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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촌집(泰村集) 고상안(高尙顏)생년1553년(명종 8)몰년1623년(인조 1)자사물(思勿)호태촌(泰村), 남석(南石)본관개성(開城)
泰村先生文集卷之一 / 詩 / 代人作 二首
與君相別日。同上小孤臺。君如臺下水。一去不還來。
光風樓畔鏡湖濱。兩地開花一㨾春。可愛可憐猶未折。含情空作斷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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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濱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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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軒曹淑詩曰
羈旅三年滯海濱 鏡中華髮與時新
裁詩倚醉悲南極 遺興登樓望北辰
月霽風光心浩蕩 山明水秀俗厖醇
歸田願結鷄豚社 自擬忘榮傲世人
*조숙(曺淑) : 1504~1582.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죽헌(竹軒)이며, 동계의 고향인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渭川面)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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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先生文集(석곡선생문집)成彭年(1540 ~ 1594)石谷先生文集卷之一 / 七言四韻 / 次表校理韻題光風樓仍用其意二首 校理沿沫藍溪
鰻川流水水南濱 百代盤空盡閣新
澹子宛憑趨偃日 武城親見割鷄辰
竹階模魚牛羊茁 秦鼎烹龍琥珀醇
遺迹至今磯石老 萬金難鑄釣璜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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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집(松塘集) 유홍(兪泓)생년1524년(중종 19)몰년1594년(선조 27)자지숙(止叔)호송당(松塘), 퇴우당(退憂堂)본관기계(杞溪)봉호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시호충목(忠穆)특기사항이해수(李海壽), 윤두수(尹斗壽) 등과 교유
松塘集卷之一 / [詩] / 次光風樓韻
선조 | 10 | 1577 | 정축 | 萬曆 | 5 | 54 | 7월,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
선조 | 11 | 1578 | 무인 | 萬曆 | 6 | 55 | 10월, 형조 참판이 되다. |
岧岧仙舘澗之濱。向晩登臨興漸新。
鳧舃已疑騰汗漫。珠欄便覺近星辰。
武陵溪轉塵心逈。盤谷泉甘酒味醇。
峽路雲深迷處所。此間應有姓龐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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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집(松塘集) 유홍(兪泓)생년1524년(중종 19)몰년1594년(선조 27)자지숙(止叔)호송당(松塘), 퇴우당(退憂堂)본관기계(杞溪)봉호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시호충목(忠穆)특기사항이해수(李海壽), 윤두수(尹斗壽) 등과 교유
松塘集卷之一 / [詩] / 次光風樓韻
선조 | 10 | 1577 | 정축 | 萬曆 | 5 | 54 | 7월,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
선조 | 11 | 1578 | 무인 | 萬曆 | 6 | 55 | 10월, 형조 참판이 되다. |
岧岧仙舘澗之濱。向晩登臨興漸新。
鳧舃已疑騰汗漫。珠欄便覺近星辰。
武陵溪轉塵心逈。盤谷泉甘酒味醇。
峽路雲深迷處所。此間應有姓龐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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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親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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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先生文集(석곡선생문집)成彭年(1540 ~ 1594)石谷先生文集卷之一 / 七言四韻 / 又 表作專爲一臺先生作故用其意而變其體云
平生麋鹿喜相親 十室來潛社稷身
自是光風生白室 不緣層榭盪紅塵
文章星斗沈山海 陶冶乾坤屬鬼神
畢竟缺江舟不返 可憐樓月獨留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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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陰자운 -陰 深 林 簪 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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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成彭年詩曰
嶺外仙區說我陰 光風山水更淸深
龍門白石還明月 鶻岳丹霞半綠林
地怪靈芝春長至 廚香班筍日烹簪
使人登眺多留躅 退老當年亦越呤
*월음(越吟) :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춘추 전국 시대 월(越)나라 사람인 장석(莊舃)이 초(楚)나라에 가서 벼슬하여 현달(顯達)하였는데 한번은 병이 나서 누워 있었다. 초왕(楚王)이 사람을 시켜 장석에게 가 보게 하면서 이르기를 “장석이 자기의 고국을 생각하는지 알아보라.”라고 하였다. 사신이 가서 보니 장석은 고국을 잊지 못하여 병중에도 월나라의 노래를 불러서 고향을 그리는 정을 부쳤다. 《史記 卷70 張儀列傳》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 경상도(慶尙道) 안음현(安陰縣)
數聲村笛隔前林。裵屯詩:“
태종 9년 기축(1409) 5월 4일(을해) 양력 1409-06-1609-05-04[02] 이백강이 명나라로 갈 때 금지된 물품을 수색한 전온 등을 유배하다 서장관(書狀官) 배둔(裵屯)을 해주(海州)로 유배하였다.
