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付 囑 流 通 第 十 (10. 유통을 부촉하다)
이 품에서는
六조 대사께서 제자들에게 법을 전하시고
후세에 잘 유통하도록 부촉하신 대목이다.
부촉(付囑)이란
것은 법(깨달음은 진리인 불법)을 전해 주어서
그 법(진리)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후세에 전하도록 당부한다는 뜻이다.
유통(流通)이란
것은 널리 통하게 하고 두루 물 흐르듯
끊임없이 행하게 한다는 뜻이다>
師於太極元年 壬子七月에 命門人하시어
往新州國恩寺하여 建塔하셨다 仍命促工케하여
次年夏末에 落成하였다 七月一日에 集徒衆曰하시되
吾至八月이면 欲離世間하니 汝等有疑하면 早須相問하라
爲汝破疑하여 令汝迷盡하리라 吾若去後에는 無人敎汝니라
조사께서
태극원년 임자년 7월에 문인을시켜
신주 국은사에 가서 탑을 세우게 하셨다.
자주 장인을 독촉하게 하여 다음 해
늦 여름에 낙성하였다.
7월 1일에
문도 대중을 모아 이르시기를
"내가 8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 자하니
너희는 의심이 있으면 모름지기
일찌기 곧 (속히)묻도록 하라.
너희를 위해 의심을 깨뜨려
너희로 하여금 미함이 없게 하리라.
내가 간 뒤에는 너희를 가르칠 사람이 없으리라"
강설:
조사께서 문인을 시켜
"국은사에 가서 탑(묘탑)을 세우게 하고
자주 장인을 독촉케 해서
2년이 못되어 완성시켰다" 하는 것은
조사께서는
세연이 다하였으므로
이제 서둘러 몸을 벗고 자 하시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나름대로의 쓰임과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중생은 분별하되
삿된 망념과 집착심으로 분별하고
불조는 분별하되
지혜로써 바르게 살피는 것이라,
覺人은
해야 할 일을 능히하고 할 일이 끝나면
능히 거두어 쉬는 것이나,
중생은 해야 할 일은 아니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일삼으며
집착하고 애착하나 업연에 끄달려
나고죽음에 헤매 도는 것이다.
六조께서는
출현하신 일대사 목적을
이생에서는 마쳤다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43인에게 법을 전하시고
돈법의 자취를 남겨
후학들의 귀감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 서둘러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셨기에
육신이 태어난 신주 국은사로 돌아 가셔서
그 화신을 벗고 법신은 환원본제 하시고
자 함에서 서둘러 묘탑을 완성시키도록 하신 것이다.
"내가 간 뒤에는
너희를 가르칠 사람이 없으리라" 하신 말씀은
지금 불러 놓은 대중들은 조사로부터
법을 깨달아 인가 받아 법을 이은
선지식의 법위에 오른 정안을 갖춘 제자들이라,
이 스승 외에 더이상 이분들을 가르칠
법위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명안종사가 나
(六조 대사) 외에는 없다는
자만의 말씀이 아니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法海等聞하며 悉皆涕泣하나 惟有神會가 不動神精하고
亦無涕泣이니 師曰하시되 神會小師가 却得 善不善等과
毁譽不動과 哀樂不生이나 餘者不得이로다 數年在山하며
竟修何道인가 汝今悲泣은 爲憂阿誰인가 若憂吾不知去處이면
吾가 自知去處이니 吾若不知去處이면 終不預報於汝니라
汝等悲泣은 蓋爲不知-吾去處이니 若知吾去處이면 卽不合悲泣이니라
法性은 本無生滅去來나니 汝等盡坐하라 吾與汝等一偈하리니
名曰眞假動靜偈니라 汝等이 誦取此偈하면
與吾意同이니 依此修行하면 不失宗旨하리라
법해등이 들으며 모두 눈물을 흘려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가 얼굴빛을(神精) 움직이지 않은채
또한 슬피 울지도 않으니,
이에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신회 작은 선사(小師)가 도리어
선과 불선이
평등함과 헐뜯고 칭찬하는 데
움직이지 않음과 슬프고 즐거움을
내지 않음을 얻었으나 나머지는 얻지 못했도다,
산중(寺刹)에 몇해 씩 있으면서
마침내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이제 슬피 우는 것은
누구를 근심하는 것인가?
