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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
이 홍사
-참, 좆나게 부지런도 하시지. 이 무더운 삼복더위에 이렇게 일찍 온천을 다녀온다고?
강과 통화를 끝내고 폴더를 닫으며 나도 모르게 욕설을 섞어 뱉은 말이다.
강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전화를 했을 때는 아무리 휴일이라도 이제 일어났겠지 장담하며 건 전화인데, 아뿔싸! 송아지 물 건너 간 것이다. 벌써 온천을 갔다가 오면서 깔끔한 기분으로 상주에 들러 소머리 국밥을 먹고 있단다. 휴일이라 푹 자라는 배려로 전화를 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이런....... 여태 기다린 자의 비애가 씁쓸하게 혀 밑에 감돌았다.
강은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데 그 맛이 아주 죽인다고 약을 올렸다.
상주에 소머리 국밥을 잘하는 집이 있다. 소문을 듣고 나도 그 도시를 지나다가 몇 번 먹어본 집인데 맛이 아주 특별하다. 시장통에 있는 국밥집은 처마가 낮은 한옥이라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허름하지만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국밥에 있는 고기 한 점을 소주의 안주로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만큼 유명한 집이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소머리 국밥, 말만 들었는데도 군침이 돈다. 참담한 기분으로 몇 시에 출발했냐고 따지듯이 물어보니 일곱 시에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껄끄러운 청각의 반응을 받은 내 입에서는 들으라는 듯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심히 놀랍소이다. 대감! 출근하는 날은 여덟 시 반에 일어나는 작자가........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 내일은 문경에 있는 유황온천을 갔다가 오면서 김천의 골동품 경매장에 들러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오는지 훑어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정확히 시간을 약속하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어젯밤 술자리는 장 사장과 같이한 자리였다. 장 사장은 근방의 제실과 사찰 그리고 한옥을 짓는 도편수 출신으로 전통가옥을 전문으로 시공하는 사업체를 갖고 있다. 사업자등록에는 업태는 내가 하는 일반토목과는 달리 문화재 보수로 되어 있다. 그를 만나면 몸에서는 항상 소나무의 진한 향이 배어있는 듯 하고 그가 말을 할 때면 느티나무를 대패질하듯이 살짝살짝 빗어내 말에도 나이테 같은 그 만이 지닌 독특한 언어의 무늬가 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늬는 특별하다.
어제 저녁에는 애석하게도 그들과 술자리를 끝까지 같이 하지 못했다. 갈매기살이 노릇하게 익을 즈음 느닷없이 걸려온 거래처의 전화를 받고 부근의 다른 식당 회식자리로 옮겼다. 제기랄! 갈매기살은 한 점 맛도 보지 못했다. 하천제방공사 정비사업의 준공검사를 끝내고 소장이 한턱을 쏘는 회식자리였지만 하청업자를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술값을 내든가 이 차를 책임지라는 호출이다. 하청업자인 나는 차후에 얻어걸릴지 기약 없는 공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무겁게 털고 일어났다. 가까운 지인들과 부담 없이 마시는 술과 접대로 마시는 술은 그 맛과 술잔의 무게가 틀리는 법이다. 투덜거리며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 차까지 따라가 좀 과하게 마셔서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났다. 늦게 일어났다고 해도 속칭‘노가다 기질’이 있어서 일곱 시 반이었는데, 강으로부터 전화가 오겠거니 기다리다가 열한 시가 다 되어 소식이 올 때가 넘어서 걸어본 전화였다. 소머리 국밥집이라는 말에 나는 좀 짜증을 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왜 전화를 안했어?
-온천을 좋아하지 않잖아? 우리는 치료목적으로 다녀오는 것이고, 그렇지만 소머리 국밥을 같이 못해서 아쉽네. 국밥과 소주 한잔! 속이 짜릿한 게, 딱 죽이는데.......
-약 올리지 말고, 골동품 경매장으로 바로 갈 거야?
-그래야 되겠지?
-가서 보고, 장이 잘 서면 전화를 해.
-그럴 테니까 총알이나 좀 준비해 줘. 우리 주머니가 비었어.
-오케이!
