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바람은 칠십 도의 각도 외 2편
박해람
봄에 부는 바람은 비스듬한 종류들이 많다
바람의 영역엔 서식하는 각도들이 많다 수직 낙하와 가벼운 깃털들은 신분이 높아서 바람도 어쩌지 못한다 빗줄기도 비스듬한 신분이고 봄의 신분도 그와 다르지 않아 바람의 층에 쉽게 올라탄다
이때 벚꽃이 날리는 경사각은 70도, 이륙하는 것들과 평사낙안(平沙落雁)의 각도도 70도 쯤 된다 벚꽃은 바람의 소속이니 사인(sin)법칙으로 날릴 것이고 새들의 이륙과 착지는 탄젠트(tan)법칙이 아닐까 싶다 지상엔 가차 없는 일직선들이 경계를 긋고 있지만 공중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다 그런 원칙 없이도 공중은 지상보다 말끔하다
지상의 그늘들이란
공중의 날씨들이 쉬는 모습일 뿐이다
날아오르든 떨어지든 모두 70도의 경사각을 거쳐야 한다 아직 찾아보진 않았지만, 직각의 바람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공중에선 어떤 선(線)도 다 굴절된다
여러 번, 여러 번이라 칭하는 묶음들은 대부분 여름 빗줄기들이라 처마들 각도를 친애하지는 않는다 또 지상에선 경사각이라는 말 보단 구배(勾配)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쓰지만 이 경사각이 지상으로 내려오면 굴러가는 일들의 성지가 된다
막강한 힘이 된다
모든 제자리 들은 사라진다
동그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은 너무 하찮은 일이라서
탓할 대상이 없다
바람 없이 고요한 날 공중은
어쩌다 얻은 비행운하나를 천천히 쓰고 있다
철봉 냄새
철봉에 매달린 후
손에선 오래 매달려 있으면서
안간힘을 쓴
사람의 냄새가 난다.
단단한 쇠가 조금은 사람 쪽으로 묻어온 냄새
아니면, 사람이 쇠를 비집고
그 힘으로 들어가려 한 냄새.
쇠는 제자리를 지키는 힘이고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힘을 조금씩 얻어 내려 한다.
아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힘과
마음껏 움직일 힘을 얻어내려 한다.
내가 가진 힘보다 더 센 힘을 잡아당기는 일은
사실, 견디는 힘이라는데
결국에는
그 물체가
없는 힘만 골라내어 구부리려 한다.
한동안 손에선
매달린 힘의 냄새가 났다.
비누로 닦으면 조금 미끄러진 냄새
그러다 다시 매달릴 수밖에 없는
냄새가 손에서 나기 시작한다.
예전엔 한동안 손에서 비린내가 났었는데
그것이 도망친 냄새인지
도망치려는, 미끄러운 냄새인지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제자리들은 스스로 움직일 힘이 사라진 곳인가.
끌려간 적도 없으면서
끌어들이고들 있다.
플라잉낚시
궤적을 갖고 논다.
물살은 흐르다
여울로 회기(回期)한다.
찌통을 열면 지난가을 채비해둔 새의 조마조마한 깃털로 만든 곤충 들이 붕붕 날아다니고 무지개송어는 한마디 말처럼 헤엄친다.
이정도 물살이면
물고 물리는 일이 벌어진다.
지루한 물살, 이곳은 송어들의 식민지
초장은 한여름 맛이고
스프링을 달고 삐걱거리는 물살은 질기다
강들은 죄다 내리막이고
물소리들은 오르막이다
천만에,
한마디 궤적 속으로 숨는 새
새는 아무리 세게 발음해도 새
나무들이 풀쩍 뛰어올라 새들을 물고
첫 번째 가지로 돌아가는
미끼들이 날아다니는 물가
흐르는 물살에 물린 무릎
안간힘을 쓰는 물살은 무릎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휘청거리는 무릎,
송어들은 춤추는 것들을 잡아먹는다.
매듭진 곤충들
새의 깃털로 만든 날벌레로 진짜 송어를 잡는다.
물살은 부서지다 여울에서 산란한다.
[신작시]
던지지 마라, 맹수가 된다 외 2편
박해람
힘껏 던진 돌이 떨어진 곳
자칫, 그곳은 맹수가 된다.
돌이 날아간 만큼의 거리를
내 쪽으로 또는 내 것으로 하겠다는 뜻
가보지도 않고 미리 가본 곳이라고 단정 짓겠다는 뜻
돌이 떨어진 곳에서 깜짝 놀라 또 그만큼 밖으로 밀려난 곳은 여차하면 맹수가 되겠다고 으르렁, 벼르고 있는 곳들.
