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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사람을 참 많이 좋아했다. 좋아하다가 그에게 집착하게 된다.
어디를 가든지 보여지는 사람들, 스쳐 가는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사람이 좋다.
그래서 만난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어려웠다. 오죽하면 사람을 좋아하다가 거짓말에
속으면서도 해로움을 당하면서도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속아주고 들어주며
피해를 자초하였을까? 이러한 일이 여러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내 안에 결함이 있는 것인 줄 모르고 살면서 나의 인생에
치명적인 실수, 착오,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다.
나는 맡은 일에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했다. 그래서 내가 지나가면서 남겨진 발자취,
삶의 흔적을 남기는데 항상 주의하였다. 성경에도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하였다.
모두 좋은 관계로 기억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 관계에
묶여서 온갖 시련과 좌절을 겪어야 했고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사망에 이르도록 했던 그 사람, 벼랑 끝에 세웠던 사람들,
열 길 절벽으로 밀어 넣었던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거룩한 염려로 애통하며
기도하였다. 주님을 만난 후에는 더욱 사람이 좋아서 어떠한 대가나 조건 없이 만나고
고통스런 말을 들어주며 섬겨왔다.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이 싫어진다. 보는 것도. 만나는 것도. 말하기도, 함께 하고 싶지 않다.
큰 고통을 주며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고사하고 이해관계가 없고, 오히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까지도 가까이 하기에는 먼 사람처럼 멀게 느껴진다.
이제는 주고받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사람에게 기대한다는 것이
도무지 싫다. 왜! 왜 그럴까? 나에게서 사람의 한계를 느끼는 것인가.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섬김으로 살았는데
이제 실증이 난 걸까? 이제서야 사람의 실체를 알게 된 반응인가?
내 안에 사람에 대한 한 가닥 기대의 끈마저 끊어진 걸까? 내가 처음부터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좋아한 것은 아닌데. 사람이 그냥 좋았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싫어지다니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분명히 어떤 일들이 내 안에서 이러한 반응을 만들어지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도 싫다. 나에게 맡은 일은 곧 가치이고 보람이었다. 삶의 이유였다.
그런데 그 일에도 나의 감각이 둔해진다. 갈망함도 열정도 미지근하다. 이러다가 토하여
내쳐질까 두렵다. 아주 멀리멀리 떠나서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냥 사람을 피하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어디엔가 아무도 없는 곳,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이산 저산 깊은 산을 찾아가 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태를 치유전문가들, 상담가들이 들으면 영혼이 병들었든지 마음의 상처
때문이거나 쓴 뿌리가 원인이라고, 우울증 초기라고, 자아의 문제라는 등 여러 가지로
진단이 나올른지 모른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를 가지고 먼저 나를 지으신 분
나에 대하여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 분에게 묻기로 했다.
나에게 익숙해진 습관은 크고 작은 어떤 문제이든지 생기기만 하면 아버지께 가지고 가서
정직하게 내 마음의 질문을 올려드리고 답을 기다린다. 대부분 답을 알도록 깨닫게 하신다.
그분은 나를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정말 나를 좋아하시는지 아직도 사람을
좋아하시는지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아버지 하나님 그렇게도 사람이 좋으세요?
나는 어떠세요? 아직도 좋으신가요? 주님은 왜 소망 없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셔요?
그래서 그렇게 멀고 먼 하늘나라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저주받은 사람을 찾아오셨나요?
정말 사람이 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기다리시다가 이 세상에 사람 찾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거절을 당하시면서도 오랫동안 문 앞에서 마음 문을 두드리셨나요?
여러 차례 박대당하시면서 기다리시다가 기어코 문을 열도록 하셨어요?
어렵게 만나셔서, 함께하시며 말씀하시고. 더 자주 만나고 싶으셔서 매일같이 어서 내게
오라고 부르시며 찾아오시는 거예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시며 기다리시나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사람들에게 거절, 거역, 무시. 멸시당하시고, 말꼬투리 잡고
돌을 들어 치려고 했는데 그런데도 사람이 좋으셔요? 저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잘 아시잖아요?