강은 언제부터인가 목덜미 뒤에 부스럼이 생겨 주사를 맞고 어떤 약을 써도 효과가 없는데 그 유황온천을 다녀오면 며칠간은 시원하고 부스럼이 가라앉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 사장도 목덜미와 겨드랑에 같은 증상을 갖고 있어서 강의 추천으로 그 유황온천을 다녀보니 효험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를 쏙 빼놓고 이렇게 일찍 다녀오는 것도 일테면 동병상련이다. 유황온천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사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몇 번 따라가 보았지만 온천욕을 하는 시간은 겨우 삼십 분에 불과했다. 옷을 벗고 입는 시간을 빼면 삼십 분 온천욕을 하기 위해 거의 두 시간을 운전해야한다. 나도 혹시나 고질병인 오십견에 효과가 있을까 싶어 따라갔지만 오십견은 고사하고 고추라도 잘 서면 좋으련만 그런 기대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렇다고 때가 잘 밀리는가하면 그것도 아니고 온천이라는 물에서 나오는 섞은 달걀냄새만 잔뜩 맡을 뿐이었다. 온천욕은 젬병이었다. 나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턴가 오른쪽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통증이 없이 멀쩡한데 안 되는 동작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십견의 특징이란다.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머리를 감거나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오른쪽 팔을 기역자로 구부려서 뒤로 젖히는 동작과 바로 서서 배꼽을 중심으로 왼쪽 아래로 내리는 동작, 또 오른팔을 뒤로 돌려 열중 쉬어하는 자세가 안 된다. 무심코 그런 동작을 취하다가 어깨의 통증 때문에 깜짝 놀라기 일쑤다. 소변기 앞에 서서 왼쪽 바짓가랑이로 들어간, 오줌 나오는 특정부위를 꺼내다가, 또는 집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어 문제가 없지만 다른 곳의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루고 뒤처리할 적에 언제 부터인가 자연스레 왼손을 쓰게 되었으며, 목욕탕에 가서 팔을 돌리기가 불편해서 때밀이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때밀이 아저씨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불러야 때를 성의 있게, 정성을 다해 밀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튼, 무심코 아무 동작이나 취하다가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놀라 어깨를 감싸 쥐고 심호흡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엎드려서 팔을 고이고 어깨가 저리도록 책을 읽는 독서버릇이나, 잠을 옆으로 잘못 자서 결리는 일시적인 현상인줄 알았다. 특별히 물리적으로 다치거나 무리한 동작을 취한 일이 없이 아프니, 그런 원인이라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일주일이상 같은 통증으로 놀라고 나서야 이게 아니다 싶어 집 앞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형광등을 켜고 필름을 들여다보던 늙은 대머리의 의사는 전형적인 오십견이라며 물리치료를 꾸준히 하라고 요구했다. 오십견! 의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 어이없이 눈 내린 들판을 달리는 오십 마리의 개떼를 연상했고 그 다음으로 내 나이를 의심했다. 노인들의 입에서나 나오는 병명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고 내 나이가 만으로 따져도 오십에 턱걸이 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세월유수, 인생무상,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느라 의사의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는 생각지도 않고 아내를 대상으로 하는 심야 애정행위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단지 술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결국 오십이 되어도 제 몸뚱이 하나 챙기지 못하다니,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의사가 시키는 물리치료를 이틀 간 받았지만 특별할 것이 없었다. 통증에 비하면 물리치료는 조족지혈이었다. 겨우 침 몇 개 꽂아 놓고 전기 마사지를 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사람들은 오십견에는 운동이 최고라고 말했다. 나는 통증을 감수하고 어깨 돌리기 운동과 철봉에 매달리기 운동을 며칠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통증이 더 심해졌다. 평소에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온 탓이라고 스스로 자책했다.
인터넷을 뒤져 오십견을 찾아보았다. 오십견이란 알아듣기 쉽게 속칭으로 만들어진 병명이다. 전문용어는 따로 있었다. 어깨관절 노후로 인한 이완증세로 오는 근육의 통증. 뭐 그런 식의 병명이었다. 검색창에 오십견을 두드리니 전문 한방병원이나 정형외과 등 오십견으로 밥을 빌어먹는 스폰서 링크가 먼저 뜨고 그 아래로 오십견의 특징이나 치료방법이 카페 글로 올라와 있었다. 글이 올라온 카페에 들어가 치료방법에 대해서 꼼꼼히 훑어보았다. 통증이 있더라도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견해가 온통 도배를 하고 있었다. 그 다음 방법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병이라는 글도 올라와 있었다. 그럼 육십까지 기다려야하나? 이 통증을 참고? 의아해하면서 사이트를 훑어보았다. 어느 사이트에는 매일 새벽에 백팔 배를 하라는 글도 올라와 있었지만 나는 후자에 의존하기로 하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운동을 해보았지만 조금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운동을 해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겨우 어깨 돌리기 일이십 분 스트레칭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최근의 일과가 되었다. 운동은 그게 끝이다. 더 이상 오십견에 좋다는 운동은 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통증을 호소했지만 아내는 대답은 냉담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그렇지. 뭐 자업자득인 걸. 술 먹기 운동밖에 더 해?
