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영화를 만들어온 리안 감독의 무협영화다. 무협영화의 예술성을 한 단계 도약시킴과 동시에 그 아름다움을 전세계 관객에게 널리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왕도려의 무협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강호와 속세 사이에 놓인 네 남녀의 욕망, 의리, 정절 등을 다루며, 동양적인 이야기와 서양적인 영상 기술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작품으로 손꼽힌다.
수련 중 무언가를 깨달은 무당파 고수 리무바이는 속세로 내려와 절친하고 애틋한 사이인 유수련에게 자신의 청명검을 베이징의 철총관에게 맡겨 달라 전한 뒤 강호를 떠나려 한다. 그런데 수련이 철총관의 집에 간 그날 밤, 청명검 도난 사건이 벌어진다. 옥대인의 집 근처에서 범인을 놓친 수련은 낮에 만났던 옥대인의 딸 옥교룡을 의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래전 스승을 죽이고 무당파로부터 도망쳤던 푸른 여우의 소행이라 확신하고, 소식을 들은 리무바이도 베이징으로 온다. 결국 리무바이와 푸른 여우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포졸장이 목숨을 잃으며 일이 커진다. 수련은 지혜를 발휘해 교룡으로부터 조용히 청명검을 되돌려받고 사건을 마무리지으려 하지만, 리무바이는 푸른 여우를 쫓아가 스승의 복수를 갚으려 함과 동시에 그동안 푸른 여우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온 옥교룡을 자신의 마지막 제자로 삼아 무당심결을 전수하고자 한다.
한편, 부모가 원하는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는 교룡에게 그녀를 잊지 못한 연인 나소호가 찾아온다. 마적 출신인 나소호는 그녀의 결혼을 막으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만 저지르고, 교룡은 다시 청명검을 훔쳐 혼자 무당산으로 떠난다. 리무바이와 수련도 교룡과 푸른 여우를 뒤쫓아 무당산으로 향하고 중간에 그동안 숨겨왔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리무바이는 교룡으로부터 청명검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그녀와 맞붙는데 중간에 푸른 여우가 나타나 그녀를 데려간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뒤를 쫓던 리무바이는 푸른 여우의 계략에 휘말려 결국 독살당하고, 교룡은 뒤늦게 리무바이를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한발 늦는다. 수련은 슬프고 분한 마음을 억누른 채 그녀를 나소호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교룡은 나소호와 마지막 밤을 보낸 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무당산 아래로 몸을 던진다.
작품해설
1. 감독 소개
출처 : 네이버영화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을 만든 리안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아시아계 감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과 미국, 양국의 국적자인 그는 스스로를 어느 문화권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의식한다. 그는 로저 에버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떤 특정한 장소의 시민이 되어본 적이 없다. 내 부모는 중국을 떠나 대만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우린 아웃사이더였다. 다음엔 미국으로 건너갔다. 또 아웃사이더였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거기서도 아웃사이더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감독으로서 그의 이력도 한곳에 정박해 있지 않다. 그는 미국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한 뒤 대만 정부가 실시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하여 〈쿵후 선생〉으로 감독 데뷔하고 〈결혼 피로연〉까지 만들게 됐다. 그중 〈결혼 피로연〉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이후로 그는 대만과 중국을 오가며 영화를 만들었고 대부분이 중국과 미국, 동양과 서양 양쪽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 앞에는 중국 감독도, 대만 감독도, 할리우드 감독도 똑같은 정도로 어색하거나 어울린다. 그리고 그런 혼종적 정체성이 그에게 세계적인 감독으로 거듭나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 그는 어떤 문화권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든지 상관없이 그 문화권 특유의 가치관으로부터 보편적인 서사와 영화언어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와호장룡〉이 개봉 당시 역대 미국에서 가장 흥행한 외국영화의 위상에 오르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도 동양적 무협 장르의 오랜 전통과 서구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결합한 결과였다.
2. 번역의 문제
<와호장룡> 배우 주윤발출처 : 씨네21
〈와호장룡〉은 왕두루가 집필한 5부작 무협소설 중 네 번째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네 남녀의 정절, 헌신, 신의 등의 도덕적 가치를 보여준다. 휘트니 크로더스 딜리가 쓴 〈리안 감독의 영화세계〉에 따르면 리안 감독은 이야기를 좀더 모호하고 드라마틱하게 발전시켰다. 원작에서와 달리 청나라 시대의 배경은 희미해졌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대의 재현보다 서구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상상적 중국의 재현이었다. 리무바이는 수련보다 일찍 죽음으로써 그들 사이의 은밀한 사랑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교룡도 나소호와 헤어지고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무당산 아래로 몸을 던짐으로써 더욱 극단적인 엔딩을 가능케 했다. 그 결과 인물들의 억압된 욕망이나 근원적 상실감을 훨씬 더 비극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나왔다. 그것은 서구 관객에게 익숙한 비극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었다.
