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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했던 직원들> 2010.3.1/박용화(교감), 홍둘임, 정정남, 김남숙, 김윤희, 이정훈, 임중근, 천희선, 김계자, 조지민, 배정환, 황유연, 김세련, 정진희, 박희상, 조현정, 이진호, 곽평호, 우한희, 황신애(특수반), 이지은(유치원), 이소영(보건), 성영미(영양), 한언진(행정실장), 박정화(조리), 박동옥, 권정율, 민평란, 최민아, 전선애, 정인숙, 추은경 2010.7.1/강석호, 김미영, 박지용 2011.3.1/류송자, 박미숙, 구미진, 유은정 기간제 선생님들/권성근, 천재선, 최경임, 임희숙, 박슬아 |
○ 노산(魯山)이라는 곳
노산(魯山)이라는 학교 이름은 개교 당시인 1987년에 지금의 동서금동 학교 자리에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개교를 준비하면서 인근에 있는 삼천포를 대표할만한 브랜드 가치의 비중을 충분히 지닌 노산 공원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만큼 노산공원과 노산초등학교는 가까운 거리에 이웃하여 있다.
위치는 삼천포 시가지의 고성 쪽 끝자락이고, 학교 앞을 지나 10분정도 승용차를 달리면 곧이어 고성군 하이면이 나온다. 학구 내에 유명한 남일대 해수욕장이 있고 도다리가 많이 잡히는 진널 마을을 거쳐 신항 길을 따라 가다가 남일대 해수욕장 방향이 아닌 해안선 끝 부분 쯤의 산에 진널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 통영 사량도로 차량과 손님을 함께 태우고 가는 객선이 다니는 항구가 있고, 또 유명한 팔포 매립지에 있는 횟집 촌이 길게 연결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팔포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팔장개. 팔양개. 팔양포. 팔장포라고 불린 서금동 동쪽과 동금동 사이에 있는 내를 중심으로 한 지역 이라는 뜻이 있고 옛날에 한내의 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 여덟 팔자 같이 벌어졌다고 하는 의미와 팔문장, 팔 장수가 났다고 하는 의미 등이 합쳐져 동네의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내가 부임했을 당시 학급은 17학급에 병설유치원이 2개 학급이었다. 이건 연전에 필자가 관내 교사로 근무할 당시의 학교 규모와 비교하면 대개 반 가까운 정도의 교세가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 원인은 자세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바다와 가깝게 인접한 탓으로 주택이나 아파트의 밀집된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아 인근의 발전이 되지 않은데다가 이웃 용산초등학교 주변에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서 많은 주민들이 이주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전임지인 남해 남명의 어린이들에 비하여 순진한 면은 완전히 딴 판이었고, 어린이들 자기들끼리 통하는 삼천포 지역의 초등학교 6학년 소위 짱이 노산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음만 봐도 하교 후에 학원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그들의 일상은 어른 뺨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을 것도 다만 짐작으로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내가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6학년 한 어린이가 흡연을 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보건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합심으로 생활지도에 임하는 등 생활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아동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10년 2학기에는 한 어린이가 시내의 다른 학교 학생을 자신의 집에 불러다가 아버지의 골프채로 쳐서 얻어맞은 아동은 육체적인 상처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타격을 입어 우리학교도 아닌 타교의 학부모가 교장실로 찾아와서 학교장인 필자를 면담하는 등의 일도 있었다.
그 규모는 얼마 되지 않는 학교지만 불과 몇 년 전의 규모와 교세 때문에 그래도 제법 널리 알려진 학교이기도 하고 교육 지원청이 주관하는 체육대회, 합창 합주대회 등 모든 행사때 교세에 맞지 않게 1부에 속하는 바람에 늘 성적이 좋지 않았다. 도회지에 있는 학교인 것은 분명한데 해마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학교인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 나보다 먼저 온 소문
난생 처음으로 내 이동(移動)에 있어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해괴(駭怪)한 소문이 함께 와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남해 남명초 교장으로 근무하다 사천 노산으로 옮겨온 2010년 3월 당시 사천 교육청(지금은 교육지원청) 관내에는 노산, 서포, 축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정년퇴직을 하셨다. 여러 가지 정황들로 미루어 남해에서 사천으로 전입한 내게 가장 걸맞는 학교는 전기한 세 학교 중에서는 축동이 가장 적합했다. 그건 내 생각 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의 생각으로도 그게 정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설명하기 곤란한 어떤 요인으로 내가 노산으로 가게 되었으니 제일 먼저 노산행을 꿈꾸었던 내 선배님께 죄송했고,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얘기들을 했다는 전언을 후에 들을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선배님은 직접 선배이기도 하지만 전에 이웃에 근무하면서 아주 가까이 지낸 선배님이기에 더욱 죄송했다.
‘김형진이 그 사람이 그런 짓 할 사람이 아닌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격한 말투였음은 읽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긴다.
그런 짓(?) 할 사람이 아닌 것은 고사하고 그런 짓(?)이 나중에 불러올 파장 등 어떤 방향으로 해석을 하려고 해도 내 노산행은 내게 불리하기만 한 이동이었고 그래서, 고개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짓이란 도대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인사에 있어 여러 가지 요인들을 가지고 질서를 지켜야 뒤에 소위 잡음이란 것이 없는 법인데 그런 질서들을 인사권자가 함부로 무너뜨려서 누가 봐도 질서 없는 인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이고 거기에 내가 수혜자로 자리했다는 불명예스런 짓이라는 말이다.
발령은 내가 낸 것도 아니라 엄연히 다른 기관이요, 사람이 낸 것인데 마치 내가 그런 엄청난 기관이나 사람들을 내 뜻대로 조종이라도 해서 상식선을 벗어난 음모를 꾸몄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니 해괴하다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아울러 당시에 사천 지역은 조금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화젯거리로 한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전언이 있었다. 언제나 남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주관적인 입장에서 난도질하는 재미가 훌륭한 술안주도 되고, 또 아주 좋은 스트레스 해소용(解消用) 선약(仙藥)이 되는 법이니까.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소문이 나보다 먼저 당도해 있었거나 말았거나 나는 노산초등학교가 교장으로서의 두 번째 임지인 것은 틀림이 없었고, 부족하나마 소신을 펴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밖에 없었다.
