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에선 세 번째 밀레니엄에 대한 이야기만 벌써 다섯 달 째 계속되고 있다. TV를 끄고 출근하다가 아뿔싸,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가 출구 쪽 신발장 위 수조 안에서 유영하고 있는 구피 녀석들에게 몇 점의 아침식사를 뿌려주고서야 다시 길을 나섰다.
2001년 오월의 아침은 참 푸르기도 하다. 시각적인 것은 후각적인 것까지 함께 몰고 오는 것인지 가로수의 녹음에 진초록 냄새가 묻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봄의 청량한 배경과는 다르게 아상하게도 무겁기만 하다.
교문과 본관 입구에 걸린 스승의 날 기념 현수막들이 요란스럽다. 게다가 건물 옥상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수직으로 족히 스무 개는 넘게 걸린 플래카드는 자기네 반 담임선생님 얼굴까지 넣어서 경쟁적으로 나부끼고 있는 모양새가 무당집이 따로 없다. 비담임이나 기간제 교사는 이런 데서조차 소외되나보다. 우리의 날인데 아이들이 오히려 더 야단스럽다. 그러나 요즘은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앴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루 정도 쉬게 하는 게 낫지 스승의 날 기념식을 한다고 다들 불러다놓고 우리의 스승도 아닌 이사장이랑 교장한테 매 해 감사 행사를 해야 하는 건지 진짜 모르겠다.
학생부 교무실에도 자리마다 학부모회에서 보낸 꽃바구니들이 가득하다. 흡사 꽃집 같은 분위기와는 반대로 공간 저 귀퉁이에 원산폭격 중인 아이 하나가 보인다. 동시에 학생 부장은 분을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방방 뛰며 그 듣기 싫은 쇳소리로 동네방네 광고 중이다.
기독교 학교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도 교칙에 어긋나는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 교사화장실에서 환풍기를 틀어놓고 흡연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잔뜩 나있는 모양이다.
“5‧18로 특례입학을 했으면 제대로 살아야지. 허, 참! 테러에 가담한 집안 주제에 국가에 무슨 공을 세웠다고 유공자 자녀야?”
아, 사회 배려자 전형으로 들어 온 아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부장이 참 말 한 번 살벌하게 한다 싶었다. 상벌계인 내게 부모님한테 연락을 해서 3일 후 상벌위원회를 열 테니 나오라고 전하라 명령한다. 바로 번호를 찾아 기계적으로 전화를 돌렸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덧붙여 어머님도 아이와 함께 등교해서 반성문 한 장씩 매일 적고 가야한다고 매뉴얼대로 전달했다. 어머니는 연신 아들놈 교육 잘 못 시킨 자기 잘못이라는 말을 후렴처럼 붙여가며 3일 후 5‧18 기념식에 참석해야하니 그 다음날 위원회를 열면 안 되겠느냐, 이에 덧붙여 시청에서 한 부모 가정에 알선한 공공근로에 아침 일찍부터 투입되는지라 저녁 때 나가서 반성문을 적으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사정한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어서 부장한테 그대로 전했더니 오히려 나한테 화살이 돌아온다.
“참, 선생님은 좀 더 그럴듯하게 설득을 해야지 안 된다고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날 점심시간에 무조건 회의 소집할 테니 쟤네 엄마한테 재 통보하세요.”
아이를 일으켜 세웠더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등을 토닥이며 니코틴이 땀으로 다 나갔겠다고 농담을 건네며 교실로 돌려보냈다.
누가 군인 출신 아니랄까봐 애한테 원산폭격이 다 뭐람? 반성문이라든가 운동장에 풀 뽑기라든가 반성시킬 다른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도 꼭 육체적인 고통만 주려하는 저 고집에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든 지 오래다. 누구의 말도 안 듣는 독불장군이니 더 이상 말을 섞어 무엇 하겠는가. 게다가 인신공격할 건 또 뭔가? 피해자 자녀한테 저런 막말을 하는 걸 보니 분명한 역사적 진실을 갖고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구나 싶어 마음 한 편이 불편했다.
우리 반 교실 문을 열기 무섭게 반장의 신호에 맞추어 아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스승의 노래를 합창한다.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속 썩이던 애들이 지금만큼은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두 팔들을 나를 향해 단체로 뻗는 자세를 할 땐 필시 천사들처럼 보였다. 그래, 너희들을 봐서라도 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야겠다. 직업인 ‘교사’도, 저 고고한 ‘스승’도 말고, 그냥 나는 ‘선생님’을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도 잠깐 행사하자고 애들까지 학교에 오게 한 건 잘 한 일은 아닌듯하다. 차라리 애들 중학교나 초등학교 선생님들 찾아뵈라고 쉬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기야 너희만 들러리로 온 것도 아니다. 이따가는 너희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선생님들도 교사 회의실에서 들러리로 나서야 할 일이 예정되어 있으니.
