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을세배 디데이
--마을세배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어젯밤, 혜은이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초등학생 영주 영신이가 집에 가야 해서 참여를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해 카드도 열심히 만들고, 세배 연습도 열심히 했는데 참여하지 못한다는 연락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혜은 팀 인원이 2명이나 빠져서, 미나팀 중에서 한 명을 데리고 와야 하나 싶었습니다.
마침 윤아 라는 초등학생 한 명이 참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출근한 뒤 일찍부터 어르신들께 연락드렸습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배 드리기로 한 어르신들께서 대부분 밖에 나갈 예정이셔서, 안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병원 가야 해서,,,난 정말 괜찮아요.”-구자현 어르신
“지금 인천에 가야해서 나갈 준비 중인데,,,”-김준순 어르신
“지금 병원인데, 이따가 다시 연락 해봐.”-안명숙 어르신
“지금 나갈 준비 중인데,,,”-안상근 어르신
지난 주 연락드렸을 때 인천에 가신다던 정순자 어르신은 연락을 안 받으셨고, 오후에 오라고 하셨던 옥묘선 어르신께서도 연락을 안 받으셨습니다.
세배드릴 분이 없는 겁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세배를 못 한다고 해서 그게 실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배를 받을 분이 없다는 사실은 꽤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주 금요일에 연락드렸을 때에는 괜찮다고 했던 분들까지 갑자기 일정이 안 된다고 하셔서, 더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연옥 통장님께서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많이 바쁘셨습니다.
“네, 고마워요.”-이기수 어르신
“네네, 12시 조금 넘어서 오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아이고 덕담은 무슨. 난 그런 거 잘 못하는데. 공부 열심히 해서 큰 사람 되어라 정도 밖에는…”-김범진 어르신
혜은팀과 미나팀에, 이삿짐 센터와 신일부동산을 제외하고, 김범진 어르신과 이기수 어르신 한 분 씩 남았습니다.
문은선 선생님과 논의하며, 디데이 날짜를 바꾸는 것 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일부러 일정을 맞추었고, 마을세배 활동으로 인해 수업 시간까지 미룬 상태여서 일단 가보기로 했습니다.
두리하나 국제학교로 갔습니다.
원혁이가 새해카드, 선물, 매트까지 준비해두었습니다.
원혁이가 이삿짐 센터 어르신들께 오늘 11시에 세배 받으러 오시라고 다시 한 번 알려드렸습니다.
새로 급하게 합류한 윤아가, 한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입을 사람이 없는데, 제가 입어야죠...”
한복을 입는 게 괜찮았냐고, 입고 싶어서 입은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혜은, 윤미와 함께 열심히 세배 연습도 했습니다.
--이삿짐
11시가 되어도 이삿짐 센터 어르신 분들이 안 오셔서, 원명이와 예림이가 모시러 갔습니다.
2층 로비에서, 매트를 깔고 세배했습니다.
“그래, 건강하렴~~”
두 분 모두가 세뱃돈을 꺼내셨습니다.
두 분 모두,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를 건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마다했지만, 이내 감사 인사드렸습니다.
--이삿짐에 다 같이 인사드린 후, 미나팀과 혜은팀이 나누어 움직였습니다.
혜은팀에는 제가, 미나팀에는 다영 선생님과 문은선 선생님이 함께했습니다.
미나팀은 아이들이 자주 가던 cu편의점, 고깃집, 짜장면집, 미용실 등 상점에 인사드린 후, 동아 아파트로 가서 이기수 어르신, 최정분 어르신, 문애순 어르신께 세배했습니다.
미나팀은 다영 선생님과 함께했기 때문에, 다영 선생님의 기록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정숙, 박일례 어르신
“오후에 오시면 안 돼요? 2시쯤에…”
“어어, 그러면 어떡하지…그러면 일단 한 번 와 봐요.”
전화 드렸을 때에, 오전에 일정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쉬워하시며 어떻게든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하시는 게 어르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다른 일정을 제쳐두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르신 댁에 가니,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왔나보네. 어서와!”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어~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해~”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고 그래~”
세배 드리니, 덕담을 큰 목소리로 외쳐주셨습니다.