山陰朝發暮安陰,獨倚東軒秋夜深。
一點客燈明半壁, 數聲村笛隔前林。
興亡萬古山依舊,榮辱千般雪滿簪。
未報聖恩嗟已老,三峯、漢水入長吟。”
* 조말생(趙末生)의 작명(爵命)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는 가납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대간(臺諫)이 합사(闔司)하는 등 간관(諫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거듭 간하였으나, 세종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상소는 대사헌 신개가 좌사간(左司諫) 배둔(裵屯) 등과 연명(聯名)으로 1432년(세종14) 12월 19일에 다시 올린 상소이다. 《世宗實錄 14年 12月 19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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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집(退溪集) 이황(李滉)생년1501년(연산군 7)몰년1570년(선조 3)자경호(景浩)호퇴계(退溪), 도산(陶山)본관진보(眞寶)시호문순(文純)특기사항문묘(文廟) 및 선조(宣祖)의 묘정(廟庭)에 배향
退溪先生文集別集卷之一 / 詩 / 次安陰見憶見和舊題韻
중종 | 38 | 1543 | 계묘 | 嘉靖 | 22 | 43 | 1월, 丹城에서 上京하는 길에 安陰에 들러 丈人 權礩을 뵙다. |
氣劘元白倒何陰。便覺江山得助深。
簸撼兩儀風發橐。包羅萬象玉糚林。
何妨攬轡兼揮筆。卻恨離羣鮮盍簪。
知得倚樓思我處。不因長笛更沈吟。
* 후한(後漢) 범방(范滂)이 기주 자사(冀州刺史)로 나갈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서는 천하를 정화할 뜻을 개연히 품었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지방 장관으로 부임할 때, 혹은 난세에 혁신 정치를 행하여 백성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비유한다. 《後漢書 卷97 黨錮列傳 范滂》
*당나라 시인 조하(趙嘏)의 〈조추(早秋)〉 시에 “몇 점 남은 별빛 아래 기러기는 변방을 질러가고, 한 가락 피리 소리 속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두목(杜牧)이 이 표현을 좋아한 나머지 그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唐摭言 知己》
*退溪先生文集攷證卷之八 / 別集詩 / 次安陰云云
氣劘元白倒何陰 (韻玉)寶曆中。楊嗣復榜宴于新昌里第。元稹,白樂天在座賦詩。楊後成。元,白見之失色。楊歸語諸子曰。今日壓倒元白矣。(史)何遜與陰鏗。俱以能詩名。人謂之陰何體。 *何逊(约472年-约519年)
*杨嗣复,字继之,仆射于陵子也。初,于陵十九登进士第。浙西观察使韩滉有知人之鉴,见之甚悦。滉有爱女,方择佳婿,谓其妻柳氏曰:“吾阅人多矣,无如杨生贵而有寿,生子必为宰相。〞于陵秩满,寓居扬州而生嗣复。后滉见之,抚其首曰:“名位果逾于父,杨门之庆也。〞因字曰庆门。
嗣复七八岁时已能秉笔为文。年二十,进士擢第。元和十年,累迁至刑部员外郎,改礼部员外郎。时父于陵为户部侍郎,嗣复上言与父同省非便,请换他官。诏曰:“应同司官有大功以下亲者,但非连判及勾检之官长,那么不在回避之限。如官署同,职司异,虽父子兄弟无所避嫌。〞再迁兵部郎中。文宗即位,拜户部侍郎。以父于陵太子少傅致仕,年高多疾,恳辞侍养,不之许。太和四年,丁父忧免。开成二年,领诸道盐铁转运使。三年正月,进阶金紫,食邑七百户。
帝延英谓宰臣曰:“人传符谶之语,自何而来?〞嗣复对曰汉光武好以谶书决事近代隋文帝亦信此言自是此说日滋只如班彪王命论所引盖矫意以止贼乱非所重也帝又曰:“天后用人,有自布衣至宰相者,当时还得力否?〞嗣复曰:“天后重行刑辟,轻用官爵,皆自图之计耳。凡用人之道,历试方见其能否。当艰难之时,或须拔擢;无事之日,不如且循资级。古人拔卒为将,非治平之时,盖不获已而用之也。〞
宣宗即位,征拜吏部尚书。大中二年,自潮阳还,至岳州病,一日而卒,时年六十六。赠左仆射,谥曰孝穆。
〔节选自?旧唐书?,有删改〕
*所旨院。在牛馬峴。牛馬峴。在縣南四十六里。居昌縣界。
退溪先生文集別集卷之一 / 詩 / 所旨峴
泥深滑滑路盤盤。洞壑杈枒雲木寒。陽坡日上紫翠重。幽谷春生陰雪殘。猛獸存身獨深居。倏閃流離多狖鼯。嗟我曷不歸故鄕。遠度關山愁僕夫。
退溪先生文集攷證卷之八 / 別集詩 / 所旨峴以詩意觀之。疑在安陰近地。
狖鼯 狖音由。似猿。仰鼻長尾。鼯音吾。五技鼠能人立跳舞。善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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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5권, 명종 2년 1월 20일 癸酉 2번째기사 1547년 명 가정(嘉靖) 26년
송화 현감(松禾縣監) 이계륜(李繼倫)이 배사(拜辭)하니, 상이 인견(引見)하고 전교하였다.