너희들이나, 나나 우리 모두 다 가엾은 날이긴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 시간 쯤 후에 종례 올 테니 청소하라 해놓고 나가려는데 아까부터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아이가 열심히 뭔가를 오려붙이느라 내게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물어보니 5‧18 관련 자료를 모아 감상문을 적는 역사 교과 수행평가를 준비 중이란 대답을 해왔다. 오늘이 5월 15일이니까, 그러고 보니 3일 후면 그 날이구나. 평소 보던 대로 박선생은 참 의식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학생부실에 들어오자마자 마침 박선생도 이벤트를 마쳤는지 한 아름 선물을 안고 교실에서 돌아왔다.
“나도 수행 고지는 이미 했는데, 5‧18을 소재로 해서 그 때 그 날의 학생에게 편지글 쓰는 걸 진행해 볼까 해.”
“요즘 밀레니엄 애들이 그걸 제대로 알기나 할까? 4‧19를 우리가 역사로만 배운 것처럼 말이야.”
하긴 그렇지. 우리가 중학교 때 일어난 그 엄청난 일을, 그것도 바로 옆 지역에서 그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 가는데도 뭣 하나 그것에 대해서 들은 바도 없었고, 결국은 대학에 들어간 1986년에서야 뒤늦게 학생운동 할 때 기록영상으로 접한 게 전부였으니까. 서로 작은 소리로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리 귀’라는 별명에 맞게 어떻게 들었는지 부장이 우리 대화에 예고도 없이 끼어들었다.
“참 세상 좋아졌으니 그렇지, 4년 전만해도 폭동이었거든? 좌파들이 정권 잡기 위해 그 지역 사람들 표 얻으려고 벌인 수작이지 뭐.”
들으면서, 박선생과 난 서로의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며 허탈해했다.
“국민의 정부가 다 뭐야, 빨갱이들 세상이 이름이 좋아 국민의 정부지, 전두환, 노태우 때가 훨씬 질서 있고 좋았지. 노동계고 교육계고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목소리들을 내니까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럽잖아? 빨갱이 앞잡이한테 노벨 평화상이 말이 되냐고?”
내가 귀를 막는 시늉을 하니까 참다못한 박선생이 나섰다.
“부장님, 이따가 스승의 날 교육부장관 표창장 받으시죠? 제가 부장님 공적조서를 쓰는데 그 당시에 3공수여단에 계셨다고 자랑스럽게 프로필을 제게 추가로 보내셨던데 그게 자랑할 일입니까? 제가 그걸 쓰면서 창피합디다. 부끄러운 줄 아셔야지요. 감옥에서 겨우 2년 만에 사면된 존경해마지 않는 전 대통령 두 분한테 위문이라도 가시지 그러셨어요?”
역시 ‘사이다 박’이라는 별명에 맞는 조롱이지만 이 때문에 분위기는 더 지옥으로 치달았다.
때마침 차임벨이 울리더니 지금 교사휴게실에서 기념식이 있으니 전 교직원은 집합하라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부장의 핏기 선 목덜미를 외면하고 둘이 먼저 학생부실을 빠져나와버렸다. 회의실로 가는 중에 박 선생은 어이없다는 표현인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저 인간 빌런이야. 밀레니엄 빌런. 저런 인간이 다른 곳도 아니고 교육계에 떡하니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아냐? 마치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득세해서 기득권의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모습이랑 오버랩 된다니깐.”
회의실은 축하쇼 무대처럼 꾸며있다. 양 옆으로 야자수 나무가 천장까지 치솟아 있고 창 쪽을 따라 온갖 화환까지 즐비하게 꽉 채워져 있다. 하나도 기쁘지 않은 얼굴을 한 선생님들은 왼쪽 가슴마다 카네이션 하나씩 꽂고 앉아서 어서 행사가 마치기만 고대하는 표정들이다.
여기에도 서열은 있어서 교무부장이 사회를 본다. 이사장은 소개를 받자 만면에 웃음을 장착하곤 강단으로 나왔다. 곧바로 교육부장관상 시상부터 한다. 앞에 서있는 학생부장은 오늘 보니 군기가 꽉 찬 갓 전출 온 이등병 같다. 옆자리에 앉은 박선생이 또 한 마디 거든다.
