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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판과 구원(34-35장)
34-35장은 이방 민족과 에돔을 향한 심판(34장)과 시온에 귀환한 이들을 위한 구원(35장)에 관하여 선포한다. 그래서 이 두 개의 장은 표면적으로 ‘심판을 받는 에돔’(34장)과 ‘시온의 구원’(35장)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대조해 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이방 민족을 향한 심판이 시온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바라보면, 주제의 연속성과 공통과 된 어휘에서 34-35장이 상반된 본문이 아니라 단일한 본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공통된 어휘는 다음과 같다 : ‘하느님의 복수’(34,8 ; 35,4), “에돔의 강”(34,9)과 ‘초원지대/사막의 냇물’(35,6), ‘지나가는 이가 없는 상황’(34,10)과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가지 못하는 상황’(35,8), “승냥이들의 소굴”(34,13)과 “승냥이들이 살던 곳”(35,7) ; 세 번씩 반복되는 “그곳에”(34,14-15 ; 35,8). 34-35장이 지닌 문학적 단일성은 앞뒤 본문과의 연관성에서도 드러난다. 여섯 개의 불행 선언을 담고 있는 28-33장과 산문체 형식으로 전개되는 36-39장으로 둘러싸인 구조 안에 함께 묶여 있는 것도 이 두 장의 문학적 단일성을 보증해 준다.
1) 에돔을 향한 심판(34장)
34장에서 하느님의 심판은 에돔을 향하기 전에 민족들의 군대와 하늘의 군대의 몰락을 예고한다(34,1-4). 이어서 애돔의 심판이 중심 주제로 등장한다. 이스라엘과 에돔의 관계는 상호 호의적이지 않았다. 민족들과 겨레들, 그리고 우주를 향한 하느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는 에돔만을 향한다(34,5-15). 에돔을 향한 심판 이후에 주님 말씀에 대한 가르침으로 34장은 마무리된다(34,16-17).
1-4절 민족들을 향한 심판
이 단락은 이스라엘 백 아닌 민족들과 겨레들을 소환한다. 그들을 소환하는 모습은 제2이사야서에서 하느님과 법리 논쟁을 펼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41,1 ; 43,8-9 ; 45,20 ; 48,16). 이러한 맥락에서 이 구조를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민족들과 겨레들과 법리 논쟁을 펼치기 위해 소환하고 계심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 말씀의 수신자이면서 동시에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민족들과 그들의 군대를 향해 분노와 진노를 쏟아 내시고 그들의 운명을 예고하신다(34,1-3). 이어서 주님의 심판은 하늘의 군대를 향한다(34,4). 여기서 하늘의 군대는 이방 민족이 섬기는 신들로 이해되며, 그들을 향한 심판과 몰락 예고는 야훼 하느님만이 참된 하느님이라는 유일신론을 전제한다. 34,3-4이 전개되는 방식은 묵시문학적 성격을 보여준다. 곧 기존 세계에 존재했던 혼돈의 상황은 하느님의 개입을 마지막 때의 우주적 차원에서 새롭게 전환된다. 하느님께 소환된 민족과 겨레를 향한 심판은 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신들까지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5-7절 에돔을 향한 심판과 주님 말씀의 가르침
민족과 겨레를 향했던 하느님의 심판이 이제 하나의 민족, 에돔을 향하게 된다. 이방 민족들을 향한 하느님의 심판은 이미 13-23장의 신탁문에서 예고되었다. 거기서 에돔은 “두마에 대한 신탁”(21,11-12) 중에 “세이르”라는 이름으로 짧게 언급되었을 뿐이다. 그런 에돔에게 멸망이 선고된다. 에돔의 심판과 멸망을 예고한 34장은 바빌론을 향한 신탁에서 사용된 어휘와 주제를 똑같이 써서 바빌론과 에돔을 나란히 놓는다 : “칼”(13,15 ; 34,4-5) ; “주님의 날”(13,6.9 ; 34,8) ; ‘심판에 대한 소손과 고모라의 비유’(13,19 ; 34,9) ; ‘혼돈의 동물들’(13,21-22 ; 34,11-15). 그러므로 모든 민족을 대표한 바빌론(13-14장)을 통해 그들의 지도 권력에 대한 심판이 예고되고, 34장은 에돔을 향한 심판으로 예고된 하느님 심판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에돔을 향한 심판은 세 가지 비유로 표현된다. 첫째, 칼의 비유이다. 