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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능엄경』 읽기 열풍과 거사(居士) 불교
2020년 8월 1일
명나라 말기에 불교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거사 불교가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양명 후학들도 참여하였습니다. 현재 연구관점은 불교 부흥운동이 양명 후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명 후학들이 오히려 불교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불교 부흥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명나라 말기에는 양명학이 쇠퇴하거나 몰락하고 오히려 양명 후학들이 불교와 도교에 귀의하여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풍조가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조정길(趙貞吉, 1508-1576)입니다. 전겸익(錢謙益, 1582-1664)에 따르면 가정 연간(1522-1566)에 조정길이 진사시험 우수 합격자(庶吉士)들에게 북경 관청에서 인턴십을 가르치는 동안에 『능엄경』을 읽으라고 독촉하였다고 합니다. 조정길이 불교를 배웠고 나중에 서길사들에게 『능엄경』을 읽으라고 독촉한 것은 불경 읽기 유행을 불러일으키고 불교 부흥운동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현재 양명 후학들이 『능엄경』을 읽고 사람들에게 강독을 권장한 자료는 조정길이 먼저입니다. 조정길은 만년에 유학의 경세와 불교의 출세에 관한 자료를 모아 『내외이편(內外二篇)』을 편찬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병이 깊어 포기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조대정(趙臺鼎)은 아버지가 수집한 자료를 모아 『맥망(脈望)』 8권을 출판하였습니다.
등활거(鄧豁渠)는 사천성 내강현 출신이며 조정길과 같은 고향입니다. 등활거는 조정길의 학생이지만 나중에는 서로 갈라섰습니다. 그는 여러 스님을 찾아가서 배웠고 직접 수양공부를 하여 진상(眞常)의 묘명진심(妙明眞心)을 몇 번이나 깨우쳤습니다. 그의 문집 『남순록(南詢錄)』을 보면 왕양명의 양지와 왕간의 격물지지(格物之旨)를 폄하하고 묘명진심을 주장하였습니다. 묘명진심은 사실상 『능엄경』에 따라 수양공부하여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정길은 28살(1535)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한림원 편수가 되었습니다. 안균(顔鈞, 1504-1596)에 따르면 안균이 1536-1639년 동안에 북경에서 서월(徐樾, ?-1551)을 스승으로 모시고 양명학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에 북경에서는 서월과 조정길 등이 모여서 양명학을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조정길은 54살(1561)에 사직하고 귀향하기 이전에는 주로 북경에서 관직을 지냈습니다. 귀향한 뒤에는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명나라 말기에 거사 불교가 유행하였습니다. 현재 몇몇 연구는 청나라 팽제청(彭際清, 1740-1796)의 『거사전』에서 거사 불교의 자료를 얻어 연구하였습니다. 팽제청이 1770-1775년에 역대 거사 자료를 모아 『거사전(居士傳)』 56권을 편찬하였습니다. 명나라 말기를 보면 대략 108명 거사를 열거하였습니다. 대체로 만력 연간(1573-1620)과 1644년 명나라 멸망까지 거사들의 전기 자료입니다. 명나라 말기의 불교 부흥운동에서 거사 불교를 알 수 있습니다.
