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晶 河善玉
어제 오후 세 시쯤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전등불들이 가녀린 촛불처럼 흔들거리더니 스르륵 꺼져버리고 비상등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 무심하게 TV 앞에 앉았다가 얼마나 놀랐던지. 새가슴 뛰듯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큰소리로 옆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그 역시나 나처럼 놀란 얼굴로 뛰쳐 나와 4층에서 계단으로 8층의 옥상으로 황급히 올라 서 얼른 주위를 살폈다.
우리 건물로 들어오는 고압선에 연결된 삼상 교류 전기선 하나가 떨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감전되어 죽은 까마귀 한 마리가 연기를 피우며 뜨끈뜨끈한 상태로 누워있는 게 아닌가. 급히 전기 안전관리 지킴이를 불러 한국전력에 연락하게 하고, 전기 전원은 다 내려놓고 목욕하는 손님들에게 성능 좋은 손전등을 밝혀 목욕할 수 있게 해주면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목욕을 계속하였다.
그로부터 약 세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한전 직원들과 전기 안전관리팀이 당도하여 사고를 수습하고 시설을 점검한 상세한 결과가 나왔다. 목욕탕 원수를 공급하는 지하수 모터가 나가버린 것은 약과였다. 감내하기 힘든 더 큰 문제는 고압선의 합선이 일으킨 연쇄적인 사고로 생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며칠간 칡넝쿨같이 얽혀진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여 정상적으로 돌려놓아야 할 일을 생각하니 하늘이 노랬다.
긴급출동한 한전 팀에게도 만만찮은 금액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고. 지하수 대신 상수도를 이틀 동안 틀어서 목욕탕에 공급해야 하고. 또 모터가 나간 지하수 관정管井을 빼려면 크레인을 불러서 비싼 수중모터를 교체해야 하고. 내가 보고 있던 TV도 화면이 안 들어오니. 허 내 웬 참.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앉았다 벌인 일이라 황당하기도 하고 사오백만원 정도의 피해 금액을 생각하니 속상해 죽겠는데,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착한 척 고상한 척하는 어느 오십 대 후반의 여인네 땜에 생긴 화禍가 오늘까지도 삭이지 않는다.
"어머나 어쩌나?" 이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걱정해주는 줄 알았으니.
얼굴을 찌푸리며, "죽은 까마귀 불쌍해서 어쩌나?“
" 뭐라고요? 까마귀가 불쌍 타구요? "
"예. 감전돼서 죽은 까마귀가 너무너무 불쌍해요.“ "까마귀도 인간이 하는 일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불쌍하지. 이래 큰 피해를 줬는데도 까마귀가 불쌍하나요?"
그러니 그만 입을 속 다물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느라 참말로 힘들었다.
‘그리도 불쌍하면 까마귀 제사라도 지내 주지 그러냐’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참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던가? 아무리 ‘동물 애호가’라고 해도 본인이 이런 일을 당하면 ‘죽은 까마귀가 불쌍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죽은 까마귀 편에 서지 말고, 잠시라도 사람 편에 서서 ‘속상하지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경우 없이 나서는 그녀가 너무도 얄밉고 속상했다. 하지만 어쩌랴, 까마귀 떼가 저지른 억울한 이 일을 탓해서 무엇하랴.
떼지어 사는 까마귀 세계에도 필시 인간 세상과 같이 가족이 있을 터. 한 마리 까마귀의 죽음을 지켜본 까마귀 가족들의 슬픔은 얼마가 컸을까? 내일은 아직도 옥상 바닥에 그대로 놓여있는 죽은 까마귀를 거두어 장례라도 치러주어야겠다. 2022년 11월 27일.
첫댓글 이런 경우는 수용가의 잘 못이 아닌데 변상 하셨어요?
까마귀의 실체가 있는데도요?
시겁했겠네요.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오랜만에 선생님 작품을 접하니 배고품이 가시네요.