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合理相分第三十(二十五 斷法身化身一異疑)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須菩提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 卽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
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 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著其事
一合理相分 第三十 (하나로 합한 이치와 현상)
圭峰:
第二十五는
斷法身化身一異疑니라
據前不可以化相比知法身과
法身은 無去來坐臥이니 卽似眞化가 異요
據遮斷滅之念과 又顯不失福相하여
卽似眞化가 一故로 成疑也이니
此를 約微塵世界하여
委釋非一非異義하여 以斷此疑니라
斷之文이 二니 一은 約塵界하여 破一異라
文五니 一은 細末方便으로 破麤色이라.
규봉:
25.(疑斷)
法身과 化身이 하나인가 다른가 하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앞에서는 화신의 모습으로써는 法身을 견주어
알지 못하다는 것에 의거하여
法身은 가고 오고 앉고 눕지 않는 것이니
곧 眞身과 化身이 다르고 단멸한 것이라는
생각을 막는 것과 또한 복상을 잃지 않는
것을 드러낸 것에 의거하여 곧 眞身과 化身이
하나라는 것임으로써 의심을 이룰 것이니
이것을 미진 세계를 잡아서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뜻을 자세히 해석하여
이런 의심을 끊은 것이다.
끊는 글에 두 가지니
(1)은
미진 세계를 잡아서
‘하나’와 ‘다름’으로 깨뜨리신 것이다.
글에 다섯 가지니
①은 미세한 방편으로
거친 색(상(相))을 깨뜨린 것이다.
---------------------------------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로써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든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작은 먼지들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기를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圭峰:
偈에 云하되
於是法界處는 非一亦非異라하며
論에 云하되
彼諸如來가 於眞如法界中에서
非一處住이며 亦非異處住이니
爲示此義이니
故說世界碎爲微塵이라하다
故로 偈에 云하되
世界作微塵은 此喩示彼義하니라
無着이 云하되
爲破名色身하여 故說界塵等이라하다
於中에 有細末方便及無所見方便이
微塵甚多者는 是細末方便이라하다
大雲이 云하되
卽是析塵하여 至於細末이니
以此方便으로 破麤色矣라하다
此言微塵은 依大乘宗하여
於一搏色을 假想分析하여
至極略色하여 爲塵이요
非小乘宗實塵矣니라
二는 不念方便으로 破微塵이니라.
규봉:
게송에 이르기를
“이 법계의 머물 곳(處)은
하나도 아니고
또한 다른 것도 아니라” 하였으며
논에 이르기를
“저 모든 여래가 진여법계 가운데서
한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곳에 머물지도 않으니,
이러한 뜻을 보이기 위하므로
세계를 부수어
는 먼지로 만든다고 말하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게송에 이르기를
“세계를 가는 먼지로 만든다는 것은
이 비유가 저 뜻을 보이는 것이라” 했다.
[세계로 진신을 비유하고
티끌로써 화신을 비유한 것이다.
티끌이 세계를 부숨으로 因한 연고는
다름이 아니고 진신으로 쫓아
응신을 일으키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티끌은 가늘고
세계는 거친 것이므로 하나가 아니니
진(眞身)은 실이요
응(應身, 化身)은 거짓임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게송에 이르기를...
이하는 이끌어서
깨닫게 하고자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무착이 이르기를
“名과 色과 身을 깨뜨리기 위하므로
세계와 작은 티끌들을 설하셨다.
이 가운데
미세한 방편과 無所見 방편이 있으니
작은 먼지가 매우 많다는 것은
미세(細末)한 방편이라” 했다
대운 스님이 이르기를
“곧 이 작은 먼지를 쪼개어 미세한 티끌에 이르니
이 방편으로써 거친 色(事物)을 깨뜨린다”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작은 먼지는 大乘宗을 의지하여
한 덩어리의 색(事物)을 가상(거짓으로 생각하여)으로
쪼개어 지극히 작은 물질에 이르러 먼지를 삼은 것이요
小乘宗에서 실답다는 티끌은 아닌 것이다.
무착이 이르기를
아래는 별도로 이 한 뜻(義)으로
의심을 끊은 것은 아니다.
名身은 곧 수(受相行識)등 四蘊이고
색신은 곧 지수화풍인 四大이다.
이 가운데 이하(於中以下)는 미세한 것으로써
색신을 깨뜨리고 무소견으로써 名身을 깨뜨림이니
무소견은 곧 不念
(相으로써 분별하여 생각 않음)인 것이다]
②는
不念의 방편으로 작은 먼지를 깨뜨린 것이다.
---------------------------------------------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卽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왜냐하면,
만약 이 작은 먼지들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곧 작은 먼지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옵니다.
어째서인가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먼지들은
곧 작은 먼지들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작은 먼지들이옵니다.
淸峯:
즉, 티끌은 유상(有相)이므로
많음이 한계가 있으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티끌이란 이름이요,
티끌의 근본 성품인
비고 한량없는 본체를 이르신
것이기 때문이다.
티끌의 세계는 현상의 차별상(事相)이며
이를 수용하는 것은
공한 본성인 이성(理性)인 것이므로
이 둘은 상대적인 것이 아닌 곧 둘 아닌 것이다.
