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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5장 14-31절
14.『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아말렉에 뿌리박혔다는 말은 아말렉이 살던 장소를 점령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에브라임, 베냐민 백성 중에 너를 따르는 자들 소수인원이 나와 에브라임에 속해서 전쟁을 수행하고, 마길, 스불론, 잇사갈 지파는 방백들이 나와 참전했고, 바락과 함께 스불론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였다. 반면 참여하지 않은 지파는 꾸짖는다. 에브라임 지파 중 이번 전투에 참가한 자들은 전에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의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베냐민 사람들은 일개 지파의 자격으로서 참전하지 하지 않고 대신 그들은 여러 지파들 틈에 섞여 개인적으로 참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아마 그들이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탓에 북부 지역의 지파들과는 달리 야빈의 압제를 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야빈과의 전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일부 사람들만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마길은 므낫세의 독자였다. 그런데 이 마길의 자손, 곧 므낫세 지파 중 절반은 요단 동편에 정착하였으며, 나머지는 요단 서편에 들어갔다. 따라서 마길이라는 표현은 이 중 요단 서편에 거한 므낫세 반 지파만을 의미한다. 이 지파는 아셀, 스불론 그리고 잇사갈 지파와 북쪽 경계를 이루며 살았으므로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는 다볼 산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편 여기서 '다스리는 자들'이란 군대의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이는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군 지휘관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내려왔음을 알려 준다.
“스블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대장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페르'는 '계수하는 자 또는 서기관' 등의 뜻이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서기관은 전시에 국민을 초모하는 일도 맡아 보았으니, 스불론 지파는 그 전쟁에 있어서 서기관의 직무를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15-16.『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큰 결심이 있었다는 말은 자신의 이득 계산으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안 나간 것을 이른다. 하나님도 일어서서 내려오신 전쟁에 너희가 앉아있음이 어찜이냐는 것이다. 르우벤 지파의 그 마음을 드보라가 읽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시고 계시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마음에 갈등만 하다가 나가지 않는 그런 비겁한 어리석은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 지파도 스불론, 납달리 지파(4:6,10)를 돕기 위해 드보라와 행동을 같이 하였으며 친히 방백들이 자기 지파를 인솔해 나온 것을 가리킨다. 잇사갈 지파가 바락의 군사와 더불어 시스라 군대를 치기 위해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로 내려간 것이다.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요단 동편 땅에는 시내가 많이 있었고, 그에 따라 목초지가 널려 있었다.따라서 드보라가 르우벤 지파의 지경을 가리켜 르우벤의 시냇가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이 때문이다. 르우벤 지파는 타지파로부터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큰 결심이란 표현은 16절의 '마음에 크게 살핌'(히크레 레브)이란 표현처럼 그들이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르우벤 지파가 다른 지파의 전쟁 소식을 듣고도 평안한 목자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음을 비꼬는 내용이다. 즉 다른 지파들은 전쟁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들 참전, 전쟁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르우벤 지파는 편안히 목자의 피리부는 소리를 들으며, 단지 탁상 공론만을 벌였다는 것이다.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르우벤 지파는 갓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에서도 특히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요단 서편 땅에서 기업을 차지하지 않고 요단 동편의 모압 북방 지역을 기업으로 차지한 까닭도 그 때문으로서, 그곳은 목축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 르우벤 지파가 한가로운 목가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즉 저들은 요단강 건너편의 소식과는 무관한 채 목자들이 가축을 치면서 부는 피리 소리나 들을 정도로 평안을 구가하셨던 것이다.“마음을 크게 살핌이 있도다” 15절의 '큰 결심이 있었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17.『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길르앗은 넓은 의미에서 요단 강 동편의 전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중심부는 갓 지파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므낫세 반 지파, 남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에까지 뻗쳐있는 요단 동편의 산지가 곧 길르앗이다. 그런데 이 중 르우벤 지파는 이미 언급되었으니, 여기서 길르앗이란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드보라는 이들 지파 역시 요단 동편땅에 거하면서 동족의 전쟁에 조력지 않았음을 책망하고 있다.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이 표현은 단 지파도 르우벤 지파나 갓, 므낫세 반지파와 같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활을 즐기고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배에 머무르다'라는 표현은 단 지파가 뱃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베니게 사람들과 함께 욥바에서(수 19:46) 무역을 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으로 보아 단 지파는 이때까지는 아모리족에 밀려 팔레스틴 최북방의 라이스 지방으로 쫓겨나지 않은 것 같다.