만일 나의 갈 곳을 알지 못함을 근심한다면
내가 스스로 갈 곳을 아나니
내가 만일 갈 곳을 알지 못한다면
마침내 너희에게 미리 알려 주지 못했으리라.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대개 나의 갈 곳을 알지 못함이니
만일 나의 갈 곳을 안다면
곧 합당히 슬피 울지 않으리라,
법성은 본래 생멸과 거래가 없나니
너희는 모두 앉으라,
내가 너희에게 한 게송을 주리니,
이름하여
眞假 (참과 거짓)
動靜(움직임과 고요함)의 게송이니라.
너희들이 이 게송을 외워 지니면
나와 더불어 뜻이 같을 것이니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종지를 잃지 아니 하리라"
강설:
법해 등이 모두 슬피 울어 눈물을 흘렸으나
그렇게 알아서는 知解宗師가 될 뿐 이라고
질책하셨던 신회만이 조금도 동요함이 없는 것을
보신 조사께서
"신회소사(소사라 칭한 것은
선사로서 인정하되 제자이므로 불러 칭한 말씀)가
선과 불선등을
곧 일체평등(眞空)한 도리를 증득했으나
나머지는 얻지 못했다"고 하시며
"도를 닦는다고 해를 지내면서 무엇을 증득했는가?"
하고 나무라신 뒤
슬피 우는 것은 누구를 근심해서 인가?
만일 내가 갈 곳을 알지 못함을 근심한다면
내가 스스로 갈 곳을 아니(眞空涅槃)
즉 가고 옴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생사열반이 무엇인가를
증오하였으므로 육신을 임의자재 하게
내가 벗고 싶은 때 벗는 것이니
미해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업인에 끄달려 헤매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에게 간다 (몸 벗는다)고
미리 알려 주는 것임을 알아서
나의 갈곳을 안다면
(즉 너희가 가고 옴의 이치를 깨달아 안다면)
슬피 울지않을 것이라 하시고,
이르시되
"법성은 본래
생멸과 가고 옴이 없는 것이라" 하시고
참과 거짓(헛것)과
움직이고 고요함의 뜻을
게송으로 일러 주시겠다 하시고
이 게송을 외워 지니면
즉 계합하게 되면
(이것은 이 受法제자들만이 아니라
후세의 수도인을 위하신 말씀)
나와 더불어 뜻이 같을 것
(不二)이니 이를 의지해서 수행하여
그대로 깨달으면 일체종지(佛智見)를
잃지않을 것
(본래 스스로 갖춤을 깨달아
증득한 것을 지키고 전함)이라 하셨다.
衆僧作禮하고 請師說偈하니 偈曰하시되 一切無有眞하니
不以見於眞이니 若見於眞者하면 是見盡非眞이니라
若能自有眞이면 離假卽心眞이니 自心不離假하면
無眞何處眞이리오 有情卽解動하고 無情卽不動이니
若修不動行하면 同無情不動이니 若覓眞不動이면
動上有不動이니 不動是不動이면 無情無佛種이니라
能善分別相하되 第一義不動한 但作如此見하면 卽是眞如用이니라
報諸學道人하나니 努力須用意하여 莫於大乘門 - 却執生死智하라
若言下相應하면 卽共論佛義거니와 若實不相應하면 合掌令觀喜니라
此宗本無諍임에 諍卽失道義되리니 執逆諍法門함은 自性入生死하니라
승려 대중이 예(절)를 하여
조사께 게송을 설해주시기를 청하니
게송으로 이르시기를
일체가 참다운 것이 없으니
(모든 것들이 실다운 항상하는것이 없으니)
참으로써 보지 말지니
(만상을 실다운 것으로 집착말지니)
만일 참으로 보면
(항상하는 참다운 것으로 본다면)
이 소견이 모두 참이 아니니라.
(실답게 보는 그것이 삿된 소견이니라)
만일 능히 스스로 참이 있음은
(참으로 항상하는 실다움이 있다면)
거짓을 여읜 곧 마음이 참이니
(상을 여읜 마음만이 참다움이니)
스스로 마음에 거짓을 여의지 않으면
(스스로 마음에 삿된 소견을 제거하지 않으면)
참은 없거니 어데가 참이리오?