환자는 분명한데 아내에게만은 환자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나일론환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일론환자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요즘 들어 술자리가 잦아졌다. 희한하게도 거절하기 힘 든 자리다. 저녁때면 친구 중에 누가 연락이 와도 오고 하다못해 거래처에서 저녁을 사겠다는 전화라도 온다. 물론 술값은 제가 낼 게 아니면서. 오십견이 발병하고 아프다고 하니 술자리가 더 잦아지는 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이면 술자리가 생긴다. 그렇다고 그게 솔직히 결코 싫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꼭 해야 할 숙제를 빠트린 것처럼 허전해서 내가 먼저 술 마실 상대를 찾아 전화를 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어제도 강이 불렀다. 지금 시간이 괜찮으냐고? 부근의 갈매기살 집에 와 있으니 소주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 갈매기살 집에는 가끔 가는 곳이고 우리 집 부근이라 걸어서 겨우 오 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바다에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살을 발라서 구워 파는 집이 아니라 돼지고기 어느 특정부위를 갈매기살이라 부른다. 나는 그 갈매기살 집에 몇 번 가보았지만 갈매기살이 돼지의 어느 부위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렇지만 그 집에서 참숯에 구워내는 갈매기살은 소주 안주로 맛이 그만이다. 공무원인 강이 전화 오는 시간은 거의가 일정하다. 여섯 시 공무원 퇴근시간이 넘고 삼십 분이나 사십분 후에 전화가 온다. 나에게는 좀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거절하기 힘들다. 거절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이 부랴부랴 사무실을 정리하고 갈매기 집으로 향했다. 시청에 근무하는 강이 이곳까지 올 적에는 분명 동행이 있다. 그 동행이 누구인지 나는 묻지 않고 술을 마시러 나간다. 가보면 나와 술잔을 나누어도 허물이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는 강이지만 어제는 오랜만이다. 앚그제는 할아버지 제사라서 내가 펑크를 냈고 그 전날은 주택현장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아홉시가 넘어서 사무실 문을 닫았다. 그 전날에는 강이 무슨 교육이라며 사흘간 경기도 어디를 갔다 오는 바람에 거의 일주일 만에 만나는 셈이다. 우리에게 일주일만의 재회라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와 마시는 술 맛보다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가 재미가 있어서 이야기를 들으며 마시다 보면 취하기 마련이다. 드물게 민속학과의 박사학위를 받아서 시청의 학예연구관으로 있는 강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고 나는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다. 민속학과 출신답게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다. 가끔은 무당을 데려오기도 하고 가끔은 시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해설가나 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장을 모셔오기도 한다. 강이 이 지방의 출신은 아니지만 어디서 읽고 주워들었는지 마을마다 유래되는 옛 이야기나 이 지방 출신의 걸쭉한 인물에 대해서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궤적을 꿰뚫고 있다. 달변가는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는 늘 구수하고 새롭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갈매기 집에서 마시다보면 이야기에 취하고 나중에는 술에 취한다.
어제는 이야기가 좀 드문 화재로 몰고 갔다. 부동산이었다. 어제 동석한 사람은 바로 한옥을 전문으로 짓는 장 사장이었다. 무을 어느 골짜기에 삼천 평이나 되는 밭을 샀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농사를 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굿당을 짓겠다는 목적으로 땅부터 매입했다는 것이었다. 평당 만원에 샀는데 맹지가 아니라 승용차가 넉넉히 들어갈 만한 길이 있어서 그만이고 주위에 마을이 없어서 굿당 자리로는 민원의 소지가 없는 땅을 싼 값에 구입했다고 흡족해 했다. 장 사장 말로는 한옥으로 멋지게 굿당을 지어서 굿을 하려는 무당들에게 하루씩 임대료를 받고 임대를 하여 그 수익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일에 쓸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만큼 주위의 마음이 맞는 지인들이 공동투자를 하자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묻자 강이 제안한 사업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노후대책으로는 그만한 사업이 없다. 요즘 들어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김천의 골동품 경매장에서 나오는 불화나 탱화를 사서 장사장의 목재소 겸 야적장의 컨테이너에 모으는 일이 잦아졌다. 얼마 전에 가보니 아주 큰 벽걸이 탱화를 사서 컨테이너 한쪽 구석에 세워두었다. 묻지는 않았지만 저 큰 그림을 어디에 걸어둘까 의아했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그런 계획으로 일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 박사! 그 굿당에 관리원이 필요한 거 아냐?
-왜? 그 자리가 탐이 나는 겨?
-내가 적격이지. 딱 내 자리 같은데........ 청소하고 예약 받고, 숙직하며 월급은 백만 원 정도면 족하겠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지. 월급은 무슨?
-그럴까? 아무튼 관리는 내 자리로 굳었다.
-그렇다면 투자를 좀 해야겠지?
-좋아! 정지작업과 기초공사까지는 내가 할게.
