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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땅 성실부동산 010-7179-5242
박철훈/현도D&C 대표: 굉장히 좋은 시장이었기 때문에 이효리 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 다음에 중국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넘어오고 관광하면서 이민 투자같이 5천만 원, 10억 투자하면 제주도 시민권을 준다. 그래 가지고 그때는 굉장히 건설경기가 좋았고 골조만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분양이 완판 될 정도로 경기가 좋았었습니다. 도산한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IMF 때보다 더 힘들다…굉장히 높은 고금리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고금리 때문에 현장에서 저희도 금리가 올라가다 보니까 건설하면서 들어간 비용에 대한 이자 부담이 큰 입장이고 집을 사는데 수분양자들도 많이 망설이고 있고요. (휴안 애월 2차 분양 전세가능)
내레이션/이승현 아나운서: 골조만 올라가도 팔리던 집이 이젠 다 지어도 팔리지 않습니다.
박철훈: 전체 24 세대고요. 지금 이렇게 표시되어 있는 게 분양된 세대들입니다.
취재진: 표시가 됐다는 건 어떤 표시입니까?
박철훈: 지금 이 하트 표시를 이렇게 해놨잖아요.
취재진: 그러면 다른 집들은?
박철훈: 미분양입니다. 주방도 지금 벽체가 보통 이렇게 안 하는데
취재진: 여기도 방이 있고
박철훈: 네, 여기도 방이 있고 시스템 에어컨 설치되어 있고요 이런 부분들이 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거거든요.
취재진: 대리석이면 사실 건물 지을 때 일반 건축자재보다 조금 비싼 거예요? 어떻습니까?
박철훈: 다른 자재들보다는 조금 비용은 많이 들어가지만 사시면서 관리하기에는 조금 편하기 때문에 여기 식기 세척기, 하이브리드 쿡탑, 광파 오븐, 전자레인지-그릴-오븐 다 될 수 있는 거고 이거 4도어 삼성 냉장고---분양률 높이려고 일부러 빌트인 가전제품에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내레이션: 돈은 더 들었는데 분양가에 맞춰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암호화폐로 분양대금을 받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습니다.
박철훈: 집을 구매한다는 게 금방 결정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한테 일부 세대를 이용해서 (무료로) 한 달 살기라든가 해서 여기는 제주도보다 보니까 중국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사고 있거든요. 근데 그분들이 국제 송금할 때 시간도 좀 걸리고 복잡한 그런 관계들을 간소화시키기 위해서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겠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내레이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하루 하루,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이 시대가 야속하기도 합니다.
취재진: 박 대표님은 이 때가 참 좋았다고 느끼는 시기가 있습니까?
박철훈: 2014년도, 그때가 제주도에 가장 호황기였던 거 같아요. 사업하는 사람들이 잘 되던 시기가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시기 아닐까요. 제가 94학번이에요. 학생이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은 경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정이라든가 낭만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현실적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이라든가 그런데 좀 각박한 것 같고, 그때는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도 지금 어려운 사람이지만 기회가 조금 더 많이 있었지 않았나
(현대 25소7247 그랜저 승용차 등장) 한강신화의 종말 끝의 시작
취재진: 뒤에 있는 차량 뭔지 아세요?
허준영/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추억의 각 그랜저입니다. 동네에 그랜저가 너무 좋고 비싼 차여서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랜저가 서 있으면 친구들끼리 어디에 그랜저 서 있다 그래서 그리로 보러 가고 사실 어린 마음에 만져 보고 싶었는데 만져 보지 못 했고요. 각 교육청에서 선생님들에게 그랜저는 웬만하면 몰고 다니지 말라고 위화감 조성한다고 몰지 말라고 나왔던 기사도 기억이 납니다.
취재진: 1세대 그랜저가 나왔던 시기가 1986년도부터 1992년도까지 더라고요. 당시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였나요?
허준영: 그때 많이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백화점도 많이 생기고 사람들이 나가서 물건구매하는 것도 점점 고급 스러워지고 그런 것들이 조금 느껴졌던 초반기가 아마 1980년대 후반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레이션: 그 시절 공부하든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들,
이희재/1983년 대학입학: 대학생들은 취업보다도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또 한 부류는 그 나름대로 낭만 찾으려고 왜냐하면 1학년, 2학년은 노는 학년이에요. 그래서 왜 춘천 가다 보면 대성리, 현리 이런 데 있잖아요. 미어 터졌죠. 그때 노래하고 가서 술 먹고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몰라요.
사회인1: 화실에 있는 형이 대학생활을 하면 여자 친구를 사귀어야 된데요.
사회인2(뽀빠이): 어떤 남학생의 소지품을 고르고 싶으세요?
사회인3: 취준생이란 말 자체가 없었고요. 취직은 골라서 가는 시대였습니다. 학교 교무처에 가면 각 기업에서 입사지원서를 쭉 갖다 깔아놔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것 갖다가 쓰고 보통 서너 군데 다 취업하죠. 그래서 골라 가는데
내레이션: 싱그러웠던 젊음의 추억은 자부심으로 남았습니다.
취재진: (서울역 앞 대우빌딩) 뒤에 있는 건물이 굉장히 각별한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인연이 있는지 설명 좀 해주세요.
이희재/前 ㈜대우직원: 제 청춘을 받쳤던 옛날 대우그룹 본사고요. 저기는 개인적으로도 제가 결혼했던 장소입니다. 토요일, 일요일에 대우그룹 직원을 대상으로 결혼식을 했었어요. 제 고향이 경기도 이천인데 아들이 대우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아버지가 자랑할 만하지 않겠어요? 혼주가 대우에서 결혼한다고 폼나잖아요.
취재진: 그때만 해도 대우하면---
이희재: 좋았죠, 방송사에서도 무슨 경제 이슈있으면 우리 사무실 와서 카메라 들이대고 막 그랬어요.