"황해도는 두 번이나 명 나라 사신을 겪었고 잇달아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곤궁함이 극도에 달하였으니 백성 구휼에 특별히 힘쓰라." ○松禾縣監李繼倫拜辭, 上引見而敎之曰: "黃海道再經天使, 連歲失農, 民之困悴極矣, 另加恤民。"
默齋日記 上(한국사료총서 제41집) > 1冊 > 嘉靖十六年 丁酉歲 > 正月 小 壬寅 十五日己未
陰. ○姊氏·嫂氏留此......○李繼倫來見, 與之着碁二乃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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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2권, 선조 11년 1월 29일 辛巳 1번째기사 1578년 명 만력(萬曆) 6년
헌부가 호군 이현배, 산음 현감 이형경을 탄핵하다
○辛巳/府啓: "護軍李玄培赴京時, 別軍官啓請, 不但再瀆天聽爲不可, 至於一行遞兒之任, 亦皆任情與奪, 偃然自便之習, 不可不懲。 請命推考。 山陰縣監李亨慶, 距本家甚近, 必多貽弊, 請命遞差。" 答曰: "李玄培依啓。 守令之賢否, 不係於其家之遠近, 然與他邑相換爲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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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谷先生文集(석곡선생문집) 成彭年(1540 ~ 1594) 石谷先生文集 卷之一 七言四韻
次雙淸軒韻 題退溪先生詩後 二首 雙淸軒卽李繼綸之號也
嶺外仙區說我陰 光風山水更淸深
龍門白石還明月 鶻岳丹霞半綠林
地怪靈芝春長玉 廚香斑筍日烹簪
使人登聎多留躅 退老當年亦越吟
時先生以掌令赴京 位已淸顯 雨登樓有詠 故有越吟之語
又
淸流脩竹擁摟陰 誰遣霜臺入境深
今日銀鉤棲粉壁 當時仙翰舞風林
參差狼石黿鼉骨 隱見層巒玳瓃簪 疑作狠石
一去美人空有閣 耳邊猶想聽高吟
次表校理韻 題光風樓 仍用其意 二首 校理沿沫藍溪
鰻川流水水南濱 百代盤空盡閣新
澹子宛憑趨偃日 武城親見割鷄辰
竹階模魚牛羊茁 秦鼎烹龍琥珀醇
遺迹至今磯石老 萬金難鑄釣璜人
又 表作專爲一臺先生作故用其意而變其體云
平生麋鹿喜相親 十室來潛社稷身
自是光風生白室 不緣層榭盪紅塵
文章星斗沈山海 陶冶乾坤屬鬼神
畢竟 缺 江舟不返 可憐樓月獨留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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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淫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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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집(松塘集) 유홍(兪泓)생년1524년(중종 19)몰년1594년(선조 27)자지숙(止叔)호송당(松塘), 퇴우당(退憂堂)본관기계(杞溪)봉호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시호충목(忠穆)특기사항이해수(李海壽), 윤두수(尹斗壽) 등과 교유
松塘集卷之一 / [詩] / 次光風樓韻
선조 | 10 | 1577 | 정축 | 萬曆 | 5 | 54 | 7월,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
선조 | 11 | 1578 | 무인 | 萬曆 | 6 | 55 | 10월, 형조 참판이 되다. |
他鄕未禁涕淫淫。望斷承明阻玉音。
嶺表自憐身似梗。螭頭遙憶筆曾簪。
霜侵兩鬂衰知甚。馬倦千山病覺深。
王粲登臨凡幾許。旅懷今夕最蕭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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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潯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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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양연방집』은 남경훈(南慶薰 ; 1572~1612)을 비롯한 영양남씨(英陽南氏) 7세 24명의 시문집이다.
남노명 (南老明 , 1642 ~ 1721) 만취헌유고(晩翠軒遺稿) 지음
제6권 만취헌유고晩翠軒遺稿 / 시詩 / 次光風樓韻
別開亭觀此江潯, 風月無邊入袍襟.
竹色拂雲連遠嶽, 泉聲帶雨出幽林.
遼陽鶴去空留柱, 彭澤人歸孰理琴.
無限夕陽無限景, 獨憑危檻獨微吟.
* 1過金烏山懷冶吉先生金烏山色立立秀,洛東江水滔滔下.栗里田園依舊 在,淸風百世誰繼者.2到娥林縣新到娥林縣,龜符巳在腰.江山雖異域,民物卽同胞. 製錦才斬拙,治繩志恐勞.誰云爲宰樂,3次枕流亭板上韻縣城南畔水東流,上有高樓得地幽.入戶遠山橫翠 黛,當簾缺月掛虛鉤.百年多病蓬飄跡,千里4登矗石數晋陽城外客初回,千古江山酒一盃.地只若玆天不 助,壬辰年事說堪哀.5遊伽倻山緬憶伽仙問手又,千年遺跡寄嵯峨.巖臨吹篴猶聞 響,洞入紅流尙有花.華表鶴飛天地老,石潭6紅流洞始入紅流洞,奇觀契昔聞.白波奔碎壑,蒼壁聳磨雲. 草暗連樵逕,花明接寺門.孤雲千載後,7武陵橋烟霞洞府石爲橋,此去桃源也不遙.莫道雲深迷去 路,不逢漁者定逢樵.8霽月潭兩岸回回水滿潭,澄如鏡面碧如藍.魚龍倘護波中 字,墨迹昭昭尙可諳.9學士臺昔人於此築高臺,遠客登臨眼忽開.學士不來雲物 古,滿壇松桂鶴徘徊.10次光風樓韻別開亭觀此江潯,風月無邊入袍襟.竹色拂雲連遠 嶽,泉聲帶雨出幽林.遼陽鶴去空留柱,彭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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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樓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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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집(久堂集) 박장원(朴長遠)생년1612년(광해군 4)몰년1671년(현종 12)자중구(仲久)호구당(久堂), 습천(隰川)본관고령(高靈)시호문효(文孝)
久堂先生集卷之二 / 詩○花縣錄 自次子公韻至養痾。係錄中作。 / 晩登光風樓記懷
公餘移杖上高樓。滿目韶光次第收。
觀物自知仁體大。景賢空恨歲時遒。
山川鬱鬱終誰待。花柳欣欣各自由。
坐數歸鴉仍得句。更憐新月上簾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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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天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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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음현감 장세남(張世南, 1642~1700)
張世南 通訓大夫癸亥(1683,숙종9)宰改修光風樓霽月堂丙寅(1686,숙종12)災傷罷
縣監張世南詩曰
三洞名區別有天 一樓風月浩無邊
漠漠田間飛白鷺 磷磷石上瀉晴川
西園竹樹宜疎雨 東嶺山嵐和暮烟
蠹翁去後今吾至 此樂寥寥二百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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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정집(晦亭集) 민재남(閔在南)생년1802년(순조 2)몰년1873년(고종 10)자겸오(兼五), 겸오(謙吾)호회정(晦亭), 청천(聽天), 자소옹(自笑翁), 명곡주인(明谷主人)본관여흥(驪興)초명수일(壽一)특기사항노광리(盧光履)의 문인. 기정진(奇正鎭), 배진방(裵鎭邦) 등과 교유
晦亭集卷之一 / 詩 / 三洞紀行 / 登光風樓。次板上韻。
行到花林洞闢天。丹樓浮在水聲邊。
官娥暮汲娟娟月。野老朝耕淡淡烟。
鏡裏村容圍竹石。畫中春色點山川。