“기도문도 넣고, 용돈도 넣었으니까,,,”
“둘이 5만원씩 해서 10만원 넣었고, 한 해 기도문 제목도 써서 여기다가 넣었어. 알아서 복돈 하고 그래~”
“우리가 힘은 없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박일례)권사님이, 아이들이 세배하러 오는데 돈도 안 주면 어쩌냐고 해서 준비했어.”
기도문과 세뱃돈을 준비해두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감사인사를 외쳤습니다.
“(요구르트를)저기 가서 사왔어. 애기들 간식….떡도 먹고 그래.”
요구르트, 떡, 귤. 간식도 많이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러면 가져가. 가져가서 먹는 건 괜찮으니까…”
먹을 수는 없었지만, 가져가서라도 먹으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아이들도 웃었습니다.
떠나기 전, 어르신들께선 혜은이, 윤아, 원혁이를 차례로 한 번 씩 안아주셨습니다.
“정말, 정말 따뜻해요. 이렇게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혜은이가 감탄했습니다.
--신일 부동산 대표님
동아 아파트로 가기 전, 신일 부동산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대표님께서 저희를 보시고는,
“인사하러 다니는 구나? 잠시만, 인사도 받았는데 그러면 뭘 해줘야하나?”
“에이, 인사도 받았는데 그러면(아무것도 안 주면) 도리가 아니지. 간식이라도 뭐 사줄까?”
하며 자연스럽게 편의점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가격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골라.”
윤아는 초콜릿(킨더조이), 원혁이는 토레타, 혜은이는 오미자를 골랐습니다.
“괜찮으니까, 골라요.”
제게도 어서 고르라고 하셔서, 눈에 보이는 마이쮸를 집었습니다.(이 마이쮸는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건강하고~”
좋은 말씀까지 덧붙여주셨습니다.
간식을 받아 동아아파트로 가는 길에, 혜은이가
“아니 저희가 인사를 하러 다니는 건데, 오히려 이렇게 많이 받으면…”
하며 웃었습니다.
--김범진 어르신
동아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가장 먼저 김범진 어르신 댁을 방문했습니다.
“왜 안 나오시지? 움직이기가 불편하신가?”-혜은, 원혁
초인종을 눌렀고, 목소리가 들렸는데도 꽤 한참 안 나오셔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아이고, 내가 집에서는 옷을 안 입고 있어서…”
생각보다 일찍 와서, 준비를 못 하고 계셨던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들어올 만한 데가 아니라서…”
들어오는 것이 조심스러우신 것 같아, 안에 들어가서 세배는 못 드리고 밖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드렸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훌륭한 사람 되어라.”
“내가 이거(새해 카드) 꼭 붙여 놓을게~!”
덕담과 함께, 새해 카드를 꼭 붙여놓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안명숙 어르신
“어서 와요. 들어와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사실 안명숙 어르신께서는, 저번 주에 세배 드리러 오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을 때 부담스러우신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염려가 많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밖에서라도 잠시나마 인사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흔쾌히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아이구, 어떡하지?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거 정말 얼마 안 되는데, 진짜 조금이야. 조금인데, 준비했어.”
“3천 원씩 밖에 안 돼. 너무 적어서...미안해.”
연신 너무 적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며 봉투 세 장을 건네셨습니다.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직접 준비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오늘은 손난로도 못 줘서...”
지난번에 핫팩을 주셨었는데, 이번에는 못 준다고 아쉬워하셨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저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원혁이도 그런 어르신의 모습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황순복 어르신
황순복 어르신께 찾아갔습니다.
황순복 어르신은, 이선숙 위원님께서 소개해준 분입니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문을 천천히 열어주셨는데,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아유, 감사해요. 정말...”
새해카드와 팔찌를 드렸더니, 연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여기, 여기 앉아요.”