내레이션: 지금은 키를 맞춘 고층건물들이 여럿 들어섰지만 그땐 서울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메머드급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세계경영목표로 성장했던 대우그룹 사옥은 불이 꺼지지 않는 빌딩으로 유명했고 당시 젊은 세대들의 꿈의 직업은 상사맨이었습니다.
이희재: 부족하지 않은 급여를 받았던 것 같고요. 재테크 잘 하면 집 한 채씩은 다 가질 수 있는 그런 시대였던 것 같아요. 저만 해도 (대우그룹 입사후) 5년 만에 집 한 채 장만했거든요.
(대우본사 직원)단체구호: 나가자! 나가자! 싸우자! 싸우자! 이기자! 이기자!
내레이션: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희재: 대우그룹이 가지고 있던 해외 지사와 법인이 600개였는데 금방 2000개 되니까 너희들 열심히 해서 나가서 법인장 해라. 더 열심히 일하고 쌓아서 회사하고 같이 발전하자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내레이션: 국내 대기업들이 패기 하나로 해외시장을 개척할 때 때마침 하늘도 우리 편이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前소련 대통령(1991년): 독립국가 연합의 설립에 따른 이 상황에서 저는 소련의 대통령직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김현철/서울대 국제대학원장: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됨으로 해서 그 사이에 소련 진영과 자유 민주주의 진영으로 나눴던 이런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됐거든요. 세계화 현상이라고 합니다마는 그 사이에 우리나라가 통상국가로 성장하면서 익혔던 모든 노하우들이 갑자기 세계화된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더욱 더 진출하면서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던 거죠.
내레이션: 경쟁제품은 알아서 견제를 헤줬습니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물가 상승화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스태그플레이션-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미국은 국제시장에서 미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일본 엔화 가치를 올리는 플라자 합의를 진행합니다 (플라자 합의 1985년 9월 22일), 미국 달러 가치는 떨어졌고 반대로 엔화 가치는 높아지며 일본의 수출에는 제동이 걸렸습니다.
김현철: 일본으로서는 엄청나게 경제적 곤경으로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플라자 합의를 강요하게 됨으로써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장기 저성장으로 빠졌고 우리는 그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소위 3저 호황이라는 저금리, 저환율, 저유가라는 3저 호황속에 한국경제가 기사회생으로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당시에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한유진/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 학부장: 그 당시에 원-달러 환율이 우리나라 상황에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우리 기업들이 일본 대신 수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요. 금리 같은 경우도 기업들이 차입할 때 저금리에 차입할 수 있어서 기업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레이션: 가격 경쟁력을 잃은 일본제품 대신 우리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저금리, 저환율, 저유가 3저 후원의 혜택을 온 나라가 누렸습니다. (경축 분당시범단지 견본주택 개관 1989년 11월 25일),
백화점 관계자: 과거에는 시내 중심부에 유명 백화점이 한 2~3개 정도 있었잖습니까. 근데 근래에 와서 유명 백화점들이 많이 설립됐으니까
내레이션: 1970년대까지 절약 저축을 강조했던 사회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죠.
---국민소득은 4천불 소비수준은 2만불---
--과소비가 가정과 나라 살림을 어렵게 만듭니다---
내레이션: 과소비를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전두환/前대통령(1986.9.20): 본인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경기대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내레이션: (축 올림픽대로 개통) 86년 대회는 우리 국격과 문화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아시아는 물론 온 세계에 알리는---
사마란치/세계올림픽 사무총장: 88하계 올림픽 개최지는 서울이 결정되었습니다.
내레이션: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 경제를 세계에 알려주는 경제 올림픽에서도 금 메달 못지 않는 성과를 올린 것으로---
한국 OECD가입(1996.12.12): 우리나라가 정식으로 29번째 OECD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내레이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그러나 거품이 잔뜩 낀 영광이었습니다.
김영삼/前대통령(1997.11.):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경제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임창열/당시 경제부총리: IMF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한유진: 부채비율이 사실 이론적으로는 전체 자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게 적당하고요. 아무리 많아도 100%, 그러니까 자기 자본으로 부채를 다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게 맞는데 그때 우리나라 기업 중에 부채 비율이 가장 많은 기업은 2000%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20배인 거죠.
김현철: 개발도상국 때는 보호주의 무역을 취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선진국 일원이 되면 무역도 자유화해야 되고요. 또 금융도 자유화해야 됩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선제적으로 OECD나 이런 국제기관들의 요구 때문에 자유화 조치를 취했는데 이게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 사정하고 안 맞았던 겁니다.
내레이션: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더는 투자 명목으로 가져다 쓸 달러가 없었던 겁니다.
이희재: 우리가 외화를 가지고 나가서 해외 투자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보유 외화 잔액이 떨어지니까 달러가 오르잖아요. 시장 원리에 의해서 근데 그게 이런 상황이 되면 더 안 빌려줘요. 이상 했죠, 이게 뭐지? 멀쩡히 나가던 물품 대금이 안 나가는 거예요. 돈이 없다고, 대금을 못 주면 일 못 하는 거거든요. 다음 거래로 이어지질 않으니까. 쓸모 있는 사람부터 먼저 그만 두던데요. 제가 나오고서 한 달 동안 한 팀이 없어지던데요.
내레이션: IMF 구제금융과 부실기업정리, 구조조정으로 급한 불을 끄고 신규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비용을 줄였습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까지 회사 다니면 선방,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새까지 일하면 도둑 등 실업을 상징하는 신조어가 쏟아졌고 준비되지 않고 회사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영업을 선택하며 경제는 더 치열해 졌습니다.
실업자수(통계청)
1995-43만, 1996-43만5천, 1997-56만8천, 1998-149만, 1999-137만,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갖던 나라에서 초경쟁사회로 시대가 바뀐 겁니다.
취재진: 이후 대표님의 삶은 어땠습니까?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이희재: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대우에서 팔던 중장비 부품을 (회사에서) 나와서 제 무역회사를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하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2000년 6월), 우리나라가 한일 월드컵 4강 올라가던 날 회사를 설립했죠. 예전에 사람이 했던 거를 기계가 다해. 그런 목적으로 개발된 게 요 장비인데 (슬라이드 화면)
내레이션: 각자도생 누군가는 도태되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습니다.