아래 번역한 장대수(張大受)가 지은 「능엄강록 후서(楞嚴講錄後序)」를 보면 당시에 지식인과 관원들이 강소성 상숙현 우산(虞山)에서 스님을 모시고 불경을 강독하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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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길(趙貞吉, 1508-1576)
전겸익(錢謙益, 1582-1664)
장대수(張大受),「능엄강록 후서(楞嚴講錄後序)」:
부처님을 대신하여 불법을 강연하는 사람은 『능엄경』의 “상주진심(常住眞心)” 또는 “묘각명성”(妙覺明性)의 깊은 뜻을 다시 펼쳐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여래장은 부처님이라고 늘어나지 않고 범부라고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도록 하고 순서에 따라 수양공부하여 깨닫도록 합니다. 세상에서 법사(法師)라는 스님 가운데 누구인들 강단의 사자좌(獅子座)에 올라앉아 가사를 두르고 불자(拂子)를 들고 강연하면, 강단 둘레에서 듣는 사람들(四衆)이 여섯 가지 성취(信聞時主處眾)를 이루고 제자들은 법을 아뢰고 선기(禪機)에 대응하며 신도들은 고개를 숙이고 모시는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누구인들 설법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불꽃을 내뿜듯이 하고 거침없이 논리를 펼치는 광경이 병에 담긴 물을 쏟듯이 또 언덕길에서 어린 말들이 내닫듯이 하여, 세간의 모든 중생이 기뻐하고 용신(龍神)들도 경건하게 듣고 심지어 하늘에서 꽃이 날리고 단단한 선돌들도 듣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이고, 법려끼리는 특별한 만남을 자랑하고 도량의 훌륭한 광경을 기록하는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깊은 뜻과 어려운 말을 끝까지 따지고 바닥까지 밝히는 것은 오히려 그 자리에서 듣고 이해하기 쉽지 않고, 잘게 조목을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온갖 증거를 찾아 넓게 고증하는 것은 오히려 종합하고 통일하려는 취지에는 어긋나고, 문구를 길게 설명하거나 몇 줄씩 한꺼번에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본래 뜻에서 멀어지고 쓸데없이 퍼져나가는 잘못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을 받드는 것이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불법을 자랑하는 것이고 불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불경을 빌어 자신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이며 불경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며, 불경을 설명한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이며 불경을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깨우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강연은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시자 승시(柴紫 乘時) 스님은 깊고 깊은 뜻을 알아 지혜가 무시 이래까지 미쳤고, 성종(性宗)과 상종(相宗)을 잘 알아 각기 종승(宗乘)을 깊이 이해하였고, 팔식(八識)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많은 해석을 종합하고 논리를 풀었는데, 모두 깊은 뜻을 종합하여 잘게 따져서 지루하게 늘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능가경』과 『능엄경』에 관하여 뼛속까지 깊이 들어가서 불심(佛心)을 이해하고 법원(法源)의 체계를 잘 정리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스님께서 강소성 소주부 상숙현(江蘇省 蘇州府 常熟縣)에 있는 우산(虞山)의 대석산방(大石山房)에 머물자, 여러 거사(居士芝房孫公、鴻所張公、空如程公、葵陽沈公) 등이 동탑의 조용한 곳에서 『능엄경』을 강연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스님은 강연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을 따라 부처님을 대신하여 깊은 뜻을 펼쳐주셨고 강연 내용은 본각묘명(本覺妙明)에 관하여 성종(性宗)의 넓은 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킨 것 같았고, 여래장에 관하여 깊이 이해하는 방법을 바로잡아주셨고, 여러 주장을 찾아 어려운 것을 없애서 잘 설명해주셨고, 각가지 견해를 모아 핵심을 판결해주셨습니다. 설명은 명백하게 간결하였고 전체 내용을 밝히면서도 요점을 밝혔습니다. 마치 하늘길에 올라가서 구름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밝은 횃불을 들어 어둠을 밝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은 열심히 듣고 아주 기뻐하였는데 얼굴을 가리며 기뻐서 웃고, 전혀 몰랐던 것을 듣고서 여래장 불교를 상세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진상묘명(眞常妙明)을 잘 설명해주셔서 여러 가지 수양공부를 하였고 사람마다 깊이 이해하였습니다. 