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 시바신의 아내 두르가 여신의 화신, 붉은 딸레쥬
► 파탄의 쿠마리에게서 축복을 띠까를 받은 필자
► 쿠마리 신전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한 드림팀
생리를 하지 아니 했다는 이유로 60대까지 쿠마리 직을 지킨 특이한 케이스의 바지라차르야(63)
► 천진한 미소 짓는 소녀여신 쿠마리
► 박타푸르의 쿠마리였던 산쟈니(Sajani Shakya)는 2007년 미국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쿠마리직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소고기를 먹는 야만적인 나라를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 쿠마리 축제 때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사이로 인력이 메는 가마를 타고 축복을 나누어주는 쿠마리여신
►카트만두 쿠마리여신의 거처인 딸레쥬 신전
► 우리 드림팀의 손끝에서 태어난 쿠마리 여신
신들의 나라, 네팔에는 별별 이상한 일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 바로 살아 있는 여자아이를 마치 여신인양 받들어 모시고 있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벌써 250년이나 내려온 전통이다. 쿠마리 숭배관습은 18세기경 카트만두 분지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말라(Mala)왕조의 마지막 국왕 자야 쁘라까시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옛 왕국이 있었던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붕가마띠 등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쿠마리는 한 명이 아니고, 지방까지 합치면 최소 10여명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있는데, 그중 가장 신격이 높은 쿠마리는 카트만두의 ‘로얄 쿠마리’이다. 그녀는 지금도 더르바르(Durbar) 광장 옆 쿠마리 바할 신전에서 살면서 가끔씩 얼굴만 세상 사람들에게 잠깐 보이고 있다가 큰 축제가 되면 가마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와 축제를 주관한다.
'쿠마리 데비'(Kumari Devi)는 '숫처녀'라는 의미로 두르가 여신의 어릴 때 이름인데, 그녀는 로드시바의 부인이며 파괴의 여신인 두르가의 네팔식 화신 딸레쥬 바와니(Talleju Bhawani)의 또 다른 화신이다.
온 세상이 종교분쟁으로 피비린내가 마를 날 없는 사바세계에서 이웃종교와 화목하게 공존하는 일은 정말 보기 힘들다. 이런 현상은 종교들이 내세우는 이론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데서 세상의 모든 갈등과 다툼과 대량살륙이 비롯되고 있다. 바로 밥그릇 싸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채로운 나라가 한 것 있다면 바로 네팔이다. 네팔의 국교인 힌두교와 제2의 종교인 불교가 사이좋게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기 때문이다. 그런 흥미로은 현상의 배경은 바로 ‘쿠마리’ 때문인데, 그 이유는 대대로 쿠마리의 친생 아버지는 샤카(Sakya)족의 고타마 싯다르타의 후예였고 친생 어머니는 전통적인 힌두교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불교와 힌두교는 혈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사이라는 것이다.
쿠마리의 선발은 엄격한 자격과 조건을 갖춰야 한다. 부모들의 혈통 이외에도 쿠마리로 선출되려면 32가지의 신체적인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이는 아마도 샤캬붓다의 32상호에서 유래한 것일 것이다. 우선 몸에 흉터가 없어야하고 까만 눈동자에 가지런한 치아 등등 신체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더 엄격한 심사기준은 생리를 하지 않은 숫처녀라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쿠마리제도는 달라이라마처럼 환생해서 대를 이어가지 않고 여신이 일정한 조건을 갖춘 처녀의 육체에 잠시 머물다 간다는 것이다.