농담이 아니었다. 더 나이 먹고 지금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두게 되면 시간 보낼 곳이 없다. 그런 자리에 투자를 좀하고 관리인으로 들어간다면 정말 배짱 편하고 책임질 일이 없는 자리다. 또 나이가 들면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가 있고 시간 보내기가 그만일 것 같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하는 법이거늘, 노후대책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이 시점에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정지 작업과 토목작업을 하면 공정의 30%는 되는 공사다. 그렇다면 땅값을 따지더라도 사분의 일의 주주는 된다. 굿당의 사 할 주인! 나에게 어울리는지 생각해보았다. 사람팔자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노후대책으로 안 될 것도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골동품 경매장에 따라가 보기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원청업체에서 부르는 회식자리로 갔다. 하지만 갈매기집을 나오면서 온천에 가는 시간을 정확히 약속을 하지 않은 것이 불찰이다. 열한 시부터 경매가 시작인데 아직 상주의 식당에 있으니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상주라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국도로 오는 게 분명한데 언제 도착할지 나는 그 동안 금전인출기에 가서 돈을 좀 준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총알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굿당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건들이라 나는 무엇을 찍어야할지 거의 문외한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디 굿당이나 돌아다니며 굿을 어떻게 하는지 구경이라도 해둘 걸....... 속으로 중얼거리며 길 건너 24시 편의점에 설치된 금전인출기에 가서 얼마간의 총알을 빼왔다. 갔다가 오는 시간은 불과 이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먼저 경매장에 가서 기다릴까 하다가 장이 잘 서는지 확인하고 가려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일이란 오 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법,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좀 늦게 출발한다고 해도 내가 더 늦을 수도 있다. 인동의 상가 현장에 있는 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엄살이 심한 반장의 말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초공사보다 먼저 정지 작업을 하고 건물 뒤에 들어갈 옹벽의 콘크리트를 치는데 목수들의 불찰로 거푸집이 터졌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면 큰 일이 아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반장의 큰일이라는 말에 무슨 인명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콘크리트를 얼마나 치다가 터졌느냐는 물음에 두 번째 차의 레미콘을 치다가 거푸집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다행이다. 콘크리트를 거의 다치고 터지면 콘크리트 값만 해도 수백 만 원이 달아나는데 두 번째 차를 치다가 터졌으니 손해를 보더라도 소액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현장에 먼저 나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 공사는 상가를 다 짓는 것이 아니라 기초공사까지만 내가 맡은 것이다. 이익을 남기려고 맡은 공사가 아니라 다른 공사가 생길 때까지 반장과 인부들을 놀릴 수가 없어서 그 인건비나 충당하려고 맡은 공사인데 일이 이렇게 된다면 적자를 면하기 어렵겠다.
목수를 바꾸든지 해야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왈칵 짜증이 먼저 앞섰다. 경매장에 가는 것은 일단 조금 유보하고 현장부터 나가 보아야 한다. 빨리 나가서 수습을 지시하고 가기로 마음을 먹고 사무실을 나와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그리 큰 사고는 아니었다. 반장과 인부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럴 땐 화를 내는 건 금물이다. 더 큰 사고에 비교하고 ‘돈 벌었네’하면서 오히려 달래주어야 한다. 그게 인부들에 대한 처세술이다.
-뭐, 별 일 아니네! 사람 다치지 않았으면 괜찮어. 일 하다보면 이럴 수도 있지. 작업자의 입장에서 한마디 해주고 일단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목수들에게 거푸집 재작업을 지시하고 포클레인을 불러다가 흘러나온 콘크리트와 레미콘에 남은 콘크리트는 버리지 않고 기초공사할 부분에 버림 콘크리트로 치도록 지시를 했다. 어차피 옹벽공사가 끝나면 버림 콘크리트를 쳐야하는데 공정이 조금 바뀔 뿐이다. 그 동안 강으로부터 전화가 두 번이나 왔다. 현장에 좀 바쁜 일이 생겨서 조금 늦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목수 작업을 지켜보았다. 전화로 받은 것과는 달리 왕창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손해라면 포클레인 임대료와 공정이 하루 늦어진다. 아니 하루가 늦어지는 게 아니라 이틀이 늦어진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콘크리트 생산업체가 쉰다. 토요일에 콘크리트를 치고 일요일에 양생을 기다리며 하루를 쉬도록 계획했는데 이렇게 되면 이틀이 늦어진다. 그나마 다행이다. 콘크리트를 거의 다 타설한 다음에 거푸집이 터졌으면 흘러나온 콘크리트를 처리할 수가 없어 폐기물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자면 콘크리트 대금과 폐기물 처리대금이 순전히 손해액으로 굳어진다. 옹벽이 높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 금액이 장난이 아니다. 반장에게 좀 꼼꼼하게 작업을 감독하고 인부들은 자재 야적장으로 보내 자재를 정리하라고 지시가 아닌 당부하고 차를 돌렸다. 요즘엔 인부들이나 반장에게 지시를 하면 안 된다. 당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청이나 도급을 준 팀에게는 큰소리나 지시가 가능하지만 일당이나 월급이나 일당을 주는 사람들에겐 당부를 해야 한다. 3D업종에선 세상이 너무 변했다.
그만하길 다행으로 여기며 돌아오는 차안에서 강에게 전화를 했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경매장이 잘 서는지 골동품을 전문으로 하는, 골동품 같이 생겨먹은 장사치들이 많이들 나왔는지 내 신경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있었다. 경매가 열리는 날이면 일반인들보다 골동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에서 내놓을만한 물건들을 트럭에 싣고 몰리는데 북적거려야 그 장사치들이 북적거려야 구경거리도 있고 진기한 물건들이 쏟아져 장이 잘 선다고 말한다. 나는 골동품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장이 잘 서는 날, 호가가 비싸게 시작하는 물건이면 희소성이나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에게 이미 낙찰된 물건이라도 만져보고 쓰다듬어보며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물어보기도 하는데 오늘 장은 어떤지? 바로 경매장으로 향할까 하다가 강의 번호를 눌렀다. 헌데, 강의 대답은 영 시원찮았다.