“사단 장 앞에 중대장 같지 않아? 거수경례나 안 할지 몰라. 저 인간, 교직 이수 안했으면 어디 공단에서 용접이나 하고 있을 건데, 겨우 들어간 지방 공대 나와서는 여기서 기술 과목 선생을 하고 있는 거 보면 참 사람 인생 알 수가 없어, 그치? 이사장 목사 마누라하고 부장 마누라하고 고등학교 단짝이어서 자기 남편 추천한 거래지, 아마? 등록금이 일반고 세 배가 넘는 이 고급 사립학교에 저 프로필로 가당키나 해? 여기 선생님들 둘러봐봐. 어디 명함도 못 내밀 인간이 그렇게 들어왔으면 겸손해야지, 자기 왕국인양 설쳐대는 꼴은 진짜 못 봐주겠어.”
이사장 목사의 축사가 끝나자 영빈 맞이하는 화동들 마냥 교사 상조회의 젊은 두 남녀 선생님이 한 아름 꽃다발을 전하고 돌아서려는데, 한사코 인증 사진을 찍자며 이사장이 아주 자연스럽게 여선생의 허리를 감싸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소리와 함께 성의 없는 박수가 이어졌다.
아니, 대체 이사장 목사가 왜 우리 스승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을 품은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아까 상 받은 학생부장이 인사말을 하면서 용비어천가를 덧붙인다.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섬겨주신 이사장님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요, 인생의 참 선배요...”
밤새 고치고 또 고쳐 연습해 온 것일 게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열상 다음 교감 차례인 교무부장을 제치고 이번 여름방학 때 학생부장이 교감 연수를 가기로 되어 있다는 소리를 공문 담당자에게 들었던 바라 이 광경이 크게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딸랑 딸랑 해서 교감까지 되고 바로 뒤이어 교장까지 되면 자기 출세는 실력보다는 줄 잘 서서 된 거니까 우리는 그냥 이사장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와 거기서 재정 지원을 받는 학교에 소속된 부속품들로서는 뭐라고 못 하겠지만, 보나마나 학교 위상이 딸에 떨어졌다느니 하면서 부장보다 학벌 높은 학부모들은 원성을 쏟아낼 게 불 보듯 뻔했다.
이사장, 학생부장, 교장, 교감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장장 두 시간 넘게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애들하고 약속한 종례시간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스승의 날 하루, 아니 반나절 행사할 때는 어찌 저리 고맙다는 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잘 하는지 모르겠다. 고마우면 이거라도 빨리 끝내주든가 말이다.
매 해 경험하지만 행사의 마지막이 하이라이트이다. 팔 십 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하나씩 앞쪽으로 이동하면 이사장이 일일이 십 만원이 든 돈 봉투를 선물로 하사하고, 이렇게 돈을 받아 든 사람들은 복도에 나온 순서대로 복도 양옆에 두 줄로 도열하고선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사장과 포옹하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영혼 없는 미소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맞추는 정도는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지만 사실 처음엔 이 상황이 너무 끔찍했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난 계단을 두 칸씩 뛰어서 종례 차 교실로 향했다. 이제 난 오늘까지 마감인 선생님들 자가 연수물을 일일이 체크해서 결재를 올리고 나서 점심 행사를 치루면 오늘 일정이 끝난다. 선생님들 명단을 펼쳐놓고 지난 봄방학 때 교육혁신을 주제로 숙제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을 일일이 체크해 보아야 한다. 이런 건 좀 경력 있는 선생님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계속 강조했는데도 소 귀에 경 읽기다. 아주 작은 일도 무시하기 일쑤인, 서열이 확실한 사립학교에서 힘없는 5년 차 신입이 무슨 수로 그 위대하신 분들을 상대로 숙제 따위를 종용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메신저를 켜고 단체로 “오늘까지 최종 마감!”이란 통보 글을 작성한 다음 사람들을 검색해서 하나씩 찍고 있는데, 아까 무심코 체크했던 분들 중에 교감이랑 학생부장이 보인다. 부장이야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말로 해도 좋겠지만 이건 공적인 일이니 단체로 통보하는 게 낫겠다 싶어 전송 버튼을 눌러놓고 얼른 교사 식당으로 행했다.
식당은 고급 한정식 집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입구에서부터 학부모회 인사님들이 우리가 이사장을 배웅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도열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반기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축하합니다!”
여기저기서 솔음의 경쾌한 텔레마케터 같은 인사말들이 날아왔으나, 이 행사를 위해 각 반에 행사비를 할당하고 갹출했겠지 싶은 생각 한편엔, 아침 원산폭격 당한 아이 같은 사배자 가정은 그 돈을 못 내서 왕따 당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뷔페식이면 좋았을 것을, 네 명이서 한 테이블을 쓰도록 세팅이 되어 있었다. 벌써 반쯤은 이미 가운데에서 끓어 넘고 있는 해물요리에 가위를 대고 자르며 왁자지껄 웃음이 한창이었다. 집단문화라는 게 참 그렇다. 저 쪽에 학생부장을 위시로 군인 출신들끼리 모여 있는 게 보였고 이 쪽은 신앙 좋은 팀, 창 쪽에는 이사장 라인 팀, 이런 식으로 색깔이 구분되니 말이다.