(참다운 것은 없으니 참이 다시 있으리오?)
유정은 움직일 줄 알고
(情識이 있는 것은 작용할 줄 알고)
무정은 움직일 줄 모르니
(무정물은 스스로 작용할 줄 모르니)
만일 꼼짝하지 않는 행을 닦으면
(정에 국집해 앉아 움직이지 않음을 수행을 삼으면)
무정물이 움직이지 않음과 같으니라.
(움직이지 않는 무정물과 다르지 않느니라)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찾으려면
(참으로 움직이지 않는 뜻을 알려면)
움직이는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니
(밝게 사유하되 분별하지 않음이니)
꼼짝 않음이 바른 定(不動)이라면
(사유함이 없이 앉아 있는 것이 定이라면)
무정물은 불성의 씨가 없나니라.
(곧 무정물 같이 성불의 因이 없나니라)
온갖 상을 능히 잘 분별하되
(온갖 현상을 능히 잘 알되)
제일의에 움직이지 않는
(구경의 소소영령한 것이 산란하지 않는)
다만 이같은 지견을 지으면
(다만 이와같은 지견으로 행하면)
곧 옳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곧 참다운 작용을 행함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 알리나니
(모든 수행인께 알려 주나니)
힘써 모름지기 뜻을 가다듬어
(용맹 정진하되 생각을 바로하여)
대승의 문에 깨달아 듦에
(불과를 깨달아 드는 문에)
지혜로 생사를 돌이켜 집착하지 말라.
(지혜로써 생사에 집착하지 말라)
만일 말아래 서로 응(契合)하면
(만일 이 말아래 계합하면)
곧 함께 부처의 뜻을 논하거니와
(서로 함께 불법을 논하거니와)
만일 실로 서로 응하지 못하면
(이 말뜻에 등지는 소견이면)
정혜 상응(合掌)하여 환희케 할지니라
(정혜를 쌍으로 증하여 환희심을 누리라)
이 종취는 본래 다툼이 없음에
(불법의 참뜻은 본래 다툼이 없으니)
다투면 곧 도의 뜻 잃으리니
(시비를 일삼으면 곧 도와 멀어지니)
거꾸로 집착하여 법문에 다툼은
(삿된 집착으로 깨달아 드는 수행에 시비를 하면)
자성이 생사에 잠기게 되니라.
(청정자성이 삿됨으로 생사를 윤회케 되니라)
강설:
일체의 만법(萬有)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고
참되고 항상한 것은 없다.
만일 자성인 마음 만이 참다움이
스스로 있음(반야)을 깨달아 알면,
거짓을 여읜 청정한 본성을 보게 되는 것이니
이것만이 항상하는 실상의 묘유이거늘,
현상계(現象界)가
허망한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집착한다면 항상 참다운 이 마음밖에
어디에서 참다움을 찾겠는가?
하는 말씀이다.
참과 거짓을 이렇게 밝히시고
움직임과 움직임의 참뜻을 밝혀
곧 앉아서 고요함을 국집하여
定이라고 앉아만 있으면 된다는
그릇된 좌선관을 깨뜨리신 것이다.
또 법문이
본래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이 없거늘
시비를 일 삼으면 도리어 참다운 종지에 역행하여
도리어 도와 등지게 되므로
시비를 일체 하지 말 것을 엄중 질타하신 것이다.
時徒衆이 聞說偈已에 普皆作禮하여 幷體師意하고 各各攝心하여
依法修行하여 更不敢諍하며 乃知大師-不久住世하고 法海上座가
再拜問曰하되 和尙入滅之後에 衣法은 當付何人이니까 師曰하시되
吾於大梵寺에서 說法以至于今을 抄錄流行하고 汝等守護하여
遞相傳授하며 度諸群生하되 但依此說하면 是名正法이니라
今爲汝等하여 說法하고 不付其衣하나니 蓋爲汝等이 信根淳熟하여서
決定無疑하여 堪任大事이니 然이나 據先祖-達磨大師-付授偈意하여
衣不合傳하리라 偈曰하셨으니 吾本來玆土하여 傳法救迷情이니
一花開五葉하여 結果自然成하리라
때에 문도 대중들이
게송 설하심을 듣고서 모두 다 절을 하고
아울러 조사님 뜻을 체달하고
각각 마음을 다잡아 법을 의지해 수행하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않았으며,
이에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을 알고
법해 상좌가 다시 절을 하고 여쭙기를
"화상께서 입멸하신 뒤에
옷과 법은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부촉하시옵니까?"