칼은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의 손에 들려있거나(27,1 ; 49,2 ; 65,12 ; 66,16) 혹은 하느님께서 다른 이에게 쥐어주신다(1,20 ; 31,8 ; 37,7). 그리고 이스라엘의 반항(1,20 ; 65,12)과 주님의 원수(66,16)에 대한 하느님의 대응 방식을 묘사한다. 에돔을 향해 내려오는 칼은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둘째, 제사의 비유이다. 에돔을 향한 하느님의 살육이 제사에 비유된다. 어린 양, 숫염소, 숫양은 모두 제물로 봉헌되는 가축이다. 에돔은 봉헌되는 가축들처럼 죽게 될 것이라고 예고된다. 살육을 통한 제사의 비유는 들소와 황소가 제물로 봉헌된다는 사실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짐승들은 일반적으로 제물로 봉헌되지 않으며, 강함을 상징한다. 그런 짐승들이 에돔 심판에서 제물로 사용된다는 데에서, 하느님 심판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시무시한지 드러난다.
셋째, 주님 복수의 날과 응보의 해로 에돔을 향한 심판이 언급된다. 주님의 복수는 이어지는 35,4에서도 언급된다. 곧 복수가 원수에게는 심판이 되고, 시온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된다. 주님의 복수는 때와 해를 정해놓고 있다. 시간의 설정은 그것이 언젠가 발생할 일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에돔을 향한 심판이라는 맥락에서 복수는 하느님의 강력한 개입을 보여주고, 동시에 하느님 백성을 위해 혼란스러워진 질서를 다시 세우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의미한다.
34,11-15에서 모두 열두 종류의 동물이 언급된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은 모두 부정하거나 혼돈을 상징한다. 동물에 관한 나열에서 주목해서 바라볼 부분은 올빼미와 부엉이다(34,11). 이 둘이 함께 등장하는 구약 성경의 본문은 34,11 외에 스바 2,14이다. 스바 2,14은 아시리아 수도 니네베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본문이다. 따라서 죄악으로 가득한 니네베와 아시리아를 하느님 심판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올빼미와 부엉이를 등장시키는 것처럼, 여기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죄와 악행으로 가득한 보츠라와 에돔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에돔을 향한 심판의 마무리에서 말씀을 담고 있는 “주님의 책”이 언급된다. 주님의 책은 이사야 예언자가 직접 쓴 부분 혹은 성경을 의미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비록 종말론적인 심판과 구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뒤이어 선포되는 시온의 구원도 하느님 말씀이고, 곧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 시온에서 펼쳐지는 구원(35장)
35장은 선행하는 에돔의 심판(34,5-17)과 유사한 어휘를 사용하여 34-35장이 제시하는 심판과 구원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35장은 에돔과 대비되는 구원의 그림을 중요한 두 가지 주제와 연관하여 묘사한다. 첫째, 자연의 변화이다. 에돔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광야로 변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지만(34,10) 35장은 하느님의 오심으로 광야와 사막이 녹지로 변화될 것을 선포한다(35,16). 둘째, 에돔은 하느님의 복수와 시운의 옹호자에게 응보 받는 때를 맞이한다(34,8). 반면에 35장은, 주님의 복수가 구원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선포한다(35,4). 이처럼 에돔과 강력히 대비시켜 35장은 시온으로의 귀환을 주제로 부각한다(35,10). 광야와 사막의 변화, 거기에서 생겨나는 큰 길을 걸어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이들이 기뻐하며 시온에 들어갈 것이다. 35장은 선포의 전개에 따라 다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 하느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자연의 변화(35,1-2) ; 쇠약하고 두려운 이들을 위한 기쁜 소식의 선포(35,3-6ㄱ) ; 시온으로의 귀환(35,6ㄴ-10).
