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말잔등 아마도 푯말잔등이라는 말을 시골스럽게 부르는 명칭이었던 것 같다.
줄포 시내에서 선양부락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 반공탑이라는 비석이 있었는데 그것이 있다 하여 팻말잔등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잔등은 낮은 언덕을 말하는 것이고 반공탑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탑이다.
그런데 반공탑이 있던 그 팻말잔등에는 참으로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이 회자되곤 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낮 12시쯤에 그곳을 혼자서 지나가는데 반공탑 근처에 이르자 갑자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굉장히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밤중에 혼자서 그곳을 지나는데 하얀 소복을 한 여자 귀신을 만나서 죽을뻔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회자 되다 보니 나는 어렸을 때 그곳이 대단히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한편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줄포 시내에서부터 선양 또는 감동 감역 부락 쪽으로 길을 가다가 중간 쯤인 반공탑에서 그 기단부에 걸터 앉아 쉬어 가기도 하였다.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반공탑이 있던 팻말잔등을 경계로 그 너머에는 공산당이 득세를 하여 온통 빨갱이 세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공산군 보다 오히려 남한에서 핍박 받고 살다가 전쟁통에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갖게 된 남한 사람들이 더 잔인하고 무서웠다고 한다. 그렇게 그곳에서는 전쟁 중에 북으로 간 사람들도 많았고 그로 인하여 남아 있던 그 가족들이 우리 남한 군대에 의해서 총살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 이후 공산주의를 경계하려는 의도로 그곳에 반공탑을 세웠던 것 같다.
이후 언젠가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반공탑도 사라지게 되었지만 6.25때 겪었던 우리 민족의 이데올로기 전쟁의 상징이었던 반공탑 지금도 그 모습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