맹수들은 물러나는 것의 앞모습과 뒷모습의 거리를 다르게 측정한다는데
누구로부터 그만큼의
거리 쪽으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억센 털들이 솟고
송곳니가 길어지는 것을 느낀다.
던진 꽃은 꽃씨나
열매의 씨앗들이 아니다.
돌이 날아간 거리만큼
자신이 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늙고 병든 영역이 된 것을 또 알게 되는 것이다.
들고 가서 놓아두면 온순하고
던지면, 던져지면 맹수가 되는
한 올의 털도 나지 않은 돌멩이가
맹수로 바뀌는 것을, 흔하게 보고 또 보았다.
돌 던진 곳에서 새때들이 날아오른다.
나는 모르고 황급히 날아오르는 새때들은 알고 있는
그런 맹수들이 많다.
연필의 끝
종이는, 구겨지면 파지이고
접어 봉투에 넣어지면 내용이 된다.
종이의 식성은 빼곡하고 또 가지런해서 마치 밭고랑 같기도 하지만 횡보(橫步)로 가로지르고 70도의 경사를 받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문자는 필기구의 끝에서 나왔다.
그래서 다급하고 쉽게 잊혀진다.
전서(典書)들을 외운 직업이란
끝에 겨우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끝이 끝을 벗어난 곳이
종이 위이지만 문자는 날뛰지 않는다.
모든 문자는 사실, 고삐로 묶여있다는 것이다.
철자법을 벗어나거나
맥락을 풀고
소나 말처럼 날뛰지 못한다.
끝이 다 닳으면,
그 끝이 끝났다는 것이다.
꺾어 꽂아둔 가지 끝에서 초록이 돋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더 손에 이상 쥘 수 없는 길이가 된다면
아무리 유능한 종이를 만난다 해도 필체가 될 수 없다.
연필과 비슷한 붓의 중심으로 외곽을 풀어놓으면 예(藝)가 되고 예는 물줄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끝을 극복했거나 그 끝에서 놓여났거나
하는 일이 곧 문자들이다.
그리고 연필심은 늘
중심에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미안한 곳
하루에 몇 번은
미안한 곳을
지나치는 것 같다.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거나
주춤거렸다면
미안한 곳이
나를 기다렸다는 뜻일 거다.
며칠 뜨지 않던 해가 더 밝고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더 시원스럽다면 그것들도
미안했었다는 의사표시일까.
가로지른 생사가 중앙분리대까지
저의 몸을 끌고 와 굳어가는 그곳이
후사경 속에서 끝까지 따라온다.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은
미안한 곳이 곳곳에 있다.
조심스러운 말끝을 밟고
젖은 땅을 골라 딛어가듯 갈 때
마치 발 한 짝을 누군가에게
빌려준 듯 어색한 곳들이 있다.
도무지 마음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몇 개의 도형을 들고
未安,
나의 마음은 지금 세모야
혼자 서성거리는 나뭇가지야.
고백하듯
이리저리 맞춰보고 있다.
[시인의 에스프리]
두 번 접은 비밀과 일곱 번 접은 비밀
박해람
두 번 접은 비밀과
일곱 번 접은 비밀을
한 가지 말투로 이야기했다.
비밀의 용적률은 어느 정도일까. 비밀의 종류들은 또 얼마나 될까. 비밀에는 숨어 있는 사람이 있고 숨겨놓은 사람이 있다. 문고리를 꼭 잡고 열어주지 말라고 부탁해 놓지만, 가끔 비밀들은 스스로 문고리를 놓는 일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비밀들은 타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한때 과학자들이란 세상의 비밀들은 밝혀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모두 사실로 밝혀졌지만, 비밀이란 결국 넓은 것을 작게 혹은 좁게 접어놓는 일이다. 아무래도 사람은 넓게 펴는 일보단 좁게 접는 일에 더 소질이 있지 싶다.
거짓말은 참 예쁜 말이라서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고 교묘하게 엿보는 그림자가 있다. 또 본래의 말보다 몇 배가 넘는 프레임으로 움직인다. 세상엔 고백이라는 장르가 있고 털어놓은 방식의 진술이 있다. 이런 것들은 명백하게 비밀이 여러 형태의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비밀은 제목 같은 것은 없다.
예전엔 죽은 사람들을 따라 사라진 비밀을 찾아다니는 직업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두 번 접은 비밀의 주인이었다. 겨우, 두 번 접은 비밀의 주인으로는 어느 나무로부터 여름이 시작되는지와 저 산골짜기 어느 돌멩이로부터 봄비가 싹트고 나오는지 알고 있는 정도라서 늙은 바람이 숨어 있는 꽃잎이나 다람쥐가 숨겨 두었다는 잘생긴 구름 같은 것에 대해서는 또 모를 때였다.
