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 민족에게는 설 명절이 명절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설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함께 하고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를 하느라 웃음꽃을 피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아무리 핵가족에 일인가구가 는다고 하지만 명절 연휴 기간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설 연휴 기간인 2020년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총 3279만명, 하루 평균 656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하루 평균 472만대에 이르고, 서울~부산 귀성길은 8시간 10분 걸릴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그렇지만 저출산과 일인가구 급증 그리고 특히 여성층에서 많이 체감하는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갈수록 적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혼자 사니 당연히 고향갈 일이 없어지겠죠. 물론 일인가구이지만 고향을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겠지만요. 비율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인 2019년에 전국 2011만 6000가구 가운데 일인 가구는 598만 7000가구(30% 정도)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596만 2000가구·29.6%)보다 2만 5000 가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일인가구가 최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통계청은 앞으로 일인가구는 더욱 늘어나 2047년쯤 1인 가구의 비중도 전체의 약 4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가구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족수가 줄어들고 친척들끼리 왕래도 상대적으로 많이 끊긴 요즘 일가 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거나 함께 선산을 참배하는 모습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습입니다. 고향을 찾아도 아침 식사들 같이 하고 차 밀린다며 바쁘게 이별하는 것이 요즘의 풍속이지요.
아침에 같이 모였지만 상주변에 둘러않은 사람수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바로 결혼 기피 그리고 저출산의 여파지요.지난해 (2019년) 3분기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8명으로 낮아져 지난해 전체 합계 출산율도 2018년에 이어 연속 1.0명을 밑돌 것이 확실시됩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합니다. 혼자 사는 자녀는 오지 않고 결혼한 자녀는 부모집을 찾았지만 아이는 한명 아니면 없으니 전체가 5~6명을 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초간단 인원으로 단촐하게 차려지는 것이 명절상의 현모습입니다.

명절날 만드는 음식도 아주 간단하게 됐습니다. 며느리들이 음식하기를 싫어한다는 의견이 급증하고 명절을 지난 뒤 이혼을 생각하는 자녀가 많다는 소리에 부모들은 앞서서 음식량을 줄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자식이 이혼을 할 수 있다는 데 부모 주장만을 내세울 수 없겠지요. 그리고 이제는 집에 찾아오는 친척들도 많이 없어지고 찾아갈 친척집도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오롯이 혼자서 명절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잡코리아가 20세 이상 성인남녀 3390명을 대상으로 설날 계획을 주제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9%가 ‘오롯이 나 혼자서만 이번 설 연휴를 보내고 싶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여성(62%)이 남성(56.7%)보다 다소 높았지만 남녀 구별없이 높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뿐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둔 가정도 명절때 가급적 집에서 쉬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른바 역귀성은 너무 흔해 이제 기사화되지도 않습니다. 부모들이 대도시에 있는 자녀들을 찾아 얼굴보고 자녀들과 대도시 주변 관광지를 구경한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모습도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오히려 대도시 주변 관광지에 명절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시댁이나 친정을 찾는 것을 두고도 상황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먼저 시댁에 가서 음식 준비하고 명절 당일 오전은 시댁에서 보낸 뒤 오후에 친정으로 가는 것이 일반화된 모습이었지만 요즘은 이것도 바뀌고 있습니다. 90년생 며느리라는 이제 20대후반의 며느리들은 자신의 집인 친정을 먼저 가고 싶어합니다. 지금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면 아이를 한 명만 낳았던 가정의 자녀들이 많습니다. 제 친구들도 상당수가 아이가 한 명입니다. 그러니 어느 집이고 명절날 부부 둘만 집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딸 하나 키우느라 고생한 부모들을 생각하니 자기라도 부모에게 찾아가줘야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입장은 또 다르겠지요. 자기 부모도 두사람만 있을테니 먼저 가야된다고요. 요즘 젊은 세댁들은 남편의 이런 모습을 효자병이라고 한답니다. 결혼전에는 결혼하면 처갓집 먼저 가자고 말해놓고는 결혼하고 변했다며 하는 용어지요.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명절기분 다 잡칩니다. 이런 모습 앞으로 참 많이 볼 듯 합니다.
부모들도 마찬가집니다. 금지옥엽, 쥐면 깨질 듯 불면 날아갈 듯 키운 내 딸이 82년생 김지영처럼 사는 것 절대 용납 못합니다. 혼자 살게 하면 혼자 살게 하지 시댁이란 이상스러운 환경에 팽겨쳐 놓아두기 싫다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만 있는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음식도 많이 안해 찾아올 친척도 없어, 단지 같이 와서 재미있게 음식도 만들고 웃고 놀다 가라는데 그게 싫다고 자기네 집을 먼저 간다고...용납이 안되는 장면으로 생각합니다. 자식들의 갈등이 부모들의 갈등으로 비화합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목도되는 풍속도입니다.
요즘은 시월드가 문제가 아니고 처월드가 더 문제라는 젊은 남편들의 푸념의 소리도 높습니다. 처갓집가면 장인 장모가 워낙 무섭고 사나워 오금을 제대로 펴지 못하다고 투덜댑니다.시집 가기 전보다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이면 잔소리가 따발총으로 날라온다고 합니다. 자네가 힘들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요즘도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느냐, 집안 청소는 제대로 하고 있느냐 등등이요. 물론 시월드의 두려움은 세월이 많이 지나도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부풀어지는 형국입니다.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장인 장모는 그들대로 며느리 사위에게 너무 잘해준다는 데 왜 당사자들은 그렇게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일까요.아마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수께끼같은 현상일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부부 갈등 ,시부모 며느리 갈등, 장인 장모 사위 갈등의 분위기가 안봐도 비디오 식으로 눈에 선합니다. 저도 다 그런 시절 그런 경험 숱하게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자식며느리 사위들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예 명절때는 집에 오지 말라고 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굳이 찾아 옵니다. 어제도 왔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것보다 아이들 데리고 여기 오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겠죠.사위는 그렇지 않을런지도 모르지만요. 아들들은 아직 결혼을 안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내외는 명절때 국외나 국내로 여행을 갈 생각입니다. 전체 모임은 미리 미리 해둘 작정이지요. 명절 앞두고 한 번 다 모여 간단히 식사하고 끝낼 생각입니다. 집에서 말고 음식점에서요. 저뿐만 아니라 제 집 사람도 같은 생각입니다. 명절이 별 겁니까. 가족 구성원들이 편하면 되는 것이지요. 집안 전체 모이자고 개별적으로 갈등 일으킬 필요는 정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 어차피 모였다면 너무 갈등 겪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일도 남녀 나눠서 같이 하고요. 즐겁고 편하고 보람된 명절이 됐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020년 경자년 새해 첫날 (1월 2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