사람은 처음에 아버지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난 후 불순종으로 언약을 깨드리고 죽은 자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자들이다. 쫓겨난 후에 이어지는 족보를 보자. 지나온 인류의 역사를 보자.
사람은 죄 중에 잉태하여 죄인으로 태어나 죄 속에서 죄 짠지가 되어버린 죄 덩어리인데 당신의
형상을 찌그러뜨린 이 죄인이 그렇게도 좋으셔요? 아버지 정말 사람이 그렇게도 좋으세요?
예수님도 사람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래서 죄악 된 사람을 찾아오셨어요?
성령님도 사람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래서 냄새나는 사람 속에 들어가 계시는 거예요?
힘들지 않으세요? 언제까지 계실 거예요?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지 다 아시잖아요?
아버지! 나는 요즘 사람이 싫어졌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그냥 싫어져요.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일도 하기 싫어요.
아버지하고만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좀 해 주실 수 없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래? 그렇구나. 네가 많이 힘들구나! 사람들에게 많이 실망했구나?
그런거야? 내 말을 들어보렴... 아버지께서는 창세전부터 사람을 아버지 닮은 형상으로 설계
하시고 디자인 하시면서 심히 기뻐하셨고 많이 좋아 하셨잖아. 지금도 변함없으시고 앞으로도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하셨어. 사실 아버지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니, 나도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사람을 심히 좋아하시니 나도 그냥 좋아하는 거란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배우기도 하고, 본 것을 따라 하는 것이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니 순종하는 것이란다. 나는 스스로 알아서는 안 하고 항상 아버지께 묻고
하잖아. 나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께 묻고 하라고 하시는 것만 행한단다.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항상 여쭈어서 결정했지. 어떤 때는 나도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꼭 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앞에 보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고민하기도 했단다.
마음에 심한 갈등이 일어날 때도 있었고,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이 순간을 피할 수는 없는지
아버지께 묻기도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피하고 싶어서 아버지께 구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사람이 좋아서 하시는 일이고 아버지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뜻이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라고 말씀드렸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서 죽음으로 다 이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란다. 모두 아버지께서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셔서 이루신 거야.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셨어. 성경에는 아버지께서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하는 사건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버지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후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 만복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잖아. 그런데 첫 사람이 사단의 간교함에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버지와 언약을 깨뜨려서 죽음에 던져지게 된 사건이었지. 그때 아버지와 관계가 끊어져
사망 선고가 내려진 후 아버지는 곧바로 훗날 이루실 기쁨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셨다. 창3:15-
간교함으로 사람을 꼬였던 뱀의 머리를 여자의 후손이 깨뜨릴 것이며 뱀이 여자의 후손
발꿈치를 물것이라고 미래에 이루어질 놀라운 사건을 예언하신거야. 바로 인자가 세상에
오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야.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낼 때에도
아버지께서 참 많이 안타까워하셨고 힘들어 하셨지.
그때 사람이 나가기 싫다고 처음에는 아버지께 매달려서 울고 불며 버티다가 안되니까
여기저기로 도망 다니고 숨바꼭질하며 아버지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모른단다.
사람이 아버지의 깊고 높은 마음을 모르니까 자기만 생각하게 된 거야.
사실 아버지는 영원한 새 에덴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좋아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새 에덴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려고 안타깝지만 죄지은 에덴동산에서 내쫓은 것이었어.
그래서 처음에 순수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나가도록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셨는데
안하니까 결국은 내쫓아 추방하시고 보초를 세워서 다시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철통 파수를
하신 거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아버지께 도전하여 온갖 죄악을 범하여
아버지를 노하게 했고, 그래서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며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는 심판을
당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다시 천국을 침노하려고 바벨탑을 쌓아서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온 열방에 흐터지게 되었던 거야.
그때부터 흐터진 사람들은 각자가 계보대로 독립하여 살아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이렇게
골치 아픈 사람을 찾으시고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사람을 좋아하시는 것이 확실하다.