-오늘 장은 이상하게 썰렁하네.
-그래?
-올라오지 말고 사무실에 계셔. 우리가 내려가면서 사무실로 들를게.
김천 골동품 경매장까지 가는 발품을 덜었다. 나는 사무실로 핸들을 꺾었다. 토요일이라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 들어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강을 기다리며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며 강의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넷 바둑은 고민하지 않고 대충 둔다. 무리수를 두어서 져도 상관없다. 절대 장고를 하지 않는다. 하여 한판을 두는데 십 분이 걸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이 도착하면 아무래도 오늘은 낮술부터 먹어야 할 것만 같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항상 낮술부터 시작했다. 나는 형제회집에 가서 시원한 물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하던 문화재지표조사에 미비한 것이 있어서 대덕에 가서 사진을 몇 컷 더 찍고 오겠다는 것이다. 그 지역은 머지않아 댐이 들어설 예정인데 모 대학 박물관에서 하는 문화재 지표조사 용역을 강이 맡았다. 강이 즐겨하는 아르바이트다. 일 년에 몇 건씩 그런 용역이 들어온다. 강만큼 철저히 조사를 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을 그 대학에서는 찾아내지 못한 것이거나 강이 하는 만큼 잘 쓰는 인간이 이 지역에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그 분야는 학예연구관인 강의 전공이고 깊이와 문화재가 지닌 가치를 보는 눈을 지니고 강도 있게 쓰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 용역비로 받는 원고료는 알토란같은 강의 비자금이다. 세금도 떼지 않는 원고료를 받아서 비자금으로 두었다가 거의가 술값으로 탕진한다.
대덕이라.......
나는 그 곳을 찬찬히 짚어보았다. 거기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동네 내력을 많이 아는 노인들을 만나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좀 듣고 동네 구판장에서 막걸리라도 대접하고 오려면 저녁이 되어야 도착할 것이다. 그런 원고의 청탁이 있을 때마다 기사노릇을 하며 따라 다녀서 걸리는 시간을 대충 안다. 아무리 빨라도 제대로 둘러보려면 저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맘을 먹고 그 동안 무엇을 할까 고심했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점심은 생각이 없다. 인터넷바둑을 한판 두는 데 채 십 분이 걸리지 않는다. 두 판으로 바둑을 끝내고 인터넷을 뒤적이며 오십견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았다. 갑자기 한쪽 어깨가 자유스럽지 못하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스트레칭 중에서도 철봉에 매달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견해가 가장 많이 올라와 있었다. 부근에 철봉이 어디 있더라? 생각하다가 사무실 문을 잠그고 계단 난간에 여름내 자물통으로 유배되어 있는 자전거를 타고 부근의 초등학교로 향했다. 얼마 만에 타보는 자전거인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자 학교마저도 쉬는 토요일이라 운동장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이서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철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초등학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다. 조국을 근대화시킨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인데 그 대통령의 동상이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학교다. 동상은 신축 교사 뒤편의 화단에 서있다. 이 학교에 총 맞아 서거한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보러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이 있다. 부근의 도립공원과 그 대통령의 생가와 이 학교의 동상이 관광인프라로 묶여있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나는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몇 개 했다. 오른쪽 어깨에 오는 통증을 참아가며 겨우 몇 개 했을 뿐인데 이마에 진땀이 났다. 철봉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통증이 가라앉으니 어깨가 좀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운동장 저쪽, 교사 현관에서 나오는 한 친구가 보였다. 가만히 보니 고등학교 동기생인 오동추가 분명한 것 같았다. 너무 멀어서 확신하지 못하고 벤치에 눕혀둔 자전거를 타고 그가 걸어오는 쪽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오동추가 맞다. 오동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교대로 간 친구다. 그 때만해도 수능이 아닌 예비고사 성적이 좀 낮으면 전문대학을 가느니 교대로 가던 시절이었다.
-오동추 맞지? 너 여기 웬일이냐?
-그래. 오랜만이다. 그러는 너는 여기 웬일인고?
악수를 나누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분식집에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같이 피우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인데,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보고 처음 보는 친구다. 본명이 오 동추라서 아이들은 동추야 라고 부르지 않고 꼭 이 녀석만은 성을 붙여서‘오동추야’ 라고 부르다가 끝내는 ‘오동동’으로 불리던 친구다.
-나야 회사가 이 부근에 있어. 잠시 산보 나왔지.
-그랬구나. 나는 올 삼월에 이 학교 교감으로 발령 받았어.
-아, 그랬구나. 야! 오동동, 아니 오 교감! 너 부부교사잖아? 부부교사는 중소기업이라던데.......
-중소기업은 무슨?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너 건설회사 차려서 잘 된다는 소리는 들었다. 회사는 여전히 건재하지?