나도 별반 다르진 않아서 박선생과 몇몇 밖으로 식사를 자주 먹으러 다니는 선생님들이랑 한 팀이다. 오늘에야 면면히 보니 우리 팀은 솔로 팀인 것 같다. 미리 자리를 맡아 놓을 필요도 없는 것이 서로의 울타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참 편리한 편 가르기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 이사장 라인에서 떨어져 왜 저기 앉았지?”
내가 궁금해 하자 눈치 빠른 박 선생이 대답한다.
“내일이 5‧16이잖아. 지들이 무슨 군사 쿠테타 주인공들이야? 아마 이 학교를 위해서 충성맹세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 얘기를 듣자 우리 팀원들이 일시에 빵 터졌다.
“군바리들 어쩔 수 없어, 얼마나 옛날이 그립겠어? 지들 마음대로 하던 때 말이야. 우리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 외치며 최루탄 피해 도망 다니다 걸려 유치장에 갇히고 그럴 때 저것들은 다들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것들 아냐? 역사의식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밀레니엄 빌런들이 말이야.”
해물요리가 좀 질겼으나 얼른 이 가짜투성이의 숨 막히는 환영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인지라 건더기는 빼고 국물에 밥을 얼른 말아먹고선 커피 한잔씩 타서 도망 나왔다. 나와서 본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교문 쪽에서 언덕을 올라오는 일행이 보였다. 누군가 했더니 학생부장 와이프랑 자녀들이었다. 눈인사를 서로 나누며 스쳐간 뒤에 그 무리들 뒤에 대고 이번에는 이선생이 상황 해석을 가한다.
“학교 행사마다 아이들이랑 와이프는 왜 부르는지 모르겠어!”
“이사장한테 한 번이라도 눈도장 더 찍으려고?”
내가 물었다.
“아니, 삼순구식 하는 집안도 아니면서 꼭 저렇게 밥자리가 있으면 불러선 먹여 보낸다니까. 아주 감동적이야. 그냥 지들 행사인거야. 남편이 중대장이면 와이프도 중대장이라더니 딱 그 짝이네.”
혀까지 차며 이선생도 비난에 동참했다.
다들 퇴근 후 데이트 간다며 사라지는 선생님들한테 손을 흔들어주고 분수대 쪽으로 혼자 걸어오는데 갑자기 적막감이 일시에 들었다. 분명히 분수에서는 물이 중력을 거슬러 한없이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고 그 주위로 새파란 나무들이 무성했으며, 높은 하늘은 가을인양 한 점 구름도 없이 화창했다.
그런데 왜 마음이 즐겁지가 않은 것일까. 혼자 뚜벅뚜벅 본관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 다시 아까 그 배경을 쭉 한 번 훑어보았다. 방금까지 오월의 청명함을 품고 있던 것들이 금세 시퍼렇게 질려있는 것처럼 바뀌어 보였다. 녹음도 하늘도 모두 목이 졸리면 얼굴이 빨개졌다가 파래지는 것처럼 그렇게 숨이 막힌다는 듯이 웅변하는 얼굴들이었다. 오월은 저 식당에서 흥청거리는 분위기와는 딴 판으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교무실 내 책상 위에는 메신저로 최종 통보했던 숙제들이 몇 개 놓여있었다. 교감은 미안했던지 어디서 받은 것 같은 초콜릿을 재활용해 숙제 위에다 올려놓았고, 다른 선생님들도 깜빡 잊었다며 포스트잇으로 꼼꼼하게 스마일 이모티콘까지 덧붙여놓았다.
내부결재 시스템을 열고 다시 명단을 체크하는데 학생부장 한 사람만 빠져있다. 짜증이 몰려왔다. 공적인 일이 자기한테는 사소한 일인가보다. 부장 자리에 얼른 가보았다. 가방이랑 구두랑 있는 걸 보니 바로 식구들이랑 퇴근 안하고 올라왔다 갈 건가 보다. 그래, 기다리면 오겠지. 식곤증이 몰려와서 잠시 숙제 더미 위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졸았던 것일까. 내 옆을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살펴보니 학생부장이 어설피 보였다.
“저기, 연수물...”
이러다 말고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연행이 취미인가, 어디서 또 여학생 하나를 잡아다 목덜미를 움켜쥐고 자기 자리로 끌고 가는 게 보였다. 눈을 비비고 보니 그 아이는 우리 반 영현이었다. 그래 이야기나 들어보자. 자기 새끼 귀하다고 막무가내로 편들었다간 더 큰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 너, 이거 명찰을 왜 떼고 다니는 거니? 그리고 치마는 왜 이렇게 짧아?”
