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전역후 여수공단 예비군 지휘관 시절의 소회
군생활이 항상 마음먹은 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고급장교로 진출한 것 만도 감사한 일이다. 당시 3사관학교 참모장을 마치면 그 이후부터는 전역을 준비하며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 군생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니 앞길이 막막함을 느끼곤 하였다. 아들은 다행히 학비가 적은 국립대(서울대)에 합격하여 부담을 덜어주었으나 한창 나이에 전역하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때 마침 2중대 선배 김인종 장군(24기)이 수방사령관에 부임하게 되어 모처럼 3사교 교수로 인덨 송인영 대령(2중대 출신 24기)에 부탁해 수방사령부 예하사단 부사단장 자리를 줄 것을 당부하게 되었은데 다행이 반응이 좋아 참모장을 마치고 수방사 56사단 부사단장으로 부임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당시 수방사 예하사단은 예비군을 교육하는 업무가 평시 주 임무였다. 그러다 보니 부사단 중 동원 부사단장이 주 임무고 내가 맏았던 작전 부사단장은 일상적 임무에 지나지 않는다. 군생활 중 예비군업무에 경험이 없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한 점이 많았다. 사단예하 현대, 삼성, 대우 그룹에는 예비역 선배님들께서 전역후 예비군 지휘관으로 재취업하여 근무하며 넉넉한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보게되고 선배님들의 권고도 있고하여 많은 생각을 하니 그 이상 보람있는 일은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부사단장 직책 자체가 그리 바쁜 자리는 아닌지라 늘 전역 후 노후를 생각하며 근무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사단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기본업무외에 개인적으로 3가지 목표(예비군 지휘관 시험 공부, 타자 연습, 일과후 주말은 좋아하는 골프)를 두고 근무해왔다. 2002년 전역후 시험으로 갈 자리는 비상기획관, 예비군 지휘관이 있었는데 60세까지 할 수 있는 예비군 지휘관으로 방향을 잡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예비군 관련서적 및 대침투작전 등 산더미 같은 자료를 습득해야 하는 공부인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수방사에 부임한 덕분에 꾸준히 공부하게 되어 충분할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다음 군생활 마지막 보직인 17사단 부사단장을 마치고 전역후 시험볼 때 쯤에는 지방 몇 곳만 자리가 있었는 바 저는 그 중 여수산업단지 공단을 목표로 예비군 시험을 보게 되어 합격하게 된다. 23기 선배 김태언님이 전임자였는데 인수인계('03.1.1)도 잘 해주시고 너무나 고마웠다.
사실 여수공단은 울산공단과 쌍벽을 이루는 공단으로 석유화학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공단으로 GS칼텍스, LG화학, 한화석유화학, 남해화학 등 대기업이 있는 공단으로 국가산업단지공단이 운영하는 커다란 공단이다. 예비군 여단장의 임무는 각 회사마다 편성되어있는 예비군 대대, 중대를 통활지휘하여 유사시 산단을 방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요한 자리로 이전에는 수천명의 예비군 자원이었으나 IMF를 거치면서 많은 공장이 자동화 되면서 자원이 줄어 1000여명 정도로 교육부담은 타 지역 예비군 지휘관(대구, 안산 등)에 비해 훨씬 부담은 적었고 수월하였다. 서울을 떠나 부임하니 공단에서 여수시내에 조금만 숙소를 마련하주어 주거에는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멀리 떠나 있다보니 일과후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던 차에 공장마다 직원들의 여러 동호회모임이 있던중 마라톤 동호회도 있어 나는 원래 장거리 달리기에는 소질이 있었기에 그들과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같이하게 되니 일과후 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고 목표가 생기니 지루함을 달랠 수 있어 좋았다. 그들과 여수 바닷가 길도 달리고 망마 종합경기장 추랙도 달리는 등 단련하여 나중에는 섬진강 마라톤, 곡성 마라톤 대회 등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는 등 보람있게 보냈다. 또 한가지는 원래 골프를 좋아했기에 전역전부터 골프를 즐기다 보니 기량은 많이 향상되어 있던 시기였는 바 여수직장에 부임하여서는 공단 사장들이 주관하는 동호회 골프대회에도 초청되어 운동하게 되곤하여 지루함을 해소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골프에 관해서는 지금이나 그때나 너무나 좋아했던 운동이었고 처음 공단 골프대회에 초청받아 출전한 대회('03.3/순천소재 승주골프장)에서 메달리스트를 하여 골프화를 선물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당시 동기생 박승춘 장군이 9군장이었고 평소 잘아는 후배 권행근 장군이 31사단장으로 자주 광주비행장 골프시 불러주어 같이 운동도 하여 감사했던 기억도 있다. 또한 예비군부대 간사였던 한화석유화학 조사장이 마침 박승춘 군단장과 강릉상고 동기였던 덕분에 박승춘 동기가 훈련차 여수방문시는 한화 VIP숙소에서 풍성한 대접받으며 같이 숙박도 하며 지냈던 추억도 있어 고마웠다. 음식문화에서도 여수는 항구도시로 해산물이 풍성하여, 하머,피조개, 뼈꼬시 등 다양한 해산물도 맛볼수 있어 좋았으며 당시 낚시를 좋아하는 구재림 동기 등 낚시 동호회 동기생들도 방문해 간단한 식사모임도 주관해줄 수 있었다.