-그럭저럭.
대답이야 대충 얼버무렸지만 심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대학을 갈 때는 건축과나 토목과를 경영계열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을 하면 초봉이 교대 졸업하고 받는 교사 월급의 두 배에 가깝다. 하여 교대나 사범대학의 기피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나이가 되면 명퇴의 칼날이 목 앞에서 어른거리는 대기업보다는 정년이 보장되는 선생이 훨씬 나은 직업으로 등극했다. 나도 토목과를 나와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 취직하여 잘 나가던 시절을 거치고 나이가 되자 회사가 주는 은근한 압박과 눈치에 못 견뎌 명퇴를 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작은 토건 회사를 설립했다. 그 때는 명퇴를 하면 정관예우라는 게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공사를 하청 받고, 운이 좋아 처음에는 제법 큰 상가나 아파트의 토목공사를 수주 받아 준공검사를 마치면 작은 아파트 한 채가 떨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도 다 갔다. 지금은 공사를 해도 인건비와 원자재 값이 너무 올라 적자를 보지 않으면 겨우 먹고사는 정도다. 또한 입찰에 있어서 경쟁도 치열하다.
-야! 오동동. 교감께서 일요일에 당직으로 나오신 건 아니지?
-당직은 따로 있어. 그냥 집에 있기가 무료해서 들러본 거야. 할 일도 좀 있고.
-점심은 먹었어?
-응, 점심 먹고 조금 전에 나왔어.
-이러지 말고 우리 어디 가서 가볍게 한 잔 하자.
-건설회사 회장님께서 낮술을 한 잔 사신다? 그럴까? 잠시만 기다려. 컴퓨터 좀 끄고 책상 정리 좀하고 나올게.
오동추가 다시 교사로 들어가고 나는 자전거로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았다. 어깨가 조금 가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방학이 되어가는 운동장의 햇살은 보통 따가운 게 아니었다. 등에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자전거 핸들에 걸린 수건으로 목덜미의 땀을 훔치고 나무그늘에서 좀 쉬면서 오동동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유서가 깊은 학교라 플라타너스의 그늘이 운동장을 덮고 있는데 그 그늘이 보통 두꺼운 게 아니었다.
나무의 크기에 따라서 그 학교의 전통을 따질 수야 없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 학교의 플라타너스는 입에 올릴 만큼 아름드리로 운동장을 덮고 있다. 이 학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학생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부근에 택지를 개발하고 도시 변두리에 신시가지가 생겨 그쪽에 학교가 여러 개 생기는 바람에 도시의 가장 중심인 이곳은 중앙시장이나 주변이 상가뿐이고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으로 학생이 현저히 줄었다. 대신 학교주변의 상인이나 무슨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일요일이면 운동장에서 행사를 많이 하지만 평일에는 조용한 학교다. 하지만 동창회 때면 운동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걸쭉한 인물들이 모인다. 이 도시에서 내놓으라는 인물들은 모두가 이 학교 출신이고, 현직 국회의원 두 명과 대통령을 배출한 걸 학교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 다른 행사보다 동창회 하나는 참 뻐근하게 치루는 학교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오동동이 현관을 나왔다.
-어디로 갈까?
-글쎄.........어디가 좋을까? 나는 오십견이라 요즘 이쪽 팔이 안 올라간다.
-너도 오십견이 왔냐? 나도 그랬었는데 저 쪽에 있는 한의원에서 침 맞고 감쪽같다. 근데 지금은 허리가 안 좋아서 침 맞고 있어. 친구야. 그럼 낮술보다 침부터 맞으러 가자. 사실 학교 둘러보고 침 맞으려고 나왔어. 허리가 좀 안 좋아서, 우리 침 맞고 한 잔 하자. 나도 처음에는 팔이 안 올라갔는데 이렇게 올라가잖아. 원장 미모도 죽이고....... 오늘 토요일이라도 아직 문을 닫지 않았을 거야. 침 맞고 한 잔하지?
-침?
그렇게 되물었지만 침보다 원장의 미모가 죽인다는 말에 더 구미가 당겼다. 나는 더운데 낮술보다 차나 한 잔하려고 오십견을 들먹였는데 오동동은 침 맞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오동추 말마따나 침을 맞고 한 잔하는 것도 괜찮겠다. 임을 보고 뽕을 따러 간다? 좋지! 한의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정문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와 오동추와 보폭을 맞추며 중앙시장 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한의원이 있었다. 자주 다니는 길인데도 그 곳에 한의원이 있는 줄을 몰랐다. 한의원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환자는 우리 두 명 외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접수를 마치고 우리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간이침대를 한 칸씩 차지하고 나란히 누웠다. 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그런 한의원이었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누워있었다. 오동동과 옆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잠시 땀을 식히고 있자니 원장실에서 흰 가운을 입은 한의사가 나왔다. 누워서 보아도 늘씬하고 큰 키에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키가 유달리 작달막한 오동추 녀석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원장을 보자 오동동은 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녀석의 얼굴에는 미모 죽이지? 라는 표정이 역력히 배어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오동동처럼 눈을 찡긋해 주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원장님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저 친구가 그러데요. 원장님 보러 가자구.