주섬주섬 허리춤으로 올려 말아놓은 치마를 푸는 아이를 향해 명찰은 어디 있냐며 주머니를 막 뒤져서 꺼내더니 왼쪽 가슴에다 손수 달아주는 게 보였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아이는 명찰을 받으려는 시도를 하려다 움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다.
“똑바로 안 서? 뭘 잘했다고. 열 중 쉬어!”
고압적인 그의 태도에 기가 눌린 아이가 어깨와 인상을 한껏 쭈그리고선 어찔할 줄 모르는 얼굴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이 상황에서 자기를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이다.
“여학생이잖아요, 부장님. 제가 조치를 할 테니 맡겨주세요.”
“선생님은 가만 계세요. 이런 것들은 싹을 아주 고쳐 놔야해.”
오늘만큼은 꼭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듯 꼭 다문 입술로 강압적으로 옷핀을 펼쳐 가슴에 명찰을 다는 그의 모습은 너무 단호했다. 백 번 양보해서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달아놓은 명찰에 굳이 망치질이라도 하듯 손바닥을 펼쳐 쾅쾅 두 번 때리는 게 보였다. 아이는 순식간에 울음을 터뜨렸고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부장 자리로 달려갔다.
아이부터 내 뒤쪽으로 끌어 당겨 놓은 후,
“부장님, 여학생 가슴을 만지셨어요? 이거 성추행입니다. 애가 싫다는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건 뭡니까? 당장 사과하세요.”
잠깐 상황파악을 하는 건지 한 십초 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는 표정을 하더니 이대로 질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뭘 어쨌다는 겁니까?”
하는데,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톤이다.
“제가 다 봤고요. 애가 교칙을 어겼으면 규칙대로 하면 되는 것을 이렇게까지 하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사과 안하시면 저 이거 공론화 할 겁니다.”
이 소리를 듣고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 마냥 우리 고양이들을 되레 물려는 기세로,
“해볼 테면 해보시든가. 애를 올바로 교육하려고 취한 행동일 뿐, 난 양심에 꺼리는 거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 말을 던져놓고선 구두도 안 갈아 신고 슬리퍼 차림에 가방만 챙겨 서둘러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아이를 내 차에 태우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진정시키기려고 애를 썼다. 아까 불쾌했던 감정을 달랠 심산으로 일부러 목사인 아빠 얘기도 꺼내보고 곧 있을 현장학습을 어디로 정할까 하면서 화제를 돌려 보기도 하였다.
겨우 한 나절 만에 난 파김치가 되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하늘엔 낮달이 떠있다. 이게 생소한 건 뭐지? 낮엔 해가 있으니 굳이 안 나와도 되는 것을 잠시 잊은 건 아닐까? 오히려 어두운 밤이 자기 자리가 빛난다는 것을, 달도, 나도 자기의 원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순행의 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데 발밑에 물컹하고 무언가가 밟힌다. 연신 위로 솟아오르기를 멈추지 않던 구피가, 연어도 아닌 것이 저렇게 높은 수조를 뛰어넘어 자살한 것이다. 한 마리가 내 발에 밟혀 내장이 터져버렸다. 자칫 부지불식간에 어떤 생명은 이렇게 죽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대로 두루뭉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래서 관리자 중에 그나마 내게 유화적이라고 생각되는 교감에게 전화를 했다. 차기 교장으로 당연시 되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그 FM 스타일을 보건대 안 그래도 학생부장이 서열을 건너 뛰어 교무부장을 제치고 감히 그 자리를 넘보고 있는 데에 불만이 없을 리라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전했다. 교감은 마치 자기가 옆에서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라도 된 듯 부장을 앞에 둔 것처럼 화를 버럭 냈다. 어떤 게임이든 내 편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것도 힘이 있는 사람의 위치를 이용하는 건 더 중요하다. 그 점에서 잠시 망설였던 통화를 한 게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월 16일
TV에선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나라당 대변인과 여당이지만 의석수에서 야당에 20명 가까이 밀리는 새천년 민주당과의 입씨름이 아침부터 전파를 타고 있었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하면 뭐하나. 아직도 군사정권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악취로 물들어 있는 대한민국인 것을. 이런 생각에 몰입한 탓인지 계단을 끝까지 내려왔을 때에서야 또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올라갈까 하다가 하루 굶는다고 죽기야 하겠나 싶어 그냥 출근길을 서둘렀다.