또한 남도지역은 경관이 화려한 지역이다. 여수에는 오동도,돌산대교,진남관,향일함 등 명소들이 즐비하고 인근에는 낙안마을, 송광사, 선암사 등 명소도 많았는데 고향이 여수인 김 규 동기생이 여수에 내려오면 가끔 만나 낙안마을 등을 같이 방문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리고 초기에는 승주 골프장 등 골프장이 몇곳이 않되었으나 나중에는 파인힐스 등이 신설되었고 인근 광주 클럽900 골프장, 상무대 골프장 등에서 공단 직원들과 함께 라운딩했던 추억도 새록 새록하다. 사실 여수공단지역은 공단이 없어도 경관이 아주 뛰어난 지역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인근 영취산 진달래 능선도 유명하고 여수 반도중 일부인 화양면 일대 바닷길은 제가 평소 마라톤 연습하던 길로 경관이 빼어나고 공기가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인근에는 명산도 많아 공단 등산 동호회를 따라 덕유산 산행을 했던 추억도 생각난다. 지금도 여수는 멀기는하나 철로도 많이 개선되어 KTX열차도 달리고 비행장도 확장되어 훨씬 좋아졌다.
결론적으로 여수공단 지휘관시절은 퇴직후 저에게는 경제적 여유도 갖게 해주었고 마라톤, 골프 등으로 건강을 다지는 계기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해 주요관광지(보성 녹차,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함 , 지리산 등)도 관람할 수 있어 보람있는 시기였다.
‘21.6.5일 작성(민 병 노)
첫댓글 50주년 기념책자 발간에 좋은 도음 자료가 될 것 같아(특히 예비군 지휘관 경력에 관해) 민병노 동기의 이회고담을 자유게시판에서 대열회고게시판으로 옮기도록 부탁하여옮겼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민병노 동기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 개인적인 추억이 동반된다. 내 아들이 1999년 봄 입대했는데 참 군대 운이 좋은 놈이라 해야 할까? 입대훈련부대가 공주의 32사. 사단장이 홍갑식 동기라고 해, 청탁이라 할 수 없는 부탁, 즉 시위민간 대상 물리력 행사 전투경찰은 피해주고 제대로 된 군인 만들게 전방 전투부대로 보내 달라 했더니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해 뒤통수 긁으며 포기하고 있었더니, 느닷없이 서울 근교 56사단에 배치 받았다는 연락을 받게 됐는데, 이게 웬일! 당시 사단지휘부에 김승열 동기와 민병노 동기가 나란히 떠억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민병노 동기에게 사연을 전하니 한 번 들어오라는 초청 받고 방문, 사단장실에서 동기생들과 환담을 가졌는데, 아들까지 불러와 김승열은 가장 쎈 수색대(기동대)로 보내라 하니, 민병노가 자기가 데리고 쓸 일이 있다고 해, 마침 전역해 공석인 정훈병의 뒤를 이어 이후 사단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됐었던, 그런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진학 입시고 취업시험이고 바로 합격하던 녀석이 입대 운도 따랐던 것이다. 세 분 동기생들이 마침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데 대해 감사드리며^^, 그 운세 앞으로도 이어가길 기원하는 아비의 욕심만이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