전대 쿠마리가 생리를 시작하여 다음 쿠마리를 선발할 필요가 있을 때면 일종의 국가적인 간택령(揀擇令)이 내려진다. 그러면 전국의 샤카 성씨를 가진 2~5살까지 딸아이 둔 부모들은 여기에 참가해야만 된다. 만약 이를 거부할 때에는 무서운 딸레쥬 여신의 신벌이 내려진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심사를 거쳐서 최종 선발된 어린 소녀는 빛이 차단된 암흑의 방에다 집어넣고 하룻밤을 지내게 만든다. 그런데 이 방은 그냥 어두운 방이 아니다. 온갖 괴기스런 물건이 즐비한 공포 그 자체의 감옥이다. 이 방에는 소머리, 돼지머리, 양머리, 닭대가리 같은 희생제물이 차려져 있는 피비린내 가득한 곳인데, 만약 여기서 소녀가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그 방에서 나갈 수는 있지만, 대신 쿠마리 선발에서는 탈락이다. 그 이유는 여신이 될 자격이 있다면 딸레쥬 여신의 화신으로 타고 나야하기에 무서움정도는 당연히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암흑의 방에서 하루날 밤을 새는 소녀에게는 정말로 막강한 힘을 가진 로드 시바신(Lord Shiva)의 아내이면서, 파괴와 죽음을 관장하는 두르가(Durga) 여신의 화신(化神:Avatra)인 딸레주 여신의 영(靈)이 그 소녀의 육체에 깃들게 된다는 한다. 바로 이 여신이 네팔왕국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 하는 수호여신이니 당연히 중요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쿠마리가 되면 그날부터 딸레쥬 여신처럼 화려하고 온통 붉은 옷을 입고 온갖 장신구로 치장하고 얼굴에는 눈을 강조하는 화장을 하고 이마에는 붉은 칠을 하고 그 가운데 ‘제3의 눈(The third eye)’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는 지정된 교사로부터 힌두경전을 배우면서 여신으로 추앙받으며 땅을 밟지 않고 호의호식 하면서 지낼 수 있다. 쿠마리가 세상을 접할 수 있는 때는 하루 한 번(혹은3번)이다. 정해진 시간에 창문을 통해 사원 밖을 내다 볼 수 있는데, 이때 쿠마리 여신과 눈이 마주치면 행운이 찾아오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대가 되도록 기다렸다가 열광을 하는 등 야단법석을 펼친다. 또한 쿠마리는 여신이기 때문에 자기의 발로 걷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 년 몇 차례 정도, 일명 황소축제인 ‘가이 자트라(Gai Jatra)’나 다샤인축제 같이 쿠마리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하는 축제 때에는 전속 도우미들이 여신을 사람이 메는 가마에 태워 옮기고 사방에서 호위를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사원 안에서 갇혀서 살아야하니 누구나 아무나 할 짓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쿠마리로 선발돼서 활동하다가 만약 몸에 상처가 나서 피한방울만 흘려도 여신의 자격이 소멸되며 또한 첫 월경이 시작되면 자격이 박탈된다. 그 외의 자격박탈 사유도 있다. 바로 박타푸르의 쿠마리였던 산쟈니(Sajani Shakya)의 경우이다. 그녀는 쿠마리에 대한 다큐를 찍으러 2007년 미국을 방문했는데, 그게 바로 직접적인 이유가 되어 쿠마리직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소고기를 먹는 야만적인 나라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케이스도 눈길을 끈다. 평생 생리를 안 한 덕에 60대까지 그 자격을 유지한 할머니 쿠마리 바지라차르야(63)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1954년 2살의 나이로 쿠마리로 추대된 후 생리를 하지 안 해서 30년간이나 파탄지역 공식 쿠마리로 지냈는데 1984년 특별한 이유 없이 은퇴를 당해야만 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드라 자트라가 시작된 3일 뒤에 쿠마리자트라가 시작되기에 이 쿠마리가 인드라의 부분으로 알려진 경우도 잇지만, 분명히 두 축제는 그 연원부터 다르다. 인드라축제가 고대 리차비왕조(Lichhavi Period:300 BC-1200 AD) 시기 때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데 비해 쿠마리 자트라는 1756 AD 카트만두의 말라(Mala)왕조의 마지막 국왕인 자야 쁘라까시 말라(Jaya Prakash Malla) 시대에 만들어진 축제라는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가장 네팔적인 행사라는 점이다.