登臨尙有前賢跡。噓動光風幾百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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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집(海藏集) 신석우(申錫愚)생년1805년(순조 5)몰년1865년(고종 2)자성예(成睿), 성여(成如), 성여(成與), 성여(成汝), 성부(誠夫)호해장(海藏), 금천(琴泉), 이당(頤堂), 맹원(孟園), 난인(蘭人)본관평산(平山)시호문정(文貞)특기사항신위(申緯), 홍종응(洪鍾應), 정공수(程恭壽), 조광(趙光) 등과 교유
海藏集卷之五 / 詩 / 光風樓
철종 | 6 | 1855 | 을묘 | 咸豐 | 5 | 51 |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
철종 | 7 | 1856 | 병진 | 咸豐 | 6 | 52 | 경상도에 큰 재해가 발생하자 被災田 10,000結을 조정에 보고하여 그대로 準劃을 받아 백성들을 구제하다. |
철종 | 8 | 1857 | 정사 | 咸豐 | 7 | 53 | 여름, 殿最에서 下考를 받자,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다. ○ 대사헌이 되다. |
霽月光風別洞天。先賢氣像浩無邊。
攀梯一上餘丹艧。開戶平臨濕翠煙。
未了仙緣遲出峽。將尋往蹟逝如川。
十分春色名亭酒。何似湘江宴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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恥堂文集(치당문집)沈相福(1871 ~ 1951)恥堂文集卷之二 / 詩 / 登光風樓次板上韻
光風飄灑洞中天 百尺元龍活水邊
四野桑麻當肇夏 千家楊柳羃淸煙
堪憐先輩優遊地 可惜光陰逝似川
自此尋眞知未遠 山如太古日如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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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남의 시는 시판으로 누각 안에 게시되고 언제인가 주련으로 게시되기도 한 것이다. 지금 광풍루 안에는 장세남의 시판은 없다. 하영규(河榮奎)의 <광풍루중수운> 시판(小序포함)이 게시되어 있다. 하영규(河榮奎)는 고종 43년 병오(1906) 10월 11일에 안의군 주사(安義郡主事)에 임용되었고, 1926년에는 안의면장을 지냈다.
아석(我石) 정문섭(鄭文燮,1859∼1929)이 안의군이 폐지된 뒤 광풍루를 보존시키고 수리하자 하영규는 면장이 되기 전인 1925년 을축년 여름에 광풍루 중수할 때 시서를 지었다. 함양읍성 망악루의 함화루 이건, 개칭, 보존에 공이 있는 노덕영을 기리듯 광풍루도 정인섭의 문화유산 보존 공을 기려야 할 것이다. 소서는 생략하고 시만 옮긴다.
光風樓重修韻 / 河榮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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樓下平湖碧一天
누각 아래 호수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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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林勝狀在斯邊
화림동의 명승 여기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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翠甍照耀龍門日
파란 용마루 용문서원 해 비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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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榭交橫武峽烟
붉은 정자 골짜기 안개 어른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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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名遺躅如喬嶽
명명하신 유적은 태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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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道眞源障百川
도를 강론한 참 진리 이단 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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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蹟相存應有數
고적 보존도 운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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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回嗣葺又今年
몇 번이나 중수했나 또 올해도
*압운: 天 邊 烟 川 年 / 칠언율시 측기식, 평기식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 / 압운 / 평기식 평기평결 / 측기식 측기측결 / 이사부동이륙동 / 홀짝부동짝홀동 / 중련대우 *특이하게 측기식에서 평기식으로 전환, 전운
이 <광풍루중수운>은 전운(轉韻)을 도모했는데 차운이란 용어는 안 썼어도 장세남의 시에 차운한 시이다. 정확히 天 邊 烟 川 年의 압운에 맞춰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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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齋文集(성재문집)鄭珪錫(1876 ~ 1954)[誠齋文集卷之二][詩]光風樓次板上韻 *依韻 *谓按照他人诗歌的韵部作诗。韵脚用字只要求与原诗同韵而不必同字。
遊客同來四月天 眼中物色浩無邊
千縭霞霧懸崖嶂 十里桑麻掩陌阡
邑宰題吟追古蹟 野翁耕稼樂豐年
居人沽酒來相勸 往事悠悠一悵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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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帆文苑(추범문원)權道溶(1877 ~ 1963)秋帆文苑續集上卷八程曆○韻文三十七北行漫艸十七首 癸酉孟秋與四從兄松坡再從兄潛山同行...光風樓用板上韻 *用韻 * 和韵的一种。即以原诗韵脚为韵脚,而不按其次序。
蠹翁留躅一麾天 迢遞高樓錦水邊
嘯傲倦邀閒士友 登臨悵望舊山川
歸雲冉冉巖西屋 晴日戎戎竹外煙
說到灑然光霽義 儒風振作更何年
光風樓用板上韻 / 權道溶(1877 ~ 1963) 蠹翁留躅一麾天 ◐○◐●●○◎ 迢遞高樓錦水邊 ◐●◐○◐●◎ 嘯傲倦邀閒士友 ◐●◐○○●● 登臨悵望舊山川 ◐○◐●●○◎ 歸雲冉冉巖西屋 ◐○◐●○○● 晴日戎戎竹外煙 ◐●◐○◐●◎ 說到灑然光霽義 ◐●◐○○●● 儒風振作更何年 ◐○◐●●○◎ | 주련 天 邊 烟 川 年 *평기식* 1◐○◐●●○◎ 2◐●◐○◐●◎ 3◐●◐○○●● 4◐○◐●●○◎ 5◐○◐●○○● 6◐●◐○◐●◎ 7◐●◐○○●●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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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年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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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趙榮祏) 1686년(숙종 12)~1761년(영조 37)
영조 14 1738 무오 乾隆 3 53 11월, 安陰 縣監이 되다.