세배 드리고 나니, 계속해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분이었습니다. 이웃을 만나러 왔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고맙다고 하시니, 그동안 그만큼 이웃과의 교류가 없으셨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전부 인사드린 후, 미나팀과 만나서 정자에 앉아있던 분들께 인사드렸습니다.
“어휴, 추워. 겉옷 좀 입혀서 오지.”
한복만 입고 다니는 윤아를 보며 걱정하셨습니다.
“네! 여기 바로 밑에, 두리하나 국제학교...”
진정한 이웃끼리의 만남이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마워. 건강 하고, 하는 일 다 잘되길 바랄게~!”
평소 조용하던 아파트 단지가, 활기찼습니다.
--세배 드리고 돌아오는 길, 윤아와 대화했습니다.
“아니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매트를 들고 가는 게 힘들진 않은지 물었더니, 괜찮다며 스스로 들겠다고 했습니다.
“아침밥을 안 먹어서..배고팠는데, 재밌었어요.”
“또 하고 싶어요.”
“힘들었어요. 근데 괜찮아요.”
갑작스럽게 함께하게 되어 걱정했는데, 열심히 뛰어다니던 윤아가 정말 재밌어서 그렇게 뛰어다녔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만두는 또 언제 만들어요?”
지난 번 만두 활동이 재밌었는지, 또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네! 재밌어요. 또 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과 함께 있는 게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계속 왔으면 좋겠다며 웃었습니다.
# 다짐
--지난주까지만 해도, ‘계획’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을세배 당일이 되고 나니, 변수들이 쏟아졌습니다.
영주 영신이는 참여를 못 하게 되었고,
어르신들께서 바쁘셔서 세배 드릴 분이 거의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혜은이가 영주 영신이를 대신해서, 윤아를 데려왔습니다.
갑자기 참여한 윤아는 한복을 입고 누구보다 열심히 세배했습니다. (한복을 입으니, 확실히 어르신께서 더 좋아하며 흐뭇해하셨습니다.)
세배 드릴 어르신을 더 찾기 위해서, 문은선 선생님께서 쉬지 않고 전화하셨습니다.
문은선 선생님의 연락에, 이선숙 위원님께서도 어르신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은 세배 드릴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니, 인사드리고 싶은 주변 상점들에 들어 가 인사드렸습니다.
복지관을 나설 때만 해도, ‘이게 될까?’ 싶었습니다.
세배를 못 한다고 해서 실패한 사업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어 못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마주하니, 그동안 아이들이 즐겁게 준비해온 것들이 생각 나 속상하고 아쉬웠습니다.
어려움들이 생겨도, 쉽게 훌훌 털어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다영 선생님 덕분에,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배터리가 닳도록 전화하고 돌아다니며 저희와 함께 한 문은선 선생님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선숙 위원님 덕분에, 더 많은 이웃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불편하고 부담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말 반갑게 맞아주며 간식, 용돈, 덕담을 준비해주신 이웃 분들 덕분에, 성현동이 따뜻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었을 텐데도 마지막까지 즐겁고 활기차게 활동한 아이들 덕분에, 마을세배 사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심지어, 굉장히 풍성했습니다.
미나팀은 특히나, 인사드리고 싶은 상점에 들어가 인사드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아이들이 주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활동을 이끌어나가며 주인일 수 있도록,
동네 주민 분들께선 어른 노릇하며 주인일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고민이 굉장히 많았고 논의도 많이 했습니다.
세배 당일까지 지나고 돌아보니, 정말 주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나팀과 다영 선생님이 방문해 세배 드린 이기수 어르신께서, 혼자 있어서 정말 외로웠는데 아이들이 와서 좋다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참 동안 마을세배 사업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희의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급해하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준 다영 선생님, 항상 저희와 함께하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문은선 선생님,
고민을 털어놓으면 언제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준 성현동 동료 선생님들,
시간이 안 되어 오지 못했지만, 마을세배 당일에 정말 함께해주겠다고 말씀하셨던 은하, 승환 선생님,
끝까지 따뜻하게 맞아주신 어르신들과 동네 주민 분들, 이선숙 위원님,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즐겁게 활동한 아이들,
모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