원작을 영화로 번역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까다로운 문제는 언어였다. 리안 감독은 중국어 대사를 고집했다. “무협영화를 영어로 만드는 것은··· 서부극에서 존 웨인이 중국어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 관객만을 대상으로 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인 작가 왕후이링과 차이궈룽이 중국어 대본을, 할리우드에서 리안과 꾸준히 작업해온 제임스 샤머스가 영어 자막본을 썼다. 당연히 지난한 중간 번역 과정이 따랐다. 샤머스가 스스로 인정하길 “원작 소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영어 자막본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온전히 담기 어려웠으며 담는다 해도 서구 관객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영어권 관객이 받아들이기 쉬운 표현법을 고민했다.
중국어권 관객에게도 이 영화는 그리 매끄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주연을 맡은 홍콩 출신의 주윤발, 말레이시아 출신의 양자경, 대만 출신의 장첸도 완벽한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안은 표준 중국어 더빙을 활용하는 기존 무협영화의 제작방식을 거부했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지닌 힘이 정확한 억양을 통한 대사 전달로 얻어낼 수 있는 효과보다 더 강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국어권 관객으로부터 배우들의 능숙하지 못한 중국어 실력 때문에 몰입이 방해된다는 부정적 평가를 얻었다. 심지어 일부는 이 영화가 중국적 소재를 할리우드 방식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라며 비난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평단은 무협영화와 드라마의 핵심을 훌륭하게 결합해낸 점에 대체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2001년 개봉 당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와호장룡〉은 아카데미 영화상 역사상 외국어영화로는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이기도 했다. 3. 무술
출처 : 네이버영화
〈와호장룡〉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참고영화들은 물론 호금전의 작품들을 비롯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무협영화들일 것이다. 휘트니 크로더스 딜 리가 집필한 〈리안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리무바이와 교룡의 대나무숲 장면은 호금전의 〈협녀〉의 대나무숲 결투 장면에 대한 오마주에 다름 아니었다.
더불어 ‘푸른 여우’로 등장하는 정패패도 호금전과 자주 작업했던 여배우 중 하나였다. 전통적 무협영화들이 이 영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미국의 유명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도 지적한 바 있다.
“리무바이의 평온하고 침착한 태도는 호금전의 영화 속 협객들을 연상시킨다.··· 젊은 연인 옥교룡과 나소호는 〈소림여인자〉에서 결투를 벌이는 연인을 떠올리게 한다.··· 사막의 회상 장면··· 은 〈동사서독〉과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더불어 호금전의 무협영화들에 대한 리안의 애착은 남달랐다. “중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이 정체성을 호금전의 영화나 이한상의 영화, 텔레비전 방송과 교과서를 통해 습득했다.” 그러므로 무협영화란, 늘 중국적인 것(혹은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어온 리안 감독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참조점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원화평을 무술감독으로 섭외한 것도 이 영화의 성공에 주효했다. 서구 관객에게는 이미 〈매트릭스〉라는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기도 한 원화평은 중국의 전통 무술부터 격투 기술, 경극 등의 전통을 줄줄이 꿰뚫고 있는 동시에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연출해낼 줄 알았다.
그는 무협영화의 초자연적인 액션 신들을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런 점은 초반부에 등장하는 달밤의 도주 신, 대나무숲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격투 신들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그의 도움과 더불어 리안 감독은 무협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이안
감독
주윤발
주연
리무바이 역
양자경
주연
수련 역
장쯔이
주연
용 역
주요 등장인물
리무바이(주윤발) : 무당파의 고수로 청명검을 버리고 강호를 떠나려 한다. 친구의 약혼녀였던 수련을 흠모하며, 교룡은 제자로 삼고자 하고, 스승을 죽인 푸른 여우와는 적대 관계에 있다.
유수련(양자경) : 무술과 지혜를 두루 겸비한 협녀다. 리무바이를 흠모하지만 죽은 약혼자의 친구라는 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숨긴 채 살아왔다.
옥교룡(장쯔이) : 유모인 파란 여우로부터 무술을 배우며 자라 강호에 대한 동경이 깊다. 정략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
나소호(장첸) : 사막을 떠도는 마적으로, 옥교룡과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신분의 차이 때문에 쉽게 이어지지 못한다.
벽안호/파란 여우(정패패) : 자신과 동침하고도 무술을 전수해주지 않았다며 무당파 스승을 죽이고 무당심결을 훔쳐 달아난 뒤 옥교룡을 제자로 삼아 복수를 꿈꾸며 살아왔다.
명장면 명대사
- 리무바이 : “본심을 되찾으라고 널 풀어줬다.” - 옥교룡 : “강호 사람 주제에 본심을 들먹이다니. 원하는 게 뭐지?” - 리무바이 : “무당심결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 옥교룡 : “좋아. 3초식 안에 청명검을 뺏으면 따르겠어.”
이 대나무숲 결투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장면 중 하나다. 리안 감독과 원화평 무술감독의 연출력으로 빚어진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대사보다 흔들리는 대나무 위에서 두 주인공이 춤추듯 움직이는 모습, 그들과 함께 유려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의 동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