이희재: 지금은 모든 경제가 나라 끼리도 서로 커플링이 돼 있습니다. 폐쇄경제를 제외한 우리처럼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서로 영향을 받아요. 저는 수출하는 쪽으로 갔죠. 어쨌든 헤쳐나가는 그런 수단을 나름 강구한 게 지금 생각해 보면 판단을 잘 했던 거 같아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50살이 넘으면 바꾸기가 참 어려운 거 같아요. 국가도 마찬가지거든요. 기본 틀을 바꾸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봅니다.
내레이션: 수출에 의존해 온 나라, 우리 경제의 기본 틀은 3저 호황으로 대표되는 (100억불 수출의 날, 1977.12.12), 80~90년대엔 (200억불 수출의 날, 대한무역진흥공사) 우리에게 기회를 줬지만 (수출 1000억불 기념-제32회 무역의 날, 무역의 거리 개통식),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문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겁니다. (윤석열-삼백만불 수출의 탑),
미국정책금리(한국은행)-22.1월-0.205, 24.1월-5.500
제롬 파월/미국 연준 의장(24.4.16):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확신을 얻기 까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원-달러 환율 (한국은행) 21.1월-1090, 21.10월-1450, 24.1월-1300
이창용/한국은행총재(4.19): 이스라엘이 이란에 반격함으로써 굉장히 흔들렸다가 그로 인해서 더 확전되지 않을 거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다시 안정되는 많은 불확실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OECD 식료품 물가상승률(OECD 3월기준) 1위 튀르키예 70.41%, 2위 아이슬란드 7.14%, 3위 한국 6.66%, 4위 노르웨이 6.07%, 5위 그리스 5.31%
최상묵/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4.18): 전체적인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을 때가 6%를 넘었지만 (지금은) 3%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또 일부 품목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민생이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허준영: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저희가 벌어진 일을 생각해 보면 봉쇄를 하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고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생산 활동이 중지 되면서 GDP가 굉장히 빠르게 떨어졌던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고요. 거기다가 2022년 2월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개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코로나 이후에 붕괴됐던 공급망이 더 크게 손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공급망 붕괴로 인한 인플레이션에다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이후에 재난 지원금이나 저금리 등으로 아주 많이 시장에 유통되게 된 풍부한 유동성 이런 것들이 결국은 맞물려서, 高인플레이션 2022년부터 겪었던 高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는 거 같고요.
내레이션: 그 사이 세계 경제성장률은 크게 떨어지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허준영: 80년대도 한 8% 정도 평균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90년대에는 이게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가 넘는 성장을 했던 게 90년대 고요. 하지만 2000년대로 들어오면 성장률이 5% 밑으로 떨어지고 2010년대에 오면 저희가 低성장으로 생각하는 성장률이 3%대로 들어오게 됩니다. 초등학생 때는 키가 굉장히 빨리 자라지만 점점 성인에 가까우면 키가 자라는 속도가 더뎌지지 않습니까. 경제도 마찬가지로 덩치가 커지면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서 좀 걱정스러운 부분은 그 성장률이 떨어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레이션:” 특히 지난 해 경제성장률은 1.4%, 전문가들은 심상치 않은 기조로 분석합니다.
김현철: 2%대 성장을 하게 되면 그거는 성숙경제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안정성장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작년에 1.4%는 그런 안정성장으로부터 이탈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2% 성장으로 다시 회귀하지 않고 민간경제 연구소들이 예측하는 것과 같이 1%대 성장을 하게 되면 이거는 지난 60년간 경제성장에서 초유의 2년 연속 저성장이 되는 거고요. 우리나라는 L자형 장기 저성장으로 진입할 거라고 내다보고 있거든요.
내레이션: 부정적 신호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부는 지난 1분기의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경제 성장률이 2.2%를 넘길 거로 전망합니다. 이달 들어 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만에 2.2%에서 2.6%로 상향하기도 했습니다.
성태윤/대통령실 정책실장(4.25): 성장세가 계속될 수 있는 지에 대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시적 변동성은 있겠지만 현재 수출 개선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부 회복세가 점차 확대된다면 성장세 지속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내레이션: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가 여전히 더딘 건 문젭니다.
한유진 위기는 규모가 작고 자본이 부족한 중소기업 일수록 더 크게 다가옵니다.
중소기업 대표: 이 제품은 인테리어 자재로 쓰이는 월 패널 종류 인데요. 불에 안 타는 불연성 보드라고 합니다.
한유진: 할 말이 많다던 업체 대표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먼저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취재진: 대표님, 인터뷰에 앞서서 성함이나 기업 이름이 나가는 거는 부담스럽 다고 하셨는데 그거는 왜 그러신 건가요?
중소기업 대표: 기업 이름이 알려지면 수도 없이 많은 컨설팅 업체에서 연락이 오기 때문에 굉장히 일종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고요.
내레이션: 제품을 주로 외국에 수출하는 데 요즘 들어 생산 라인이 멈춰 있는 날이 많습니다. 사람 구하기는 힘들고 생산비는 늘어 설비를 돌릴 수록 손해가 쌓여갑니다.
중소기업 대표: 원자재 값도 최근 몇 년 간 폭등했죠. 전기세라든지 그런 부분들이 많이 올라서 원가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내레이션: 후발주자인 중국과 동남아 업체들과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 대표: 중국의 대부분 업체는 저희 디자인을 모방하는 형편이죠. 모방해서 절반 정도의 가격에 시장에 푸니까 어렵죠.
취재진: 열심히 만들었는데 해외 나가니까 우리 제품이랑 똑같이 만든 제품이 중국이나 다른 경쟁업체에서 훨씬 낮은 가격에 팔고 있으면 기분이 어떠세요?