觀我齋稿卷之一 / 詩
光風樓。次溫上庠 彪 韵。* 涓 天 邊 緣 然 絃
又用前韵
日將吟哢送殘年。懶緩從他學佩絃。
柿子霜深紅累累。竹林風過翠娟娟。
蒼寒山色來窓外。狼藉墻陰到砌前。
更有溪樓宜助賞。時時理屧上翩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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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遊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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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촌유고(樗村遺稿) 심육(沈錥)생년1685년(숙종 11)몰년1753년(영조 29)자화보(和甫), 언화(彥和)호저촌(樗村), 저헌(樗軒)본관청송(靑松)특기사항정제두(鄭齊斗)의 문인. 이진병(李震炳), 윤순(尹淳), 윤선(尹璿) 등과 교유
樗村先生遺稿卷之十 / 詩 / 光風樓。用良甥䪨。
名區欲問昔人遊。蠧老騎箕二百秋。
儒化無窮稱舊俗。光風不盡有高樓。
溪山寄傲聊成醉。魚鳥相親頓豁愁。
賭射紛然眞戱劇。不妨終日對淸流。
又
登高汗漫極遨遊。氣候常如九月秋。
特地從容生畫閣。中天突兀見飛樓。
臨濠自有觀魚樂。盡室還無入峽愁。
霽月光風猶灑落。眞源終古大川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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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依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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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고(觀我齋稿) 조영석(趙榮祏)생년1686년(숙종 12)몰년1761년(영조 37)자종보(宗甫)호관아재(觀我齋), 석계산인(石溪山人)본관함안(咸安)특기사항이희조(李喜朝)의 문인. 이병연(李秉淵), 정선(鄭敾), 안중관(安重觀) 등과 교유
觀我齋稿卷之一 / 詩 / 光風樓
*趙榮祐 通訓大夫戊午( 1738,영조14 )宰興學校正名分民懷其德吏服其威癸亥(1743,영조19)遞
영조 | 14 | 1738 | 무오 | 乾隆 | 3 | 53 | 11월, 安陰 縣監이 되다. |
逈臨平野望依依。去馬來牛所見微。
不斷源泉當檻過。有時沙鳥傍簾飛。
南方氣煖耕農早。峽縣春深訟獄稀。
太守元來官不薄。𠝶看山色一樓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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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곡집(牧谷集) 이기진(李箕鎭)생년1687년(숙종 13)몰년1755년(영조 31)자군범(君範)호목곡(牧谷)본관덕수(德水)시호문헌(文憲)특기사항김진상(金鎭商), 김원행(金元行), 윤봉조(尹鳳朝) 등과 교유
牧谷集卷之一 / 詩 / 少坐光風樓。次主守趙宗甫 榮祏 韻。
영조 | 14 | 1738 | 무오 | 乾隆 | 3 | 52 | 1월, 이조 참판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 2월, 부제학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 7월,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
영조 | 15 | 1739 | 기미 | 乾隆 | 4 | 53 | 7월, 부제학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 8월, 공조 참판, 대사헌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 10월, 형조 판서가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
郡樓孤逈小山依。坐處尋常滴翠微。
雨足岸花迎客笑。日暄沙鳥近人飛。
煙霞有契征驂駐。原隰偸閒案牘稀。
認是前脩心所樂。眞源一水檻邊圍。
樓下水。發源尋眞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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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東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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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와집(訥窩集) 이약열(李若烈)생년1765년(영조 41)몰년1836년(헌종 2)자겸회(謙會)호눌와(訥窩)본관성주(星州)특기사항이존수(李存秀), 이익회(李翊會), 김이교(金履喬), 김이재(金履載) 등과 교유
訥窩文集卷之二 / 詩 / 題光風樓
순조 | 27 | 1827 | 정해 | 道光 | 7 | 63 | 4월, 정언이 되다. |
~ | - | ~ | ~ | ~ | - | ~ | 관직에서 물러난 뒤 牧溪에 집을 짓고 학문을 논하다. ○ 頭流山, 慶州, 安陰 三洞, 南海 錦山 등을 유람하다. |
絃歌耕鑿巷西東。遺愛千秋一蠧翁。
佗夜更宜乘霽月。玆樓今始坐光風。
心香細襲濂庭草。琴韻淸生卲砌桐。
函席周旋嗟異代。徒然寄想畫圖中。
*訥窩文集卷之二 / 詩 / 春生亭。次趙使君 鎭翼 韻。
遊從賢太守。何似上滁亭。水活潛鱗出。花深好鳥停。坐仍邀月白。憑又對山靑。信宿猶餘趣。歸驂駐晩汀。
*訥窩文集卷之二 / 詩 / 涵碧樓。與趙使君同遊。
飛樓縹緲勢𢥠然。未及登臨破我眠。半日風流遊客住。十分春色使君傳。虬龍尙護巴翁筆。書畫新堆米子船。一任凉飈征袂擧。何須去問十洲仙。
승정원일기 1991책 (탈초본 104책) 순조 10년 12월 27일 정미 16/40 기사 1810년 嘉慶(淸/仁宗) 15년
吏批의 관원현황
曺文檢爲金浦郡守, 趙鎭翼爲陜川郡守,
訥窩文集卷之三 / 詩 / 記遊九十五韻 權維則,權德若,族姪君應,再從姪而元,朴戚伯憲,鄭戚季章偕焉。
顧我非跛躄。遠遊緬紫陽。約同枌社伴。期在水雲鄕。數是二三過。年皆七十量。*1825,손조25
介村成信宿。藍院襲芬芳。路出花林縣。樓高水月坊。光風樓。 登臨千景領。憑眺百愁忘。惹興呼深酌。凌空上小航。
樾自新羅茂。樓因學士彰。樓與樾皆孤雲所創云。 使君惟故舊。行子蹔周章。時金履鋼綱哉。作宰歷訪。 倒屣仍延座。呼廚且促觴。息煩揮鴈鶩。爲挽進施嬙。* 金履鋼
국역) 왕산지 : 王山誌 / 시조왕 유허비 사실