-원장 미모를 보러 오신 것은 아닐 것이고 어디가 불편하시냐구요?
원장은 사람 좋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소까지도 우아했다.
-저 오 교감이 너무 미인이라 하기에 원장님 보러 온 나일론환자입니다. 그런데 오십견이라 이쪽 팔이 안 올라갑니다.
원장은 다시 한 번 웃어주고는 내 팔목을 잡아 이런 저런 동작을 취해보았다.
-아프시면 아프다고 말씀하세요.
팔을 머리위로 꼬아서 올리고 꼬아서 허리부근으로 돌리고, 왼쪽 어깨까지 끌어 올렸다. 내 입에서는 취하는 동작마다 연신 신음소리가 나왔다. 정확하게 아픈 동작을 꼬집어 팔을 움직이며 원장은 말했다.
-보통 오십견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오십견이 아니라 어깨의 대동맥이 수축되어 통증이 오는 겁니다.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을 많이 하셔야지요.
-운동보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많아서 아픈 것 같은데요. 먹여 살려야할 식구가 하도 많아서 늘 어깨가 무겁죠.
-무슨 사업하시나 봐요?
-사업이랄 것도 없지만 어깨가 이리 무겁네요.
-야! 너 골프 같은 거 안 하냐?
오동추가 옆 침대에 엎드려서 한마디 거들었다. 녀석은 벌써 침대에 엎드려서 윗도리를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 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리고 있었다. 자주 다녀본 녀석이라 어디에 침을 놓을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골프? 재미가 안 드네. 그리고 골프가 운동이 되냐?
-그래? 사업하면서 골프 안치는 놈은 너 밖에 없을 거다.
-요즘은 골프로는 접대가 안 된다. 개나 소나 다 치는 골프인데.
그 사이 원장은 간호사가 들고 있던 스텐레이스 쟁반의 침을 빼서 내 손목과 손등 그리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발목과 무릎의 혈을 찾아 침을 꽂았다. 어깨가 아픈데 침을 손목과 발목 무릎에 꽂은 것이 다소 의아했으나 나는 물어보지 않고 몸을 한의사에게 맡겼다.
-가만히 한 숨 주무세요.
마지막으로 정수리에 침을 꽂으며 말했다. 겨우 침 몇 개를 꽂고 한숨 자라니? 그럼 침을 다 놓았다는 애긴가?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 오동동에게로 돌아섰다.
-원장님! 저 오 교감은 밤에 허리를 너무 써서 무리가 온 거 아닙니까?
-그 반대죠. 밤에 허리를 너무 안 써서 오는 병입니다.
원장은 돌아보고 빙그레 웃으며 농을 받아주었다
-원장님! 저 자식, 헛소리하는 혀에 침을 한 대 놓으면 좋겠네요. 그런 침은 없나요?
-그런 침은 비쌉니다.
원장도 벽창호는 아니었다. 일단 허리 아래로 말문을 터면 상대가 만만해지는 법이다.
-밤에 허리를 너무 안 써서 오는 병이라면 남자 거기에 좋은 침은 없습니까. 저 오 교감에게 한 대 놓아주시죠. 아무리 비싸도 진료비는 내가 낼 터이니까.
-당연히 있죠. 헌데, 그 침을 잘못 맞으면 불면의 밤이 되고 피골이 상접하여 결국은 복상사 주지스님이 됩니다. 호호호.
그런 농을 하고 웃는 것도 천박하지 않고 우아했다. 오동동이 속된 말로 ‘뿅’갈만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차라리 허리 아픈 게 낳겠군요. 저 자식이 명예스럽지 못하게 죽는 걸 원치는 않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원장님! 저 오동동 교감께서 좀 전에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원장님과 같이 술 한 잔하는 게 평생소원이라고 하던데 천추의 한을 한 번 풀어 주시죠.
-교감선생님께서 환자를 많이 소개해주셔서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술 한 잔 하자시면 제가 사지요. 오늘 토요일이라 두 분 진료 끝나면 문 닫을 시간인데 오늘 어때요? 그런데 안주는 뭐가 좋을까요?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해 본 말인데 의외로 원장은 적극적이었다. 생긴 것처럼 참 시원시원한 여자다. 원장의 말에 오동동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다.
-지금이 딱 좋습니다. 제가 제일 한가한 시간이거든요. 원장님께선 뭐가 잡수고 싶으세요?
서슴없이 바로 내가 되물었다.
-요오기, 중앙시장에 가면 순대 잘하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의 돼지머리 눌린 고기가 저는 맛있던데 두 분께서 좋아하시려나 모르겠네요.
-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원장님과 함께라면 어떤 안주라도 술이 절로 넘어갈 것 같은데요.