이렇게 장엄한 성과를 말하자면 『능엄경』을 배워서 진상묘명의 마음을 찾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진상묘명의 마음에 『능엄경』을 모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시 스님이 말씀하시는 모습은 부처님께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모르는 것을 밝혀주셨던 것과 찍어내듯이 똑같았으니 모인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진심(眞心)과 망심(妄心)은 확연히 다른 것을 알지만 수양하여 깨닫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불법을 듣는 사람의 근기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먼저 깨달을 사람이 나중에 깨달을 사람을 가르쳐주고 내가 깨달아서 남을 깨우쳐주는 것은 불법을 설명하는 사람의 전체적인 혜명(慧命)에 달려있습니다. 옛날부터 삼근(利根, 中根, 鈍根)의 모든 중생을 널리 받아들이고 오교(華嚴五敎 : 小教, 始教, 終教, 頓教, 圓教)를 모두 포괄한 것은 오직 『능엄경』뿐이며 여러 경전을 종합하였다고 전해옵니다. 승시 스님은 이런 말을 증명하고 증명한 경험에 따라 이 『능엄경』의 주장을 잘 이해하고 불법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되돌려서 이근(耳根)의 문성(聞性)을 관찰하도록 하여 제8식의 묘각명성(妙覺明性)을 깨닫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에게 밀인(密印, 다라니)의 순서에 따라 수양하여 증득하는(修證) 방법을 알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室羅筏, Sravasti, 舍衛國)의 지항정사(祗桓精舍)에서 설법하신 내용(『능엄경』)이 엄연히 전해오고, 시승 스님께서 우산(虞山)의 대석산방(大石山房) 강당에서 사람들이 왔다가 가는 모습, 시원한 바람이 불고 밝은 달이 비추는 모습,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달려가는 모습 모두 진상(眞常)이 밝게 드러난 것이며 대각이 광명을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승시 스님의 설법은 정말로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여럿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거짓 지혜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몇 장 겹쳐놓은 소가죽에 활을 쏴서 뚫어지도록, 옛날 서적의 종이가 뚫어지도록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입으로 방울 소리를 내고 떡 그림을 그려놓는 것이고 사람들의 관심은 장식함에 있고 함 안에 담은 구슬 보물이 아니라더니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설령 사람들이 승시 스님의 강연을 듣고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것도 승시 스님의 깨달음 일부분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시 스님께서 『능엄경』의 세 가지 선법(奢摩他, 三摩地, 禪那)을 닦아 계율을 엄정하게 지키고 삼계에 모범적인 스승(嚴淨毗尼, 弘範三界)이 되신 모습은 추운 겨울 서리 내린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원숭이와 학처럼 속세를 피하여 은일(隱逸)하셨고 솔바람과 물속의 달처럼 맑고 구름이 산꼭대기에 머물 듯이 깨끗하셨습니다. 이것도 승시 스님께서 깊은 수양공부를 깊이 닦으셔서 언어와 글자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셨기에 쉽게 엿볼 수 없었습니다.
거사 항오 왕공(恒吾 汪公)은 승시 스님께 귀의한지 오래되었고 이해력이 깊고 판단력이 빠르니 마땅히 큰 용맹심을 내어 정진하였고 출판하여 유포하자고 간청하였습니다. 왕공은 능엄 삼매에도 오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소성 상숙현(常熟縣, 옛 이름 琴川) 완연거사 장대수(張大受)는 향을 사르고 목욕한 뒤에 이 글을 씁니다.
張大受,「『楞嚴講錄』後序」:
夫代佛說法者,即此經所云“常住眞心”、“妙覺明性”,重宣奧義,使人共曉此如來藏,在佛不增,在凡不減,由此明了循持修證之要路也。世之稱法師者,誰不登壇據座,披衣秉拂,四眾圍繞,六種成就,弟子白法拈椎,善信俯首拱侍?又誰不鼓瀾飜焰,口騁無礙辯才,如建瓴瀉水,峻阪驟駒,使人天喜悅,龍神悚聽,甚至天花亂墜,立石點頭,誇法侶之殊緣,紀道場之勝跡?然或微旨玄言,徹法源底,而不便於見聞覺知;或條分縷折,曲證旁稽,而反乖於融通渾一;或拘文敷衍,數墨循行,而遂流於支離浮蔓,此奉佛也,非代佛也;此飾法也,非說法也;此爲經解,而非以解經也;此以解經集眾,而非以解經悟眾也,其何益之與有?
柴紫禪師時公者,識達重玄,智潛無始,鎔精性相,醰粹宗乘,八識規矩,集解緣緣,因明演釋,皆總括淵微,擺脫枝蔓。而於『楞伽』、『楞嚴』二經,尤為徹骨徹髓,明照佛心,脈絡法原者也。
邇因憩錫虞山,彚請新塔(新塔은 東塔),直以『楞嚴』,普施廣演。不過順佛慈旨,代宣妙義,於本覺妙明,掀性海之波濤,如來藏中,檠見精之寶鑑,格諸說撤其籓,滙萬派決其流。而其言宣朗簡淨,圓明直捷,如登天衢覩雲霄,如秉膏炬破幽暗。一時大眾,固以傾心懽悅,如摸著面門,得未曾有,詢知如來一大藏教。總此眞常玅明,種種修習,各各悟入,詎止是經咸顯此心,寔此心咸具有是經者?而時公口吻,直與世尊,提獎明誨,一模脫出,顧不偉然為眾會之慶幸耶?