"내가 대범사에서 지금에 이르도록
설법한 것에 요긴한 것을 기록하여
널리 펴지도록(流行)하고
너희는 지키고 보호하여 번갈아
서로 가르쳐 전해주며,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다만 이 말에 의거하면 이 이름이 정법이니라.
이제 너희를 위하여 법은 설하되
그 의발은 전하지 아니하나니,
대체로 너희가 믿음의 뿌리(信根)가
무르 익어서 결정코 의심이 없어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으니,
그러나 선조 달마 대사께서 부쳐 주신
게송의 뜻에 의거하여
의발은 합당히 전하지 않느니라.
(달마 대사께서) 게송으로 이르셨으니
※
내가 본래 이 땅에 와서
(달마대사가 동토에 오신 뜻은)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함이니
(법을 전해 미혹한 중생을 구하고자 함이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려
(한 꽃(達磨)에 다섯 잎(五대)이 둘 아니게 펴져)
열매(結果)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결과는 자연 널리 이뤄지리라)
강설:
조사의 게송을 듣고 그 뜻을 깨닫고
각자 마음을 다잡아
다시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다투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六조께서 설법한 것의 가장 요긴한 것을
기록해서 널리 펴지게 하도록 지키고
보호할 것이며(이것이 이 六조단경임)
"앞으로 법이 끊어지지 않게 깨우쳐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되
내가 지금까지 설한 이것이
곧 정법이라 이름한다" 하시고,
법을 설하고 인증하게 된 자들에게
전해 주되 전해 내려온 증표가 되는
의발은 내 대에서 더 이상 전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가 믿음의 뿌리가 확고하고
하화중생할 법위임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아
의발을 전해줄 만 하나
달마 대사께서
이땅에 오셔서 법을 전하시면서
덧붙여 주신 게송
"내가 본래 이 땅에 온것은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니
이제 앞으로 한 꽃(達磨)에
다섯 잎(二조혜가, 三조승찬, 四조도신, 五조홍인, 六조혜능)이
피게 되서(한 꽃 다섯 잎은 곧 둘 아닌 일체)
열매(果)가 자연히 수없이 열리게
(수많은 사람들이 佛果를 증득하게) 된다"
따라서
초조 달마 대사의 게송에 따라
正系와 傍系가 이로부터는 정함이 없이,
인가된 청명안이면 모두 법을 전하여
널리 법이 펴져서 많은 중생을 제도케 하라는
뜻에 의해서라 하셨다.
師復曰하시되 汝等이 若欲成就種智이면 須達 一相三昧와 一行三昧하라
若於一切處의 而不住相하며 於彼相中에 不生憎愛하며 亦無取捨하며
不念利益成壞等事하여 安閑恬靜하여 虛融澹迫한 此名一相三昧이며
若於一切處 行住坐臥에 純一直心의 不動道場한 眞成淨土하면
此名一行三昧이니 若人이 具二三昧하면 如地有種하여 含藏長養하여
成熟其實인달하여 一相一行도 亦復如是하니라 我今說法은
猶如時雨-普潤大地요 汝等佛性은 譬諸種子-愚玆霑洽-悉得發生이니
承吾旨者는 決獲菩提하며 依吾行者는 定證妙果하리라 聽吾偈하시고
曰하시되 心地含諸種하니 普雨悉皆萌명이요 頓悟華情已하면 菩提果自成하리라
조사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너희가 깨달아(佛) 다아는 지
(一切種智)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통달하라,
만일 모든 곳의 相에 머물(執着)지 않으며
저 상가운데에 미워하고 사랑하는 생각을 내지않고
또한 취하고 버릴 것도 없으며
이익과 이루고 실패하는 등의 일들을 생각하지 아니하여
편안하고 한가하고 고요하며
깨끗하여 비어 통하고
담박한 이 이름이 일상삼매이며,
만약 어느 곳에서나 행, 주, 좌, 와에
순수한 곧은 마음의 도량에
움직이지 않는 참으로 깨끗한 마음
(淨土)을 이루면 이 이름이 일행삼매이니,
만약 사람이 두 가지 삼매를 갖추면
마치 땅 속에 있는 종자를 갈무리하여
잘 길러 그 열매가 익어지 듯이
일상, 일행(삼매)도 또한 다시 이같으니라.