함양관청에서 영문에 보고한 글 병술(丙戌:1826) 2월 2일 / 군수 김이강(金履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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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齊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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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집(錦谷集) 송내희(宋來熙)생년1791년(정조 15)몰년1867년(고종 4)자자칠(子七)호금곡(錦谷)본관은진(恩津)특기사항김귀순(金龜淳), 김흥근(金興根) 등과 교유
錦谷先生文集卷之一 / 詩 / 光風樓
高樓縹緲與雲齊。踏盡欄頭十二梯。
歷歷長橋人影少。蒼蒼平楚鴈聲低。
山形磅礴淸溪北。井落參差畫棟西。
徙倚渾忘歸路遠。盡收風景入窮睇。
*錦谷先生文集卷之一 / 詩
太古亭 庚寅(1830,순조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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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樓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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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坡遺稿(죽파유고)文在琳(1789 ~ 1848)竹坡遺稿卷之一 / 詩 / 登光風樓 午憩于安陰縣因登光風樓樓在水邊甚宏麗又有齊月堂蓋連楣而異名也仰觀璧上記文則尤庵先生作之而一蠹先生建之也
無邊風月一高樓 宛在濂溪水上頭
簾外雲烟三洞近 檻前魚鳥一川幽
稻梁滿夜民生足 梧柳垂庭客意悠
二老襟懷何皎潔 夕陽吟弄下長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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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암집(進菴集) 정교(鄭墧)생년1799년(정조 23)몰년1879년(고종 16)자중교(仲喬)호진암(進菴), 하하재(下下齋)본관청주(淸州)특기사항강연흠(姜淵欽), 송천흠(宋天欽), 최효술(崔孝述) 등과 교유
進菴先生文集卷之一 / 詩 / 光風樓
철종 | 9 | 1858 | 무오 | 咸豐 | 8 | 60 | 7월, 姜淵欽 등과 石田津에서 뱃놀이하고 시를 짓다. |
扁額光風近水樓。暮春歸客坐欄頭。
川聾混混晴雷動。山勢重重別界幽。
嫰柳浮金連十里。白鷗飜雪下雙洲。
廬山吟弄千年後。始識河南興不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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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風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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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인집(澹人集) 신좌모(申佐模)생년1799년(정조 23)몰년1877년(고종 14)자좌인(左人), 좌보(左輔)호담인(澹人)본관고령(高靈)특기사항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허전(許傳), 홍재혁(洪在赫) 등과 교유
澹人集卷之八 / 詩○嶠南紀行 / 光風樓
고종 | 6 | 1869 | 기사 | 同治 | 8 | 71 | 3월, 嶺南을 방문하여 海印寺, 嶺南樓, 閑山島 등을 유람하다. ○ 동지경연사가 되다. <嶠南紀行序> 往歲己巳。先君退老于文山之鄕廬。 |
一般明月一般風。光霽濂翁又蠧翁。
竗契相符千載下。嘉名特揭一樓中。
長烟滿地春江碧。芳草連天夕照紅。
遠客登臨如可挹。頭流山色滿簾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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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蒸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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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고집(月皐集) 조성가(趙性家)생년1824년(순조 24)몰년1904년(고종 41)자직교(直敎)호월고(月皐)본관함안(咸安)특기사항기정진(奇正鎭)의 문인. 정태원(鄭泰元), 이최선(李最善), 김녹휴(金祿休),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 등과 교유
月皐先生文集卷之二 / 詩
甲戌六月。與鄭雙洲,權醉蓮 秉太 及舍季京回。二十六首。/ 光風樓
瘦骨崚嶒溽暑蒸。光風吹我好樓登。
尤翁筆力丘山重。蠧老胷襟水月澄。
四野桑麻田漠漠。千年猿鶴洞層層。
東華心馬前宵殺。此地尋眞庶可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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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舟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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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미당집(明美堂集) 이건창(李建昌)생년1852년(철종 3)몰년1898년(고종 35)자봉조(鳳朝), 봉조(鳳藻)호명미당(明美堂), 영재(寧齋), 담녕재(澹寧齋), 결당거사(潔堂居士)본관전주(全州)특기사항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 등과 교유
明美堂集卷六 全州李建昌鳳朝著 / 詩○補遺 / 家弟於東川。新作一小舟。當在第四卷荷風竹露云云之下。
峽人頭白不知舟。一帶東川可泳游。
斤斧偶成閒事業。琴樽贏取小風流。
孤篷得月偏宜夜。短櫂追凉早覺秋。
管領名山三萬疊。此間還有蠧翁樓。
看盡頭流三萬疊。孤舟又下大江流。鄭一蠧句。
光風樓。一蠧知縣時所作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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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象學 己卯(1879,고종16)宰辛巳(1881,고종18)移 < 安義邑誌 宦蹟>
고종 | 16 | 1879 | 기묘 | 光緖 | 5 | 28 | 2월, 閔泳翊의 도움으로 유배에서 풀려나다. |
고종 | 17 | 1880 | 경진 | 光緖 | 6 | 29 | 3월, 홍문관 부교리가 되다. ○ 10월, 사간원 사간이 되다. |
고종 | 18 | 1881 | 신사 | 光緖 | 7 | 30 | 4월, 問事郎廳이 되다. |