○ 다소 먼 통근 길
진주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자동차로 측정한 결과 대략 35킬로미터였고, 필자의 운전 실력으로 50분이 좀 넘게 걸려야 하는 거리로 다소 먼 통근길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통근을 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택이라도 있으면 거주하면서 진주 집에는 가끔씩 다녀오는 방식으로 근무를 할 수도 있겠는데 일이 꼬이느라고 사택마저 있던 것을 오랫동안 필요가 없어 교육청에서 환수조치한지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고 했다.
매일 왕복으로 70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더러 내 나이또래에도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 있어서 나를 보고 웃으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걸 힘들다고 하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다. 심근경색에, 췌장 수술 등 굵은 병명으로 서울 아산 병원 신세를 진후에는 스스로도 느낄 만큼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예컨대 출근 길에 운전을 하여 남양중학교 앞에 다다를 즈음에는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참기 어려울 적이 있었으니 남들이야 뭐라고 말을 하건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고, 분명히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선생님이 한 분 있어서 둘이서 번갈아 가며 카풀을 함으로써 조금은 부담을 덜 수 있었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었고 결국은 다소 먼 통근 길 때문에 1년 반 뒤인 2011년 9월에는 정동초등학교로 스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 종소리 영어 도입 활용
종소리 영어는 수업의 시종을 알리는 종소리를 대신해서 짧은 영어 문장을 들려주는 방법을 말한다. 물론 원어민이 녹음한 양질의 자료를 활용하여 기왕에 도입된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에 아주 자연스런 방법으로 도움을 기하자는 의도에서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처음 종소리 영어를 접하게 된 것은 교장연수 동기인 부산의 이용빈 교장선생님이 자기 학교(당시 부산 개금초등학교)에서 사용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만든 그야말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하고도 좋은 자료였다.
그런데 그것을 교원대학교에서 교장연수를 함께하는 동안 같은 거실을 사용했다는 인연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 사용을 허락한 것이다. 메일로 받은 사이버 자료를 노산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요즈음의 초등학교 방송시설이라면 모두 다 어려움 없이 사용이 가능하고, 혹 낡은 방송 기기 탓으로 사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면 첨가하는 시설 간단한 것 하나면 손쉽게 활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료의 내용이나 운영 방법 등을 따로 설명하자면 길어질 것 같아서 시작 당시 학부모님들에게 안내해 드렸던 안내장의 문구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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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노산교육가족이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우선 지면을 통하여 인사드립니다.
아침저녁으로 차장누 기운이 싫지 않ㅇ느 것으로 보아 이제 봄은 벌써 우리 곁에 온 것 같습니다. 학부모님의 가정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의 영어에 대한 친숙함과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기 위하여 실시하는 “종소리 영어”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앞으로 학생들은 종소리 영어 방송을 통하여 원어민이 직접 녹음한 간단한 문장들을 반복하여가면서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듣게 됩니다. 1주에 2개의 문장을 매일 수업 마치는 종으로 반복(20여 회)하여 듣게 됨으로써, 부담 없이 영어 문장을 익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소리 영어”를 열심히 하면 생활영어활용능력이 상승하게 될 것이고 외국인과의 대화능력도 크게 길러질 것입니다.
내용은 두 문장씩 구성(뒷면 참조)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어머님이 첫 문장을 말하면 자녀가 대답을 하는 식으로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문장들을 잘 암기하는 학생들에게는 보상도 할 생각입니다.
1년 후면 70여 개의 영어문장을 우리 어린이들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이것이 우리 노산 어린이들의 영어공부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의 주역이 될 우리 정동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종소리 영어”를 통해 영어와 친해지도록 학부모님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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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쓰기를 학교 특색교육과제로
2010년 3월 초에 부임 당시 노산초등학교 특색교육과제는 대취타 운영이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잘 하지 않는, 차별화된 종목인 셈이다. 그런데 몇 년간 계속해 오는 동안에 열성적이던 담당자는 전근으로 다른 학교로 갔고 후임으로 맡은 선생님은 그 분야에 문외한인데다가 관심도 부족했다.
학교장도 그저 그런 관심으로 명맥의 유지도 곤란한 지경이었고 그러니 자연적으로 악기마저 고장 나서 소리조차 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 악기들의 가격 또한 크게 부담되는 사안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특색과제로는 도저히 부끄러워 차마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대취타를 아동들이 이해하고 국악과 친해지도록 하고, 해당 악기 연주의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하는 과제를 이어 나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여건상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임을 안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민족시 시조 교육으로 특색과제의 종목을 바꾸는 것이어서 선생님들과 의논한 끝에 결정을 보았다.
다른 학교에서도 계속해온 일이라 어려움은 없었다. 3,4,5,6학년을 각 반에 주 1시간씩 국어시간을 할애 받아 지도를 했다. 각 반 지도 시 담임선생님들은 아동들과 함께 앉아서 지도방법을 연수하도록 안내했다. 마련되어 있는 교재의 부분마다 어떤 방식으로 지도를 하는지만 세밀히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다음해에는 모든 선생님들이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3,4,5,6학년 전 아동들이 시조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인 7월 말 경이었다. 그동안 학급마다 절장시조집, 양장시조집, 평시조집을 차례로 발간했고, 학예발표회와 때를 같이하여 시화전을 교내에서 가짐으로써 민족시 시조교육은 그 결실을 튼튼하게 할 수 있었다.