중소기업 대표: 맥이 빠지죠. 사실상 할 말이 없는 정도죠.
내레이션: 직원 3명으로 시작해 밤낮 없이 일군 기업, IMF가지 견뎌온 30년 세월, 여기까지 인가? 고민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취재진: (회사직원 체육대회 사진) 이때는 언제인가요?
중소기업 대표: 야유회요, 체육대회, 한 10년 됐나 모르겠네요.
취재진: 직원들 가장 많을 때는 몇 명쯤 됐습니까?
중소기업 대표: 70명 정도요. 공장을 세 군데 운영했습니다.
취재진: 지금은 몇 명 정도
중소기업 대표: 지금 43~44명 정도요, 축소된 편이죠. 더 키운다는 거는 사실상 말도 안 되는 거고요. 접지 못해서 줄이는 거죠. 사실은 접어야 맞거든요. 제조업은 한국에서 접어야 맞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봐야죠.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와중에 알게 된 거예요. 이게 아니구나. 지금까지 잘못했구나, 그때 이렇게 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다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사실 기업인이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거든요. 지난 5년 정도는 수없이 그런 생각에 열정을 잃은 거죠.
내레이션: 대외변수는 여전합니다. 국제통화기금 IMF 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 전망보다 0.1% 올라간 3.2%로 내다 봤습니다. (세계경제성장률 전망(IMF): 2024.1월-3.1%, 2024.4월-3.2%),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됐고 (1월-2.1%, 4월-2.3%)를 유지했습니다. IMF는 중동갈등이 확산할 경우에 성장률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등의 공개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이스라엘 분쟁이 현실화 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었습니다.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아시아 증시에도 충격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아베 마코토/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주임조사연구원: 한국기업은 국내 시장만으로 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갔고 그것이 세계화 시대에 잘 맞아떨어지면서 한국기업들은 사업을 계속 확대한 것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렬해지는 가운데 지금까지 세계화가 반전하는 거꾸로 가는 듯한 역회전 하는 듯한 상황이 되었어요.
내레이션: 경기가 어려우면 먹고 사는 걸 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한 날, 사장님은 식당 앞에 메모를 붙혔습니다. 오늘 하루만 쉬고 다시 힘내서 일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연히 이 메모를 본 시민이 이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위로와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송성권/음식점 사장: 원래는 여기 홀에 두 분 계시고 주방에 한 분 계시고 요리 하시는 분 한 분계시고 이렇게 네 분이 하던 걸 (지금은 혼자 하는데) 제가 또 사장이니까 또 홀도 나가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3명 몫을 하니까
취재진: 혼자 일하시면 나아졌나요?
송성권: 계산을 해보니까 그래도 전에는 아예 안 남았었는데 지금은 일하는 시간만큼 인건비는 나오더라고요.
내레이션: 어느 하나 싼 것을 찾기 힘든 물가에 밥값을 올리려 해도 손님의 발길이 떨어질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송성권: 미역국 나가고 이러는데 미역이 인터넷에서 많이 싼 것도 많고 마트에도 많이 있고 쉽게 구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마트 가보면 미역 없다고 그리고 그전에는 내가 안 쓸 때는 분명히 흔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내가 미역국 무상으로 드리고 내가 쓰다 보니까 그것만 오르나 마트에서 나한테만 올렸나 그런 생각도 들고
단골손님: 가까운 분식점만 가도 라면 하나, 김밥 하나 보통 9천원, 1만원 하니까요. 직장인들이 자주 와서 붐비고 그러면 상관이 없는 데 그렇지 않고 많이 힘들다 보니까 직원들 월급이 시급이 많이 올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 사장님들 같은 경우에 조금 힘드시겠죠.
내레이션: 해마다 10만이 넘는 음식점업 자영업자가 폐업 신고를 했습니다.
자영업 음식점 폐업자-2018년-13만1천, 2019년-12만3천, 2020년-13만5천, 2021년-15만7천, 2022년-15만7천, 5년 동안 모두 70만 명이 넘습니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사람들이 크든 작든 영향을 받습니다.
최정용/주류 배송원: 보증금 같은 건 손해보고 그냥 빈손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많고 조금 어려워해요. 장사하는 분들이 현장에서 뛰고 피부로 느끼는 거죠.
취재진: 배달하는 술 물량 같은 건 요새는 어떤 것 같애요?
최정용: 많이 줄었어요. 차 보면 알겠지만 지금 반도 안되잖아요.
취재진: 잘 됐을 때는 어땠어요?
최정용: 거의 한 차 실어가지고 원래 이 차도 2인 1조로 다니던 차였거든요. 그런데 짐이 없고 장사 폐업도 있고 줄다 보니까 혼자 타게 되고 인건비를 줄여야 하니까 기름값은 꾸준히 나가지 차량 유지비 써야지
내레이션: 플라자 합의 이후 수출 길이 막힌 일본은 내수를 부양하는데 모든 걸 쏟아 부었습니다. 금리를 낮추고 시장에 돈을 푸는 과감한 내수부양정책을 취하면서 일본 시장엔 소위 버블이 발생했습니다.