說誼:
前現如來之身이 非眞假無去來하시고
此擧微塵非微塵이며 世界도 非世界하시어
以明法相卽非法相은 何也인가 前則現佛眞體也니라
所悟도 亦此也이며 所證도 亦此也이니
此則現法眞體也이니 收言拂迹하여 示返眞源也니라
佛身은 本無爲이나隨機하여 有眞應去來이니
法性은 本無生이나 對機하여 有權實頓漸이니라
故로 於一身에 現三身하고 於三身에서
現微塵數身하시며 於一法에 演三乘하고
於三乘에 演微塵數法하시니 ?欽盒뾔?하건대
佛無眞應去來之殊요 法無觀實頓漸之異거늘
不解義者는 以爲佛身實有如是差別하여
法門이 實有如是名數라하나니
如淨摩尼隨方各現하여 映於五色이거늘
諸愚痴者는 說淨摩尼實有五色이니라
故로 說佛則云하되 若以色見聲求하면
是行邪道라하며 乃至云若言來去라하면
是不解義라하는데 此는 現佛眞體也요
說法則云하되
若言佛說四見이라하면 是不解義라시며
乃至云所言法相者는 卽非法相이라시니
此는 現法眞體也니라 嘗觀說來之意건대
佛身은 無爲하여 卽二邊而離二邊이요
法性은 無生하여 卽名數而超名數이라
今此二義는 上來에 亦有其文하니
所謂不可以身相得見如來께서는
所謂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며
所謂佛은 不應以具足色身見이니
此等諸文은 現佛眞體也요
所謂無有定法如來可說이며
所謂如來는 無所說이며 所謂汝는
勿謂如來作是念我當有所說法이니
此等諸文은 現法眞體也니라 佛之所以言此者는
皆爲廣闢人之邪見하시고 大開佛之知見이니
下文에 所謂如是知見信解者는 夫是之謂歟이니
世界를 碎爲微塵等者는 何也인가
大千이 同爲一地로되 而有三千之異名하니
以比 一心으로 開爲三智하며 一境으로
開爲三諦하며 一念으로 開爲三惑하며
一法으로 開爲三乘이니라
體雖是一이나 開有三名하니라
復以三千으로써 碎爲微塵等者는
以比 三智로 開爲無邊觀智하 三諦로
開爲無邊諦境하며 三惑으로
開爲無盡塵勞門하며
三乘으로 開爲無盡修多羅門이니
本雖是三이나 開爲無量이니라
佛擧塵界問空生은 欲明諸法無體性이시라
果能答以非實有로써 善知黃葉竟非錢셨노라.
설의:
앞에서는
여래의 몸이 참도 거짓도 아니며
가고 옴이 없음을 나타내시고,
여기서는
작은 먼지를 들어서 미진이 미진 아니며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하시어
法相이 곧 法相 아님을 밝힌 것은 무엇때문인가?
앞에서는 곧 부처님의 참 몸을 나타낸 것이니라.
깨달은 바도 또한 이것이며
증득한 바도 또한 이것이니,
이것인즉 法의 참 몸을 나타낸 것이니,
말씀을 거둬들이고 자취를 떨쳐버려서
眞源에 돌아감을 보이신 것이니라.
佛身은
본래 함이 없으나
근기따라 참으로 응하여 가고 옴이 있으니
法性은 본래 生함이 없으나 근기를 대하여
방편(權)과 실다움(實)과
몰록(頓)과 점차(漸)가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一身에서 三身을 나타내고
三身에서 미진 수의 몸을 나타내며
一法에 三乘을 설하여 펴시고
三乘에서 미진 수의 法을 설하여 펴시니,
실다웁게 觀하건대
부처님은 眞身과 應身이 가고 옴에
다름이 없고
法은 權實, 頓漸이 다름이 없거늘
뜻을 알지 못한 자는 佛身이 실로
이와 같은 차별이 있어서
法門이 실로 이같이 이름(名)과 이치(數)가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깨끗한 마니주가 방향에 따라
각각 나타나 오색으로 비치는 것과 같거늘
모든 어리석은 자들은 깨끗한 마니주에 실로
오색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이 설하여 곧 이르시되
“만약 색으로 보거나 소리로 구하면
이는 삿(邪)된 道를 행함이라”하시며
이에 이르러 이르시기를
“만약 오고감이 있다고 말하면
이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하셨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참 몸(眞體)을 나타냄이요,
法을 설함을 일러서 만약 말하기를
“부처님이 네 가지 소견(四見)을 설하셨다 하면
이것도 뜻을 알지 못한 것이라” 하시며,
이에 이르러 이르시기를
“말한 바 法相이란 것도 곧 법상이 아니라” 하시니,
이것은 법의 참 바탕(眞體)을 나타낸 것이니라.
일찍이 설해온 뜻을 관(觀)하건대
佛身은 함이 없어
二邊에 卽하되 二邊을 여의었음이요,
法性은 생함이 없어서 名, 數에 卽하되
名, 數를 뛰어났도다.
지금 이 두 가지 뜻은 위에 또한 글에서 있었으니
이른바 “가히 몸 모양으로써 여래를 보지 못하며”
이른바 “가히 三十二상으로 여래를 보지 못하며”
이른바 “부처님은 응당 구족한 색신으로써
볼 수 없다”한 것이니
이 같은 모든 글은 부처님의 참 몸(眞體)을 나타냄이요,
이른바 “정한 바 법을 여래가 가히 설함이 없음” 이며
이른바 “여래께서는 설한 바가 없다”하는 것이며 이른바
“너는 여래가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마땅히 설한 바 법이 있다고 말하지 말지니”
등 이런 모든 글은 법(모든 것)의
참 바탕(실상)을 나타낸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한 까닭은
모두 사람들의 사견을 널리 헤치고
부처님의 지견을 크게 열기 위함이시니
아래의 글에 이른바
“이와 같이 알고, 보고,
믿고, 이해하라” 하신 것은 대체로
이를 말씀한 것이니 세계를 부수어 가는
먼지를 만든다는 것 등은 무엇인가?