때마침 도교육청이 공모한 특성화 교육 우수학교에 출품을 하기에 이르렀고, 사천교육지원청의 예선 때는 턱걸이로 도교육청까지 보고가 가까스로 이루어졌다. 노산초등학교가 여섯 팀 중 5위로 간신히 추천 되었는데 도교육청에서의 최종심사 결과 우리 지원청에서는 3개교만 입상이 결정되었는데 그 중에 노산이 포함된 것이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입상하여 상패와 함께 푸짐한 상금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금은 전적으로 학교장 재량으로 쓸 수 있는 성질의 상금으로 받은 기 백 만원을 어떻게 쓸지를 직원회의에서 의논했더니 선생님들의 대답이 한결같았다.
“시조는 교장선생님이 지도하셨으니 상금 쓰는 일도 교장선생님 뜻대로 하십시오.”
결국 그 돈으로 졸업생들에게 정식 출판사에 의뢰하여 제대로 된 시조집 <추억 샘 우정 샘>을 발간하여 선물했다.
졸업식장에서 출판 기념회와 시화전을 곁들임으로써 이색적인 졸업식을 연출하여 아동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했다.
○ 교육방송과의 교섭 시도 - 결과는 오리무중
시조가 민족문학이라는 점 때문에 나는 지금껏 시조를 널리 보급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 혼자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만 애쓰기보다 전국을 대상으로 확장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 2010년 5월에 교육방송과 협의를 하기 위해 사이버 상으로 접촉을 하여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을 보여서 기대를 잔뜩 했었는데 여태 감감 무소식이어서 실망감이 크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맨 처음 필자가 교육방송 홈페이지에 문의의 글을 올려 접촉한 것, 즉각적으로 보여준 답변,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구체적인 답변을 보내왔던 것을 단 한 글자도 수정 없이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가 메일로 보낸 글이다.
사장님께 먼저 생면부지의 사람이 이런 글 드리게 된 점 양해부터 구합니다.
저는 경남 사천 노산초등학교 교장 김형진입니다. 저는 오래 전 교사 때 부터 순수 민족시 시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여 시조문학지 추천을 거쳐 문단 데뷔를 했고, 초등학교에서 시조 쓰기 지도를 해 왔습니다. 그간 시조집도 네 권을 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 교장으로서 우리학교 4,5,6학년 아동 전원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시조를 쓸 줄 알도록 하려고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대부분 황당해했지만 저는 성공한 경험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장담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얼이 담긴 時調와 國技 태권도를 비교하면서 <태권도는 배울 곳이 많은데 시조는 배울 곳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고심하다가 민족시 시조를 읽고 감상할 줄만 아는 것 보다는 쓸줄도 아는 국민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도자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동들을 지도하면서 교사들이 지도를 어려워하고 꺼리는 이유가 지도할 프로그램 부재 탓인 것을 깨닫고 연구하여 우수아동이 아닌 학급 전체아동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과정안과 아동용 워크북을 개발하여 1990년부터 지도하여왔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시조 지도는 교감이 된 후에도 계속해 왔고, 교장이 되고서도 계속해 왔습니다.
제가 지도하는 방법은 우수아 대상의 문예반 지도가 아니라 학급 단위 전 아동을 대상으로 지도하여 100% 따라오는 것을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 방법을 아동들과 함께 지켜보던 담임교사들에게 단계별로 1/2정도는 담임이 하도록 함으로써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다음 해 부터는 자기반 아동들을 대상으로 지도하도록 함으로써 연수 효과도 확실합니다.
저는 아동들이 단계적으로 성장하여 시조를 쓸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될 수 있는대로 널리 알려 우리 순수민족문학 시조의 위상을 높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구하여 만든 지도과정안과 아동용 워크북을 가능한 한 널리 보급하여 그 효과를 높이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러자면 교육방송을 통하면 좋을 것 같아서 우선 문의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도과정안은 대충 시조를 절장시조 ,양장시조 ,평시조, 연시조의 네 단계로 구분하여 아동들이 단계별로 체험을 통하여 익히고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벌써 첫 단계인 절장시조를 마스터하고 시조집이 발간 되었습니다.(4,5,6학년 9개 학급별로)
아동용 워크북은 지도과정안과 연계하여 만든 학습장입니다.
앞으로 양장시조집, 평시조집, 연시조집을 차례로 발간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모두 시조를 쓸 줄 아는 어린이로 키울 수 있음은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습니다.
10월 중순경이 되면 4,5,6학년 전 아동이 참가하는 시조 시화전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혹 허황된 어느 시골 교장의 꿈일 뿐이라 여겨지시면 이 편지는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2010.5.31. 13:52)
다음은 글을 올리고나서 약 두 시간 여가 지난 후 보내준 방송국 측의 답변인데 역시 단 한 자도 수정이나 가감 없이 그대로 소개한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의견에 감사드리며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 및 인성 교육을 위해 노력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내용을 관련 부서로 보내 검토한 후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곽덕훈 드림(2010.5.31. 16:17)
마지막으로 이틀 뒤에 조금 자세한 내용으로 보내준 답변이다.
좋은 제안을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조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집니다.
EBS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지만 시조 짓기와 관련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제안에 많은 직원들이 공감하고 있으며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할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뵙고 취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동용 워크북을 만드시고, 학생들이 체험을 통해 각 단계별로 시조를 익힐 수 있도록 한 선생님의 열정에 다시 한번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
선생님의 독창적인 노력이 더 큰 결실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꼭 취재해서 방송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6.2. 13:47)
그러고는 여직 감감 무소식인 것이다.
○ 교육청에서 교육 지원청으로
2011학년도부터 갑작스럽게 지역교육청의 명칭이 교육 지원청으로 바뀌었다. 교육청과 교육 지원청이란 이름을 놓고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적에
‘곰곰 생각하니 곰 다리가 네 개더라.’
