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산악인이신 "남난희 선생님"께서
2020년 5월 출간한 엣세이책 제목이다.
선생님은 당시 백두대간 단어 조차 없었던 시절
혹독한 겨울 1984년1월1일에 국내 최초로 백두대간을 단독 종주하신 산악인이시다.
지금은 지리산 아래 화개동천에서 지리산 살이를 하면서도
미국 PCT트레일(4,265km)을 완주하셨다.
그분의 경력은 수없이 많아 언급하기 조차 어렵다.
선생님은 책에서 "산은 나의 연인이고 영원한 내편이다"
그리고 "내가 산에서 위로를 받고 산에서 행복하듯,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걷는다."라며 "당신도 걸으면 좋겠다" 라는 책을 발간하셨다.
남난희 선생님은 나의 "돼지친구 백두대간 산행일기"에 출간사를 써 주신 분이시다.
더불어 나 역시 "님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읊퍼본다.
(떠나기전에 씀)
- 걸었던 날 : 2026년 3월 7일(토요일)
- 걸었던 길 : 광양구간 48~49코스 (하동읍~섬진교~진월초~윤동주 유고집보존가옥~중마금호~광양중동 근린공원)
- 걸었던 거리 : 28.6km.(42,000보, 6시간30분, 점심시간 포함)
- 누계거리 : 733.9km
- 글을 쓴 날 : 2026년 3월 10일(화요일)
이번 3월에는 주말에 다소 야유가 있었다.
주말에는 애경사 청첩장을 받기도 하지만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 상황이 바뀌어
편부후 참석하지 않고 걷는 여행을 떠날수 있어 다행이다.
아내가 무릎을 다쳐 작년 12월부터 3개월째 걷지 못해 조금은 답답했었으나
지금은 아내가 조금씩 나누어 걸을수 있고 선배 형수님께서 아내와 동행 해주셔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출발하려 했다.
경남 하동 섬진교로 갔다.
매화는 피기 시작했는데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기온은 0도)
모자가 달린 겨울철 바람막이를 입고, 엷은 장갑을 끼고
오전 9시 무렵 나는 걷기 시작하고 아내는 반대편 섬진강휴게소 마을로 향했다.
지난주에 본 섬진강은 강 중간에 모래섬이 있었으나
오늘은 모래섬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밀물이어서 하류쪽 바닷물이 올라오거나 막아서
강의 수위가 높아진 모습이다.
어째거나 지구는 돌고 낮과 밤은 반복되고
세월은 강물처럼 흐른다.
강변 제방길을 걷다가 인물사진 한컷!
강의 제방 아래 들녁에는 온통 비닐하우스 단지이다.
하우스에 어떤 소득작물이 있을지 모르지만 외부 모습은 하우스가 단단하고
반듯하여 작물의 수확도 많기를 바랐다.
나는 결혼후 1993년 전후에 2~3년동안 비닐하우스용 파이프 판매 사업을 한적이 있다.
당시 나름 열심히 영업할동을 했던 기억인데
광양 들녁의 하우스 작목반을 찾아 다니며 연동하우스 설계도와 견적을 냈고
진상면 하우스 작목반에 제법 많은량의 철제 하우스파이프를 납품하기도 했었다.
당시 6공 노태우 대통령시절 농어촌 구조개선 42조원 예산투입으로
농촌하우스 수요는 폭발하였는데 신생 사업자인 나로써는 물량 확보에 한계가 있어
공급을 제때 못했고 기본적인 수입이 불규칙하여
그 일을 그만 두고 나의 전공분야였던 사료사업으로 전향을 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신혼 시절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을 보냈고
넉넉하지 못한 시기를 잘 이겨내고 버티어준 가족들이 감사하다.
저 하우스 단지를 지나면서 과거의 시간들이 생각났다.
나는 뒷바람을 타고 사뿐 걷는데
반대편에서 두 여인은 맞바람을 안고 걸어 오고 있다.
파크 골프장을 지난다.
파크골프는 중년들이 쉽고 편안하게 누구나 즐길수 있는 운동일듯 하다.
더구나 시골이나 강변 둔치가 있는 고을에서는 골프장 설치가 용이해서 쉽게 하는것 같고,
부부가 파크 골프채를 실고 전국 유람을 해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舊) 섬진강 대교 뒷쪽에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가 보인다.
오전에 세시간째 13km을 걸었다.
그리고 섬진강 휴게소 뒤편 마을에 도착하는데
가지치기가 완벽한 홍매화 나무에 꽃이 이쁘게 피웠다.
성질 급한 홍매화는 먼저 피고 하얀 매화는 1~2주 더 늦게 핀다.
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개의 상징이다.