그때쯤으로 기억되는 일이 또 있다. 버드나무들의 비밀통로로 사용된다는 우물에 관해 묻고 다닐 때였는데, 모든 정오(正午)가 가벼운 두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얼핏 들은 것도 같았다. 아스피린을 처음 먹었던 때도 그쯤으로 기억한다.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씨가 말한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우물터를 찾는 수택탐지자를 만나 오로지 높은 곳으로 역류하는 물줄기에 대해 듣고 싶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극작가들의 몽상이란 다 비밀의 대화법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예의를 모를 것이고 상대방의 기분 따위를 살피는 일엔 또 소홀할 것이므로, 자잘한 비밀을 많이 보유하려면 그만큼의 괄호가 필요할 것이라는 개인적 생각이다. 두 개의 물음표를 이어폰처럼 끼고 무표정과 무반응으로 일관할 수 있다면 비밀을 취급하는 기술자들의 자격증을 무난하게 취득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모든 잉크의 색이 암흑 같은 불투명이고 대부분의 필기구가 검은색 글씨들을 쏟아내는지 흘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검은색 눈동자와 같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면 잘생긴 거짓말들과 친교 할 수 있어야 한다. 신발 끈 없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가든 내려가든 그곳에는 비밀을 접는 방식을 교습하는 무허가 교습소가 있다.
“폐어(廢語)로 적힌 날짜를 들고
전생의 얼굴로 모여들었다.
일몰 중독자들과 기시감 수집가들이 악수를 나누고 흐린 가로등 밑과 원형의 고백 무대들이 서로 외면했다.
그중 절취선 중독자들이 가장 점잖다.”
(졸시- 「전생을 모함하는 모임에 갔었다」 일부)
한 편의 시를 완성해놓고 보면 그 안에 꼭 나도 모르는 비밀하나가 들어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 모르는 비밀일 때도 있어서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알아채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남의 비밀은 내 것 보다 더 잘생겨 보이거나 더 크게 느껴진다.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심사를 맞았던 선생을 한참 지난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그 전에 몇 번 전화를 드렸으나 그때마다 만나기를 고사하셨다. “나는 내 일을 했고 그 일로 어떤 감사를 받는 일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따라 사소하게 만난 자리에서 선생은 “시 쓰는 일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외치는 말로 의사를 주고받는 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엔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이 말로 알아듣는 일. 왜 이쪽의 말을 그쪽의 말로 이해하려는지 또는 그쪽의 말을 이쪽으로 해석하려는지 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어떤 면에서 분명한 말은 강요적 언어이고 사소한 오해가 묻은 말은 나름의 여지가 포함된 말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알아들었던 것 같다. 이후로 시를 써넣고 혹시나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돌멩이, 궤적, 툭, 하는 소리, 푸드덕 날아가는 새떼, 다시 돌멩이, 이끼, 흙.
돌멩이 하나가 어떤 행위적 과정을 통해 변모해가는 과정을 나열하면 이렇게 된다. 돌멩이를 던진다. 던져진 돌멩이는 공중에서 궤적을 그리니까 궤적으로 바뀌고 그 돌멩이는 저가 떨어진 풀숲에 툭, 하는 소리가 된다. 만약 그곳에 새들이 앉아 있었다면 떨어진 돌멩이 소리에 놀라니까 돌멩이는 다시 푸드덕 날아가는 새 떼가 된다. 여기서 한 번 그 쓰임을 당한 돌멩이는 전혀 다른 존재로의 변모를 꿈꿀 것이다. 풀숲에 떨어진 돌멩이에는 이끼가 돋고 다시 천천히 흙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무엇을 던지고 던진 것이 떨어진 곳을 살피는 일의 서사는 오래되었다. 따라잡지 못하는 사냥감을 잡는 일에 사용되었고 일정한 거리 밖으로 피하려는 쪽의 자구책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렇게 던지는 일에 적대감을 사용하고 던져진 것들은 그곳에서 맹수가 되었다. 새들이 놀라 날아갔고 물에 던져진 돌멩이는 물고기를 쫓았으며 겹겹의 파장으로 번졌다. 가끔 나는 누가 던진, 일정한 거리의 밖일까 궁금해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 변모하지만 내게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이 가장 나를 괴롭히는 일이다.
박해람
강원도 강릉 출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낡은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백 리를 기다리는 말, 여름밤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