내가 이제 법을 설함은
오직 때 맞추어 비가 내려
대지를 두루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음이요,
비유하면
너희 불성은 모든 종자가 비를 만나 젖게 되어
싹이 트이게되어 자라 나게 되는 것이니,
나의 뜻을 잇는 자는 결정코 보리를 얻을 것이며,
나의 행함에 의거하는 자는 반드시 묘과(佛果)를
증득할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하시고 이르시기를
마음 땅에 모든 종자를 머금었으니
(자성인 마음 바탕에 모든 종자(因)가 있어)
널리 비가 내리면 모두 싹이 나리요
(바른 법문을 듣게 되면 발심하게 되)
몰록 깨달아 옳지 않는 뜻(華情)을 그치면
(몰록 깨달아 삿된소견 여의면)
보리의 열매 스스로 이루리라
(자연히 부처를 이루게 되니라)
강설:
일체종지(佛知見)를 성취하고자 하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꿰뚫어 통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니,
모든 나타난 것들에 집착하지 않아서
현상가운데 있되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심을 내지 않고
취하고 버릴 것도 없는 마음
(일체 평등심: 이것이 평상시심)으로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편안하여 산란하지않고
고요하고 깨끗하여 비어 공함에 통달해서
치우침이 없는 이것이 일상(一相)
즉 한가지 상
(一切眞空: 一合相)인 삼매라 이름하는 것이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깨끗한 마음(淸淨心: 無念)을 이루면
이것을 이름하여 일행
(한결같이 행함)삼매라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갖추면
마치 땅속의 종자(성불의 因)를 갈무리하여
잘 길러(번뇌, 망념을 여의게 되어)
열매(佛果)가 익게(成就)하는 것과 같으므로
일행삼매와 일상삼매도 이와 같은 것이니,
비유를 들어 말하면
불성의 종자(성불의 因)가 비(善知識)를 만나
젖게 되(법문을 듣게 되)어 싹이 트이게 되
(법을 깨달아 들게 되)어 자라 나게 되는 것
(깨달음에 이름)이니,
이러한 내 뜻(선지)을 잇는다면 반드시
보리(깨달음)를 증득하게 되며
나의 행함(아는 것과 행이 일치함)에 의해서
수행하는 자는 결정코 묘과(佛果)를 증득하게 된다
하시고 이 말씀을 함축해서
게송으로 일러주셨다.
※
일상, 일행삼매를 다시 정리하면
일상삼매(一相三昧)는
곧 일체가 진공임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과 법계의 본성이 맑아 깨끗하며
항상함(一切眞空)을 깨쳐 알아 변함없이
항상 두루 머무르고,
현상에 얽히지(끄달리지) 않게 되는 것이므로
따라서 無相삼매라고도 하는 것이다.
일행(一行)삼매는
곧 묘유, 묘용으로 일체의 본성이 공하며
필경 공하여 본래 스스로
원통 융합함을 밝게 깨쳐 알아 무엇을 하든
항상 분별함이 없어 취하고 버리고
아끼고 싫어하는 분별심이 없게 되는 것이므로
무념삼매라고도 한다.
이 두가지 삼매는
모든 것의 법성인 자성 가운데
(법성<법계의 본성> 자성<나의 본성>
이 不二)
본래 갖추고 있는 반야지혜의 발현인 것이다.
따라서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설명 상 둘로 나누었으나
"실은 일相 일行삼매"로
이 두삼매는 곧 둘 아닌 삼매로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서 보면
오히려 분별을 내게 되는 것이므로
"일상 일행삼매"로 앎이 곧 옳은 것이다.