대천세계가 한 땅덩이로되
삼천이라는 것도 다른 이름이 있으니
비유로써
一心으로 세 가지 지혜(三智)를 열게 하며,
一境으로 三諦를 열게 하시며
一念으로 세 가지 의혹(三惑)을 열게 하시며
一法으로 三乘을 열게 하신 것이니라.
體는 비록 이것이 하나이나 열면
세 가지 이름이 있느니라.
다시 三千세계로써 부수어
작은 먼지를 만든 것 등은
비유로써 三智로 끝이 없는 觀智를 열게 하며
三諦로 끝이 없는 諦境을 열게 하며
三惑으로 다함 없는 번뇌(塵勞)의 문을 열게 하며
三乘으로 다함 없는 수다라 문을 열게 하신 것이니
본래 비록 셋이라고는 하나
열면 한량없는 것이 되는 것이니라.
부처님이 미진 세계를 들어
수보리(空生)에게 물으신 것은
모든 법(것들)이
실체의 성품(體性)이 없음을 밝히고자 하신 것이라,
과연 실제로 있지 않은 것으로 능히 답하심으로써
黃葉이 마침내 돈이 아님을 잘 알게 하셨노라.
청봉착어:
여래란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는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라.
여래의 참 몸이 곧 일체의 몸과 둘 아님을
방편으로 이르되 흔적을 지우셨느니라.
부처를 상으로써 보지 못함은
부처의 몸이 공함이요
여래께서 법을 설한 바 없다 함은
법의 본성이 공함이라
중생이 상을 쫓아 사견을 기름에
세존께서 불지견을 열어 주시고자
방편으로 설하심이니라.
---
圭峰:
論에 云하되
碎塵爲末故로 非一處요 塵衆聚故로
非異處이니 如是佛住法界中이나
非一處住이며 非異處住이니라
又若塵衆實有者이면 世間凡夫도
悉亦自知인데 何須佛說이리오
秖爲不知體不成就이니 故로 佛說矣라하다
故로 無着이 云하되
世尊이 說非者는 以此聚體를 不成就故이니
若異此者이면 雖不說이라도 亦自知是聚라하니라
규봉:
論에 이르되
“먼지를 부수어 가루를 만든 것이므로
한 곳(處)이 아니요,
먼지들이 모인 것이므로 진실로 다른 곳도 아니니
이와 같이
부처님이 법계 가운데 머물되
한 곳에 머묾도 아니며
다른 곳에 머묾도 아닌 것이다.
또 만약 먼지들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
세간 범부도 모두 또한 스스로 아는 것인데
어찌 모름지기 부처님이 說했으리오?
다만 본바탕(體)을 성취하지 못하여
알지 못한 이를 위함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이 설하셨다” 했다.
그러므로 무착이 이르되
“세존이 아니라고 말씀한 것은
이 바탕(體)의 무더기를 성취하지
못한 연고이니,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비록 설하지 않더라도
또한 스스로 이 무더기를 안다고” 하였다.
[如是 아래로는 법의 합침이다
시방에 응해 나타난 것이므로
같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몸에 같이 의거한 것이므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또 법에 의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므로
하나가 아니요,
법을 여의고 교화가 없는 것이므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또 만약 이하는
또한 이것을 비유로 한 것이니
법을 설했다 할진대
만일 변화하는 것이 실다움이라면
또한 부처님이 설하셨다 하지 않거니와
다만 이 헛된 것임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므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무착 이하는
이끌어 깨우쳐 줌이 이와 같은 것이다]
---
六祖:
佛說三千大千世界는
以喩 一一衆生性上에 妄念微塵之數가
如三千大千世界中所有微塵이요
一切衆生性上에 妄念微塵은
卽非微塵은 聞經悟道하면
覺慧常照하여 趣向菩提이니
念念不住로 常在淸淨이니
如是淸淨微塵을 是名微塵衆也니라
육조:
부처님이 설하신 삼천 대천세계는
낱낱 중생들이 성품 위에 망념이
작은 먼지의 숫자가
삼천 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미진과
같음으로써 비유한 것이요,
일체 중생의 성품 위에 있는
망념인 미진은 곧 미진이 아니라고 한 것은
경을 듣고 도를 깨달으면
깨달음(覺)의 지혜가 항상 비춰서
菩提에 나아가는 것으로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않아
항상 깨끗하게 있으니,
이와 같이 청정한 작은 먼지를
이름하여 작은 먼지들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
冶父:
若不入水면 爭見長人이리오
說誼:
黃葉非錢은 是則固是나 理非言外니라
卽言卽理이니 何須拂去文字하고
別求忘言之旨乎리요
敎海裏에 得大解脫하고 知解上에
建大法幢하여 乃可謂寬腸沒量大人也니
又 今師가 直取塵界하여
以明衲僧不斷煩惱而入涅槃之義也니라
伊麽則所謂微塵은 塵勞業用이 熾然競作之謂也니라
若向塵勞中하여 任性浮沈하되 而得自在하면
則可謂寬腸沒量大人也이니 須信道하라
霜天에 知勁草요 火裏에 見精金이니라
야부:
만약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찌 큰 사람을 보리오?