골치 아픈 사람 얘기 더 해볼까? 사람들이 각기 계보를 따라서 살아갈 때 아버지는 다시
사람을 찾아오셔서 반복 부르셨지? 우상 장사하는 집에서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따로 살게
하셨고 그 후손으로 새 생명의 계보, 믿음의 계보에 조상이 되도록 하셨으며 그들을 지키시고
도와주셔서 세상에 모델로 세우시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도록 하시기 원하셨던 것
이었어.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지? 끊임없이 배신당하시고 거짓말에 속아주시고, 거절
당하시고, 때로는 공격당하시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셨잖아?
그래도 사람을 더욱 좋아하신다고 사랑 고백하시며 사자를 보내시고, 직접 찾아오시고,
징계와 은혜를 겸하여 베푸시면서 쉬지 않으시며 열심을 내신 것이란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도 불가능의 한계에 직면하셨어.
결국은 사람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신 후에 4백여 년을 침묵하시다가 때가 되어 아버지께서
다시 약속을 따라 마지막 사자 세례요한을 보내셔서 아들이 오실 길을 예비하게 하시더니
드디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내가 사람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아버지의
짝사랑을 십자가에서 실재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의 변함없는 진심을 전심으로 보여주신
십자가 사랑으로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신 것이란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시는 거야.
아! 예수님! 사실은 나도 아버지께서 이처럼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는 이 본심과 전심을
알게 된 후에 아버지와 예수님께 미쳐서 여기까지 왔고요. 그때부터 더욱 사람을 좋아했답니다.
처음부터 어떤 조건 없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아버지처럼 짝사랑한다고 해보았는데요.
짝사랑은 참 힘든 사랑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왜 사람이 싫어진 것일까요? 어떡하죠?
아버지 이것이 짝사랑의 한계인가요? 짝사랑이 아니었나요?
서로 사랑을 바란 것인가요? 나는 원래 사랑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내가 교만해서
그런가요? 사람을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일까요? 아버지는 아직도 사람이 좋으세요?
여전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좋으세요?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성령님 사람 속에 계시는거 힘들지 않으세요? 그 변덕 많고 삐치기 잘하고 조금만 힘들면
표적판 삼아 화살을 날리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새나는 마음속에 계시는 것이 어렵지
않으세요? 나의 질문을 들으신 성령께서 한가지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가끔 써먹는 예화이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말 할때에 아기의 똥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니까 아기가 똥을 싸면 구린 냄새를 맡으면서 아기의 건강을 체크 하고,
심지어는 똥을 찍어 맛을 보며 건강을 체크 한다고 하였다. 어머님의 자식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하였다. 성령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하다. 나도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똥통에 들어와 앉아
있어도 괜찮구나. 똥 냄새가 심할 때면 건강을 체크 해서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속에서 이상이
생기거나 열 받아 뜨거우면 내 속에서 물을 뿌려서 식혀주기도 한다.
아버지가 사랑하시니 나도 사랑하는 거야. 이번에는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신다.
아들아 보아하니 네가 나를 많이 알고 있구나! 나의 마음, 생각, 비젼, 소원도 알고, 사람들도
잘 알고 있네. 그리고 나의 백성들이 어떻게 택함을 받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그들이 내 속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는지도 잘 알고 있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구나. 그래 안다는 것은 참 귀한 것이다.
아들아!! 너는 내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끝까지 너를 좋아하는 것 알고 있니?
네가 바라는 기대와 상관없이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누가 뭐라 해도 네가 아는 사람들과 상관없이 나는 누구보다 너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너는 내 형상이잖아. 너는 나를 꼭 닮은 내 아들이야! 네가 나를 닮았으니 좋아한단다.
너는 언젠가 네 아들이 속상하게 하고 나갔을 때 혼을 내려고 쫓아갔는데 걸어가는 모습이
너를 닮은 것을 보고 순간에 화가 가라앉고 분이 풀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지?