평상심시도라는 것이
곧 이 일상 일행삼매를 일컫는 것인 데
편리한데로 밥 먹고 그릇 닦고 운운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다는 것을 인용하여
이것이 편리한 데로 그릇 알고
쉽게 함부로 법문이라 하여
미한 중생을 더욱 미혹케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하며
조주선사의
"차나 한 잔 마시게",
"마당앞에 잣나무"
화두의 意志까지도
"이렇게 눈 앞에 있는 일상하는, 있는
모든 것이 법 아님이 없다"는 등
쉽게 아주 쉽게도 꿰맞춰 떠드는
말법 시대임을 직감케 하는 실정이다.
師께서 說偈已曰하시되 其法無二이니 其心亦然하며
其道淸淨하여 亦無諸相하니 汝等은 愼勿觀靜 - 及空其心이니라
此心本淨하여 無可取捨이니 各自努力하여 隨緣好去하라
爾時徒衆이 作禮而退했다
조사께서 게송을 설하여 마치시고
이르시기를
"법이 둘이 없나니
마음 또한 그러하며,
도가 맑아 깨끗하여
또한 모든 상이 없으니,
너희는 삼가 고요함을 관하는 것과
마음을 비우려 하지 말것이니라,
이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가히 취하고 버릴 것이 없음이니
각자 힘써서 좋은 인연을 따라
잘 가도록 하라"
그때에 문도 대중이 절하고 물러갔다.
강설:
조사께서 "법(일체)이
둘이 없으며 마음 또한 그러하며
도가 맑아 깨끗하여 또한 모든 相이 없으니"
하신 말씀은
법(이 法자 하나가 경우에 따라 쓰이는 뜻이
여러가지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法이란
진리도 되며
일체만유도 되며 등등이나
여기서는 일체만유를 칭함)이
둘이 없다는 것은
온 우주에 있는 萬有인 現狀들이
본성이 空하고
필경 생주이멸의 眞空이니
일체 공한 것이 둘이 있음이 없는 것
(하나라 하지 않음도 그 뜻을 알아야 한다.
禪門에서는
하나라 하면 세운 것이 있게 되므로
하나의 상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되는 자취를 쓸어버리기 위해
둘이 없다(無二)하여
빈 하나를 이렇게 "둘 아닌것(不二)"이라고
드러 보임)이다.
더불어
마음(이 心도 마찬가지로 뜻이 쓰임에 따라 다르니
본체인 마음,
번뇌망상의 마음작용(생각)의 마음등의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본성心)이 또한 비어 공하여 그러하며
道(모든 것, 진리, 본성, 구경, 길등 여기서는
진리로 살핌이 옳음)
또한 空하여 있음이 없이 맑아 깨끗하여
일체相(모든 있다는 것들)이
본성이 공한 없이 있는 것이다.
(다만 나타난 상(現狀)이란 것은
마음의 그림자로 잠시 생했다 사라지는
성주괴공하여 필경 공한 것임)
일체의 성품이 본래 그러한 까닭에
"정을 얻느니,
定에 들어 자성을 보느니
하여 삼가 고요함을 관하는 것과,
마음을 억지로 비우려 하지 말것이니라.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해서
취하고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이
있음이 없이있는 것이니,
스스로 힘써서
"일상 일행삼매"를 깨달아 알고 행하도록 하며
좋은 인연을 따라 잘가라" 하시어
힘주어 잘못된 좌선 수행의 병폐를 破하신 것이다.
大師께서 七月八日에 忽謂門人曰하시되 吾欲歸新州하니
汝等은 速理舟楫하라 大衆이 哀留甚堅하자 師曰하시되
諸佛出現하셨으나 猶示涅槃하셨으며 有來必去는 理亦常然이니
吾此形骸도 歸必有所니라 衆曰하되 師從此去하시면
早晩可回이니까 師曰하시되 葉落歸根이나니 來時無口니라
又問曰하되 正法眼藏은 傳付何人이니까 師曰하시되 有道者得이요
無心者通이니라 又問하되 後莫有難否이니까 師曰하시되
吾滅後五六年에 當有一人이 來取吾首하리니 聽吾記라시고
曰하시되 頭上養親코자 口裏須餐하는 遇滿之難에 楊柳爲官하리라
又云하시되 吾去 七十年에 有二菩薩이 從東方來하되 一出家요
一在家이니 同時興化하여 建立吾宗하여 締緝伽藍하여 昌隆法嗣하리라
"내가 신주에 돌아 가고자 하니
너희들은 배와 돛대를 빨리 손질하라"
대중이 슬퍼하며 더 계시기를 심히 굳게 하자,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나
오히려 열반을 보이셨으며,
옴이 있으면 반드시 가야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이니
나의 이 몸뚱이도 돌아가야 할곳이
반드시 있나니라" 하시었다.