설의:
누런 잎이 돈이 아닌 것은
옳기는 곧 진실로 옳으나
이치는 말 밖의 것이 아니니라.
말에 즉하여 이치에 즉하니
어찌 모름지기
문자를 털어 버리고
달리 말을 잊는 뜻을 구하리오.
가르침의 바다 속에서
대 해탈을 얻고 아는 것 (知慧)위에
큰 법의 깃대를 세워야
이를 속(腸)이 너그러운 한량없이
큰 사람이라 할 수 있나니라.
또는
지금 야부(師) 스님께서
바로 미진 세계를 취하여서
납승이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가는 뜻을 밝힌 것이니,
이러한즉 이른바 작은 먼지는
번뇌의 작용(塵勞業用)이 불꽃처럼 다투어
일어남(熾然)을 이르는 것이니라.
만약 번뇌 가운데를 향하여
성품에 맡겨 떴다 잠겼다(浮沈)하되
마음대로 함(自在)을 얻게 되면
곧 속(腸)이 너그러운 한량없이 큰 사람이라
이를 수 있을지니 모름지기 믿을지니라.
서리 내린 날에야 굳센 풀을 알게 되고
불속에서 精金을 볼 수 있느니라.
---
청봉착어:
삼천 대천세계는 곧 중생의 미진 같은 번뇌요
미진이 미진 아니라 함은 본래 청정하여
공한 까닭이니라
말의 방편이 참이 아니라 하나
어찌 말의 가르침을 여의고 참 이치를 구하리오.
---
冶父:
一塵纔起翳磨空하니 碎抹三千數莫窮이로다
野老不能收拾得하니 任敎隨雨又隨風이노라
說誼 :
名數之於靈覺에 猶微塵之於太淸이니
微塵不勝數라 名數도 亦如然이로다
衲僧은 自知無一字하여 從敎名數亂縱橫이로다
又 箇裏에는 從來無一物하여 瑩若淸空絶點霞이라
一念纔起性空暗하니 諸妄이 競作浩無邊이로다
衲僧은 自知妄元無하여 無心除斷任浮沈이로다
休笑此衲不斷妄하라 火裏生蓮終不壞니라
야부:
한 먼지가 겨우 일어나 허공을 가리니
삼천 세계를 갈라 부수니
그 수를 다 세지 못함이로다
이 늙은이(野老)는 능히 거두어
수습하지 못하여 가르침에 맡겨
비를 따르고 또 바람을 따르노라.
설의:
가르침의 이치(名數)는 體性(靈覺)에 있어서
마치 작은 먼지가 맑은 허공에 있음과 같아서
작은 먼지를 다 셀 수 없는지라,
이름의 수(名數)도 또한 그러한 것이로다.
納僧은 스스로 한 글자도 없음을 알아서
저 명수가 어지럽게 종횡 하도록 함에 맡기도다.
또는
그 속엔 예로부터 온 그대로 한 물건도 없어서
밝기가 맑고 빈 하늘에 한 점의 노을마저
끊어짐과 같은지라.
한 생각이라도 겨우 일어나면
性品의 하늘을 어둡게 하는 것이니,
모든 망념이 다투어 일어나서
넓어 갓이(끝이) 없도다.
납승은 스스로 망념이 원래 없는 줄 알아서
없애고 끊음에 무심하여 일어나고 잠김에 맡기도다.
이 납승이 妄을 끊지 않았다고 웃지 말라.
불 속에서 연꽃이 나와야
마침내 무너지지 않느니라.
---
청봉착어:
본래 한 물건도 없어
밝고 맑고 비어서 일체가 끊어짐이니
망념이 본래 없음을 알아
나투고 고요함에 무심하면
끊을 망이 없는 연고니라.
---
圭峰:
三은 不念方便으로 破世界라
규봉:
③은
생각하지 않는 방편으로 세계를 깨뜨린 것이다.
------------------------------------------------
世尊 如來所說 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 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옵니다.
淸峯:
세존이라고 부르고, 설하신 분을 칭할 때는
여래, 부처라고 쓴 뜻도 살펴야 한다.
진리는 본래
있음을 삼켰다(깨달아) 토하신 것을
설함이라 하는 것이니,
화신의 세존보다 법신불 또는
여래의 설함이라고 한 것은
이해를 도우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
圭峰:
本論에서 破世界不實之義를 可知니라
無着이 云하되 此破名身이니
世界者는 衆生世故라하니
四는 俱約塵界하여 破和合이라.
규봉:
본론에서 세계가 참다운 실상(實)이 아닌 뜻을
깨뜨린 것임을 가히 알지니라.
이것은 名身(이름하여 몸이라는 것)을 깨뜨린 것이니
세계라는 것은 중생세계인 연고라” 했다.
[본론 등이라고 한 것은
다음 글의 설한 바와 같은 것이다.
중생세계란 것은 알음알이(分別心)가 있는
세간계라 마음과 법이 바탕(質)이 없어서(비어)
가히 분석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다만 생각 않음을 방편으로 깨뜨린 것이다.