어디 그뿐인가? 너는 평소에 네 아들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 생활하고 시간 사용이
계획적이지 않아서 속상해하고, 네가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도 아이들 생각하면 도리어 미안함에 코끝이 찡해진다고 했잖아.
그리고 전화만 와도 마음이 좋고 찌그러진 안색이 금방 펴지고 밝아지잖아.
그러니까 보이는 것, 보여주는 것과 상관없이 네가 너의 자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흥해도 망해도 잘할 때도 잘하지 못할 때도 좋아한단다
아들아 네가 사람이 싫다고 했지? 만나기도, 보기도, 함께하는 것도 다 싫다고 하였지?
혼자 있고 싶다고? 그래!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아. 때로는 한적한 곳에 홀로 있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노아도 모세도 다윗도 사무엘도 엘리야도 욥도 다니엘 예레미아. 미가야 베드로
요한 바울 등 많은 제자들이 사람을 피하여 홀로 있는 시간을 보냈단다.
혼자 있을 때에 내 앞에 더 가까이 다가와 함께 했었지. 그런데 한가지 꼭 기억하거라.
네가 싫어하는 한 사람 한사람이 모두 나를 닮은 내 자녀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단다. 너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너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들을 끝까지 좋아하고
사랑할 거야. 내가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은 너에게는 형제자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잊지 말아라. 아니 사실은 너도 진짜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하잖아. 그건 내가 알고, 너도
알고, 그들도 알고 있단다. 나와 네가 얼마나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다 알고 있어.
그래 아는 것을 믿고 실행하는 것이 힘이고 능력이란다.
아들아 독생자 예수도 아버지 마음을 알기 때문에 세상에 내려올 때에 외양간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셨으며, 목자들의 심방을 받는 사람이 되셔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던 모든 것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순종한 거야.
예수는 자기 자신을 좋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란다. 예수가 기대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광이었다.
자신을 위한 어떤 기대를 하거나 조건 없이 오직 아버지 마음을 알고 믿음으로 행한 것이었다.
예수도 가끔은 힘들고 어렵다고 하였었지. 더 나아가 십자가 앞에서는 많이 힘들어했단다.
그 큰 고통과 죽음 앞에서 심히 고민하며 갈등하다가 피할 수는 없느냐고 묻기도 하였지만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위해서 결정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을이 되도록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였단다. 그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부활과 구원의 완성을 이루게 한 것이란다.
어떠냐? 이제는 좀 마음과 생각이 정리가 되었니?
네가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지식, 이웃과 세상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너 자신의 실체를 보았지? 너의 중심에 안정감이 있어?
이제는 조급하지 말고 더욱 깊이 생각하며 결정하도록 하거라.
네! 아버지 내가 왜 사람이 싫어졌는지 알 것 같아요..
나의 시선과 시각에 문제가 있었어요. 나의 시선, 시각의 문제로 인해 생각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그것이 내 마음을 흔들어 기울어졌고 순간에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흔들렸어요.
아직도 여전히 내 안에 세상적인 가치관, 세계관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며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 눈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어느 순간 수평적 시각으로 싸이즈 현실을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내가 힘겨운 현실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 영혼의 혼돈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시선을 따라다녔는데 나의 앞길에 높은 산과 깊은 벼랑을 바라보다가
그만 주님의 시선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말씀으로 교훈해 주시고,
책망해 주셔서 시선과 사각을 바르게 잡을 수가 있게 되었고, 의로움으로 다시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돌이키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생각을 바로잡고 마음의 중심을 예수 십자가 생명으로
굳게 지키며, 선한 양심에 빛을 밝혀 내려진 다림줄의 가르침을 따라 치우침 없이 바르게
나아갈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는 사람을 나도 계속 사랑하고 좋아
하도록 아버지 마음을 부어 주세요. 아버지께 진심으로 회개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처음처럼 사람을 좋아하며 사랑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주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함께 가시죠. 세상 끝날까지, 아멘.
사 41:9-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