의외로 약속은 수월하게 정해졌다. 원장이 오동동의 허리에 침을 다 놓고 원장실로 들어가자 오동동은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 사업하는 놈이라 수완이 다르긴 다르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또 눈을 찡긋해 보였다. 침을 꽂고 가만히 누워서 오동동의 감탄에 스며있는 초등학교 교감의 도덕책 같은 융통성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데 아픈 어깨에 희한하게도 저릿하게 감각과 가벼운 통증이 오는 것이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적에는 느끼지 못한,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은근한 통증이다. 오동동 말마따나 뭔가 다른 모양이다. 나는 그 은근히 오는 어깨의 통증을 즐기며 살짝 잠이 드는 찰라 간호사가 와서 침을 뽑겠다고 상냥하게 말하고는 침을 뽑았다.
-야! 오동동, 어깨에 시원한 기분이 드는데?
-효과가 없으면 내가 사장님을 모셔왔겠어?
거, 참으로 신통하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쭉 쭉 펴 보았다. 이구일침(뜸은 여러 번 뜨고 침은 한 번이라는 말)이라더니,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고 저릿하던 어깨가 마음먹은 대로 쭉 쭉 펴지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원장이 퇴근 준비를 하고 원장실에서 나왔고 오동동이 바지춤을 추스르며 쪼르르 수부로 달려가 내 진료비까지 계산을 했다. 원장은 간호사에게 문단속을 하고 퇴근하라고 부탁을 하고 셋이서 한의원을 나섰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셋이서 보폭을 맞추며 중앙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원장이 잘 한다는 순대집은 바로‘시장순대’였다. 이집은 강과 막걸리를 마시러 가끔 오는 집이다. 원장이 들어서자 순대집 아줌마가 반갑게 알은 체 했다.
-원장님 오셨네. 머리 눌린 고기 드릴까?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순대집 아줌마는 원장과 동행임을 눈치로 긁고, 같이 오셨는가보네. 사장님은 순대를 좋아하시는데, 라며 주문을 다시 받았다. 원장은 머리 눌린 고기와 막걸리를 시켰다. 그때 내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보니 강의 전화였다. 나는 느긋하게 폴더를 열었다.
-사무실에 안 계시네?
-벌써 내려왔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동네 노인들 관광버스타고 효도여행 떠났다네.
-여기 시장 순대야! 이리로 오시지. 끝내주는 팀들과 막걸리 마시고 있어.
-알았어. 바로 갈게.
전화를 끊은 지 채 십 분이 되지 않아 강과 장사장이‘시장순대’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 동안 점심을 거른 나는 돼지 국밥을 먹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막걸리 잔이 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숟가락을 놓고 옆자리의 빈 테이블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놓았다. 사 인용 테이블이 금세 오 인석 테이블이 되었다. 내가 인사를 시켜야 할 것이다. 누구부터 인사를 시켜야하나 머뭇거리는 사이 오동동이 벌떡 일어서며 강의 뒤에 따라 들어온 장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쿠 형님! 여기 어쩐 일이세요?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는 사이, 원장이 돌아보며 또 장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 오라버니, 여기서 만나네요.
-어? 너희들이 여기 웬 일이냐? 그리고 이 사장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
-의사와 환자 사이입니다.
-이렇게는 어떻게 아는 사이냐?
장 사장은 오교감과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오씨 집안의 동기생입니다. 오십견이라는 뼈대 있는 집안의 동기죠.
오동동은 형님이라고 했고 원장은 오라버니라고 부르다니? 무슨 족보가 이래? 역시 장 사장은 마당발이구나. 감탄하고 있을 때 내가 시켜야 마땅할 소개를 장 사장이 시켰다.
-얘 오교감은 내 고종사촌 동생이고 얘는 이종사촌 동생입니다. 얘는 한의사입니다.
손가락으로 원장을 가리키자 원장이 감탄에 찬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오라버니와 오 교감선생님이 고종사촌 동생이라면 교감선생님은 외사촌 형님이라 부르는 건가요. 그럼 우리는 사돈지간이네요. 세상 너무 좁다.
-사촌 동생을 둘이나 만났으니 오늘 술값은 누가 내야할지 결정이 났네요.
강박사가 한마디 거들었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장사장이 마당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혈연으로 연결된 고리였다. 누군가 잔과 수저를 챙기는 동안 세상은 정말 좁고 한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막걸리를 한잔씩 따르고 건배 제의는 내가 했다. 모두들 잔을 들고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하라고 말하고 건배 구호를 외쳤다.
-우리가 남이가?
-아니지!
희한하게도 구호로 외치는 대답이 일치했다. 우리의 건배소리에 순대집이 잔에 담긴 막걸리처럼 출렁거렸다. 뱉은 말에는 지우개가 없다. 그렇다면 원장과 나는 남이 아니다. 막걸리 잔을 들고 원장에게 어떻게 작업 들어갈까, 카사노바의 기질이 전혀 없다고 부인할 수 없는 내가 엉큼한 궁리를 하며 원장의 얼굴을 잠시 훑었다. 눈이 마주치자 속을 모르는 원장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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