학교 강당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마침 교감이 학생회 회장 녀석과 어제 걸었던 플래카드를 제거한 건지 둘 다 두 손에 한 다발씩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좀 거들어주려 했더니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 기분 탓이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 통화할 때와는 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걸으면서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딱 한 마디가 들려왔다.
“교무실에 갈 필요 없이 지금 바로 교장실에서 봅시다.”
교장실 문을 여니 교장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한 쪽엔 영현이가, 다른 한쪽엔 다리를 꼬고 소파에 한껏 몸을 파묻은 학생부장이 마주 앉아 있었다. 성추행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지 않고 마주보게 하는 꼴이라니. 바로 영현이 옆으로 다가가 앉아 표정을 살피니 눈인사만 할 뿐 무표정한 얼굴로 이내 바닥으로 시선을 옮긴 채 고정했다.
교감이 학생부장 옆쪽에 앉으면서 입을 떼려 하길래 내가 먼저 치고 들어갔다
“사과는 하셨나요?”
다리를 풀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부장이 대답한다.
“참, 남선생 답답하네. 샘이 본 건 오해라니까 그러네. 애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그래서 난 몸을 영현이게 돌려 소리를 한껏 낮춰,
“진실을 말해줘. 선생님이 본 게 맞지?”
“...아니요. ...부장님께서 명찰을 달라고 손지시만 했을 뿐 터치하진 않으셨어요.”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해석해보려고 머리를 굴릴 틈도 없이 교장이 서류 한 장을 내 쪽으로 내밀며 공격에 가세했다.
“이거 이 아이가 쓴 자술서입니다. 여기 어딜 봐도 그런 근거는 없네요.
“교장선생님, 제가 증인입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허참, 당사자가 부인하잖습니까. 이 건은 피해자가 없으므로 인사위원회에 상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 아세요.”
삼 대 일이었다. 마지막 구원자인 교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교감선생님께선 아시죠? 제 말을 못 믿으시겠어요?”
“흠... 본인이 저렇게 부정하는데 근거가 없어서리...”
한숨을 지으며 영현이를 다시 바라보며 반박해보려던 찰나, 교장실 문이 열리더니 영현이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들어오자마자 우리 모두가 투명인간들이기라도 한 듯 무시한 채 곧바로 학생부장 쪽으로 마중나간 손을 든 채로 미소를 한껏 짓는다.
이를 발견한 학생부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거수경례를 한다.
“단결!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필시 중대장 앞의 소대장 같았다. 교감이 자리를 물려주자 그 자리에 앉더니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모레 광화문에서 있을 행사에 나올 거냐, 교감되면 교장연수는 언제쯤 하는 거냐, 귓속말 같은 제스처는 했지만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 말소리는 또박또박했다.
“아, 담임선생님도 계셨네요. 선생님, 부장님이 그럴 분 아니잖습니까. 아이도 어제 저랑 얘기했는데 자기가 오해한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교장이 끼어들었다.
“자, 이제 보호자님도 오셔서 진술하셨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확정하듯 종결 어미에 방점을 찍는 교장의 어투와 표정을 보고 나서야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쐐기를 박으려는 듯 교장이 한 마디 덧붙였다.
“남선생, 저 정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조용히 물러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합시다. 모레 5‧18 때 그걸 소재로 수행평가를 한다는 예고를 하셨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왜요? 이미 역사적으로 정리된 사실인데 뭐가 문제가 되는 거죠?”
“박선생이랑 남선생이 그걸 공지하셨다고. 그거야 정권의 입김이 들어간 거지 아직 모르잖습니까? 2년 후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니 좀 자제하시는 게...”
“전 대통령의 반란죄 모르십니까? 사법적 판단이 난 사건입니다. 그만 하시죠.”
이 분위기에 부장이 기세등등하여 쇳소리로 숟가락을 얹으려고 했다.
“석방됐잖아요. 그건 이 정권이 그 사법적인 것을 부정했다 이거 아닙니까. 어쨌든 위험한 수업입니다. 저처럼 생각하시는 학부모님도 계실 텐데, 민원 들어오면 두 선생님이 알아서 해결하세요.”
더 이상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았다. 목사인 영현 아빠에게 건성으로 목례를 하고 애를 앞세워 교장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함께 올라가면서도 난 추궁을 단념했다. 대신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여줬다. 그랬더니 갑자기 아이는 참았던 울음이 폭발한 듯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가 나는 입을 자기 손으로 틀어막으며 교실로 내달렸다.