야니기마치 이사오/일본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 실체는 없는데 마음만 앞서가는 것 같은 들뜬 시절이라고 할까요. 그런 시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는 가짜 모습이라고 할까요
내레이션: 히타치 제작소는 이런 버블 경제시기를 보여주는 일본 전자제품 1위 기업이었습니다. 동시에 이후 이어진 잃어버린 30년을 상징하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강력한 부양책에 힘입어 티브이, 비디오 같은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기계, 조선, 설비 등 인프라 산업까지 확장했지만 매수 경기가 꺼지자 소비도 투자도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은 겁니다. 2008년 한 해에만 7800억 엔 당시 환율로 우리돈 10조2천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01년부터 2010년 까지 누적적자를 합치면 1조엔에 달합니다.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로 기업의 존속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랬던 히타치 제작소가 잃어버린 30년을 끝내고 지난 해 35년만에 사상 최고 주가를 찍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사오: 도산 위기에 처했던 히타치는 V자 회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때 기준에 하던 사업의 사업 구조를 본격적으로 재편성해 왔습니다. 과거의 성공패턴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서 이 사업은 잘라내고, 저 사업은 버리고 새로운 사업으로 교체하는---
내레이션: 히타치는 2009년 전부터 전면적인 사업개편에 들어갔습니다. 약10년에 걸쳐 22개였던 계열 상장사 중 18개를 없앴습니다. 1920년 창업한 히타치의 뿌리나 다름없는 히타치 금속도 포함됐습니다. 핵심 계열사까지 처분하며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선 겁니다. 방만한 몸집을 줄이는 대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4차산업 혁명분야에 집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버블 경제시기 20%대에 불과하던 히타치의 해외 매출액은 지난 해 60%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이사오: 국제적인 환경에 한국은 급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똑 같은 조건의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익숙한 걸 버리고 낯설지만 가능성이 있는데 투자하라. 과거의 영광에 취하지 말고 값비싼 수업료를 낸 일본 경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이사오: 오래된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계속해서 도전한다는 마음, 경제 전체에서도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새로운 기업가가 탄생할 기회가 만들어져야만 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저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지금 세계 경제에서 변동성과 불확실성 속에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변화에 적응 하는 건 이제 기업엔 생존을 향한 필수전략이 됐습니다. 그건 전통적인 노동 집약산업이라고 해서가 아닙니다. (국제물류산업 대전 경기도 고양시, 4.23~26), 지금 이 로봇은 여태껏 사람의 손이 하던 일을 대신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주문에 맞는 어떤 물건을 들어올려야 할지 상품을 줄 때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스스로 익히고 있는 중이죠.
이이삭/AIDIN 로보틱스 연구원: 물건을 잡아서 타깃으로 놓기도 하거든요. 그것을 이제 사람이 아닌 로봇이 대체를 해서 단순한 작업을 로봇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지금 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예견되는 미래에 맞서 한정된 사람으로도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우리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고정노선 운송로봇, 영어로 AGV로 부르는 이 기계들은 현장에서 일개미 로봇이라고 불립니다. 126대의 일개미 로봇들이 이 물류센터를 누비며 필요한 물품을 나릅니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3D로 실시간 구현돼 사무실에 앉아서도 물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상욱/CJ대한통운 선임연구원: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그 박스의 상품을 하나씩 위치 별로 피킹 그러니까 집었다면은 지금 보시는 것처럼 이 AGV가 그 상품들을 대신 가져다 주기 때문에 기존엔 한 시간에 한 30~40 박스를 처리했다면 이런 AGV를 통해서 70~80 박스 두 배 가량 늘어날 수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내레이션: 전통의 영역을 넘어서 미래의 먹거리 시장에서의 고군분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 전기자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 서울 강남구 4.23~4.26),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기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 지는 것처럼 업종의 경계를 나누는 건 더는 의미가 없는 일이 됐습니다. 전자제품 회사가 티브이와 냉장고만을 잘 만들어선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역설처럼 말이죠. (세계 전기자동차 LG Electronics), 이 회사는 차량용 정보오락전달 장치인 인포테인민트와 파워트레인 등 전기차에 필요한 필수고부가가치 제품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동차에 필요한 전자전기장비를 포함하는 전장 분야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11%가 늘어 2조6천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최지혜/LG전자 VS서비스팀 선임: 차량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됐잖아요. 저희의 모토는 ‘리빙 스페이스 온 휠’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거실에서 즐기던 경험을 그대로 차 안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어떻게 보면 저희의 DNA를 차량 환경까지도 연장선상에서 이끌어 가고자 하는 측면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사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그런 가운데 고용도 창출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양하게 움직일 수도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플러스 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내레이션: 위기의 파도를 넘어 경제주체들이 함께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갖기 위한 체질개선도 고민해야 합니다.
아베 마코토: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한국 자체도 인구감소시대에 진입하고 있고 경제 전체가 高성장하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착실하게 지금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허준영: 작은 기업들이 어떻게 해서 성장을 하고 중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중견기업들이 어떻게 해서 더 큰 규모의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것들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적 고민 산업 구조에서의 고민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누군가는 끝났다고 말하는 우리의 好時節,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누군가에는 끝난 것으로 보여도 그 끝이 누군가에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길의 出發點은 언제나 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끝. (KBS 시사기획 창 464회 한강신화의 종말 끝의 시작에서 정리).
내용요약
① 10년전 제주도는 좋은 부동산 시장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많이 오고 관광하면서 이민 투자같이 5천만 원, 10억 투자하면 제주도 시민권을 준다. 그때는 건설경기가 좋았고 골조만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분양이 완판 될 정도였다. 현재는 도산한 사람들도 있고 IMF 때보다 더 힘들다. 고금리 영향 때문이다. 고금리 때문에 이자 부담이 크다. 집을 사는 수분양자들도 망설이고 있다. 휴안 애월 2차 분양 전세가능, 골조만 올라가도 팔리던 집이 이젠 다 지어도 팔리지 않는다. 미분양을 줄여보려고 벽체를 대리석으로 방에 에어컨 설치를 했다. 대리석은 다른 자재들보다는 비용은 많이 들어가지만 살면서 관리가 편하다. 식기 세척기, 하이브리드 쿡탑, 광파 오븐, 전자레인지-그릴-오븐 4도어 삼성 냉장고 까지 분양률 높이려고 일부러 신경을 많이 썼다. 돈이 더 들었고 분양가에 맞춰도 소용이 없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암호화폐로 분양대금을 받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다. 집을 구매한다는 게 금방 결정할 수 없다. 그런 분들한테 일부 세대를 이용해서 무료로 한 달 살기를 하니까 중국 사람들이 많이 사고 있다. 근데 그분들이 국제 송금할 때 시간도 걸리고 복잡한 관계를 간소화시키기 위해서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겠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② 2014년도 제주도에 가장 호황기였다. 그때는 경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정이라든가 낭만이 있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각박한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회가 많이 있었다. 현대 25소7247 그랜저 승용차 등장 한강신화의 종말 끝의 시작, 추억의 그랜저다. 그랜저가 좋고 비싼 차여서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랜저가 서 있으면 친구들끼리 어디에 그랜저 서 있다 그리로 보러 가고 사실 어린 마음에 만져 보고 싶었는데 만져 보지 못 했다. 교육청에서 선생님들에게 그랜저는 웬만하면 몰고 다니지 말라고 위화감 조성한다는 신문기사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1세대 그랜저가 나왔던 시기는 1986년도부터 1992년도까지다. 당시 대한민국은 그때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백화점도 많이 생기고 사람들의 물건 구매도 고급스러워지게 느껴졌다. 그 시절 대학생들은 지금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들이 되었다. 그때 대학생들은 취업보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한 부류는 그 나름대로 낭만을 즐겼다. 대학생 1학년, 2학년은 노는 학년이었다. 춘천 가다 보면 대성리, 현리가 미어 터졌다. 가서 노래하고 술 먹고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가 인기 있었다.