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따라 썼던 기억을 떠올리며 실소를 금치 못하는 가운데 나름대로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교육청이라면 교육에 관한 제반 사항을 관장하는 관청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고, 굳이 교육 지원청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교육에 관한 제반 사항들을 지원하는 봉사적 뉘앙스가 풍기는 의미의 관청이라는 것일 텐데 그게 필자 생각으로는 100% 찬동할 일이 아닌 듯 하니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첫째로 교육 지원청으로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구성원들의 하는 일이 바뀔 수가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혹 근무하는 자세를 군림에서 지원 쪽으로 바꾸라는 의미로 입안을 했다면 그 당시 지역교육청 교육장님이나 장학사들이 군림하는 자세를 보인 경우는 필자가 볼 때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친절한 그 자세를 일선 교사들이 배워서 학교, 학급경영이나 대 학부모 관계에 적용을 권하고 싶은 사안이었다.
둘째로 필자 혼자만의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는 일이지만 국정을 수행하는 관청이면서 소위 좀 높은 곳은 지원적 자세로 업무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고 상대적으로 낮은 곳은 지원적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는 말은 잘못이 아닐까? 청와대까지도 국민을 위한 방향의 정무를 위해 고심하고 있음이 사실일진대 하물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도교육청은 그대로 교육청이어야하고 시군교육청은 지원청이어야 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셋째로 상부 관청의 영으로 명칭을 바꾸었다면 그걸 바꾼 취지를 살린다는 의미에서라도 그대로 써야한다는 생각이다. 관청의 명칭은 일종의 고유명사에 속한다. 그렇게 정해만 놓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을 바에는 간단히 말해서 안해도 될 일을 한 셈 즉, 헛일을 한 셈이란 것이다.
그건 만 2년이 지나고 3년도 한참 넘긴 오늘까지도 도교육청이 보낸 공문서에 어떤 때는 지역교육청으로, 어떤 때는 지역교육 지원청으로 아주 무질서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공문서도 그렇지만 나이스상에까지도 그런 곳들이 있으니 어쩌면 심각한 문제에 속하는 것이다.
혹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된다.’는 말로 설명을 한다면 이런 사안하고는 맞지 않으니 설득력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결론은 바꿀 필요가 전혀 없는 교육청의 명칭을 쓸 데 없는 탁상공론으로 바꾼 것이나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란 뜻인 것이다.
차라리 이름은 그대로 두고 소속 직원들의 근무 자세를 대민 지원자의 입장에서 친절과 봉사가 이루어지도록 했다면 국가 기관의 이름을 혼용하는, 그래서 많은 이들을 어지럽게 만드는 불합리한 사안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 사회체육시설의 학교 구내설치 문제
노산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사천시가 설치한 사회체육 시설, 다시 말해서 야외용 헬스기구가 상당히 많이 설치되어 있다. 체육공원이나 등산객이 많은 산 정상 부근에 주로 설치해 놓은 <옆 파도타기>, <하늘 걷기> 그 밖에 이름도 잘 모르는 체력단련용 기구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규격은 물론 사회체육시설이라서 그렇겠지만 초등학교 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전적으로 부적합하다.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에게는 화중지병(畵中之餠)이요 무용지물에 속한다.
물론 처음 설치할 때에는 아동들이 하교하기 전에는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나 계산에서 세웠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노산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어르신들이 운동장 트랙을 돌거나 야외용 헬스기구로 운동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몇 번 보고 망설이다가 어느 날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할머니께 다가가서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저는 이 학교 교장입니다. 수업시간 중에는 여기서 운동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할머니.”
그랬더니 대답이 참 대처 난감했다.
“고장선상님, 우리가 오대 떠듭니까? 조용히 운동하는대------.”
교장의 말을 쓸 데 없는 간섭쯤으로 여기시는 말투에 그만 할 말을 잊었다. 물론 대화는 더 계속했다.
“그래도 교실에서 아동들이 공부에 정신을 쏟지 못하고 내다보지 않습니까?”
“알았소.”
퉁명스런 말투로 운동을 그치고 교문 쪽으로 나가면서 그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나를 어지럽게 만든다. 그 말인즉,
“앞애 고장덜언 안 그라더마넌 이분 고장은 좀 빡세내.”
그러니 내가 뭐라고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할머니.’
들리지는 않지만 속으로 그러는 수 밖에----.
노산은 그나마 사회체육시설로 인한 안전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아동들이 그 시설을 이용하다가 잘 못하여 발이 끼이는 사고가 있었는데 학교장이 꼼짝 없이 거액의 치료비에다 알파를 더하여 물어주고 무마시킨 일도 실제로 있었었다.
이런 일은 언제나 마지막 법의 심판을 받기 전에 속되게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사롭게 무마하고 마는데 그 원인은 일선학교나 학교장의 편에 서서 끝까지 도와줄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실정인 탓이니 그런 사실이나 원망하고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아주 소박한 바람이지만 학교 안에 사회체육시설이 들어와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기를 희망할 뿐이다.
교학성로 마지막 정거장 - 니구산 바라보며
<사천 정동초등학교 : 11.09.01-13.08.31>
<함께 했던 직원들> 2011.9.1/이순복(교감), 차차훈, 양정미, 황정임, 박현희, 임연희, 조숙희, 문금이, 정애연, 이순주, 김민정, 정진아, 곽요한, 김혜숙, 강경왜, 김종희(도움반), 강홍점(보건), 이정옥(영양), 신희자(유치원), 하진희(유치원), 박영화(행정실장), 이병태(주), 정대경(주), 정옥선(주), 박지성(주), 박송이(주), 이성연(교), 천현희(특), 백미수(조), 임정남(조), 허희선(조) 김현옥, 정대도, 이정은, 박정선, 이필생, 정재윤, 이성호(경비) 2012.3.1/김춘자, 구미옥, 유배승, 2012.7.1/최용환(주) 2012.9.1/이창현 2013.3.1/윤영순, 이경숙, 김성훈, 주단하, 이숙남(유치원) |
○ 마지막 지게 자리
나는 어렸을 적에 산에 나무하러 많이 다녔다. 농촌에 태어나 살면서 조리용도 난방용도 모두 산에서 해 오는 나무에 의존하던 시절이었으니 어리다고 나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고 너무나 당연히 나무하는 일이 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하는 일이란 산에 가서 갈퀴라는 기구를 사용하여 주로 소나무, 오리나무 등의 낙엽을 긁어모아 새끼줄로 묶어서 집까지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일차적으로 낙엽을 긁어모을 적당한 자리를 잡고 지게를 벗어 놓게 되는데 그 장소를 우리는 지게 자리라고 했다.