생각(念)하면 있고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신론(起信論)에 이르기를
“마음이 생하면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법이 멸하는 것이라” 했다]
④는
함께 티끌세계를 가지고서 화합을 깨뜨린 것이다.
-------------------------------------------------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 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곧 일합상(한덩어리의 형상)일 것이나,
여래께서 말씀하신 일합상은 곧 일합상이 아니요
그 이름이 일합상이옵나이다.”
淸峯:
삼천 대천세계니, 일합상이니 하는 것도
본래 이름이 있고
본래 그러한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색, 성, 향) 있는 것은 사라지는 환과
같은 것으로 이름하여 이르기를
삼천 대천세계요, 일합상인 것이다.
---
圭峰:
論에 云하되
若實有一世界이면
如來가 則不說三千界라하며
大雲이 云하되
若實有一界이면 冥然是一和合矣이라
則不合有多差別이나 今旣三千이니
明非冥然一矣이라 故約三千하여
破一界也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爲並說若世界若微塵界이니 故有二種搏取이니
謂一搏取及差別搏取라하며 大雲이 云하되
此明塵衆 及衆生類를 俱名世界라하다
一合相者는 搏取爲一이니 故云和合이라하다
此一和合은 有二搏取하니 一者는 一搏取이니
則是世界는 和合爲一이요
二는 差別搏取이니라 卽是微塵은
有衆多極微이니 名差別搏取니라
非一合者는 第一義中에는 二界無實故이니라
五는 佛印無中妄執有라.
규봉:
論에 이르기를
“만약 한 세계가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곧 삼천 세계라 말씀하지 않았다” 하였으며,
大雲이 이르기를
“만약 참으로 한 세계가 있는 것이라면
그윽해서(冥然) 한 덩어리 일 것이다.
곧 합당이 많은 차별이 있지 않은 것이지만
지금 이미 삼천(삼천 대천세계)이라 하였으니
그윽이 하나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삼천을 가지고 한 세계(一界)를 깨뜨렸다” 하였으며
무착이 이르기를
“저 세계와 미진계를 아울러 말씀하시게 된
연고이므로 두 종류의 뭉치(摶取)가 있는 것이니
한 뭉치와 차별된 뭉치를 말함이라” 하였으며
대운이 이르기를
“이것은 먼지들과 중생의 무리를 함께
이름하여 세계라 하는 것을 밝혔다” 했다.
一合相(하나의 뭉친 모양)이라는 것은 묶어서
하나가 된 것이므로 이르기를 和合이라 했다.
이 一和合은 두 가지 뭉치가 있으니
첫째, 한 뭉치이니
곧 이 세계는 화합하여 하나가 된 것이요
둘째, 차별로 뭉친 것이니(差別摶取) 곧 이 미진은
많은 지극히 작은 것이 모여 있으니
차별로 잡아 묶은 것을 이름하는 것이다.
一合相이 아니라 하는 것은 第一義 가운데
두 세계(二界)가 참으로는 없는 연고인 것이다.
⑤는
부처님께서 없는 가운데 망령되게 있다고
집착함을 인정(방편으로 설함)한 것이다.
---
청봉착어:
참으로 있어서 삼천 세계가 일합상이 아니요
삼천 세계는 이름하여 지어 만든 것이니
세계가 뭉쳐 하나를 이루나
세계라는 것이
본래 항상한 참으로 있음이 아니로다.
-------------------------------------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수보리야! 한 덩어리의 모양이란 것은
곧 이것을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나
다만 범부인 사람이
그 일에 탐하고 집착하는 것이니라.”
淸峯:
일합상(一合相:절대 하나의 모양)인
법계의 성품은 변함없이 항상 있는
고정 불변의 절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며
삼천 대천세계를 일합상이라 하나
본질적으로는
나투었다 사라지는 공적한 것으로,
중생들이 눈에 보이는
겉모양에만 끄달려 집착하는 것이다.
세계를 부수어 티끌로 만든다 하는 것은
법계의 성품이 형상이 항상하여 각각
구분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 머무는 곳이 어느 한 곳에 불변으로
있는 것도 아니니
우주 법계가 곧 진신(眞空)이요,
모든 형상이 본성이 공하여
근본이 하나인 것이므로
티끌이 화신이요,
공한 진신(色=空)이니 진(理), 속(事)이
둘 아닌 것이다.
화신을 들어 진신을 설하신 것은
진신을 쫓아 화신으로 나툰 것이기 때문이다.
본체인 진신은 실상이 공적하며
응하여 나타난 화신은 그 허상이요, 그림자인 것이다.
