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33)
금산댁
강 할머니는 42년 생으로 자갈치시장에서 장사하며 혼자 생활하시다가 2019년 연말 겨드랑이와 등이 심하게 아파 일반 병원에 입원하였다. 빈혈도 심하고 대상포진까지 생겨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다 2020년초부터 본원에 입원하여 요양 가료 중이다.
회진을 할 때 한 번은 이분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래 봬도 한때는 자갈치시장에서 날린 사람이오. 지금은 상늙은이가 되어 이렇게 누워있지만 자갈치시장에서 금산댁이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인삼 산지인 충청도 금산(錦山)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시집와서 자갈치시장에서 인삼을 팔았다고 한다. 아침에 자갈치시장을 쭉~한번 둘러보고 인삼이 많이 나와있으면 인삼을 싸게 박리다매로 많이 팔고, 인삼이 많이 안 나와있으면 적게라도 비싼 값으로 팔았다고 한다. 인삼을 팔다 보니 도라지 찾는 손님이 있어 도라지도 팔고, 팔다 보니 산나물 찾는 손님이 있어 산나물, 파 등도 팔았다고 한다.
한 번은 아침 회진 때 누워 계시길래
“강복순 씨”
하고 이름을 불렀지만 미동도 없었다.
“금산댁~”
하고 부르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머리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갖추더니 금방 침상에서 내려와 어디로 황급히 가려고 하였다.
다음날 회진 때 금산댁이라고 부르니 또다시 벌떡 일어나셨다. 그날 이후 금산댁으로 부르고 있다. 아침 회진 때 만나 악수를 하며
“금산댁, 오늘은 인삼 상품(上品) 들어왔습니까?”
하면 웃으면서 명랑한 목소리로
“최상품으로 있어요.”
“한 상자 얼마 합니까?”
“20만 원입니다.”
“어쿠, 비싸네요. 좀 깎아주세요.”
아침마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것처럼 대화를 하였다.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이분이 이때부터 생기가 돌면서 방 바깥으로 나와 복도도 거닐고 휴게실에 있는 실내 자전거도 타셨다.
악수를 해보니 팔힘도 많이 세어졌다. 한 달 만에 딸이 면회를 왔는데 어머니가 활달해지고 건강해져 놀라워했다.
금산댁으로 효과를 본 이후로 할머니들 모두 고향을 물어보고 시집와서 무슨 이름으로 불리었는지 알아내었다.
한 분은 항상 창밖만 보고 있는데
“(산청)생초댁~”
하고 부르니 아주 좋아하셨다.
“선생님, 생초댁 그 말을 들으니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할머니들 이름 대신 시집왔을 때의 택호를 부른다.
남해댁, 강릉댁, 청도댁, 청산도댁, 창원댁, 하동댁, 고성댁, 삼천포댁, (함양)내곡댁, (함양)수동댁…. 서로 말이 없던 할머니 사이에서도 남해댁, 수동댁, 고성댁 하면서 말을 서로 주고받게 되었다.
하동댁은 ‘하동이 강이 맑아 재첩이 유명하다’며 말하고, 고성댁도 질세라 ‘고성은 풍광이 좋아 인물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강릉댁은 멀리서 시집와서 고생많았겠네요.’ 시집살이 이야기도 듣고 눈물 짓기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하면서 방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요양병원이라고 해서 다 중증 치매나 중환자가 오는 것은 아니다. 너무 나이가 많아 식사를 제대로 못하거나, 집을 나가 길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집에서 모시기 힘들어 오는 경우도 많다. 암 환자도 많이 오는데 고령에서는 암이 빨리 악화되지 않고 몇 년을 끄는 경우가 많다. 암 환자들은 죽을 때까지 정신이 온전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분위기를 조금만 좋게 바꾸어 주면 훨씬 재미있고 편하게 병원생활을 할 수 있다.
또 한 분 박 할머니는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분으로 치매 증세가 있어 집 밖에 나가 잘 넘어지고 자주 다쳐 얼굴과 전신에 피멍이 들어오신 분이셨다.
“삼천포댁, 시장에서 무슨 생선 팔았습니까?”
“참조기와 고등어를 팔았어요.”
다음날에도 물으니
“명태, 갈치, 전갱이, 돔, 꽁치….”
점점 늘어났다. 회진 때마다 물으니 팔던 생선을 기억해 내며 가짓수가 하루하루 늘었다. 기억력이 회복되며 신체상황도 점점 좋아졌다. 이분은 약물을 8가지나 복용하고 있었는데 진통제를 끊게 하였다. 진통제 때문에 속이 쓰려 소화제, 위장약, 변비약 등을 썼었는데 이런 약들까지 모두 끊을 수 있었다. 약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위장장애가 해소되며 식욕이 오르고 식욕이 오르니 영양상태가 좋아져 심신이 더 좋아지는 선순환의 흐름에 올라타게 되었다.
이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오늘도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