고종 | 19 | 1882 | 임오 | 光緖 | 8 | 31 | 6월, 書狀官이 되다. ○ 7월, 대원군의 행차 때 護行官이 되다. ○ 8월, 통정대부가 되다. 특명으로 知製敎의 직함을 영구히 겸대하다. ○ 경기 암행어사가 되다. |
고종 | 20 | 1883 | 계미 | 光緖 | 9 | 32 | 여름, 암행어사에서 돌아오다. |
고종 | 21 | 1884 | 갑신 | 光緖 | 10 | 33 | 1월, 사간원 대사간이 되다. ○ 3월, 모친상을 당하다. 서울에서 江華로 返葬하다. |
고종 | 23 | 1886 | 병술 | 光緖 | 12 | 35 | 〈韓狗篇〉을 짓다. |
고종 | 24 | 1887 | 정해 | 光緖 | 13 | 36 | 3월, 형조 참의가 되다. ○ 8월, 병조 참지가 되다. |
고종 | 25 | 1888 | 무자 | 光緖 | 14 | 37 | 1월, 부친상을 당하다. 梁山에서 返柩하다. |
소휴수초는 1883년부터 1887년까지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승정원일기 2893책 (탈초본 133책) 고종 18년 10월 29일 무자 35/66 기사 1881년 光緖(淸/德宗) 7년
○ 政事, 以李𨯶永爲敦寧都正, 韓章錫爲大司成, 金元植爲知經筵, 李憲稙爲知春秋, 尹宇善爲同經筵, 申楨爲軍器副正, 宋淳爀爲慶基殿令, 李應達爲內贍主簿, 奇亮淵爲典設別提, 李愚冕爲東學敎授, 李珪永爲江界府使, 李象學爲安義縣監,
승정원일기 2950책 (탈초본 135책) 고종 23년 7월 29일 기미[경신] 28/38 기사 1886년 光緖(淸/德宗) 12년
○ 都政, 吏批, 判書朴齊寬進, 參判未差, 參議金喆熙進。(○) 以洪承翼爲司饔別提, 尹榮斗爲南部令, 李會元爲永陵令, 閔致駿爲錦山郡守, 李承泌爲扶安縣監。 典籍五單朴治恒·玄圭根·全錫九·黃一龍·李性默。 以金炳迪爲監察, 李應達爲贊儀, 李象弼爲社稷令, 李鶴䄵爲林川郡守, 曺慶承爲金城縣令, 黃浩錫爲禧陵令, 鄭基廈爲寧陵令, 李寬稙爲永柔縣令, 韓鎭庠爲陽城縣監, 李文榮爲永禧殿令, 愼在範爲順陵令, 申泰鼎爲綾州牧使, 李哲應爲和順縣監, 南順元爲延日縣監, 朴文夏爲尙瑞別提, 朴敎陽爲宗廟令, 鄭舜鎔爲雲山郡守, 李象學爲恩津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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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風樓 修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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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軒集(기헌집)金基鎔(1869 ~ 1947)幾軒集卷之一 / 詩 / 光風樓次板上韻
蠹老何年始建修 佳山麗水又名樓
簷前野色如藍滴 檻外江聲噴玉流
冶女歌多粧妙態 使君華蓋賸淸遊
錢塘千古名雖藉 想入公評不讓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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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齋先生文集(수재선생문집)金在植(1873 ~ 1940)修齋先生文集 / 詩 / 暮登安陰光風樓次板上詩
昔聞蠹翁畵閣修 夕陽歸客暫登樓
六螺群巘簾中出 數曲淸江簷下流
茂樹婆娑靑島睡 襟懷澹蕩白雲遊
遠村日落山容寂 步出東阡南陌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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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모유고(晩慕遺稿) 정기안(鄭基安)생년1695년(숙종 21)몰년1775년(영조 51)자안세(安世)호만모자(晩慕子)본관온양(溫陽)초명사안(思安)시호효헌(孝憲)특기사항이영보(李英輔), 이기진(李箕鎭), 이태중(李台重) 등과 교유
晩慕遺稿卷之一 / 詩 / 學士樓。次板上韻。樓在咸陽。崔孤雲昔宰是邑。搆此樓故名焉。
危樓搔首問高天。學士今爲第幾仙。
白鶴不歸留古郭。靑山長在遶華筵。
雅音海外詩三百。陳跡人間歲一千。
謠俗尙傳分竹地。望中桑麥想當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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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집(澗松集) 조임도(趙任道)생년1585년(선조 18)몰년1664년(현종 5)자덕용(德勇)호간송(澗松)본관함안(咸安)초자치원(致遠)특기사항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곽재우(郭再祐), 정온(鄭蘊), 이후경(李厚慶), 문위(文緯), 허목(許穆) 등과 교유. 생육신(生六臣) 조려(趙旅)의 5대손
澗松先生續集卷之一 / 詩○七言律詩 / 嶺南樓。次板上韻示同遊諸子。
危樓縹緲泬寥天。萬象森羅一望前。
野闊山遙風未歇。鳶飛魚躍理無邊。
心虛止水涵宵月。興入長林帶暮煙。
佳處又逢名勝士。小船樽酒更張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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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집 제2권 / 시(詩) / 영남루에 제하다〔題嶺南樓〕
고루에 올라 조망하니 하늘 위에 오른 듯 / 高樓登眺若登天
경물이 현란하게 뒤에 있다가 홀연히 앞에 / 景物紛然後忽前
바람과 달이 맑은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 風月雙淸是今古
산과 내는 십 리에 걸쳐 한복판과 변두리에 / 山川十里自中邊
가을 깊은 관도엔 단풍나무 어른어른 / 秋深官道映紅樹
날 저무는 어촌엔 흰 연기 모락모락 / 日暮漁村生白煙
객자 길게 읊조리며 시를 짓지 못했는데 / 客子長吟詩未就
원님이 마침 연회를 열고 불러주셨도다 / 使君尊俎秩初筵
