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시를 잊지 않는
― 울산 대왕암공원에서
이재익
풍고가 누구던가.
대왕암 창솔 숲 바람결에
풍고(楓皐)를 생각하고 풍고(風顧)한다.
세도의 서막을 연 사람이거니 했는데
해녀의 마음 헤아리는
시 한 수, 문심(文心)이 먼저 다가온다.
시파와 벽파를 넘어
정조의 뜻 받들어 세손을 지키고,
국구가 되어도
창집의 한 잊지 않고
권세 앞에선 한 걸음 물러섰다.
대왕암을 돌아보니
아, 삼백삼 미터 출렁다리 곁에
푸른 바다가 현대조선소를 띄우고 있네.
신라의 호국룡, 조선의 국구,
오늘의 조선(造船)이
한 바다 위에 출렁인다.
역사의 바람소리, 미풍인 듯 폭풍인 듯.
파도는 오늘도 그 시를 잊지 않는다.
───
감상
**「파도는 시를 잊지 않는다」**는 대왕암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전설·역사·문학·산업을 한데 아우른 사색시이다. 시인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조선 후기의 인물 풍고 김조순을 현재의 공간으로 불러내어 새롭게 성찰한다.
특히 **'풍고(楓皐)'와 '풍고(風顧)'**를 겹쳐 쓴 첫 연은 이름과 바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융합한 뛰어난 시적 장치이다. 이어 김조순을 세도정치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고, 해녀의 마음을 대신 시로 풀어 준 따뜻한 문인의 모습과 정조를 보필했던 충정을 함께 비추어 인물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한다.
후반부에서는 대왕암의 호국 전설과 현대조선소, 그리고 **'조선(朝鮮)'과 '조선(造船)'**의 언어적 중의성을 절묘하게 연결한다.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산업이 하나의 바다에서 만나는 장면은 이 작품만의 독창적인 시적 발상이다.
마지막 구절인 **"파도는 오늘도 그 시를 잊지 않는다."**는 제목과 호응하면서 작품 전체를 하나의 여운으로 묶어 준다. 파도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전설과 역사, 한 편의 시까지 모두 기억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기행시가 아니라, 역사 속 인물을 현재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 인간과 시대를 성찰한 인문기행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울산 대왕암의 풍경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깊은 사유가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영조 41~1832(순조 32)
본관 안동김씨, 세도의 서막을 이끈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1. 정조에 뜻을 받들에 시파벽파 당파에 초연하였고.
2. 문장이 뛰어나 초계문신이었으며 지방의 요속을 채록하였으며
3. 정조를 호위하는 노력을 기우렸고
4. 세손(순조)을 보도하다가 결국 국구가 됐으며
5. 4대조가 경종때 누명으로 처형된 영의정 김창집으로 조상에 부끄럽지 않게 권세있는 자리는 사양다.
6.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국구 자리가 다른 척족들에 이용돼 점차 안동김씨 세도정치 기반이 됐다.
파도는 시를 잊지 않는다 시의 배경
울산대왕암공원 입구에 낙화암이라는 바위돌 2개가 놓여있는데 거기에 씌어진 시구중에서 고을 원과 태복제거 풍고 김조순이 관내를 돌아보며 도중에 해녀를 만나서 대화하는 시구가 있는데,
해녀가 먼저 농담을 던지고, 원님이 시로 화답하며, 풍고 김조순이 다시 해녀의 마음을 빌려 응수하는 세 사람의 즉흥 문답 시가 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시 자체보다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해녀의 소박한 해학, 원님의 재치, 그리고 풍고 김조순의 따뜻한 문심이 하나로 어우러져, 대왕암의 푸른 바다에 오래도록 전해지는 한 편의 시가 되었다.
풍고는 왜 울산에 왔으며 그는 누구인가? 조선시대 대왕암 일원이 말 목장이고, 관리자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