③ 그때는 취준생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취직은 골라서 가는 시대였다. 학교 교무처에 가면 각 기업에서 입사지원서를 깔아놨다. 마음에 드는 것 갖다가 쓰고 보통 서너 군데 취업하였다. 그때 싱그러웠던 젊음의 추억은 자부심으로 남았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은 각별한 옛날 대우그룹 본사다. 거기는 결혼했던 장소다. 토요일, 일요일에 대우그룹 직원을 대상으로 결혼식을 했었다. 아들이 대우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아버지가 혼주로써 자랑할 만하였다. 그때 대우하면 방송사에서 무슨 경제 이슈있으면 사무실 와서 카메라 들이대고 그랬다. 지금은 키를 맞춘 고층건물들이 여럿 들어섰지만 그땐 서울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메머드급 위용을 자랑했다. 세계경영목표로 성장했던 대우그룹 사옥은 불이 꺼지지 않는 빌딩으로 유명했고 당시 젊은 세대들의 꿈의 직업은 상사맨이었다. 모두들 부족하지 않은 급여를 받았다. 재테크 잘 하면 5년 만에 집 한 채를 다 가질 수 있는 시대였다. 오전 일과 시작전 대우본사 직원들의 구호는 나가자! 나가자! 싸우자! 싸우자! 이기자! 이기자!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④ 당시 대우그룹이 가지고 있던 해외 지사와 법인이 600개였는데 금방 2000개 되니까 너희들 열심히 해서 나가서 법인장 해라. 더 열심히 일하고 경력 쌓아서 회사하고 같이 발전하자는 분위기였다. 국내 대기업들이 패기 하나로 해외시장을 개척할 때 때마침 하늘도 우리 편이었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됨으로 해서 그 사이에 소련 진영과 자유 민주주의 진영으로 나눴던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됐다. 세계화 현상이라고 한다마는 그 사이에 우리나라가 통상국가로 성장하면서 익혔던 모든 노하우들이 갑자기 세계화된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더욱 더 진출하면서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경쟁제품은 알아서 견제를 헤줬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물가 상승화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스태그플레이션-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미국은 국제시장에서 미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일본 엔화 가치를 올리는 플라자 합의(1985년 9월 22일)를 진행했다, 미국 달러 가치는 떨어졌고 반대로 엔화 가치는 높아지며 일본의 수출에는 제동이 걸렸다. 일본이 경제적 곤경으로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장기 저성장으로 빠졌고 한국은 그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소위 3저 호황이라는 저금리, 저환율, 저유가 속에 한국경제가 기사회생으로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그 당시에 원-달러 환율이 우리나라 상황에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우리 기업들이 일본 대신 수출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금리도 기업들이 차입할 때 저금리에 차입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격 경쟁력을 잃은 일본제품 대신 우리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3저 후원의 혜택을 온 나라가 누렸다. (경축 분당시범단지 견본주택 개관 1989년 11월 25일), 과거에는 시내 중심부에 유명 백화점이 2~3개 정도 있었다. 근데 근래에 와서 유명 백화점들이 많이 설립됐다. 1970년대까지 절약 저축을 강조했던 사회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국민소득은 4천불 소비수준은 2만불 과소비가 가정과 나라 살림을 어렵게 만든다는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⑥ 서울에서 86아시아 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올림픽대로 개통과 86년 대회는 우리 국격과 문화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아시아는 물론 온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서울에서 88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서울 올림픽은 한국 경제를 세계에 알려주는 경제 올림픽의 성과를 올렸다. 1996. 12.12. 한국은 29번째 OECD 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는 거품이 잔뜩 낀 영광이었다. 김영삼/前대통령(1997.11.)은 우리 경제의 어려운 상황에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임창열/당시 경제부총리는 IMF 자금지원을 요청하였다. 부채비율은 이론적으로 전체 자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게 적당하다. 아무리 많아도 100%로 자기 자본으로 부채를 다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 중에 부채 비율이 가장 많은 기업은 2000% 20배가 넘었다. 개발도상국 때는 보호주의 무역을 취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선진국 일원이 되면 무역도 금융도 자유화해야 되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선제적으로 OECD나 국제기관들의 요구 때문에 자유화 조치를 취했는데 이게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 사정하고 안 맞았다.