1-2절 하느님의 등장으로 인한 자연의 변화
35장이 제시하는 광야와 사막의 변화는 이미 32,15-16에서 예고된 바다. 또 앞에 나온 레바논, 사론과 카르멜이 메마르게 된다는 예고(33,9)와 에돔에 대한 심판(34,5-17)은 35장이 제시하는 그림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막과 광야의 변화는 기쁨과 꽃에서 나타난다. 이 기쁨은 시온으로 돌아오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같은 감정이다(35,10). 이 모든 변화가 주님의 오심 때문에 가능해진다. 주님의 영광과 영화는 볼 수 있게 드러나고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근거로 작용한다. 광야의 자연조건이 극적으로 변화한다. 광야는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진입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보여주는 장소였다(탈출 16-18장; 참조 민수기). 35장은 광야의 모티브와 시온을 향해 돌아오는 이들이 걷는 ‘길’이라는 주제를 연결하여 흩어진 이들이 돌아오는 여정, 특히 바빌론에서 귀환하는 이들의 여정을 이집트 탈출 사건과 결부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이사야서가 광야를 하느님 영광이 드러나는 장소로 제시한다(40,3). 35,1-2은 귀환이라는 주제와 연관하여 광야의 대전환을 선포하고, 이를 통해 탈출 사건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3-6ㄱ절 쇠약하고 두려운 이들을 위한 전환 예고
35,1-2이 자연의 전환을 선포하였다면, 여기서는 쇠약하고 결핍된 이들을 위한 전환이 선포된다. 약한 이에게는 강함이 주어지고, 불안한 이들에게는 두려움 없음이 선포된다. 이러한 전환이 가능한 이유는 광야와 사막의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와 같다. 곧 하느님의 복수와 보복이 선포되고, 그분의 오심이 이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오심은 그분의 현존을 의미하며, 이는 하느님의 복수로 이어지는데, 에돔에게는 심판을 의미했던 복수였다(34,8). 곧 에돔을 향한 하느님의 복수는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을 의미한다. 이어서 눈멀고 귀먹은 이가 다시 보고 듣게 된다는 주제가 펼쳐진다(6,9 ; 29,18 참조). 이러한 전환은 하느님의 심판이 마무리되고 구원의 시간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리 저는 이가 뛰어다니고 말을 못 하는 이들이 기뻐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자연의 전환을 시작으로, 약하고 장애 있는 이들이 전환되는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장면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6ㄴ-10절 시온으로의 귀환
35장의 첫머리에서 이미 사막과 광야의 전환이 선포되었다. 사막과 광야가 초원으로 변화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물이다. 그러므로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게 되는 변화는 35장에서 진행되는 자연의 변화를 더 고조시킨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물은 하느님의 심판의 도구로 등장하거나 비유로 쓰 쓰이고(1,30 ; 8,6-7 ; 14,23 ; 15,6 ; 17,12-13 ; 19,5-8 ; 28,2.17 ; 30,14 ; 32,2), 드물게 하느님 구원의 결과를 묘사한다(12,3 ; 30,25 ; 32,20). 여기서는 구원의 결과를 의미한다. 이제 광야는 구원을 품은 샘터로 변화된다. 이 모습은 역청으로 변한 에돔의 강들과 뚜렷하게 대비된다(34,9).
여기서 길은 또 하나의 주제이다. 이사야서에서 길의 의미는 이집트 사건과 연관되는데(11,16), 이스라엘이나 민족들이 시온 또는 주님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길(49,11 ; 57,14 ; 62,10)과 주님을 위한 길(40,3)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용된 길은 시온을 향해 돌아오는 이들을 위한 길이다. 길의 목적지는 시온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 길에 오를 수는 없다. 이 길은 ‘거룩한 길’이기 때문이다. 부정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이 길에 오를 수 없다.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있듯이(33,13-16 참조), 이 길은 하느님께 속한 이들만 걸어갈 수 있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의로운 이들은 이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죄를 지은 백성(30,22)이나 어리석은 사람(29,11-12)은 이 길에 오르지 못하고 시온에 들어갈 수 없다.