교무실에 오자마자 박선생를 이끌고 나와 대책을 논의했다. 그는 영상자료까지 모두 만들었고 수업에서라도 아이들의 알 권리를 위해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자료로 수업하는 것은 불법사항도 아닐뿐더러 혹시 민원이 들어온다 해도 역사교과서를 근거로 반박할 수 있기 때문에 당당하지 못할 게 없었다. 수업의 자율권 간섭도 교권침해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기에. 그리고 한 가지 더, 성추행 부분에 있어서는 학교의 상위기관인 경기도교육청에 고발하기로 하고 내가 문구를 작성한 뒤 박선생이 익명으로 진정서를 접수하기로 했다.
연이틀 소용돌이 속에 빠진 기분이다. 그래도 원심력이란 걸 믿은 덕인지 소용돌이의 바깥 부분에 서있는 것보다는 그 안에 들어서 있을 때 훨씬 어지러움이 덜하다는 것을 지금 느끼고 있다.
퇴근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구피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살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마리가 수면 위에 배를 드러낸 채 떠있었다. 그것도 몸통 부분이 뜯어진 채로. 수조 안은 창자와 피와 뼈들 부산물로 인해 뿌연 했는데, 그 때 탁한 물을 헤치고 자수라도 하려는 듯이 한 마리가 입을 연신 뻐끔거리며 그 날카로운 눈을 내게 던진다.
결국은 네가 최후의 승리자구나. 이 나쁜 놈. 네가 원흉이었구나. 다 죽을 때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놈.
바로 전기코드를 뽑아 산소를 차단한 뒤 수조를 통째로 화장실로 들고 가서 변기에 쏟아버린 뒤 물을 내렸다. 끝까지 저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 놈의 마지막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았다.
돌아와 보니 박 선생으로부터 “진정서 접수”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수행평가 양식을 만들고 채점기준을 더 자세히 나눈 다음 출력해 놓고서야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5월 17일
오늘 1교시부터 우리 반을 시작으로 수행평가가 시작된다. 요일별로 학급 수행평가 순서를 정하고 어제 출력한 프린트를 복사해 반장들을 통해 게시판에 부착시키려면 서둘러야 한다.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복사기 옆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박선생이 컴퓨터를 켜더니,
“누가 내 컴퓨터 건드렸지?”
하며 두리번두리번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복사를 중단하고 서둘러 가보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 귀에다 입을 가리고 속삭인다.
“빌런 부장 아니면 이럴 사람이 없어. 그날 수행 얘기할 때 우리 둘이랑 부장만 있었잖아. 오늘 내가 수행평가 제출물 걷으면서 할 영상 수업자료도 있다는 걸 알았을 거 아냐?”
“뭔데, 자료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외국 언론들이 찍은 영상자료 그거 있잖아. 우리 대학 들어갔을 때 처음 보고 충격 받았던 그거.”
“쉿! 저기 빌런 온다.”
예전에 교무실을 비운 사이 선생님들 지갑이 통째로 사라진 뒤 CCTV를 달자해도 끝까지 반대하더니 결국 이런 증거인멸을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여기 부장 말고 그런 일을 저지를 강심장이 누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수업 시간은 다 되어가고 있었기에 박 선생은 자기 반 조회도 안 들어가고 뭔가를 열심히 하느라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난 다시 복사기로 가서 남은 일을 처리하다 살짝 눈을 돌려 빌런을 바라봤을 때 기막힌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건 그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다리를 떨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는 중간에,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검지를 콧구멍에 갖다 대더니 코딱지를 파서는 중지와 엄지로 동글동글하게 만든 다음 엄지로 활시위를 당기듯 툭 하고 아무데나 쏘는 것이었다. 갑자기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1교시 차임벨이 울렸다. 영현이는 교실 맨 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칠판에 시험 공지사항을 다시 큼직하게 판서했다.
수행 주제: 5‧18 당시 고등학생에게 편지 쓰기
시험시간: 09:10-09:50 (40‘)
수행 분량: 띄어쓰기 포함 600자 내외
수행 형식: 서간문 (수필)
참고 자료: 역사교과서 오픈 북
간단히 유의사항을 알리고 책상 위와 서랍의 모든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게 한 다음 시험 시작을 알렸다. 시험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미리 예고한 지라 일제히 숨소리도 안 내고 집에서 혼자 써보았을 내용을 떠올리는지 가끔 눈알을 굴리는 표정과 함께 “슥슥, 삭삭” 볼펜 굴러가는 소리로 긴장감을 웅변했다.
그런데 10분 쯤 지난 후 옆 반에서 오디오를 잘못 튼 건지 “삑”하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텔레비전 같은 영상기기에서 뿜는 직한 소리가 복도를 넘어 우리 반으로 흘러들어 왔다. 나는 감독을 하던 중 영현이 자리까지 소리 나지 않게 걸어가선 살짝 그녀의 글을 훔쳐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너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던 그 손이
오늘 내 가슴을 움켜쥐었네.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내 청춘은 짓밟히고...‘
여기까지 읽다말고 아이들이 일시에 굽힌 몸을 일으켜 짜증난 표정들을 일시에 내게 보이며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내 길래 교탁으로 재빨리 돌아왔다. 시험 중이라 아예 아이들 눈에서 사라지는 것은 원칙상 안 될 것 같아서 몸을 반쯤 걸친 채로 나머지 반을 쭉 내밀어 옆 반 뒷문 쪽 창으로 슬쩍 살펴보았다.