⑦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더는 투자 명목으로 가져다 쓸 달러가 없었다. 우리가 외화를 가지고 나가서 해외 투자를 많이 했다. 보유 외화 잔액이 떨어지니까 달러가 올랐다. 시장 원리에 의해서 그런 상황이 되면 더 안 빌려준다. 이상 했다, 이게 뭐지? 멀쩡히 나가던 물품 대금이 안 나갔다. 돈이 없다고, 대금을 못 주면 일 못 하는 거다. 다음 거래로 이어지질 않았다. 고로 기업은 쓸모 있는 사람부터 먼저 잘랐다. IMF 구제금융과 부실기업정리, 구조조정으로 급한 불을 끄고 신규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비용을 줄였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까지 회사 다니면 선방,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새까지 일하면 도둑 등 실업을 상징하는 신조어가 쏟아졌고 준비되지 않고 회사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自營業을 선택하며 경제는 더 치열해 졌다. 실업자수(통계청)는 1995-43만, 1996-43만5천, 1997-56만8천, 1998-149만, 1999-137만,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갖던 나라에서 超競爭社會로 시대가 바뀐 것이다. 各自圖生 누군가는 도태되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⑧ 지금은 모든 경제가 나라 끼리도 서로 연결이 돼 있다. 폐쇄경제를 제외한 우리처럼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서로 영향을 받는다. 사람이 50살이 넘으면 바꾸기가 어렵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기본 틀을 바꾸기는 대단히 어렵다. 수출에 의존해 온 나라, 우리 경제의 기본 틀은 3저 호황으로 대표되는 (100억불 수출의 날, 1977.12.12), 80~90년대엔 (200억불 수출의 날, 대한무역진흥공사), 우리에게 기회를 줬지만 (수출 1000억불 기념-제32회 무역의 날, 무역의 거리 개통식),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문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정책금리(한국은행)는 22.1월-0.205, 24.1월-5.500이었다. 원-달러 환율 (한국은행)은 21.1월-1090, 21.10월-1450, 24.1월-1300이었다. 이창용/한국은행총재(4.19)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반격함으로써 흔들렸다가 그로 인해서 더 확전되지 않을 거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다시 안정되는 불확실성이 진행되고 있다. OECD 식료품 물가상승률(OECD 3월기준) 1위 튀르키예 70.41%, 2위 아이슬란드 7.14%, 3위 한국 6.66%, 4위 노르웨이 6.07%, 5위 그리스 5.31%이었다. 최상묵/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4.18)은 전체적인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을 때가 6%를 넘었지만 지금은 3%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 품목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⑨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고 생산 활동이 중지 되면서 GDP가 빠르게 떨어졌었다. 거기다가 2022년 2월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개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크게 손상을 받았다. 그런 공급망 붕괴로 인한 인플레이션에다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이후에 재난 지원금이나 저금리 등으로 풍부한 유동성 으로, 2022년부터 겪었던 高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다. 그 사이 세계 경제성장률은 크게 떨어지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80년대도 8% 정도 평균적인 성장을 했다. 90년대에는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5%가 넘는 성장을 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들어오면 성장률이 5% 밑으로 떨어지고 2010년대에 오면 低성장으로 3%대로 들어오게 된다. 초등학생 때는 키가 빨리 자라지만 성인에 가까우면 키가 자라는 속도가 더뎌지는 것과 같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서 걱정스러운 부분은 그 성장률이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데 있다. 특히 지난 해 경제성장률은 1.4%, 전문가들은 심상치 않은 기조로 분석한다. 2%대 성장을 하게 되면 성숙경제의 안정현상이다. 작년에 1.4%는 그런 안정성장으로부터 이탈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2% 성장으로 다시 회귀하지 않고 1%대 성장을 하게 되면 이거는 지난 60년간 경제성장에서 초유의 2년 연속 저성장이다. 우리나라는 L자형 장기 저성장으로 진입할 것이다.
⑩ 부정적 신호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지난 1분기의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경제 성장률이 2.2%를 넘길 거로 전망한다. 이달 들어 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만에 2.2%에서 2.6%로 상향 했다. 성태윤/대통령실 정책실장(4.25)은 성장세가 계속될 수 있는 지에 대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시적 변동성은 있겠지만 현재 수출 개선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부 회복세가 점차 확대된다면 성장세 지속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가 여전히 문제다. 위기는 규모가 작고 자본이 부족한 중소기업 일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제품을 주로 외국에 수출하는 데 요즘 들어 생산 라인이 멈춰 있는 날이 많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생산비는 늘어 설비를 돌릴 수록 손해가 쌓여간다. 원자재 값도 최근 몇 년 간 폭등했다. 전기세도 올라서 원가가 높아졌다. 후발주자인 중국과 동남아 업체들과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중국의 대부분 업체는 한국 디자인을 모방하고 있다. 모방해서 절반 정도의 가격에 시장에 푼다. 한국 제품이랑 똑같이 만든 중국제품이 훨씬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⑪ 직원 3명으로 시작해 밤낮 없이 일군 기업, IMF까지 견뎌온 30년 세월,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 70명 정도 공장을 세 군데 운영했는데 지금은 43~44명 정도다. 더 키운다는 거는 사실상 말도 안 된다. 접지 못해서 하고 있다. 접어야 맞다. 제조업은 한국에서 접어야 맞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와중에 알게 되었을 때 이게 아니구나 지금까지 잘못했구나, 그때 이렇게 오는 게 아니었는데 다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지난 5년 정도 그런 생각에 열정을 잃었다. 대외변수는 여전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 전망보다 0.1% 올라간 3.2%로 내다 봤다. (세계경제성장률 전망(IMF): 2024.1월-3.1%, 2024.4월-3.2%),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됐다 (1월-2.1%, 4월-2.3%). IMF는 중동갈등이 확산할 경우에 성장률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이스라엘 분쟁이 현실화 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었다.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아시아 증시에도 충격은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기업은 국내 시장만으로 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갔고 그것이 세계화 시대에 잘 맞아떨어지면서 한국기업들은 사업을 계속 확대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렬해지는 가운데 지금까지 세계화가 거꾸로 가는 듯한 상황이 되었다.