이제 이 곳 정동초등학교를 나는 마지막 지게 자리로 잡은 셈이다.
그동안 무수히 나무를 했고 그걸 져 날라서는 유용하게 썼다. 그게 우리 교육현장의 일로 보자면 옮겨가는 학교마다가 나무꾼의 지게 자리요,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곧 나무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지게 자리』라는 생각에 일말(一抹)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는 그간 내 활동이 상당히 미흡(未洽)했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기인(起因)된 것일 텐데 그렇다면 이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제 방법은 단 하나 2011년 9월 1일부터 2013년 8월 31일까지 정해 놓은 기간 동안만 내가 작업할 권한을 가진다. 정말로 이 마지막 지게 자리에서 나무하는 작업을 마칠 때쯤에는 스스로 뿌듯한 마음으로 지게를 지고 자리를 떠날 수 있어야 하리라.
○ 정동이라는 곳
정동초등학교가 자리한 정동면은 사천시의 읍면동 중에서 이름 그대로 제일 동쪽에 자리 잡은 곳으로 학교는 면사무소와 나란히 자리 잡은 정동면 대곡리에 있다.
사천읍과 가까이 있거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읍, 화암, 예수마을이 있고, 면을 가로지르는 사천 천을 건너면 꽤 널리 알려진 사찰로 니구사(尼丘寺)가 니구산의 6부쯤 되는 골짜기에 자리 잡은 수청 마을이 있다.
니구산(尼丘山) 정상 줄기들로 경계를 이룬 산 너머는 사남면이 있고, 고성군과의 경계는 감곡, 학촌, 소곡 마을이 옛 신월초등학교 학구로 이어져 있고, 정동면의 중심지는 공공기관들이 자리 잡은 대곡마을이고 고성 쪽으로 강을 건너서 일명 놀래라고도 하는 노천이 포함된 장산리가 자리하고 있다.
정동면의 주 농산물은 감과 복숭아를 꼽을 수 있는데 감은 전국적으로 알아 줄만큼 유명한 정동 감으로 수확기가 되면 도로변에 감을 파는 주민들이 꽤 긴 거리를 이어 자리 잡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세우게 하고 판매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판매되는 양이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비중이라는 전언이다.
수청이라는 마을을 주로 하는 복숭아도 당도가 높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물이다.
또 하나 정동의 특징은 사천읍과 너무나 가깝게 붙어 있는 바람에 면 소재지로서의 위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 소재지에 다방 하나도, 노래방 하나도 없는 실정인 것이다. 어쩌면 그런 위락시설이 없어서 불편함이야 없겠지만 그런 시설이 있다면 면의 살림살이에는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도 그렇고, 실정을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학교는 2013년 2월에 제79회 졸업생을 배출한 상당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고, 동문들은 경향각지에서 눈부신 활동들로 정동인의 기상을 한껏 펼치고 있고, 특히 교육계에는 교육행정가로 이름을 날리는 분들도 있고, 평생을 교사로 재직하시면서 오직 아이들 잘 가르치는 참 스승으로 오래 오래 존경과 추앙 받고 있는 동문들이 많은 학교이다.
○ 여기는 더 해괴한 소문이
부임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전임교 노산초등학교에서 나를 포함한 전출자들을 위한 송별연회 자리에서 부장교사 한 사람이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교장선생님, 정동 가시는 데 대해 밖에서 이런 얘기들을 합디다.”
“어떤 얘긴데요?”
“어느 선배가요, ‘느그 교장 노산서 선생님들과 싸웠거나 안 좋은 일이 있었재?’
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장교사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극구 아니라고 하는데 그 선배라는 분이 내 뱉는 한마디가 의미심장한 것이었단다. 그 말인즉,
“네로서는 임마, 그리 말할 수 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이미 물어서 파악하려는 절차를 밟자는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 기정사실화하여 굳게 믿으면서 확인하는 수순인 셈이다.
그 선배가 누구냐는 내 물음에 끝내 밝히지 않으려던 그 부장교사는 내가 대충 누군지 알겠다고 하면서,
“그 선배 내가 지 같은 줄 알았는가보네.”
라고 하자 그만 누군지를 밝히고 말았다. 알고 보니 퇴직 전에 그 선배는 성희롱 문제로 좌천(左遷)을 당했던 전력(前歷)이 있는 분이었다.
‘왜 그런 소문이 나야 했을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짐작으로, 그것도 순전히 나 혼자만의 사고방식으로 유추(類推)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있었다.
노산이 정동보다 학교 규모가 조금은 크다는 점이 그것인데 사람에 따라 사고방식이 제각각이니 큰데서 작은 데로 옮기면 무조건 좌천 쪽으로 결론짓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가능한 얘기라는 결론을 짓고 혼자 웃고 말았다.
정녕 나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와 아울러 정동에 와서 할 일도 나름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 연구시범학교 보고회
2011학년도에는 특수교육에 관한 경상남도교육청 지정 연구학교 운영 보고회를 우리학교 단독으로 개최하였다. 대개 몇 개 학교씩 동일 주제의 학교가 모여서 합동 보고회를 개최하여 업무양이나 예산을 줄이는 추세였으나 우리학교는 여러 가지로 당시 여건이 합동 보고회를 갖기에는 여의치 못하여 단독 보고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통합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장애 인식 개선과 사회 적응력 신장』을 주제로 1년 동안 계획하고 운영한 내용들을 도내 각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교사들을 회원으로 모아놓고 양정미 연구부장이 보고를 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하나 되는 집단 추구를 주 내용으로 하고, 환경 조성면에서는 장애 이해 코너를 마련하여 시각자료를 통한 통합교육 이해를 모색했고, 통합교육 관련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사이버를 통한 정보 공유를 추구했으며 월 1회정도 특수교사와 통합학급 담임교사간의 통합교육협의회를 통하여 실질적인 교육활동 방법 개선에 힘썼고 사천시 장애인 복지회와 특수교육 지원센터를 주축으로 지역의 관련 기관이나 단체를 활용함으로써 교육의 사회화를 꾀하기도 했다.