범부들은 사상(四相)을 실상(실제 모습)인 것으로
탐착함으로써 그 본질인 이의 성품(理性)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생의 번뇌망상이 삼천 대천세계의 수
(탐, 진, 치 각3천)와 같으니
실상으로는 본래 그러한 것이 없으며
공적한 가운데 18경계인 인연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지어 만든 것으로
일체중생이 모두가 공적 영지한 부처와
둘이 아닌 것이어서 다르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생하면 일체가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적묵하여 고요해지면) 일체가 사라지는 것이니
아법, 아집을 일으키지 않음이
참 합일이니
이름에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로 합한 모습이라는 것은
상대성을 떠났으므로 상대적인 것이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것이요,
생사와 열반도
부서진 미진과 합한 세계로
비유하는 것은 부숴도 부술 것이 없고
합해도 합할 것이 없는 둘 아닌 것
(不二)임을 모르고
범부들이 실재인양 탐착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중생 근기에 응하여
방편으로써
설하는 것일 뿐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說誼:
微塵이 旣非實有이면 三千亦非實有이니
三千非實이나 而有三千之名者는 但假其名하
以分其界而已니라 而其實則豈有三千之異乎인가
何以故然인가 一地是實이요 三千是假이니
一地是實故로 爲一合相也요 三千是假故로
非一合相也니라 三千若實이면 卽是一合相이요
而非異相이로되 但是異相은
而非一合相인 所以로 三千卽非實有이니
三千旣非實有이면 一地亦非實有니라
何則인가 三千이 不外乎一地이고
一地도 亦不外乎三千이니 是眞一合相이라
言詞相이 寂滅하거늘 但諸凡夫人이
不解其所以하여 語三千而取三千之名하고
語一地而生一地之解하나니
以明名數旣非實有이면 三乘亦非實有니라
三乘非實이로되 而有三乘之名者는
但假其名하여 以接其根而已니라
而其實則豈有三乘之異乎인가
何以故然인가 一乘是實이요 三乘是權이라
一乘是實故로 爲一合相也요
三乘是權故로 非一合相也니라
三乘若實이면 卽是一合相이요
而非異相이로되 但是異相이요
而非一合相인 所以로 三乘이 卽非實有이니
三乘이 旣非實有이면 一乘도 亦非實有이니라
何則인가 三乘이 不外乎一乘이고
一乘도 亦不外乎三乘이니
是眞一合相이니라 言詞相이 寂滅하나
但諸凡夫人이不解其所以하여
語三乘而取三乘之名하고 語一乘而生一乘之解하니
所謂錯認何曾解方便者가 是已니라
只如一合相은 且作麽生道인가
諦緣六度幷一乘이 混然一味難分析이로다
非一合相은 又作麽生道인가
一河雖然不可分이나 象馬兎三이 爭奈異인가
伊麽則 非但異相不應執이라 一合相亦不可守니라.
설의:
미진이 이미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삼천 대천세계도 역시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니
삼천 대천세계가 참이 아니나
삼천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을 빌려서 그 세계를 나눴을 뿐이니라.
그것이 참인즉
어찌 삼천의 다름(理:空)이 있겠는가?
무슨 까닭에 그러한가?
하나의 땅(本地:空한 본성)은 참(實)이요
삼천은 거짓인 것이니 하나의 땅은 참이므로
一合相이요
삼천은 거짓인 것이므로
一合相이 아니니라.
삼천이 만약 실답다면 곧 일합상이요
(眞과) 다른 相이 아니로되
단지 이 다른 相은,
일합상(實相)이 아닌 까닭으로
삼천이 곧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니,
三千이 이미 실로 있지 않으면
一地(근본의 빔)도 역시 참으로 있는 것
(空하므로)이 아니니라.
어찌하여 그런가?
三千이 一地 밖의 것이 아니고
一地 역시
三千밖의 것이 아닌 것이니
이것이 참된(空寂) 一合相이니라.
말이라는 것(言詞相)이 적멸 하거늘
다만 모든 범부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三千을 말하면
三千의 이름만 취(집착)하고
一地를 말하면 一地에 앎(解)을 내나니
이로써 名數(이름과 수치)가
이미 실로 있지 않음으로써
三乘도 또한 참으로 있지 않음(空)을 밝혔느니라.
三乘이 참이 아니로되 삼승의 이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을 빌려서
그 근기에 응대(接)함으로써 였느니라.
그것이 실다움인즉
어찌 三乘이 다를 것이 있겠는가?
무슨 까닭에 그러한가?
일승은 참(實)이요
삼승은 방편(이끌어 주기 위함)이라.
일승이 참이므로 일합상이 되고
삼승이 방편이므로 일합상이 아니니라.
삼승이 만약 실답다면 곧 이것도 일합상이고
다른 상(異相)이 아니로되 다만 이것이
다른 상(참이 아님)이고,
일합상이 아닌 까닭으로
삼승이 곧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니
三乘이 이미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一乘도 역시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왜 그런가?
삼승이 일승(空) 밖의 것이 아니고
일승도
역시 삼승 밖의 것이 (방편일뿐 空함으로) 아니니
이것이 참으로 일합상이니라.
말의 相이 적멸하나 다만 모든 범부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삼승을 말하면
삼승의 이름(말에 쫓아)만을 취(집착)하고
일승을 말하면 일승에 알음알이(解)를 내니
이른바 잘못 안 것으로 “어찌 일찍이
방편인 줄 알리오”한 것이
이것 이였느니라.
다만 저 일합상은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四諦, 12연기, 육도와 아울러 一乘이
구분할 수 없이 뒤섞여(混然)서
한 맛이라 분명히나 볼 수가 어렵도다.
一合相이 아닌 것은
또한 어떻게 말할 것인가?
하나의 강물은 비록 나누지 못하나
코끼리와 말과 토끼가
셋이 다름은 어찌하겠는가?
이러한즉 다만 다른 것(異相)이라 해서
마땅히 집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합상도 또한 가히 지킬 것이 아니니라.
청봉착어:
하나의 땅(심지)이 참이라서 일합상이라 하나
하나의 땅도 삼천 세계도 이름이요 참이 아니로다
그러나 삼천이 하나의 땅 가운데 있고
하나의 땅도 삼천을 여의지 않음을
일합상이라 하니라.