⑫ 경기가 어려우면 먹고 사는 걸 줄일 수 밖에 없다.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한 날, 사장은 식당 앞에 메모를 붙혔다. 오늘 하루만 쉬고 다시 힘내서 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이 메모를 본 시민이 이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위로와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다. 네 명이 하던 걸 지금은 사장 혼자 하는데 전에는 아예 안 남았었는데 지금은 일하는 시간만큼 인건비는 나왔다. 어느 하나 싼 것을 찾기 힘든 물가에 손님의 발길이 떨어질 것 같아 답답하다. 가까운 분식점만 가도 라면 하나, 김밥 하나 보통 9천원, 1만원 하니까. 직장인들이 자주 와서 붐비면 상관이 없는 데 그렇지 않다 보니까 직원들 월급이 시급이 많이 올랐다. 해마다 10만이 넘는 음식점업 자영업자가 폐업 신고를 했다. 자영업 음식점 폐업자는 2018년-13만1천, 2019년-12만3천, 2020년-13만5천, 2021년-15만7천, 2022년-15만7천, 5년 동안 모두 70만 명이 넘는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사람들이 크든 작든 영향을 받는다.
⑬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수출 길이 막혀서 내수를 부양하는데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금리를 낮추고 시장에 돈을 푸는 과감한 내수부양정책을 취하니 일본 시장엔 소위 버블이 발생했다. 실체는 없는데 마음만 앞서가는 들뜬 시기였다.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는 가짜 모습이었다. 히타치 제작소는 이런 버블 경제시기를 보여주는 일본 전자제품 1위 기업이다. 동시에 이후 이어진 잃어버린 30년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일본의 강력한 부양책에 힘입어 티브이, 비디오 같은 전자제품 뿐만 아니라 기계, 조선, 설비 등 인프라 산업까지 확장했지만 매수 경기가 꺼지자 소비도 투자도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2008년 한 해에만 7800억 엔 당시 환율로 우리돈 10조2천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2001년부터 2010년 까지 누적적자를 합치면 1조엔에 달한다.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로 기업의 존속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내몰렸다. 그랬던 히타치 제작소가 잃어버린 30년을 끝내고 지난 해 35년만에 사상 최고 주가를 찍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산 위기에 처했던 히타치는 V자 회복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기준에 하던 사업 구조를 본격적으로 재편성해 왔다. 과거의 성공패턴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고민해서 이 사업은 잘라내고, 저 사업은 버리고 새로운 사업으로 교체하였다.
⑭ 히타치는 2009년 전부터 전면적인 사업개편에 들어갔다. 약10년에 걸쳐 22개였던 계열 상장사 중 18개를 없앴다. 1920년 창업한 히타치의 뿌리나 다름없는 히타치 금속도 포함됐다. 핵심 계열사까지 처분하며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섰다. 방만한 몸집을 줄이는 대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4차산업 혁명분야에 집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버블 경제시기 20%대에 불과하던 히타치의 해외 매출액은 지난 해 60% 이상으로 늘었다. 국제적인 환경에 한국은 급성장을 이루었다. 지금은 똑 같은 조건의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 익숙한 걸 버리고 낯설지만 가능성이 있는데 투자하라. 과거의 영광에 취하지 말고 값비싼 수업료를 낸 일본 경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오래된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계속해서 도전한다는 마음, 경제 전체에서도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새로운 기업가가 탄생할 기회가 만들어져야만 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를 통해 느끼고 있다.
⑮ 지금 세계 경제는 변동성과 불확실성 속에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그 한 가운데 서 있다. 변화에 적응 하는 건 이제 기업엔 생존을 향한 필수전략이 됐다. 그건 전통적인 노동 집약산업이라고 해서가 아니다. (국제물류산업 대전 경기도 고양시, 4.23~26), 지금 이 로봇은 여태껏 사람의 손이 하던 일을 대신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주문에 맞는 어떤 물건을 들어올려야 할지 상품을 줄 때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스스로 익히고 있다. 물건을 잡아서 타깃으로 놓기도 한다. 그것을 이제 사람이 아닌 로봇이 대체를 해서 단순한 작업을 로봇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예견되는 미래에 맞서 한정된 사람으로도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우리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고정노선 운송로봇, 영어로 AGV로 부르는 이 기계들은 현장에서 일개미 로봇이라고 불린다. 126대의 일개미 로봇들이 이 물류센터를 누비며 필요한 물품을 나른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3D로 실시간 구현돼 사무실에 앉아서도 물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그 박스의 상품을 하나씩 위치 별로 집었다면 지금은 이 AGV가 그 상품들을 대신 가져다 준다. 기존엔 한 시간에 30~40 박스를 처리했다면 AGV를 통해서 70~80 박스 두 배 가량 처리할 수 있다.
㉮ 전통을 넘어서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의 고군분투는 계속되고 있다. (세계 전기자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 서울 강남구 4.23~4.26),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 지는 것처럼 업종의 경계를 나누는 건 더는 의미가 없는 일이다. 전자제품 회사가 티브이와 냉장고만을 잘 만들어선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역설처럼 말이다. 세계 전기자동차 LG Electronics 회사는 차량용 정보오락전달 장치인 인포테인먼트와 파워트레인 등 전기차에 필요한 필수고부가가치 제품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자동차에 필요한 전자전기장비를 포함하는 전장 분야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11%가 늘어 2조6천억 원을 기록했다. 차량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됐다. 희사의 모토는 ‘리빙 스페이스 온 휠’이다. 이제 우리가 거실에서 즐기던 경험을 그대로 차 안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DNA를 차량 환경까지도 연장선상에서 이끌어 가고자 하는 측면이다.
㉯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그런 가운데 고용도 창출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양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러스 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위기의 파도를 넘어 경제주체들이 함께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갖기 위한 체질개선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한국 자체도 인구감소시대에 진입하고 있고 경제 전체가 高성장하는 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졌다. 착실하게 지금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 작은 기업들이 어떻게 해서 중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중견기업들이 어떻게 해서 더 큰 규모의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적 고민 산업 구조에서의 고민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끝났다고 말하는 우리의 好時節,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누군가에는 끝난 것으로 보여도 그 끝이 누군가에는 시작일 수 있다. 새로운 길의 出發點은 언제나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