통합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연수활동은 교내연수를 월 2회로 기획하여 알차게 운영했고 세 차례에 걸쳐 전문가를 초빙하여 학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통합교육 이해와 자녀의 문제행동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연수했다.
그 밖에도 교수-학습 활동 중심의 통합 프로그램 전개, 함께 하는 온돌방 통합학급 운영, 사회 적응 체험학습 실시, 라온놀이로 열린 마음 실천, 알음알이활동으로 장애인식 개선을 꾀하는 등 나름대로 알찬 운영으로 회원들의 갈채를 받아낼 수 있었다.
보고회 순서 중에 전문가를 모셔다가 듣게 되는 강연 강사로 내 교대 동기인 강찬기 교장의 차분한 강의에 몰두하는 청중들이 정녕 보기 좋았었다.
○ 영원히 살린 소나무
정동초등학교에 부임해 와서 보니 교문 들어서서 운동장 초입 지점의 오른 편 교장 사택 입구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꽤나 잘 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전전임 교장이 처음 옮겨 심을 적에 죽을 줄 알고 옮겨 심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이었다.
결국 전전임 교장은 나무를 옮겨 심었고, 전임교장은 죽어가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자 살려보겠다고 영양제를 투여하기도 했고, 속설대로 술을 부어주기도 하는 등 무진 애를 썼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처리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깊이 생각을 해 본 후에야 당시의 상황(常況)상 어쩔 수 없었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 없었다. 아울러 전임자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정림관(정동 체육관의 이름) 신축을 위하여 급하게 노송 두 그루를 옮겨 심어야 했는데 일이 시간적으로 급하다 보니 졸속스런 이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옮겨 심은 후 아주 서서히 말라가는 소나무를 보고 고심도 많이 했다는 당사자(전전임자)의 전언을 듣고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도리 없이 내가 두 노송을 처리를 해야 할 지경이 되었는데 우선 전문기관인 경남 산림연구소(진주 반성 수목원 소재)에 공문을 보내어 정식으로 전문적인 진단을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공문서로도 회신을 해 주었지만 공무원 두 분이 직접 학교까지 방문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 주기도 했다. 결과는, 나무는 이미 죽은 것이라서 더 이상 지켜볼 필요도 없는 상황이고, 뽑아내고 대체목(代替木)을 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의 고심 끝에 두 그루의 소나무를 그대로 이용하여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교직에 함께 하다 연전에 정년퇴직하고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선배를 연결할 수 있었고, 50만원에 둘 다 새겨주겠다는 말씀에 확정을 짓기에 이르렀다.
비용은 이 계획을 들은 정동 총 동창회장(정동초 29회 조규남-필자와 중학교 동기)이 공사비를 포함하여 일백만원을 희사하기로 하여 진행을 했다. 소나무 두 그루를 베고 껍질을 벗기고, 장승을 새기는 일련의 작업과 곁들여 아홉 개의 솟대를 제작하여 조성을 완료하고 드디어 2012년 11월 27일에 민속공원 개원식을 거행하였다.
죽은 소나무를 이용하여 장승을 만들어 놓고 생명을 불어넣었느니, 영원히 살렸느니 하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억지일 수도 있고, 말도 아닌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전혀 거리낌 없고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공원 앞에는 장승과 솟대를 세우게 된 경위와 그 취지가 아름다운 안내판에 새겨져서 서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조규남 회장이 희사한 부분을 절대로 표시하지 말아달라는 당부 때문에 곧이곧대로 처리하여 기증자 표시가 전혀 안되었다.
학교 곳곳에 기념식수나 조형물 기증자들의 명패가 빠짐없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조회장의 마음 씀이 고맙고, 더욱 그가 내 친구라는 점이 한없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다음은 민속공원 앞쪽에 세운 안내 팻말에 새겨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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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관 신축공사로 옮겨 심은 소나무 두 그루가 안타깝게 고사하여, 새 생명을 불어 넣고자 장승으로 다듬어 세웠습니다.
장승과 솟대는 예로부터 거룩한 수호신의 의미가 있으니 우리학교와 정동 가족 모두를 지켜 주고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2012년 11월 7일
정동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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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교육 이야기
2000년대에 들어서 교육계에는 이상하리만치 새로운 단어 만들기가 거의 패션계를 능가할 만큼 유행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교육에 관련되는 용어나 좋은 몇 몇 단어들의 첫 자만을 모아 전혀 새로운 낱말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순수하게 우리말이라면 좀 나은데 영어 단어의 첫 스펠들만 모아서 전혀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 내는 데는 그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운동을 우리는 첫 머리 글자들만 따다 모아서 ‘아나바다’ 운동 또는 ‘아나바다’ 장터라고 했다. 또 생활지도시 활용했던 1970년대 초반의 ‘고미안 운동’도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의 첫 글자들만 따서 모은 것이다.
스마트 교육이란 용어도 그런 맥락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즉
S : Self-directed(자기 주도적), 즉 과거 교사 주도적인 교육과정 구성에서 학생 스스로 학습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지향한다는 취지이고,
M : Motivated(학습흥미), 정형화된 교과서 강의 수업에서 다향한 콘덴츠를 활용한 체험기반의 창의적 학습을 지향하며
A : Adaptive(수준과 적성), 단일 과정의 획일적 수업에서 학생 개별의 수준과 적성을 고려한 유연하고 개별화된 학습을 지향하고,
R : Resource free(풍부한 자료), 서책형 교과서 위주의 교육에서 디지털 콘덴츠 및 온라인을 활용한 풍부한 교육 콘덴츠 활용 학습을 지향하며
T : Technology embedded(정보기술활용), 교실과 집으로 국한된 교육 기회를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학습 환경 조성의 기술 기반의 학습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섯 개 단어의 첫 스펠링들을 모으면 바로 SMART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되는데 SMART라는 단어의 원 의미가 <영리하다>, <현명하다>, <멋있다>라는 뜻인데 스마트 교육이 영리한 교육이라 하자니 어색하고, 현명한 교육도, 멋있는 교육도 그 뜻들의 일부는 억지로나마 포함 시킬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어색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내용은 다섯 요소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 맞고 이름은 신조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스마트교육 태동의 순간부터 자주 이루어진 연수장에서 강사들이 너무 빈번하게 예를 든 영향인지 현장에서는 대부분 스마트 디바이스(스마트폰, 테블릿PC 등)을 활용한 교육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분일 수밖에 없는 건데 말이다.
