 찔리셨는데 이것 역시『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처럼 구약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통로가 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믿지 않고 희롱했던 유대인들과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이었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하던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과 빌라도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경 말씀을 이루어지게 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본 자들은 로마 군인들과 유대인들이었다. 19장 31절에서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그리고 그 시체를 누군가에 의하여 무덤에 장사되어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그들에 게 한 가지 걱정이 가시지 아니했다. 그 걱정이란 그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로 예수님이 평소에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사신다고 말씀한 일이다. 물론 그들은 그 말을 곧이 들을이 없었다. 그들의 염려는 그의 제자들이 그 시체를 홈쳐간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선전하면 뒤가 시끄러워 질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의논한 후 빌라도를 찾아가 무덤을 지켜달라고 건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다. 무덤에는 예수의 시체가 없었으므로, 무덤에 들어간 여자들(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이 예수의 시체를 볼 수 없었다.
마태복음 28장 6-7절『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 예수의 모친 마리아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신 것인가? 아니면, 육체는 사라지고 영적인 몸으로 태어난 것인가? 영어성경은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kjv), He is not here; he has risen.(niv)으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οὐκ(not) ἔστιν(He is) ὧδε(here), ἠγέρθη(에게르데)』헬라어에 부활과 관련된 단어가 두가지가 있다. 에게르데(ἠγέρθη)와 아나스타세이(ἀναστάσει)이다. 에게르데는 ~으로부터 일어나다 라는 의미다. 영어성경은 rise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한글 개역개정은 “살아나다” 라고 번역하므로, 일어나다 라는 의미와 다르게 전해진다.
그리고 아나스타세이 라고 하는 것의 영어는 resurrection(부활)이다. 아나스타세이는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 영이 영의 몸을 입는 것이 부활이라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22잘 30절『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ἐν γὰρ τῇ ἀναστάσει οὔτε γαμοῦσιν οὔτε γαμίζονται, ἀλλ’ ὡς ἄγγελοι ἐν τῷ οὐρανῷ εἰσιν.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53절에서『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καὶ ἐξελθόντες ἐκ τῶν μνημείων μετὰ τὴν ἔγερσιν αὐτοῦ εἰσῆλθον εἰς τὴν ἁγίαν πόλιν καὶ ἐνεφανίσθησαν πολλοῖς.
한글 부활이라고 표현된 헬라어는 텐 에게르신 (τὴν ἔγερσιν)으로서 영어 성경에도 resurrection(niv,kjv)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에서 부활은 문법적으로 명사이다. 즉 어떤 상태(영의 몸을 입은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에게르신은 일어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글 개역개정과 영어 성경은 에게르신과 아나스타신을 부활로 혼용하기도 한다.
헬라어 에게르신은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개념이다. 그리고 부활은 영이 어떤 몸을 입는 것을 의미한다. 영생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을 할때, 영이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그 영의 몸이 영생인가 아니면, 심판을 위한 옷인가 다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영이 일어나서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우리말 번역과정에서 부활이라고 말을 하므로서, 이전의 육체로 다시 되돌리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전의 하나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부활이 맞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으며, 영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이전의 육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영의 몸으로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옛성전(육체)는 사라지고(십자가에서 죽고), 새성전(영의 몸)이 태어난(부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은 뒤에, 그 육체가 다시 부활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가 죽지 않고 들림(휴거)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그가 여기 계시지 않은 것”은 헬라어로 οὐκ ἔστιν ὧδε 이다. 그는 여기에 없다는 말이다. “그가 없다”는 말은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에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육적 존재가 없다는 의미이다. 육체가 십자가에서 죽고 시체가 사라진 것이다. 왜 사람들은 모세의 시체를 찾지 못하는가?
유다서 1장 9-10절에서『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시체는 죽음(죄)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탄이 관리하는 분야이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사라지게 했다. 따라서 사탄이 미가엘에게 자기의 허락도 없이 그렇게 했는가 묻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므로, 이 일을 자꾸 지적하면, 하나님이 꾸짖으신다는 말이다. 거짓선지자들이 성경을 왜곡시킨다.
모세는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대변인이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의 죽은 시체가 사라지게 하신 이유는 로마 군병들과 제사장들이 찾지 못하게 함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다른 몸인 하늘로부터 오는 영의 몸을 입고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어쨌든 군병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1-15절『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