---
圭峰:
論에 云하되
以彼聚集이 無物可取거늘 虛妄分別하니
故云妄取이니
若實有者이면 卽是正見이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世諦에 說搏取나 第一義는 不可說이거늘
彼小兒凡夫가 如言說取라하며
大雲이 云하되 執見五蘊하여
取其和合이 是貪着事이니
迷於事法하여 起煩惱矣라하다.
규봉:
論에 이르되
“저 모아 들인(聚集) 만물(物)은
가히 취할 것이 없거늘
허망하게 분별함으로
망념된 집착(妄取)이라고 하니
만약 실답게 있는 것이라면 곧
이것이 바른 견해(正見)라” 했으며
무착이 이르기를
“세간의 이치(世諦)로는
모아 쌓은 것(搏取)이라고 말하나
구경의 진리(第一義)는 말로 할 수 없거늘
저 어린 범부들이 말하는 대로 취한다” 했으며
大雲이 이르기를
“오온을 집착하는 소견이
그 화합을 취하는 것이 이 탐착하는 일이니
세속 일(事法)에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킨다”고 했다.
[오온을 본다(소견)는 것은
내가 공함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나를 집착하는 것이요,
화합을 집착한다 하는 것은
모든 무리(근본)를 통달하지 못함이므로
이것은 법집이다.
따라서 두 가지 집착이 멸하지 않음으로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탐하고 집착하는 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
六祖:
三千者는 約理而言하면 卽貪瞋癡妄念이
各具一千數也니라 心爲善惡之本이나
能作凡作聖하여 動靜不可測度하여
廣大無邊이니 故名大千世界니라
說一合相者는 心有所得故로
卽非一合相으로 心無所得으로 是名一合相이니
一合相者는 不壞假名하고 而談實相이니라
由悲智二法하여 成就佛果菩提니라
說不可盡이며 妙不可言이거늘
凡夫之人이 貪着文字事業하여 不行悲智二法하고
而求無上菩提하나니 何由可得이리오.
육조:
三千이란 것은 이치로써 간략히 말하면
곧 탐진치의 망념이
각각 일 천가지를 갖춘 것이다.
마음이 선악의 근본이 되어
능히 범부도 되고 성인도 되어서
動과 靜을 헤아릴 수 없어서
한없이 크고 갓이 없음으로
대천세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마음 가운데 명료한 것은
자비와 지혜, 두 법을
지나칠 것이 없으니
이 두 법으로 말미암아서
보리를 얻는 것이다.
一合相이라 말하는 것은
마음에 얻을 바가 있으므로
곧 一合相이 아니요
마음에 얻을 바가 없음으로
이를 이름하여 一合相이라 하는 것이니,
一合相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 이름을 무너뜨리지
않고 實相을 말하는 것이다.
자비와 지혜 두 법으로 말미암아서
佛果인 菩提를 성취하는 것이다.
말로써 다할 수 없으며
묘하여 말로 할 수 없는 것이거늘
범부들이 문자의 부림(事業)에 탐착하여
자비와 지혜의 두 법을 행하지 않고
위없는 菩提를 구하니
무엇으로 말미암아 가히 얻을 것이리오?
---
傅大士:
界塵一何異며 報應亦如然이니라
非因亦非果라 誰後復誰先이리오
事中通一合이나 理卽兩俱捐하고
欲達無生路하면 應當識本源이니라.
부대사:
세계와 먼지가 하나인데 어찌 다르며
보신과 응신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因도 아니고 또한 果도 아니니
무엇이 뒤며 다시 무엇이 먼저리오?
일 가운데 하나로 합한 것으로 통하나
이치인즉 둘 다 함께 버리고
남이 없는 길을 통달하고자 하면
마땅히 본원을 알지니라.
---
冶父:
捏聚放開여 兵隨印轉하도다
說誼:
有時에는 開三하고 有時에는 合一하니
合一卽三이며 開三卽一이니라 三一이
相離하고 三一이 相卽하니 非三而三이요
非一而一이며 三一이 俱非이요
三一이 俱是하니
伊麽則殺活이 臨時하고
收放이 自由로다
야부:
모아들이고(定) 풀어놓으니
(법, 보, 화) 병졸들은
印(지휘)을 따라 움직이도다.
설의:
어떤 때는 셋으로 열고
어떤 때는 하나로 합하니
하나로 합한 것이 곧 셋이며
셋으로 연 것이 곧 하나니라.
三과 一이 서로 여의고
三과 一이 서로 즉하니
三이 아니로되 三이요
一이 아니로되 一이며
三도 一도 모두 아니요
三도 一도 모두 옳으니
이러한즉 죽이고 살리는 것이
때에 이르고(臨)
거두고 놓음이 자유롭도다.
---
청봉착어: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니
세계가 곧 하나요 하나가 곧 미진이라
어떤 때는 모두 그르고
어떤 때는 모두 옳다 하니
열고 닫고 죽이고 살림이 자유롭도다.
---
冶父:
渾圇成兩片이요 擘破却團圓이로다
細嚼莫咬破하여 方知滋味全하리라
說誼:
咬破는 他本에는 作空碎라하다
欲言非異나 爭奈異하면
欲言非一하나 爭奈一이리오
欲空三一還三一이라 三一이
方知本圓成이로다
又 一本에는 云하되
細嚼莫空碎라하니 理之極致는
要須着意精詳이요 不應偶爾念過니라
古人이 道하되 知有底人은
細嚼來嚥하고 不知有底人은
一似渾圇呑可棗하니 末後圓成處는
精詳하여 始應知니라.