우스운 얘기가 될지 모르나 필자도 관리자지만 스마트교육을 논하자면 먼저 전화기부터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화기를 과감하게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정부에서는 2015년까지 스마트교육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발표를 한 상태이다.
위로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아래로는 최일선 교육현장에서도 현재로는 2015년의 완전시행을 목표로 여러 모로 노력을 하고 있다.
가히 혁명에 가까운 스마트교육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여건을 조성하고 연수를 실시하고 연구 시범학교를 운영하는 등 준비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니, 꿈만은 아닌 현실로 다가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 2012년 한 해의 성과
늘상 하는 얘기지만 학교 교육활동의 성패를 제일 크게 좌우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최일선에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는 선생님들이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바는 좀 다른 것 같다. 무슨 일에나 성과가 나타나면 그 공로를 두고 교장이나 교감이 잘 지도를 해서, 아니면 방향을 잘 잡아주고 도와주어서라고 생각하고 이해한다. 전혀 무관하거나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간혹, 교장 스스로가 마치 제 공로로 그리 된 것인 양 자랑하는 것을 보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2012년 한 해는 참으로 크고 많은 학교 경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공로는 교장 몫이 아님을 전제로 그 성과를 나열해 보고자 한다.
1위를 차지한 행사로는 먼저 교육장 기 축구 대회 우승으로 작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으니 내년 1년만 더 우승하면 3연패로 교육장기의 영구 보존을 달성하는 셈이다. 다음 합창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는데 훌륭한 지도자를 초빙하여 연수를 실시하고 지도를 하여 이룩해 낸 쾌거다, 그리고 독서 골든벨 대회에 참가하여 우리 학교 대표가 그야말로 월등한 실력 차로 대상을 차지했다. 또, 배드민턴 대회에서 남,여 모두가 나란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배드민턴은 그 실력차가 뚜렷하다 할 만큼 시원스런 경기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2위를 차지한 대회들을 열거해 보면 먼저합주 경연대회에서 리코더 부문 2위를 차지했고, 육상 여자 초등부에서 2위, 남자부 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다음 3위를 차지한 대회들은 교육 지원청 주최 배구대회에서 남, 여 모두 3위를 차지했고, 농구대회에서도 남 여 각 3위, 탁구대회에서도 남 여 각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수영대회에서도 남자 3위 여자 3위를 했다. 아울러 전통의 국민 독서경진대회에도 출전하여 3위에 입상을 했다.
그 밖에도 학교 교육과정 우수학교에 출품하여 상을 받았는가 하면 백일장, 미술 실기대회, 음악 등 여러 분야의 대회에 참가한 아동 개개인의 상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게 모두 선생님들의 열성적인 지도에 기인된 것이니 학교장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학부모 시조교실
필자가 교단에 첫 발을 내디딘 1972년 무렵에 교육계에는 교육의 사회화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이 어떤 방법으로든 학교 부근 즉 학구 내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어쩌면 학교가 사회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는 멧시지가 담긴 슬로건이었다는 생각이다.
전 임지 노산초등학교에서도 했던 일이지만 학부모 시조교실을 운영하면서 교육의 사회화에 기여한 것은 물론 정말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일임을 알 수 있었다.
학교시설을 이용한 평생교육의 한 강좌로 시작한 학부모 시조교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이 시간은 주 내용인 시조쓰기 공부는 물론이고 정말로 학부모들이 학교를 참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학기동안 계속된 학부모 시조교실 교육과정은 아동 지도를 위해 필자가 만든 지도 과정안을 적절히 수준을 높여가며 활용했고, 과정의 성격상 학부모들 스스로의 노작활동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운영했다.
절장시조, 양장시조, 평시조, 연시조를 차례로 공부함으로써 시조쓰기에 대한 어려움이나 부담을 거의 없도록 하고 감상활동을 통해서 주로 옛시조에 나타난 우리민족의 정서를 바르게 접근 이해하고 알게 하여 성과를 자각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간간이 학교의 사정과 학부모들께 부탁하거나 꼬집을 일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한 학기가 끝나고 그간의 작품들 중에서 스스로 엄선에 엄선을 거듭해서 시조집 <터앝에서 거둔 열매>를 발간하고 조촐하나마 출판기념회를 가짐으로써 10명의 학부모들과 학교장과는 엄청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고 적어도 참여했던 회원들만은 학교 입장에서 생각하고 학교 편을 들 수 있도록 세뇌를 했다고 하면 졸렬한 표현이 될까?
필자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앞으로 우리 민족의 고유 시조를 계승 해 나갈 시조시인들이 되도록 시조작업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학부모들에게 당부했는데 그 실현이사 이미 내 몫이 아니라 그들의 몫인 걸 잘 알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나는 학부모 시조교실 회원들로부터 뇌물(?)을 하나 받았다. 얼마짜리인지는 지금도 알아보지 않았지만 그들이 정성으로 선물한 것은 겨울용 스웨터였는데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데 도움도 되었고 영원히 잊지 못할 선물이었음은 사실인 것이다.