어느 날 한 정체모를 아름다운 소녀가 제발로 궁전으로 들어와 국왕과 주사위게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돈을 한 손에 움켜쥔 남자들은 세상의 모든 이쁜 여자는 모두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당연히 소녀에게 수작을 걸어 결국 그녀를 범하려고 강제로 침상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아름답기 그지없는 천하일색 소녀가 돌연 머리가 넷이고 팔이 10개나 달리고 입에서는 붉은 피를 흘리는 무서운 딸레쥬 여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왕을 꾸짖고 저주를 퍼붓고 사라져 버렸다.
이에 여신의 무서운 형상과 저주가 두려워서 혼비백산한 왕은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불안에 떨던 국왕은 점술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점괘는 여신을 위한 사원을 짓고 기도를 하라고 떨어졌다. 그래서 왕은 손재주 있는 온갖 장인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본 여신대로 소상을 만들어 놓고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일체의 감응이 없이 지나가다가, 마침내 그때 그 여신이 나타나 말하기를, “반드시 초경을 격지 않은 순결한 어린 소녀를 골라 나의 분신으로 삼고 섬기면 용서를 하겠거니와…” 라고 다시 협박을 하고 사라졌다.
이에 자기의 생명뿐만 아니라 왕국의 안위가 걸린 중대한 문제라 왕은 온 나라를 뒤져서 여신의 뜻에 맞는 조건, “2~5세 사이 32가지 상을 갖춘” 조건에 부합하는 순결한 소녀를 선발하고 여신으로 섬기게 되면서 그녀를 위한 쿠마리 자트라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외부인이 쿠마리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우선 정월에 열리는 스웨타 마친드라나트 스난(Sweta M. Snan) 때 잠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에는 사원에 있던 신상을 목욕시키고 향유를 붓고 치장을 한 다음 푸쟈를 올리며 한 해 동안 비가 잘 내려 농사를 잘 되도록 기원하는데, 이 때 꾸마리 여신도 이 사원을 방문하여 푸쟈를 행한다.
다음은 황소축제에도 참관한다. ‘가이 자트라’는 암소축제라는 뜻으로 어린 소년들을 암소로 치장하고 앞세워 전년에 사망한 망자들의 사진을 들고 온 시가지를 행진한다. 쿠마리 여신이 소녀인데 비해 ‘가이 자트라’에서는 소년들이 암소로 분장하여 망자의 영혼을 저승길 입구까지 데려다주는 준다고 한다. 물론 ‘인드라 자트라’와 겹쳐져 7일간 거행하는 쿠마리 자트라 때가 그녀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물론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딸레쥬(Taleju)신전에 살고 있는, 로얄 쿠마리는 철저히 봉쇄되어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는 없지만, 로컬 쿠마리는 눈치껏 교섭하면 직접 만나서 축복의 붉은 띠까를 이마에 받을 수도 있다. 나도 드림팀을 데리고 파탄 더르바르 광장 스케치를 갔다가 우연히 쿠마리 신전을 지나다가 쿠마리의 부모를 만나게 되어 이층으로 초대받아 정화수로 세례를 받고 그녀를 직접 대면하고 인증사진까지 찍었는데, 그 때 가까이서 잠간 본 5살 소녀지만, 살아 있는 여신인 쿠마리의 눈이 잊히지 않는다. 뭐랄까? 깊은 연못 같은 그런 신기(神氣)가 담겨진 눈이랄까?
이 쿠마리제도에 대해서 이른바 문명국가라는 나라들의 눈길은 당연히 곱지 않다. 페미니스트적 시각 이외에도 아동학대가 바로 그런 것들인데, 이런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네팔 정부측에서도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2014년부터 은퇴한 카트만두 쿠마리에게 ‘종교와 문화’ 에 기여한 공로로 상패와 생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때 쿠마리로 발탁되어 소녀에서 여인이 되어 그 자리를 내 놓게 되더라도 한 때의 영광에 드리워진 그늘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은퇴한 쿠마리가 결혼하면 그 상대는 신의 저주를 받아 요절한다는 인식 때문에 덤벼드는 총각이 없기 때문이란다. 어찌 보면 기이할뿐더러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쩌랴? 남의 나라 오랜 종교적 관습이라니, 더구나 네팔이란 나라의 명운이 이 어린 소녀에게 달려 붙어 있는 딸레쥬여신에게 달려있다니… . 뭐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