夫眞妄昭融,修悟差別,在聽法者之根器,而先覺覺後,自悟悟他,大關說法者之總持慧命。自古稱普接三根,該通五教,惟此經,貫串諸經。時公,蓋常證明之,顧以貫串是經之說,盡攝聽者之心,皆返聞而入於妙覺明性,令大眾咸知修證密因次第。彼室羅筏城祗桓精舍一會,儼然未散,而虞山之講堂戶牖,明暗色空,風清月照,水流雲駛,灼灼皆是眞常發現,大覺光明,則是時公說法,誠可以上報佛恩矣。
嗟嗟,聚頭作相,飾智驚愚,射透牛皮,鑽他故紙,說鈴畵餅,買櫝還珠,往往而是,設令瞪瞢於是說也,其亦可以恍然于時公之一班矣乎!若其三摩奢那,弘範嚴淨,如霜枝猿鶴,月岫松風,斯又時公之深修密煉,在語言文字外者,所未易窺測也。
居士恒吾汪公,瞻依寔久,解入敏決,宜乎,發大勇猛精進,堅請刊布流通,其於楞嚴三昧,亦有夙因者歟!
琴川,宛然居士,張大受,薰沐稽首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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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겸익, 「불정몽초 목록 후기」:
듣기로는 가정 연간(1522-1566)에 사천성 내강현 출신 조정길(趙貞吉) 선생이 진사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행정을 배우는 서길사(庶吉士)들에게 『능엄경』을 읽도록 시키면서 “여러분은 나이가 많으면 40살이고 적으면 30살인데 이 시기에 『능엄경』을 읽지 않으면 언제 읽겠습니까?”라고 몇 번이나 타일러서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입을 벌리고 말을 하거나 놀라서 이빨을 두드릴 때는 나도 모르게 얼른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관직생활에서 좌절하고 명나라가 멸망하여 온갖 고생을 겪은 뒤에 얼마 남지 않은 세월에 두려운 파도 소리가 귀가에 들립니다.
錢謙益,「佛頂蒙鈔目錄後記」:
聞嘉靖(1522-1566)中,內江趙大洲(趙貞吉, 1508-1576)教習庶吉士,課讀『楞嚴』,謂:“諸君年長四十,少亦三十,不以此時讀此經,待何時耶?”三復斯語,鞭影入心。不自知口呿齒擊,急杵撞胸也。頓踣仕途,流離國難,萬死備嘗,一身餘幾,波叱填耳。
趙貞吉,『趙文肅公集』,卷三,「內外二篇都序」:
或問曰︰子曷編古今書為內外篇也?
曰︰予意在備經世之法,俾願治之主,有所採擇耳。經曰︰域中有四大,而王居一焉。(『道德經』 第二十五章:域中有四大,而人居其一焉。)王即經世之主也,其位為統,其臣為傳,其令為制,其事為誌,其道為典,其德為行,其才為藝,其技為術。譬之于車,輪轅輻轂軸蓋廂,一不備,非完車也。能知七部之書,皆以贊治而固其統也,則于經世之法,如探果于蘘,走丸于坂,亦易知而易行矣。
或曰︰若此善矣。曷為贅,以出世通,無乃悖乎?
答曰︰出世通,西方化人之書也。先秦之代,聞化人之名,未睹其書也。至漢明帝世,書入中國,漸多漸奇,英辟哲臣,譯而保之,于今六千餘卷矣。閎深辯奧,與儒墨之倫,分光而竝壘,既云曾拾遺文可,獨棄此而不錄乎?烏得為贅?且子亦聞出世義乎,化人之法,以浮生鼎鼎百年,勞蘊為世也。往者為過去世,續者為未來世,三世流轉,未有涯際,而至人常住之心,不與之流轉也,此謂之橫出三世也。又此世者,五濁混混,名為欲界,升之為色界,再升為無色界,然升者復墜,墜者復升,無已時也,而至人常住之心,不與之升沉也,此謂之竪出三世也。界即世也。夫俾經世者,得此常住真心,而用之于化理,其益豈小哉?烏得為悖?
或曰︰然則曷為外之也?
曰︰內外者,主客之謂也,經世為主,出世為客,議乎?譬之家,居為主人,遊為客子,內為主而外為客也。此一人之喻也。又譬之家,有二子焉,一耕而一釣,則耕者多農,而釣者多漁,農在鄉而漁則在疆矣。其地與業,固在外也,非有意于外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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