야부:
한 덩어리(渾圇)가 두 조각을 이루고
쪼개어 부수니 도리어 한 덩이로다
잘게 씹되 물어 쪼개지는 말아야
바야흐로 맛을 더욱 온전하게 알리라.
설의:
(쪼개다(咬破)는
다른 책에는 완전히 부수다(空碎)로 되어있다)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자 하나
다른 것을 어찌하며
하나가 아니라고 말하고자 하나
하나임을 어찌하리오?
삼과 일을 비우고자 하나
도리어 삼과 일이라.
삼과 일이 바야흐로
본래 원만히 이룬 것임을 알리라.
또는 다른 책에는 이르기를
잘게 씹되 완전히 부수지는 말라고 하니
이치의 극치는 모름지기 마음을 써서
자세하게 할 필요가 있음이요,
마땅히 생각을 아무렇게나 하여
지나치지 말지니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있음(有)을 아는 사람은 가늘게 씹어 삼키고
있음(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대추를 통째 삼키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마지막에 원만히 이루는 곳은
자세히 살펴야 비로소 마땅히 알지니라.
---
청봉착어:
본래 둘 아니나 나누어 부수니
부순 것도 둘 아니니 둘인가 둘 아닌가?
하나도 아니요 하나 아님도 아니니
셋과 하나라 해도 본래 둘 아닌 것이로다.
---
宗鏡:
返本還源하여 背塵合覺하고
不與麽會하면 智同諸佛하여
悲合衆生이거니와 總不與麽하면
巨靈이 擡手無多子하여
分破華山千萬重하리라
說誼:
碎界爲塵이 喩巧意玄이요 依權顯實이여 凡絶追求로다
顯實相則智境이 全彰이요 絶追求則塵勞가 頓息이나니
息塵勞則智日이 高懸으로 昏衢大朗하여 上同諸佛이요
順塵勞則慈雲을 廣布하여야 甘露普潤하여
下合衆生이거니와
亦不息塵勞하고 亦不順塵勞하면 巨靈 擡手하여
威動地하여 萬重山向一摑開하리라.
종경:
세계를 부수어 작은 먼지와 같게 한다 하니
자비하신 세존(慈尊)의 비유가 교묘하고 그윽하게
요점을 들어내어 방편으로 이름을 세워서
그 실상을 말씀하심을 범부가 헤아려 탐하여
구하매 뜻이 끊어지도다.
그것을 알아 얻으면 근본으로 돌이켜
근원에 돌아가서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塵:망집)을 등지고 깨달음에 합하고,
그렇게 알지 않으면
지혜가 모든 부처님과 같아져서
자비가 중생과 합하지 못하거니와 모두가
그렇지 않으면
巨靈神이 손을 드니 별 어려움이 없어서
華山 깨뜨림을 천만 번이라도 거듭할 것이다.
설의:
세계를 부수어 먼지를 만든다는 것이
그 비유가 교묘하고 뜻이 깊음이요
방편(權:이끌어 주기 위함)에 의하여
참다움(實)을 나타냄이여!
범부가 쫓아 구함이 끊어짐이로다.
실상을 나타낸즉
지혜의 경계가 온전히 드러나고,
추구함이 끊어지니
번뇌(塵勞)가 단번에 쉬나니
번뇌를 쉬면 지혜의 해가 높이 떠서
어둡던 거리가 크게 밝아져서
위로는 諸佛과 같음이요,
번뇌를 따른즉
자비의 구름이 널리 펴져서 감로로
넓게 적시(윤택케 함)어
아래로 중생과 합하거니와,
또한 번뇌를 쉬지도 않고
또한 번뇌를 따르지도 않으면
거령신이 손을 들어 위엄이 땅을 움직여서
겹겹의 산(萬重山)을 향하여 한번 쳐서 여니라.
---
청봉착어:
세계를 부수어
미진으로 만든다 함은 방편이요
실상은 공한 일합상이니라.
망상을 여의면 공적 영지한 제불과 같음이요
중생과 더불어 자비를 폄은 일체에 응함이로다.
---
宗鏡:
一段生涯六不收하니
(六當作本)從前萬法盡非儔로
輕輕擘破三千界하니
直得恒河水逆流로다
說誼:
一法이 本有라 不可收하고
萬法無根이라 總非眞이니
法法會來歸本源하여
免敎人人逐風波로다
종경:
한 토막 생애를 본래 거두지 못하니
(六자는 마땅히 本으로 써야함)
종전의 萬法이 모두 짝이 아닌 것이로다.
가볍고 가벼이 三千세계를 쪼개어 깨뜨리니
바로 항하의 물이 거꾸로 흐름을 얻었도다.
설의:
一法이 본래 있는지라 가히 거두지 못하고
만법이 뿌리가 없는지라 모두가 참이 아니니,
法마다 本源에 돌아올 줄 알아
사람들로 하여금 풍파를 쫓음을 면하게 하도다.
---
청봉착어:
법신이 곧 화신이 아니나
화신이 법신과 다르지 않으니
상이 곧 이치이며 이치가 곧 상이라
일합상이나니
세계도 미진도 본질이 함께 공하여
한 덩이 세계와 미진이 둘 아님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