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명구령운동
한국 신학원 이영휘
1909-1910년,일제에 의해 강토가 병합당하던 비운의 시기에 전개 되었던 백만명구령운동은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는 신앙운동이다. 원산 부흥운동 평양대부흥운동이 영적가성운동 혹은 회개운동이었다면, 이 운동은 “백만인을 그리스도에게” 라는 표어 아래 시도된 애규모 민족복음화운동 혹은 전도운동이었다.
1907년 평양에서 치솟았던 대부흥운동의 열기가 해를 넘기면서 급속히 식어가자 스톡스(M.B.stokes) 선교사들에 의해 부흥운동의 열기를 되 살려 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09년 개성에서 스톡스등 남감리회 선교사 3인이 모임을 갖고 이를 위해 1주일간 산상기도회를 가졌다. 기도회를 마치고 내려온 선교사 3인중 스톡스는 곧 지방전도여행에 나섰다. 이에 앞서 그는 자기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의 교인들에게 앞으로 1년안에 5만명의 새 신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후5만 명이라는 목표는 곧2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 표어가 채택되었을 무렵 당시 전국 교인 총수를 선교사들은 14만명에서 20만명으로 추산 하고 있었다.
요컨대 자신들이 선교지로 삼아 활동하고 있는 한 나라의 운명이 “만국백성으로부터 능멸당하고 국가의 주권을 빼앗겼으며 재정권이 남에게 넘어간” 그 사실에 하께 분노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이러한 조건이 전도하기에 ‘절정에날’로 만들어 주었다는 입장이었다.
일제로부터 주권과 강토를 강점당할 위기를 목적에 두고 있던 한국인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남은 것은 절망과 비통뿐이므로 무엇이든지 손길이 닿기만 하면 그것을 붙잡아야만 하였던 절박한 상항이 이들을 이 기간 중에 사경회에 참석하였던 지방의 한 감사는 참석 소감을 문다“지금 우리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길 외에는 달리 아무 도리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군중에게 호소 하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기독교에 대한 기대는 영적 욕구였다기보다는 절망적인 정치상항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백반구령운동으 전개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독특한 전도방버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그 하나가 전도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른바‘날연보’를 하였다는 것이다. 날연보란 말 그대로 전동운동을 위해 물질적인 연보와는 별개로 자신의 시간을 연보하는,즉‘헌일’하는 방법을 뜻한다. 당시 한국 교회의 재정구조나 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보아 대규모의 전도운동을 위한 물질적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자신의 몸과 시간을 헌납하는 날연보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일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일찍이 어느 곳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독특한방법이 창출되었다.또하나의 독특한 전도방법은 이때에 대규보의 문서전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대부흥운동과 백만명구령운동은 종교적 운동으로서의 의미는 지대하난, 일제의 침략이라는 현실 외면 또는 방관한 면이 없지 않았다. ‘백만명 기독교 십자군병“을 양성하려는 운동으로 비쳐지기도 하였다. 1911년105인 사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
20세기 총의 부흥운동은 교회의 조직을 바탕으로 추진되었으며, 이러한 부흥운동의 결과는 교회의 내적 조직정비를 가속화 시켜다. 장로교회의 조직 당회. 노회. 총회의 세 기관으로 구성 되었다. 당회가 가장 먼저 조직된 교회는 새문안교회로 1887년 9월 27일교회 창립과 동시 2명의 장로를 선택하여 당회구성의 요건을 갖추었다. 그후1898년 평양 장대교회에서 이영언,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서경조,1900년 김종섭, 1901년 방기창. 길선주가 장대현교회에서 장로로 피택된 바 있다. 이렇게 하여 장로교회는 1906년 현재 33명의 장로가 창립되어 개교별로 당회가 그 기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한국인 장로 36명,4개 선교부의 선교사 33명, 그리고 찬성원9명 도합 78명이 모인 장로회공의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창립을 선포한 것이다.
첫노회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결정은 경채택이었다.
웨스트민스터신경과 성경요리문답 대소책자로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인즉 우리교회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요리 문답을 적은 책을 더욱 교회문답으로 삼나니라 고 하여 엄격한 칼빈주의에 입각한 한편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들의 미국식 교회정치규범을 따를 것을 전제 하고 있다.1) 성서무오설 2) 하나님의 절대성 3) 삼위일체 4)하나님의 창조 5) 인간의 창조 6) 인간의 타락 7) 그리스도의 속죄 8) 성경의 말씀 9)예정론 10) 성례 11) 신자의 본분 12) 부활과 심판이라는 12기 신조는 엄격한 칼빈의 신앙노선을 옮겨 놓은 것이다.
한국기독교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에 관점으로 보는 역사와 사람의 관점으로 보는 역사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계획 했어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어느 것 하나도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을 알 았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할 때 우리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모습이 되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지금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상항이 더 안 좋아져도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나를 평강에 길로 인도 하는 하나님인 것을 고백 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를 쓰신 하나님께서 한국에 역사도 이끌고 계신다.
지금의 한국에 상항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시는 사랑의 매가 되어 주신 줄 믿는다.
모든 악의 사슬이 풀어지고 사랑과 공의가 회복 되기를 기대 합니다.
한국이 일본에 억울한 지배를 받은 것도 우리를 당신의 은혜가운데 있게 하시려고 잠잠히 역사에 흐름에 놓으시고 주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하셨던 주님을 신뢰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한국 땅을 통해 하실 것을 기대하면 감사와 찬양의 노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