[주-D001] 경물(景物)이 …… 앞에 : 사방에 펼쳐진 경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아름답다는 말이다. 안연(顔淵)이 스승인 공자의 덕에 대해서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눈앞에 있다가 홀연히 등 뒤에 있기도 하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라고 칭송한 말이 《논어》 〈자한(子罕)〉에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 주희가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황홀해서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라고 해설하였다.[주-D002] 원님이 …… 불러주셨도다 : 원문의 ‘준조(尊俎)’는 술과 고기를 담는 그릇으로, 보통 연석(宴席)을 뜻한다. 《시경》 〈소아 빈지초연(賓之初筵)〉에 “빈객이 처음 연석에 나아감에, 좌우로 앉은 모습 질서 있도다.〔賓之初筵 左右秩秩〕”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위의가 정중함을 의미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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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집(浩亭集) 하륜(河崙)생년1347년(고려 충목왕 3)몰년1416년(조선 태종 16)자대림(大臨)호호정(浩亭)본관진주(晉州)시호문충(文忠)특기사항이색(李穡)의 문인, 태종(太宗) 묘정에 배향
浩亭先生文集卷之一 / 詩 / 嶺南樓 在密陽
誰搆岑樓上接天。壁間題詠盡盧前。
流年滾滾臨川裏。往事悠悠倚柱邊。
十里桑麻深雨露。一區山水老雲煙。
晚來已見斜陽好。月滿長江更▦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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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滿長江更▦筵。->月滿長江更肆筵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卷二十六 / 慶尙道 密陽都護府 樓亭 嶺南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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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義邑誌(안의읍지)安義邑-安義邑誌[誌]題詠
題詠 東軒 裵屯詩曰
山陰朝發暮安陰 獨倚東軒秋夜深
一點客燈明半壁 數聲村笛隔前林
興亡萬古山依舊 榮辱千般雪滿簪
未報聖恩嗟已老 三峰漢水入長吟
光風樓
曹伸贈一蠹詩曰
花林雖僻縣 淳朴有古風
○觀察使林墰詩曰
霽月堂空廢 光風樓獨存
千年仰遺躅 一脈見眞源
自在無邊景 微深這裏言
登臨多警省 斗覺爽昏煩
○石谷成彭年詩曰
嶺外仙區說我陰 光風山水更淸深
龍門白石還明月 鶻岳丹霞半綠林
地怪靈芝春長至 廚香班筍日烹簪
使人登眺多留躅 退老當年亦越呤
○竹軒曹淑詩曰
羈旅三年滯海濱 鏡中華髮與時新
裁詩倚醉悲南極 遺興登樓望北辰
月霽風光心浩蕩 山明水秀俗厖醇
歸田願結鷄豚社 自擬忘榮傲世人
縣監張世南詩曰
三洞名區別有天 一樓風月浩無邊
漠漠田間飛白鷺 磷磷石上瀉晴川
西園竹樹宜疎雨 東嶺山嵐和暮烟
蠹翁去後今吾至 此樂寥寥二百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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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文集卷之九 / 書 / 答李相國 浚慶○己未
명종 14 1559 기미 嘉靖 38 59 2월, 말미를 내어 고향으로 내려와 焚黃하다. ○ 3월, 배를 타고 귀향하는 도중 龜潭에서 李之蕃, 丹陽 郡守 黃俊良과 함께 유람하다. ○ 7월, 사직하여 공조 참판에서 체차되어 동지중추부사가 되다. ○ 9월, 「古鏡重磨方」이 완성되다. ○ 12월, 「宋季元明理學通錄」의 편찬을 시작하다.
滉謹齊沐再拜言。頃者。安奇察訪來見。傳致鈞翰。惶悚伏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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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文集攷證卷之四 / 要存錄 / 九卷八板
答李相國 時先生以焚黃請告。病未還朝。累疏辭參判。以樞職在鄕。
安奇 時安陰居李亨慶爲察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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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 선조 11년 무인 > 1월 29일 > 최종정보
선조 11년 무인(1578) 1월 29일(신사)
11-01-29[01] 헌부가 호군 이현배, 산음 현감 이형경을 탄핵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호군(護軍) 이현배(李玄培)가 북경에 갈 때 별군관(別軍官)을 계청할 적에 두 번씩이나 천청(天廳)을 번거롭게 하였으니 불가할 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일행의 체아(遞兒)의 직임에 있어서도 모두 제 마음대로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였으니, 거만스럽게 편리한 대로 한 습관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산음 현감(山陰縣監) 이형경(李亨慶)은 본가(本家)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우니 반드시 폐를 끼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체차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현배는 아뢴 대로 하라. 수령의 현부(賢否)는 그 집의 원근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고을과 서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승창 (역) | 1986
○辛巳/府啓: "護軍李玄培赴京時, 別軍官啓請, 不但再瀆天聽爲不可, 至於一行遞兒之任, 亦皆任情與奪, 偃然自便之習, 不可不懲。 請命推考。 山陰縣監李亨慶, 距本家甚近, 必多貽弊, 請命遞差。" 答曰: "李玄培依啓。 守令之賢否, 不係於其家之遠近, 然與他邑相換爲可。"
첫댓글 退溪先生文集卷之九 / 書 / 答李相國 浚慶○己未
명종 14 1559 기미 嘉靖 38 59 2월, 말미를 내어 고향으로 내려와 焚黃하다. ○ 3월, 배를 타고 귀향하는 도중 龜潭에서 李之蕃, 丹陽 郡守 黃俊良과 함께 유람하다. ○ 7월, 사직하여 공조 참판에서 체차되어 동지중추부사가 되다. ○ 9월, 「古鏡重磨方」이 완성되다. ○ 12월, 「宋季元明理學通錄」의 편찬을 시작하다.
滉謹齊沐再拜言。頃者。安奇察訪來見。傳致鈞翰。惶悚伏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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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文集攷證卷之四 / 要存錄 / 九卷八板
答李相國 時先生以焚黃請告。病未還朝。累疏辭參判。以樞職在鄕。
安奇 時安陰居李亨慶爲察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