○ 이색 졸업식
우리 학교에서는 2011학년도와 2012학년도에 졸업식을 좀 색다르게 기획을 했다. 2011학년도에는 졸업생 전원이 참여하는 민족시 시조 시화전과 졸업장 수여를 묶어서 분위기를 전과는 좀 다르게 했고, 2012학년도에는 여기에다 졸업생 전원이 참가한 시조집 <사랑씨앗 꿈 영글터> 출판기념회를 겸함으로써 시골 어린이들에게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졸업식은 전임지인 노산초등학교에서도 했던 일이고, 반응이 대단히 좋았었다.
시화전은 시화를 스크린 인쇄로 제작했는데 글의 내용은 물론 작자의 얼굴 사진까지 인쇄된 시화가 대단히 호의적이었던지 아동 당사자들은 물론, 학부모나 내빈들까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실은 학예발표회 때 운동장에서 3,4,5,6학년 전원이 참여하여 열었던 민족시 시조 시화전 때 내걸었던 작품들을 철거하여 정성스럽게 잘 보관했다가 재활용을 한 것이지만 졸업식의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데는 크나큰 도움이 되고도 남았다.
출판기념회는 작품 낭송, 축하 공연을 번갈아 가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는데 시골 학생들이지만 그들은 적어도 출판기념회라는 말이 생소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그런 것이 교육의 참 의미란 생각에 우리 직원들 모두가 뿌듯해 했으니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이어서 계속된 졸업장 수여식은 정동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학부모와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서 진행하는 졸업장 수여식이어서 그 분위기가 다른 학교와 비교하여 사뭇 달랐다.
그리고 또 정동초등학교 자랑거리의 하나인 아주 모범적고 활성화된 총동창회가 주로 제공하는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이 졸업생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어지게 되어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내게는 과분한 사천교육상
2012년 12월 말에 사천교육상을 받았다. 사천교육상은 아주 오래 전에 삼천포교육청 시절에 삼천포교육상으로 주어지다가 1995년 6월 1일부터 교육청 명칭이 삼천포시 교육청에서 사천교육청으로 바뀜에 따라 새롭게 사천교육상으로 그 명칭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제1회 사천교육상은 2005년에 시상이 되었고 이후 해마다 시상이 진행되어서 금년에는 어언 8회를 맞게 되었고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많이 부족한 내가 한자리 차지하게 된 것이다.
1회부터 7회까지 그야말로 쟁쟁한 인사들이 수상자였는데 그 중에는 내 형님 이름도 있고, 내가 모셨고 추천서류를 작성해 드렸던 하수종 교장선생님 이름도 있어 무척 반가왔다. 아마 앞으로는 역대 수상자 명단 중에 내 이름도 끼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세월이 흐른 후 역대 수상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후배들이 ‘허허 이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상을 받았을까?’ 라고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괜히 수상을 꿈 꾼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수상식장에서 들었으니 늦게 깨달았어도 한참 늦게 깨달은 셈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작정했다.
1회 때의 수상자인 하수종 교장선생님은 당시 곤양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고, 필자가 같은 학교 교감으로 근무했을 때였다. 그 당시의 공적조서를 만들던 일이 생각났다. 공적조서 이외의 증빙자료 일체는 하교장 선생님이 손수 준비하고 분류하여 파일집에 차곡차곡 모은 것을 넘겨주셨던 일이 고맙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명색이 인사 업무를 맡은 교감이 거의 거저먹기 식으로 큰 일 하나를 아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 송구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그건 고대로 배워서 실천에 옮겼다.
공적조서를 만들기 위해 지나간 나의 행적들을 조사하다 보니 제법 거론해도 될 만한 일들이 내 업적이란 이름으로 과거를 이루고 있었다. 주로 교육연구업무와 문예지도 실적들을 중심으로 챙겼다.
내 행적들을 세세하게 챙긴 이유는 하교장 선생님께 배운 바도 있었지만 내가 받는 사천교육상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비중 있고, 뜻도 있는 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적조서 몇 줄, 그것도 추상적이기 이를 데 없는 문구의 나열로 상을 받는다면 내가 받는 상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란 생각에서다. 뚜렷한 목적으로 모아온 것은 아니나 오래 전부터 내가 근무했던 학교마다 내가 근무할 당시의 관련 기록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정리해 두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었다.
시상식에서 교육장님이 하신 인사말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오늘 제8회 사천교육상은 뜨거운 교육 열정으로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주기 위한 아낌없는 사랑과 애정을 주신 김형진 교장선생님-----.”
많이 부끄러운 가운데 그래도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결론은 아무래도 사천교육상이 내게는 너무도 과분한 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엮고 나서>
분명 홀가분한 기분이어야 맞는데 일을 끝내고 나서도 결코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제대로 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이 기분은 스스로도 그 원인을 알 수는 없다.
학교마다 함께 했던 지인들의 옥고를 받아서 책의 무게를 높일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더러 진심을 속이고 나를 향한 억지 미사여구라도 써야 한다면 그 어려움을 안겨드린 죄 너무나 클 것 같은 생각에서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교직을 잘 마무리하여 유종의 미를 향한 노력을 기울여야할 때가 온 것 같다.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교직관을 되살펴 보고 지난 일들을 새삼 더듬어 혹 잘못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잘 못 다시 범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견제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37년간 사랑해온 육영의 길이 참으로 내게 의미 깊은 길로 남도록 남은 기간 ‘아이들 곁에서의 행복 만들기’에 더욱 더 정성을 쏟아야 할까보다.
혹 눈에 보이는 불합리한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면 못 본 척 하는 슬기도 배워야 할까보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일에 적당히 타협하는 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따른 손해는 어차피 내 몫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으니까.
멀리 월포 두곡 해수욕장의 물결이 정갈한 빛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교정의 수목들이 진녹색 단장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푸짐하다.
어떤 인연으로든 이 책을 읽게 되는 모든 사람들의 건승을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2009년 5월
월포 두곡 해수욕장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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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형진 선배님은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그리고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사람들에게 귀감이 될수 있는 추억들을 글로서 남기셨습니다. 특히나 후배인 제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후배님이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읽어주고 관심 가져주신 우리 후배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