배에서 머무름은 전쟁에 안 오고 사고팔고 장사만 했다는 말이다. 해변에 앉아서 항만에 거주하는 것은 상업에만 종사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여기서 해빈과 항만은 각기 지중해변을 가리킨다. 아셀 지파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야빈의 압제가 가장 심했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에 연접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동족들의 전투에 무관심하며 자기들의 생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18-19.『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들의 높은 곳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정예 부대 만 명이 집결했던 다볼 산을 가리킨다. 그곳에서 스불론, 납달리 지파는 시스라 군을 맞이하여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용감히 싸웠던 것이다.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왕들은 북부 가나안의 여러 동맹군을 지휘하여 싸우러 온 시스라 및 동맹군들의 군사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때에도 하솔 왕 야빈은 북부 가나안 지경에 거주하던 열왕들과 동맹군을 형성해서 여호수아의 군대와 메롬 물가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
므깃도 물가는 므깃도와 남쪽 산지사이, 즉 므깃도 후방의 분지로 흘러 들어가는 마른 계곡인 와디를 가리킨다. 이곳은 우기때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른다. 따라서 므깃도 물가는 기손 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아낙은 '므깃도'에서 불과 8km도 채 안되는 이스르엘 계곡의 남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 기손 강은 평지를 지나 므깃도와 다아낙의 북부로 흘러 들어갔다.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은에 해당하는 케세프는 구약 시대 당시 화폐로 통용되었던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쟁시 취하는 전리품이나 노획물 따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시스라와 그 동맹군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고자 하였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진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20.『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 앞에서 일으키신 바람과 벼락, 폭풍우와 우뢰로 인하여 원수들이 진멸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곧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 주신 사실에 대한 노래인 점이다. 하나님께서 대자연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도우신 사실에 대한 시적 표현인 것이다. 역사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파하기 위해 사용하신 자연 현상들은 바람, 하수, 뇌성, 우박, 숯불, 번개등 아주 다양하다.
21.『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서는 메말라 있었으므로 시스라의 군대가 그 주변에 주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강을 범람케 하셨으니 시스라의 무리들은 표류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때 시스라의 군대는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인해 우왕 좌왕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군대를 칼로 쳐 파했었다.
“기손 강은 옛 강이라” 기손 강은 드보라시대에 이미 옛날의 어떤 사건들과 연관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밟았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드레키가 명령형인 점에 근거하여, 시스라와의 전쟁 당시 드보라가 힘차게 이스라엘 군을 격려했던 사실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2-23.『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시스라 군이 패퇴하여 급히 도망치는 것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군이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한 것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이다. 즉 시스라 군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도망친 반면 이스라엘 군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하기 위하여 말발굽 소리도 드높게 그 뒤를 추격한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야엘에 대한 축복은 드보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대언한 것일 뿐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메로스란 지명은 본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메로스의 죄는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메로스는 기손 강 부근에 위치해 있었던 마을로 추정된다. 메로스 거민은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받고자 싸우는 이스라엘을 도와줄 의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메로스의 주민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돕지 아니하므로 간집적이나마 폐해를 끼쳤었다.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메로스를 저주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운 탓에 하나님의 축복을받은 야엘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24-25.『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겐 사람 헤벨은 모세의 장인인 르우엘과는 일족이다. 야엘에 대한 축복은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완전이 대조된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압제자와 사귀고 있었고 자신 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러한 야엘의 행동에 대하여서는 앞장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엉긴 우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므아는 두껍게 엉긴 우유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급 우유를 의미하는 할라브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발효된 우유로서 치즈를 만드는 원료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6-28.『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드보라가 야엘의 의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가냘픈 여인이 한때 이스라엘 백성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사실을 부각시켜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죽었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어 '솨다드'는 '완전히 파괴된 것,즉 전혀 소생할 가망성이 없이 완전히 죽은 상태에 이르른 것을 가리킨다. 이로써 시스라는 그 목숨 뿐 아니라 권력과 영광도 다하고 만 것이다.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이 말은 자식을 전쟁에 보낸 후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안타까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일반적인 심정을 나타낸다. 창살의 히브리어 에쉬나브는 틈을 남기다라는 말에서 온 단어로 좁은 나무나 쇠창살을 사이사이에 박아 만든 창문을 가리킨다.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처음에 시스라의 어미는 승전의 소식을 실은 아들의 병거가 늦게 오는 것에 대하여 이러한 말로 불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스라의 귀가가 한없이 늦어지자 그녀의 불평은 오히려 불안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라는 말을 반복하며 근심과 걱정에 쌓였던 것이다.
29-30.『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드보라가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한 시녀들을 가리켜 지혜로운 시녀들이라고 언급한 것은 역설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즉 그녀들은 시스라가 전리품을 많이 탈취하느라고 이렇게 늦을 것이라는 말로써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하였다. 하지만 정작 시스라는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이미 죽고 말았으니 그녀들의 생각과 위로의 말은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시스라가 적들과의 싸움에서 당연히 승리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시스라는 전쟁 때마다 승승 장구하여 많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왔었기에 시스라의 어미와 시녀들은 이번에도 그가 굉장한 전리품을 가지고 오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드보라는 이 표현을 통해 시스라가 전쟁에 능한 자임을 설명하면서 그러한 그를 죽인 야엘의 용기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시스라와의 싸움에서 이긴 이스라엘의 승리가 매우 값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전쟁시 여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노예로 삼거나 아니면 첩으로 삼는 경우는 고대에 흔히 있던 일이다. 그런데 시스라의 모든 병사들이 제각기 한 두 명의 여인을 포로로 얻지 못하였겠느냐는 말은 곧 시스라군이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굉장한 전과를 올렸을 것이라는 뜻이다.
채색옷에 해당하는 '리크마'는 다앙한 색깔의 자수품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옷감의 안팎을 손이나 베틀로 수놓아 만든 옷을 가리키는데 고대에는 매우 값비싸 주로 상류 계층 사람들만 착용 했었다. “노략한 자의 목” 노략한 자는 시스라를 가리키며 그가 승리를 기념하여 채색옷을 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1.『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즉 이스라엘의 대적이자 하나님의 대적인 시스라를 망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든 대적들을 그와 같이 처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자들에 대해서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미래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축복해 달라는 의미이다.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이것은 전쟁의 결과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은 전쟁 이후 드보라가 살았던 기간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았던 기간을 지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