대중이 이르기를
"조사께서 이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시나이까?"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잎이 떨어 지면 뿌리로 돌아 가나니
올 때는 입이 없나니라"
또 여쭙기를
"정법 안장은 어떤 사람에게 전해 부치시나이까?"
대사께서 이르시기를
"도 있는자가 얻고 마음 없으면(無心) 통하니라"
또 여쭙기를
"뒷날 법란이 있지 않겠나이까?"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멸도한 뒤
5∼6년이 되면 마땅히 한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가져갈 것이니
나의 예언(수기)을 들으라" 하시고
이르시기를
머리를 받들어 봉양하고자
입속에 먹을 것을 바라는 장
(정만)의 난을 만날 적에 양과 류가
관원이 될 것이니라.
또 이르시기를
"내가 간지 70년에 두 보살이 동방으로부터 오나니
하나는 출가(僧)요
하나는 재가(속인)이니
동시에 교화하여 나의 宗을 세워
가람을 크게 하고 법을 이어 나갈
(도인들)이가 쏟아져 창성하리라"
강설:
조사께서 신주에 돌아가실 것
(곧 입멸)을 재촉하여 배와 돛대를 손보도록 하시자
대중이 이별을 슬퍼하여 더 계시기를
심히 간청하자
"모든 부처님이 출현(生)하셨다가
다시 열반을 보여 일체가 생한것은 멸하는 것이
진리임을 보이셨으며
온것이 있다면 반드시 가야하는 것
(生住異滅)이 당연한 이치며
나의 이 가죽푸대인 몸뚱이도
돌아가야 할곳이
(본성으로) 반드시 있는 것이다"
하여 다시 법의 본성과
필경空함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또 대중이 이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시나요?"
하니
"잎(생함)이 떨어지면
뿌리(본원)로 돌아가니
올 때는 입(口)이 없다" 하셨으니
입이 없다는 말씀은 자성이 말할 줄 아는 것이나
말소리 내는 것은 상이 있으므로
진공의 도리와 본래 오고 감이 없는것
(眞如실상)을 드러 보이신 뜻이다.
"정법안장(法)을 누구에게 전해 부치(傳法)시나요?"
하는 물음에
"도가 있는 자가 얻는다"
하신 것은 깨달은 자가 얻게(증득) 된다는 뜻이요
"마음 없으면 통한다"
하신 것은 마음이 상에 국집하지 않아
무상무념의 경계가 될 것을 다시 일깨워
자취없고 장애가 없는
心印이 자연히 통할 것임의 뜻을 설하신 것이다.
"뒷날 법란이 없겠나요?"
하는 물음에
"내가 입멸한 뒤 5∼6년이 되면
반드시 한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잘라 갈 것이니라"
하고 예언하시기를 게송으로
"내 머리를 받들어 공양
(모신다는 뜻)하고자,
돈을 탐하는 장정滿이를 시켜,
내 목을 잘라갈 때,
양(간)과 류(무첨)가 관원의 책임자로 있게 된때라"
고 豫指하신 것이다.
이어서 "내가 간지 70년에
두 보살이 동방(조계로 볼때)에서 오는 데
하나는 승려요 하나는 속인인데,
동시에 나의 종(六조의 종취)을 세워
사찰을 크게 짓고 깨달음을 얻어
법을 전해 받은 이들(道人)이 쏟아져 나와
크게 번창하리라" 라고 예언하셨음은
승은 마조 도일선사를 가리키고
속은 방온거사를 가리키신 것이라 하며
혹자들은 황벽선사와 배휴거사라 주장하나
어쨌든 이들 모두가 이 예언의 말씀에
해당됨에 부족함이 없는 명안 선지식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