박선생이 수업 중이었다. 박선생은 교탁 옆으로 비켜서 있고 대신 가운데 칠판을 덮고 있는 롤스크린에선 빔으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5‧18 관련 영상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1987’이라는 자막과 함께 6‧10 민주항쟁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박 종철’, ‘이 한열’이란 이름도 보였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노래도 흘러 나왔다. 저 때 나도 시청 광장에서 오른 팔을 불끈 쥐고 하늘 높이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외치며 있었는데. 데모하다 최루탄을 피해 시청역 지하로 도망가는데 끝까지 쫓아오던 전경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저 수많은 군중들 속에는 그땐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던 박선생도, 나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저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역사자료가 되고 증인이 된 셈이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를 듣고서 수행 원고지를 챙겨 나와선 박 선생을 기다렸다가 함께 교무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교장이 내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내 볼펜을 잡아 돌리다말고 허리를 세웠다.
“참 어지간히 말도 안 들으시네요. 그런 것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결국은 해내고야 마는 저의가 대체 뭡니까?”
“교장 선생님이 제 수업에 참견하실 권한은 없습니다. 이러시면 교사단체에 정식으로 이 문제를 올리겠습니다.”
딱 부러진 박선생의 반응에 일순간 당황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교육청에 진정한 사람도 박 선생인가요? 학교에, 내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박 선생은 이 학교 식구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까지 해야겠습니까?”
일방적으로 비난을 쏟아내더니 휙 하고 나가버린다. 따라 나가려는 박선생을 말려 자리에 앉혔다. 저쪽 부장 자리엔 학생부장이 혀를 끌끌 차는 모습으로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을 머금고 서 있는 게 보였다.
결국 저렇게 교장이 익명 제보자까지 알게 된 거라면 분명히 교육청 담당자와 모종의 이야기가 오고 갔을 거란 결론이 섰다. 교장이든 이사장이든 이사들이든 학생부장이든 누군가 연루되지 않고서야 하루 만에 제보자 실명이 드러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의한 결과 최종적으로 교권침해 부분은 박 선생이 교사단체에 알리기로 하고, 난 성추행 부분에 있어서 총 학부모 회장을 통해 커뮤니티에 공론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쯤에서 멈추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빌런 카르텔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눈에 안 띄게 박선생은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가 교사조합 단체 회원인 선생님들을 불러내 긴급회의를 열었고, 나는 나대로 학부모회 간부들을 강당 옆 사무실로 불러 3일 간 일어난 모든 일을 고발했다.
5월 18일
학교는 뒤숭숭했다. 부장은 공식적으론 병가를 냈다고 했지만, 이미 모든 선생님들에게 메신저를 통해 소문이 다 돈 걸 보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어 있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이루기까지 우리 둘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교무부 기획선생님한테서 날아 온 메신저 하나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요약하자면, 경상도 OO고등학교에 대학 동기가 근무하는데 학생부장님 이름을 대면서 2학기 때부터 자기네 학교 교감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상황이냐고 묻더라는 말이었다.
결국은 쥐구멍에 숨은 것이 아니라 그냥 쥐새끼였던 것이다. 여길 빠져나가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 했던가 본데, 교사가 특수 공무원이라 알음알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란 걸 깜빡했던 모양이다.
박선생과 나는 그 학교 홈페이지에 함께 들어가 보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계열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였다. 이사장 인사말을 클릭하니 목사의 프로필이 떠서 스크롤을 따라 쭉 내려가다 알게 된 사실은, 우리 이사장과 대학 동문에 같은 분파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자신의 오른 팔을 잘라내는 모양새를 하더니 그 잘라낸 팔을 멀리까지 부쳐서 조립해 재활용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사제 폭탄이라도 만들어서 이 두 학교를 다 폭파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좀비처럼 죽이면 살아나오고, 죽이면 또 살아나오는 이 빌런들을 단박에 숨통을 끊어놓기 보다는 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더 많은 세력을 규합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2001년 5월 18일의 하늘은 그 때 그 날처럼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파랗고 드높았다.
첫댓글 오래전 체험담이네요.
어딜 가나 쥐새끼는 있죠. 하지만 용기 있는 선생님들이 있어 학교가 존재할 겁니다.
학교가 이런 시절 있었죠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