광양은 매화의 고을이며 매화축제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곳에 시골 초등 동창 "노인석"이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친구는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에서 33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은퇴하여 광양에 살고 있는 친구이다.
자주 만나는 친구는 아니지만 광양에 살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광양을 지날때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었다.
어릴적 동무는 그런것 아닌가?
친구야 너도 이제 나이든 모습이구나!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했으니 성실하고 건강했을 것이다.
이 친구도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등산을 좋아했다고 한다.
언젠가 고향 천태산에 고무신을 신고 오른 사진을 본적이 있어
고무신 산쟁이로 느끼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다가 우리는 막걸리을 두병이나 마셨다.
고향친구는 이렇게 늘 반갑다.
"친구야 동창회때 꼭 보자!" 라고 말했다.
처음 만난 친구의 부인과 한컷!
윤동주의 시(詩) 필사본을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 앞에 도착했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부끄러워 했다."
단 몇줄의 언어가 나를 부끄럽게 하고 생각을 하게 한다.
육사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시절 늘 같이 다니던 정병욱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5살이나 어렸지만 문학적 동지였다.
육사는 1941년 연희전문 졸업기념으로 시집 필사본을
친구 정병욱과 스승 이양하에게 보내 시집을 발간하려 하였으나
스승 이양하로부터 민족적 색채가 강해서 발간시기를 만류하여 보류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일본으로 건너 갔으며 1944년 정병욱도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된다.
정병욱은 자기가 보관중인 육사의 시 필사본을
전남 광양에서 술도가(주조장)를 운영하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군입대를 한다.
"살아 돌아 올때까지 간직해 주시고 두 사람이 다 죽어
돌아오지 않더라도 독립이 되거든 모교로 보내 세상에 알려지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술도가 마루를 뜯고 술 담는 항아리에 시(詩)필사본을 보관했다.
그후 일본 학도병 강제 징집에서 돌아온 정병욱은 보관중인 필사본 시집을
경향신문 기자였던 친구 강처중에게 전달하고
강처중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가 가져온 시를 더해 31편으로
"1948년 정음사"에서 시집을 출간한다.
이 시집이 "서시"가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정병욱 어머니가 필사본 시(詩)를 잃어 버렸더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시(詩)이기도 하다.
훗날 정병욱은 서울대학교 교수가 된다.
전남 광양 망덕포구에 가면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가옥이 있다.
(인터넷에서 참조 요약)
그때의 가옥인지 모르지만 옛집을 닮은 모습이고 숙연해 진다.
점심시간이어서 내부 관람은 못했으며 유리창 넘어로 마루밑 술항아리 모습을 볼수 있었다.
이곳 망덕포구는 백두대간 마루에서 호남정맥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이곳 망덕포구에서 끝을 마친다.
마치 백두산 넘어 북간도에서 나고 자란 윤동주시인이
한반도 산줄기 끄트머리 망덕포구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정병욱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듯 하여 아련하기도 하다.
훗날 정병욱교수는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윤동주의 시(詩)을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줄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현판글 참고)
광양을 여행하는 기회가 있다면 정병욱 가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정병욱 가옥를 보고 배알도 다리를 건넌다.
배알도는 아주 작은 섬인데 망덕포구와 광양제철 인근지역을 다리로 연결해 놓은곳이다.
나이가 지긋한 두 부부가 천천히 배알도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나는 추월하지 않고 속도를 낮추어 다리를 건너기 끝날 때까지 뒤따라 천천히 건넜다.
그 중 할머니 한분은 거의 70~80도 각도로 허리가 굽으신 분이셨으니
걷는 속도는 많이 더디엇다.
저 할머니는 평생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밭일과 들일을 하시다가 저렇게 되셨을 것이다.
어찌보면 훈장 같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건강할 때 좀더 일찍 놀러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보고
나 역시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케 했다.
광양제철 정문옆을 지나며 멀리 이순신대교를 바라 보며 걸었고
여러갈래 고가대로가 설치된곳을 지난다.
고가대로는 교각이 대부분 철교이다.
철의 도시여서 그런건가?
어째거나 교통 흐름를 위한 시설이지만 토목건축물의 미학(美學) 끝판왕 같았다.
오후 3시 30분 중동 근린공원에서 49번 코스를 마감했다.
아내 일행은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오늘 초딩친구 노인석부부를 만났으며
하동 섬진교에서 섬진강 하류 제방길을 걸었고
광양제철 정문 앞을 지나 광양 중동 근린공원까지 걸었다.
내일도 다음코스를 걷기 위해 이곳에 올 계획이어서
서둘러 광주로 돌아 갔다.
2026년 3월 7일 걷고
2026년 3월 10일 오후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