35,9에서 ‘구원하다’, ‘속량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가알(גאל)이 처음 언급된다. 기본적으로 이 동사의 능동분사형 ‘고엘’(גאל)은 친족이 빚으로 인해 팔려가거나 상속 재산을 팔아야 할 때 그것을 대신 사서 집안 재산을 보전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을 지칭한다(레위 25,23-31 참조). 이러한 개념이 전이되어 ‘구원자’라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고, 이사야 예언서의 후반부(40-66장)에서 ‘고엘’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된다.(41,14 ; 43,1.14 ; 44,6.22-24 ; 47,4 ; 48,17.20 ; 49,7.26 ; 52,3.9 ; 54,5.8 ; 59,20 ; 61,16 ; 62,12 ; 63,9.16)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이들은 세 가지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걷고’, ‘돌아오고’, ‘들어선다.’ 그들은 거룩한 길 위를 걷고 들어선다. 이는 시온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거룩한 길이 향하는 시온을 향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서는 ‘돌아옴’과 ‘걷고’, ‘들어섬’을 구별하여 사용한다. ‘돌아옴’은 주님을 향한 움직임을 의미하며(1,27 ; 6,10 ; 10,21-22 ; 19,22 ; 31,6), ‘걸음’과 ‘들어섬’은 시온/주님의 거룩한 산을 향한 움직임을 나타낸다(2,3 ; 26,2 ; 27,13 ; 30,29). 그러므로, 35,9-10에서 ‘걸음’, ‘돌아섬’, ‘들어섬’이 함께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들의 움직임이 주님과 시온을 모두 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심판과 시련의 시간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면서 시온을 향해 나아간다.
▶제1이사야서와 제2, 제3이사야서를 이어주는 교각으로 구실하는 35장
35장은 이사야서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본문이다. 왜냐하면, 35장은 제1이사야서 안에 위치하지만, 신학적 주제와 어휘의 사용은 제2이사야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35장의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면 이사야 예언서 전체의 형성 과정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곧 이사야 예언서의 형성 과정에서 1-33장과 40장 이후의 본문 논문이 존재했으며, 이 두 부분을 연결하기 위해 35장에 의도적으로 편집과 추가의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제1이사야서와 제2-3이사야서를 연결하는 교각으로서 35장이 맡은 구조적 역할은 다음의 요소들에서 드러난다.
우선, 35장과 40,1-11의 연관성이다. 35장은 유배에서의 귀환이라는 주제를 길의 모티브를 통해 드러낸다. 비록 제2이사야서를 시작하는 40,1-11은 귀환을 주제로 삼고 있지 않지만, 35장과 동일한 어휘와 모티브를 보여준다 : ‘광야에서 벌어지는 길의 준비’(35,1 ; 40,3) ; ‘주님의 영광’(35,2 ; 40,5) ; ‘너희의 하느님’(35,4 ; 40,1.9), ‘큰 길’(35,8 ; 40,3), ; ‘힘을 돋움/ 권능’(35,3.4 ; 40,10)과 ‘두려워하지 마라’(35,4 ; 40,9).
다음으로 주제의 연결성이다. 1-39장의 본문은 땅에 대한 심판과 파괴를 주요 주제로 삼는다. 또한 이방 지역에서의 체류에 관한 담화는 여기서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제2이사야서는 바빌론 유배시기(기원전 587-538년)를 시대적 배경으로, 바빌론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35장은 제1이사야서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은 유배지로부터 귀환을 예고하여, 독자들이 40-45장에서 전개되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옴’이라는 주제를 제1이사야서에서도 미리 바라볼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이에 따르면 이사야서 35장의 구조적 역할이 의미하는 것은, 35장이 이미 존재하는 제2이사야서의 시선으로 제1이사야서를 보충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이사야서의 전체 구조에서 15장이 구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하여 이를 “교각 본문”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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